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된다는 것 - 철학적이고 경제학적인 통찰
제이슨 브레넌 지음, 홍권희 옮김 / 아라크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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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된다는 것- 철학적, 경제학 통찰


이 책<부자가 된다는 것>은 부자론이다. 조선시대 일인지하만인지상 재상들도 “고리대금업”을 했고,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서는 당쟁에서 학문의 깊이는 뽐내며, 일당을 휘어잡던 사대부들도 산과 토지송사(재판)가 수없이 했다. 경제적 기반없이, 어떻게 학문을 할 수 있으며, 수신제가도 돈이 없으면 언감생심, 어떻게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부자예찬론의 18세기 영조시대의 지식인 이재윤, 아무튼 부는 악이요. 가난은 선이라는 이분법 속에서 고리대금업을 하든 송사를 하던 부만 축적하면 나는 괜찮아, 권력을 쥐고 있으니, 그래서 오죽하면 “청백리”를 그야말로 천연기념물처럼 여겼을까?, 


아무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 싫다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 아주 드물게(?)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그러했고, 조선의 거상 임상옥이 그러했다. 계영배처럼 술을 부어도 7부가 넘으면 옆으로 흘러가나듯, 경주 최부자의 가훈 쌀농사는 만 석이상은 절대하지 말라, 로마의 금욕주의 철학자 세네카가 하는 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부에 관하여, “잘 조절하는 사람은 사치품을 경멸하지도 않고, 사치품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부귀를 견디지 못하는 것은 불안정한 마음의 징표라고 했다. 확실히 옳은 말이다. 심리학적으로도 그렇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당신이다” 라는 말이다.


그럼, 부자는 진짜 나쁜가? 왜?라는 물음에 지은이 브레넌이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경제학적인 통찰을 한다. 그의 논리를 반대하든 찬성하든 “부자가 된다는 것”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니,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브레넌의 부자가 된다는 것에 관한 그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읽기에 따라서는 마키아벨리의 정치가의 3원칙 중 1, 2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힐 수 있다. 1) 정치와 도덕 윤리는 별개다. 2) 운과 실력이 있어야 한다. 3) 진심일 필요는 없다 그저 그런 척만 하면 된다. 3은 정치가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브레넌의 부자론은 “선한 부자” “참된 부자”론으로 읽어야


그는 돈과 부에 관한 일반적 통념 즉 돈을 원하거나 버는 것, 부를 유지하는 것은 나쁘다는 생각을 편견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돈은 원해도, 돈을 버는 것도, 부를 유지하는 것도 모두 괜찮다고, 브레넌은 부에 관한 인간의 이중잣대는 초기인류의 생존형 채집 경제시대에 통용됐던 도덕적 판단 기준이 우리의 DNA속에 남아 있어 돈과 부자에 대한 과거 인식과 평가가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해석했다. 18세기 이후 과거 조상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시장 경쟁은 협력하기 위한 경쟁이라고 봤다. 거래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포지티스섬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 책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선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투자하는 것이 낫다.자선만으로 세계 빈곤 문제를 풀지 못한다. 국가간의 협력을 축진하고 인적물적 자본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제도를 가진 나라가 부자나라가 된다고, 그 나라에 수십 억 달러를 던져주는 것보다 낫다고..부자의 부채의식을 벗어나라고, 


1장 문제는 돈이 아니라 당신이다로 시작되는 그의 글은 7장으로 구성됐고, 2장에서는 “돈은 어떤 일을 하는가” 돈을 갖는 것은 자유를 갖는 것이며, 사랑을 구할 수도 있다. 3장에서는 돈이 우리를 타락시키나는 주장에 관한 반박이며, 4장은 경쟁이 필요한 이유와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를 지켜내기, 5장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자원이론과 제국주의론에 반대한다.노예제 이론에 반대한다. 돈을 버는데 불의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른바 자본주의 논쟁 속에서 부자론을 펼치고 있다. 6장에서는 분배문제, 다른 사람보다 잘 산다는 것에 관하여 그리고 마지막 7장에서는 부와 혐오, 신분 추구의 명암, 부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적고 있다. 


