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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워크 -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헬렌 헤스터.닉 서르닉 지음, 박다솜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2월
평점 :
일과 가정과 여유에 관한 문제 제기와 다양한 대안들 핵심은 “시간”
지은이 헬렌 헤스터와 닉스르니첵의 <애프터 워크> 즉, 일을 마친 후에 찾아오는 시간을 들여다본다. 하루 고된 일과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충전하는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이른바 8.8.8 (38원칙)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의 자유 시간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적고 있다. 지은이들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한해 1901시간)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이 책은 유의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일의 종말, 어떻게 하면 일을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 대전제로 6장에 걸쳐서, 일을 줄일 수 있을까(1장), 가정 안에 기술이 도입되면서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 기술의 배신(2장)과 청결과 위생, 요리, 육아, 번아웃이라는 허슬문화까지 재생산 노동의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기준의 강화를(3장), 재생산 노동에서 한계를 드러낸 핵가족의 한계와 가족 역시 사회구성체로 새롭게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룬 가족 형태의 변화(4장), 노동집약적 주거 공간의 재조직, 기반 시설의 공유라는 발상과 공동주거의 제안(5장) 그리고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6장)로 구성됐다.
지은이들은 탈노동과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긍정적인 시험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로 일을 좀 줄이는 탈노동은 네덜란드에서 일었던 워크샤링(일자리 나누기, 가사와 육아분담의 새로운 모델로서 검토된 적이 있을 만큼 워라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니 결이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선 일이라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자. 탈노동에 관한 사유는 전적으로 임금노동-남성위주의 산업과 일자리-에만 집중됐다. 그 결과 사회 재생산이라는 일은 일의 종말에 대한 성찰에서 대체도 등한시, 탈노동 사상가들의 머릿속에는 제조와 생산현장의 노동만 일일지, 돌봄(병원, 요양시설,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건 안중에 없다는 말)
탈노동과 사회 재생산의 대항 관계
“탈노동”을 주장하면서 무보수의 “돌봄”노동, 즉 사회 재생산 노동을 무시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 노동의 의미 있는 부분을 무시하는 셈이다. 이 책은 탈노동뿐만 아니라 탈부족 세계를 지향, 새로운 규범을 세우기 위해 사회 재생산에 있어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아내려 한다. 사회 재생산을 일로 인정하고 그 일을 가능한 한 절감하고도 남는 일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공공 돌봄과 공공 호사, 그리고 시간 권리를 새롭게 보자고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고 과거의 제안과 모델까지도...
38원칙의 일반론 ‘임금노동의 영역’ 의 힘에 밀려난 ‘자유 시간’의 초상
1886.5.1.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면서 벌어진 미국의 유명한 헤이마켓 광장사건을 계기로 1890.5.1. 프랑스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날(국제노동조합대회)에서 노동절을 결의하고, 1919년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1일시간 주48시간 노동제가 국제 노동기준이 됐다.
100여년 넘은 1일 8시간 노동제는 케인스가 1930년에 쓴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리 경제적 가능성’<다시, 케인스>(존 메이너드 케인스,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 포레스트북스, 2023)에서 한 세대 안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이 줄어들 것이며, 여가가 늘어날 것이라고, 케인스는 뭘 보고 이렇게 예측했던 것일까?, 48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 과로, 만성피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는 데, 정부는 주 “69시간”제를 들고나오는 한편 아이들을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주겠다고, 뒤죽박죽 워라밸의 역설인가, 미신인가, 케인스의 의미있는 질문, 경제적압박에서 벗어난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과학과 복리가 얻어준 여가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서 현명하고 기분 좋게 살것인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케인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IT에서 AI로 옮아가면서 일하는 시간은 더 늘었다. 왜?, 무엇인 문제인가, 바로 기대수준과 기준이 높아진 탓에 일손을 덜어주는 기계, 시스템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지만, 노동시간은 줄지 않고 더 늘어나는 현상, 이른바 기술의 역설이다. 자 여기까지가 8시간 노동의 일반론이라 치고, 이제 남은 8시간의 자유 시간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38원칙 “8시간의 자유 시간”의 행방
8시간의 자유 시간은 일터에서 나와 집에 도착하는 순간 시작된다. 즉 가정 안으로 사회적 관계를 옮겨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강제한 사회 재생산의 주체인 핵가족에 주목한다. 가족과 일, 가족은 변형 불가능의 체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가족이 속한 경제체제(즉, 일자리와 수입 등)에 대한 적응적 반응을 전제로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기술발달의 역설이 그대로 적용된다. 제아무리 임금노동 시간을 줄더라도 가정 안에서의 노동은 줄어들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은이는 가정 공간의 건축 형태, 즉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보수 노동과 돌봄 노동이 겪는 난관이 생활공간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꽤 흥미로운 대목이다.
공동 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
어떻게 하면 탈노동의 범위에 돌봄과 사회 재생산 영역까지를 넣을 수 있을까, 또 확대될 수 있을까, 이 책의 핵심은 “시간”이다. 이는 자유 영역의 확장이며,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해방되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활동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다. 공공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으로, 탈부족 세상, 즉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팔지 않아도 인생의 필수 요소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공동 돌봄, 아이와 노인을 마을 사람들이 키우고, 돌보는 것, 돌봄 관계를 핵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이 책 194-197 참조), 공공 호사는 도구의 공동소유를 통해 자유의 확장을, 시간을 어떻게 쓸지, 이 세 가지에 관한 논의는 꽤 복잡하지만 신박하다. 이제껏 생각해왔던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기에, 꽤 논쟁거리가 될 듯하다. 하지만, 지은이들의 주장은 이전부터 주장되오던 오래된 새로운 문제들인 만큼 흥미롭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