부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지은이는 케인스가 경제성장과 부의 증가는 새로운 도덕적, 지적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던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인간은 진정 영구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명하고 기분좋게 잘 살기 위해 억압적인 경제적 고민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것, 과학과 복합적인 관심이 가져다 준 여가를 확보하는 것이 그것이다.”(230쪽)


이 문장은 헬렌헤스터와 닉스르니첵의 <애프터 워크>(소소의 책, 2024)에서 탈노동과 사회재생산의 문제, 케인스가 그들의 손자손녀 시대가 되면 노동시간이 주당15시간을 줄어들 것이며 여가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던 대목이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시간은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라는 문맥에서 인용됐다. 브레넌은 케인스의 평행상태에 관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벤저민 프리드만 역시 현실적으로 저성장 아래서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반감과 적의를 드러낸다고 했다. 이른바 인심이 흉흉해진다는 말이다.


그럼, 홉스는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는 부자가 된다는 것은 권력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부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목적 달성능력을 늘려준다. 부는 우리를 위해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부는 진정으로 우리 자신만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이 제공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해준다. 부는 낯선 사람들이 수십억 명의 규모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해주며, 차이를 무시할 수 있도록 격려해준다. 홉스는 이러한 인간의 동기가 전적으로 이성적이라고 본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브레넌은 인간의 돈과 부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원시사회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채무의식이나 도덕적 판단 기준의 DNA가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돈과 부에 관한 개념과 제대로 된 인식, 그리고 철학이 없으면, 돈은 무기가 되고, 부패한 권력이 되며, 필요악과 같은 존재가 된다. 절제된 가난의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서 돈과 부의 생각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 지은이가 말하는 것은 돈이 많은 게 죄인가, 부자가 적인가, 부자와 체제, 자본가와 자본주의에 관한 명확한 구분을 하자는 것이다. 애증, 너무 사랑하기에 미워하는 그런 관계가 부와 가난의 관계는 아닐까싶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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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지구에서 살아가려면 - 종말로 향하는 지구의 방향을 바꿀 9가지 녹색 제안
장성익 지음 / 풀빛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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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로 향하는 지구의 방향을 바꿀 9가지 녹색 제안


이 책<그럼에도 지구에서 살아가려면>은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9가지의 녹색 전략을 실천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당장에라는 말로 읽을 수 있다. 제목이 주는 암시는 2024.8. 부산에서 열리기로 한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지질시대에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일지를 결정한다. 


지은이는 우리 사회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하는 길을 잃어버린 순간부터 불안의 씨앗은 뿌려졌고 마치 하늘까지 닿는다는 콩나무처럼. 종말로 향하는 지구, 동시다발의 태풍이 불어오는 것처럼 어디로 피할 것인지, 사면초가 상태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 역사를 바꿀 만큼 엄청난 힘을 쥐고 인간 맘대로 자연을 망가뜨리고, 세계에 만연한 불평등은 사회를 무너뜨리고, 이 와중에 삶의 위기, 공동체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가 닥쳐왔다. 지은이는 녹색 관점에서 살펴본 의식과 시스템전환을 핵심으로 본다. 열쇳말은 ‘한계’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배적인 문명과 사회 경제 체제, 현대인의 삶의 방식 등이 일정의 한계를 넘어선 데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에서는 이런 한계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우리 사회와 자연, 즉 생명체 공생하는 지구의 방향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이에 관해 9가지 제안을 한다. 의식과 시스템전환을 위한 생각들이다. 


이 책 구성은 9개의 제안을 각 장에서 다루고 있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돼있다는 점을 인식하자는 데서 시작한다(1장), 경제성장 신화의 종말(2장), 소비사회는 빈곤 사회임을(3장)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가져온 폐해를 불편하더라도 인정하자는 말이다. 개인보다 구조가 먼저(4장), 대안은 탈성장이다(5장), 과학기술은 양날의 검(6장), 그리고 환경에는 정의가 필요하며(7장), 동물이 빛나야 사람도 빛난다(8장). 마지막으로 지금은 인류세, 책임 있는 생태학을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논하고 있다. 


제안들은 어디선가 익히 들었던 내용이다. 인류가 지구상의 유일한 생명인 것처럼 굴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기에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는 역설적으로 양극화를 확연하게 드러내 빈곤 사회를 두드러지게 했다. 이제는 개인보다는 시스템을 먼저 손봐야 한다. 결국 대안은 탈성장, 탈노동, 탈소비 그리고 생태경제학으로의 전환 등이 기후 위기를 벗어나려는 대안으로써 떠오른다.


환락의 잔치는 막을 내리고 현대 인류 사회의 번영과 종말의 축소판 ‘나우루’


울릉도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은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에 속했다. 하지만, 불과 한 세대만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 중 하나가 됐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은이가 제안하는 9가지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나우루는 현대 농업의 필수인 화학비료의 원료재인 인산염이 ‘인광석’에서 나온다. 나우루의 지리와 환경이 만들어준 황금알을 낳는 거위 “인광석”은 오랜 세월 동안 태평양을 건너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 쉼터로 이곳에서 먹이활동도 하고 체력을 회복하기도 했다. 이 새들의 배설물이 변화하여 인광석이 된 것이다. 행복은 불행을 잉태하는 법, 돈이 들어오자 이곳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놀고 흥청망청, 인광석이 다 떨어지자, 조세회피처가 되기도 했지만 실패했고, 2010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외 난민수용소가 나우루에 들어선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난민을 쫓아낼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문제는 이곳에 수용된 난민들은 인권보장은커녕 방치된 상태로 열악한 환경과 성범죄,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거나 자살을 하기도….


나우루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놀랍게도 인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축소판이다. 나우루와 지구, 나우루 경제와 현대 자본주의 산업 문명, 인광석과 화학연료, 나우루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대다수 현대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 서로 비슷하다. 나우루 대통령은 2011년<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우루는 선택권을 잃어버린 나라가 어떤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가를 보여준다.”라고.


‘인류세의 책임 생태학’


2000년에 “인류세”라는 지질시대의 개념을 제안했던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출신의 대기 화학자 파울 크뤼천은 왜 이런 레디칼한 표현을 썼을까, 그는 인간이 지구환경을 바꾼 규모가 소행성 충돌과 비견될 수준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은이는 인류세를 언제부터로 봐야 할 것인지에 관한 세 가지의 견해를 소개, 첫째는 신석기시대부터, 둘째는 15세기 말 이후 본격화된 유럽인의 아메리카대륙 침략과 식민화 때부터, 그리고 셋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자본주의 시스템의 세계적인 확산과 소비 자본주의 대중화,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된 시점이라는 견해다. 이 중, 셋째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는데, “인류세”를 지질변화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이며 문화적이라는 성격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인간이 환경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환경이 인간에게 반격하는 상황을 “인류세”라고 한다면, 인류세를 살아가는 방법은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추수밭, 2023)에서 말하는 지구를 구한다는 착각이나 거짓말 이런 헛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우아하게 지구를 지키는 법은 종말론보다 가능하고 친환경 제품보다 효과적인 환경 습관이 있지 않은가라는 말을 곱씹어볼 만하다. 아울러 최평순의 <우리에게 남은 시간>(해나무, 2023)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서 “인류세” 담론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지은이는 책임의 생태학을 주장한다. 새로운 인간중심주의, 생물다양성이란 의미와도 서로 통한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연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태주의 한쪽에서는 인간을 지구에 해악만 끼친 암세포 같은 존재로 여기기도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음을, 인간에게 어떤 특별함이 있다면 바로 이런 능력이다. 책임지는 인간, 지구와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이해해야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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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 이주는 빈곤, 기후위기, 고령화사회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헤인 데 하스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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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와 이주노동자에 관한 오해와 진실


이주, 최근 이민청 신설, 이들 어디에 둘 것인가로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이민청에 앞서 이민정책 방향과 내용이 우선 정리돼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인구절벽의 타개책으로서 이민청 설립인가? 1967년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는 이주노동자라는 난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는 노동자를 원했지만, 그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사람이다.” 몇 개월 전 필리핀에서 온 농어촌 계절 이주노동자 인권침해사건(빙산의 일각), 브로커가 이주노동자의 이탈을 막는다는 이유로 여권을 회수 보관하고, 임금 중간착취를 한 것인데 이는 인신매매사건으로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국제인권규약에서 "인신매매"는 취약한 노동자를 가혹하게 착취하는 것 그 자체를 말하며, 지은이 또한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 사람을 납치해서 굶기고 두들겨패고 팔아넘기고, 사람을 돈 주고 사서 강제노동을 시켜야만 인신매매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이민청 설립, 고용허가제, 농어촌일손 부족을 메우기 위한 계절이주노동자제 등, 현안에 대해 많은 시사를 줄 수 있다. 지은이가 한국어판 서문에 지금 당장에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국가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이라 적고 있다. 이 책의 최종목표는 이주를 광범위한 국가적 변화와 세계적 변화에 내재한 일부로 보는 새롭고 전체론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주” 개념의 혼란


지은이 사회학자 헤인 데 하스는 “이주” 문제를 두고 보수 혹은 국수주의적이거나 진보적인 견해를 펼치는 양쪽 모두를 비판하면서 큰 얼개로써 “이주”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이 책에 담았다. 이주(migration)와 관련해 혼란을 겪는 이유는 용어의 불명확성이다. 지리적 이동은 늘 거주하는 곳(상거소)을 다른 행정구역으로 옮길 때만 이주로 본다(기준으로 6개월~12개월 이상). 내부 이주, 국내 이주, 국제 이주(이민과는 다른 의미), 이주자는 태어난 고향이나 모국이 아닌 다른 곳이나 국가에 사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주자의 범위는 대단히 넓지만 중요한 유형은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와 가족 이주자, 학생 이주자, 사업 이주자, 강제 이주자(난민)다. 이주노동자의 범주와 이를 가리키는 다양한 명칭, 불법 입국과 불법체류, 등록, 미등록 등은 체류자격 유무 등과 관련 있는 것이고, 체류자격은 고숙련, 저숙련으로 구분하는데, 최근에는 반숙련 일자리가 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주자들은 자기 능력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는 빈곤, 기후위기, 고령화 사회의 해법인가? 재앙인가?


위의 소제목은 이 책의 문제의식이며, 구성은 이주와 관련한 22개의 오해를 장으로 다루며 3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이주에 관한 흔한 오해를(7가지 오해) 통해 국제 이주 패턴 추세, 이주의 범위와 규모 방향에서 나타난 변화와 그 요인이 무엇인지를 본다, 2부에서는 이입(도입)은 위협인가 해결책인가?(8가지 오해) 이주가 도착국과 출신국 각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3부는 이주에 관한 선동(7가지 오해)으로 정치인과 이익단체, 국제기구가 옹호하는 여러 가지 통념이 이입의 진실을 일부러 왜곡하려는 전략의 하나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입 반대와 관대한 정책 이행사이에 존재하는 큰 틈을 다룬다. 이주 제한이 이주를 줄인다는 직관적인 생각도 오해임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겼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거나 다른 문제들의 해결책이라는 보는 이념적이 아닌 과학적 관점에서 하나씩 따져본다. 어떤 이념적 관점에서 서면, 다른 관점과 대척이 될 수 있기에 상황을 정확하게 보자는 차원에서, 열린 글 혹은 정보로 보면 될 듯하다.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주에 관한 오해들


먼저 이주가 사상 최고치일까? 2021년 국제이주기구는 현재 사람들의 이동성이 현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높으며, 계속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지은이는 국제 이주는 낮고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1960~2017년 전 세계 국제 이주자 인구를 보면서, 내린 결론이다. 왜 이렇게 봤을까, 1960년대의 세계인구와 2017년의 세계인구를 비교, 이주자의 증가율을 보면 3%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게다가 60년대에는 등록되지 않은 이주가 많았고, 당시에는 크게 문제시하지 않아, 과소평가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여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문제는 단순수치 증가만을 본 국제이주기구의 의도이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 이주자는 근거리를 이동한다는 점에서 글로벌 이동성의 감소?,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인류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을 넘나들면서 국제기구들이 내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리하고 있다. 


이주가 토박이들의 일자리를 뺏는다?


이주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증거는 명확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체로 이주노동자는 토박이의 일자리를 뺏지 않으며, 이주는 임금 정체의 주범이 아니다. 공급과 수요의 경제 법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반 직관적인 상황처럼 보일 것이다. 표준적 경제 이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이론이 두 가지 잘못된 추정을 하고 있다, 


첫째는 이주자는 토박이 노동자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둘째 노동력 수요는 고정적이며 이주와 관련이 없다는 것인데, 전자는 이주는 특정 분야의 기술 부족에 따른 반응이기에 이주노동자와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노동시장이 분할됐다는 이야기인데, 이를 무시한 것이다. 후자는 노동 총량의 오류다. 인구의 자연증가나 이주 혹은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해 인구가 증가할수록 경제와 노동시장은 확장한다. 이주는 전체 일자리 수는 물론 생산성 측면에서 전체 경제 규모도 키운다. 이주자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일 뿐 아니라 월급을 지출해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다. 이입이 글로벌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 


이 정도만 보더라도, 수많은 오해와 거짓된 신화는 풀릴 것이다. 이 책은 이주에 관한 논쟁을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전제(오해)들이 가짜라면?, 이주 문제를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 말한 사건의 영향, 계절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문제로 필리핀에서는 노동인권보호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한국으로 노동자를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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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워크 -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헬렌 헤스터.닉 서르닉 지음, 박다솜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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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과 여유에 관한 문제 제기와 다양한 대안들 핵심은 “시간”


지은이 헬렌 헤스터와 닉스르니첵의 <애프터 워크> 즉, 일을 마친 후에 찾아오는 시간을 들여다본다. 하루 고된 일과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내일을 위해 충전하는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이른바 8.8.8 (38원칙)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의 자유 시간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적고 있다. 지은이들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한해 1901시간)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이 책은 유의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일의 종말, 어떻게 하면 일을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자는 것이 대전제로 6장에 걸쳐서, 일을 줄일 수 있을까(1장), 가정 안에 기술이 도입되면서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난 기술의 배신(2장)과 청결과 위생, 요리, 육아, 번아웃이라는 허슬문화까지 재생산 노동의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기준의 강화를(3장), 재생산 노동에서 한계를 드러낸 핵가족의 한계와 가족 역시 사회구성체로 새롭게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룬 가족 형태의 변화(4장), 노동집약적 주거 공간의 재조직, 기반 시설의 공유라는 발상과 공동주거의 제안(5장) 그리고 어떻게 요구할 것인가(6장)로 구성됐다. 


지은이들은 탈노동과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긍정적인 시험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서로 일을 좀 줄이는 탈노동은 네덜란드에서 일었던 워크샤링(일자리 나누기, 가사와 육아분담의 새로운 모델로서 검토된 적이 있을 만큼 워라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니 결이 다른 접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선 일이라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자. 탈노동에 관한 사유는 전적으로 임금노동-남성위주의 산업과 일자리-에만 집중됐다. 그 결과 사회 재생산이라는 일은 일의 종말에 대한 성찰에서 대체도 등한시, 탈노동 사상가들의 머릿속에는 제조와 생산현장의 노동만 일일지, 돌봄(병원, 요양시설,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건 안중에 없다는 말)


탈노동과 사회 재생산의 대항 관계


“탈노동”을 주장하면서 무보수의 “돌봄”노동, 즉 사회 재생산 노동을 무시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 노동의 의미 있는 부분을 무시하는 셈이다. 이 책은 탈노동뿐만 아니라 탈부족 세계를 지향, 새로운 규범을 세우기 위해 사회 재생산에 있어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는 방법을 알아내려 한다. 사회 재생산을 일로 인정하고 그 일을 가능한 한 절감하고도 남는 일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공공 돌봄과 공공 호사, 그리고 시간 권리를 새롭게 보자고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그리고 과거의 제안과 모델까지도...


38원칙의 일반론 ‘임금노동의 영역’ 의 힘에 밀려난 ‘자유 시간’의 초상


1886.5.1.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면서 벌어진 미국의 유명한 헤이마켓 광장사건을 계기로 1890.5.1. 프랑스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날(국제노동조합대회)에서 노동절을 결의하고, 1919년 국제노동기구 총회에서 1일시간 주48시간 노동제가 국제 노동기준이 됐다. 


100여년 넘은 1일 8시간 노동제는 케인스가 1930년에 쓴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리 경제적 가능성’<다시, 케인스>(존 메이너드 케인스,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등, 포레스트북스, 2023)에서 한 세대 안에는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이 줄어들 것이며, 여가가 늘어날 것이라고, 케인스는 뭘 보고 이렇게 예측했던 것일까?, 48시간 이상 노동을 하면, 과로, 만성피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는 데, 정부는 주 “69시간”제를 들고나오는 한편 아이들을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주겠다고, 뒤죽박죽 워라밸의 역설인가, 미신인가, 케인스의 의미있는 질문, 경제적압박에서 벗어난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과학과 복리가 얻어준 여가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서 현명하고 기분 좋게 살것인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케인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IT에서 AI로 옮아가면서 일하는 시간은 더 늘었다. 왜?, 무엇인 문제인가, 바로 기대수준과 기준이 높아진 탓에 일손을 덜어주는 기계, 시스템이 생활 속으로 들어왔지만, 노동시간은 줄지 않고 더 늘어나는 현상, 이른바 기술의 역설이다. 자 여기까지가 8시간 노동의 일반론이라 치고, 이제 남은 8시간의 자유 시간은 어떻게 사용되는가,


38원칙 “8시간의 자유 시간”의 행방 


8시간의 자유 시간은 일터에서 나와 집에 도착하는 순간 시작된다. 즉 가정 안으로 사회적 관계를 옮겨보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강제한 사회 재생산의 주체인 핵가족에 주목한다. 가족과 일, 가족은 변형 불가능의 체제가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가족이 속한 경제체제(즉, 일자리와 수입 등)에 대한 적응적 반응을 전제로 하더라도, 위에서 말한 기술발달의 역설이 그대로 적용된다. 제아무리 임금노동 시간을 줄더라도 가정 안에서의 노동은 줄어들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은이는 가정 공간의 건축 형태, 즉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보수 노동과 돌봄 노동이 겪는 난관이 생활공간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꽤 흥미로운 대목이다. 


공동 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


어떻게 하면 탈노동의 범위에 돌봄과 사회 재생산 영역까지를 넣을 수 있을까, 또 확대될 수 있을까, 이 책의 핵심은 “시간”이다. 이는 자유 영역의 확장이며,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고통스러운 노동에서 해방되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이 책은 바로 활동의 내용을 채우는 것이다. 공공돌봄, 공공 호사, 시간 주권으로, 탈부족 세상, 즉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팔지 않아도 인생의 필수 요소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해야 한다고 한다. 공동 돌봄, 아이와 노인을 마을 사람들이 키우고, 돌보는 것, 돌봄 관계를 핵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돌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는 이 책 194-197 참조), 공공 호사는 도구의 공동소유를 통해 자유의 확장을, 시간을 어떻게 쓸지, 이 세 가지에 관한 논의는 꽤 복잡하지만 신박하다. 이제껏 생각해왔던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기에, 꽤 논쟁거리가 될 듯하다. 하지만, 지은이들의 주장은 이전부터 주장되오던 오래된 새로운 문제들인 만큼 흥미롭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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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하다 - 디지털 시대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연령별 언어발달 가이드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발달위원회 지음 / 아침사과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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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하다


책 이름이 대단히 자극적, 차별적?, 말을 못 하면 바보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데, 당연히 말을 잘 못 한다고 해서 덜 똑똑하다는 건 아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기에 이 책은 언어발달 관련 내용만을 다루고 있기에 간결하면서도 인상 깊게 '언어발달'을 강조하기 위해 “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하다”라고 표현한 듯하다. 


실제로 말 잘하는 아이가 똑똑하다. 아이의 언어 지연, 발달 부족 상태에서는 사고력, 논리력, 기억력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운동에서 기초체력을 기르듯 아이의 인지발달에서도 언어능력을 기르는 것은 중요하다. 이 책은 언어발달의 중요성에 대해 뇌과학적 관점에서 보호자 등을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이의 보호자가 아이의 언어장애 진단 절차와 치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궁금해한다는 점까지도 배려하고 있다.


지은이 대한 소아청소년과 학회 발달위원회는 학술단체를 넘어 소아청소년을 책임지는 사회적 리더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하고자 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와 뇌 관련 연구자들로 이루어졌다. 


이 책의 구성은 언어발달의 중요성을 시작으로 0~71개월(0세~6세)에 이르기까지 10장으로 나눠서 나이에 따른 구체적인 언어발달, 언어발달 지체기준, 언어치료, 부모교육(강학상의 표현, 교과목명이 존재하므로 그대로 쓴다 "보호자교육"이라고 표기했으면 좋겠다)에 관한 정보를 3~5개월, 6~8개월 순으로 60개월에서 취학 전까지 나누어 설명한다. 각 나이에 따른 그림책 읽어주기 방법과 적절한 책 소개도 다루고 있다. 


언어발달의 결정적 시기는 6세~7세 이전이라고 하지만, 보호자의 관심 유무와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연구결과는 놀랍다. 공부를 계속하는 아이 고등학교, 대학에서 공부를 오래 할수록 언어능력과 관련된 베르니케 영역의 수상돌기가 길어지고, 불우한 환경에서 공부를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은 IQ와 언어능력의 퇴화를 보인다는 보고도 있다.


독서는 언어 학습의 안전하고 훌륭한 방법


항상 보호자가 책을 읽어주는 두 살짜리 아이들의 언어능력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더 뛰어나다고, 대화하듯 책을 읽는 습관은 아이의 언어발달을 적어도 9개월 앞당긴다. 이렇게 보면 교육학자들이 3세부터 읽기를 가르치도록 주장하는 것도 읽기가 언어발달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뇌 발달과 언어의 관계


아이의 옹알이, 언어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아이의 최초발화 대부분 어~엄…. 엄~마, 아빠라는 말을 내뱉기 전까지 적어도 500번 정도 연습을 한다고, 언어를 말할 수 있으려면 언어적 경험이 필요하므로 뇌의 언어를 관장하는 영역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논리 등을 관장하는 브로카 영역은 24개월 이전까지는 성숙하지 않아 말을 못 한다고, 


아울러 12~13세 이후는 뇌가 이미 성숙해서 더는 새로운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언어를 학습하기 어렵고 6~12세가 언어 학습의 최적기라고 본다. 언어발달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아주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의사소통의 필요가 많을수록 말을 배우는 데 적극적이고, 건강한 아이가 아픈 아이보다 더 빨리 말한다. 가족이 많을수록 말을 빨리 배우고, 잘 적응하는 아이가 말을 잘하고 많이 한다. 물론 지능이 높은 아이가 말을 빨리 배운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는 언어발달에 도움이 되나? 언어발달은 쌍방향 의사소통이 효과적


아이와 함께 보는 디지털 미디어, 대부분 콘텐츠가 영상으로 제공되고 있고 보니, 아이의 언어발달에 도움이 될까, 물론 된다고 생각하고 뽀뽀로 시리즈를 계속 보여주는 보호자도 있으니, 실제 아이의 언어발달은 대체로 부모가 가르쳐주기, 계속 아이와의 소통, 상호작용을 통한 방법이다. 둘째로는 디지털 미디어인데 이것은 수동적으로 일방통행이다 보니, 상호소통은 아니어서 부모가 가르쳐주기보다는 효과가 작다. 또 다른 하나는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 이는 어느 자극보다 강하게 아이의 기억과 마음에 남는 언어교육방법이다. 


대체로 부모가 가르쳐주기나, 그림책 읽어주기의 효과는 인정되고 있으나, 디지털 미디어의 효과는 논란이 있다. 미국의 소아과학학회에서는 아이에게 디지털 미디어를 보여주지 말라고 권고한다. 아이의 뇌 발달에는 사람과의 상호소통이 필요한 것이지 디지털 미디어 화면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적어도 24개월 이하의 아이에게는 보여줘서는 안 될 듯. 뽀뽀로 시리즈는 24개월 이후부터, 


조기 영어교육과 적기는 언제일까? 모국어를 익히고 나서


언어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한데, 지은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조기 영어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 환경조성과 조건을 맞추는 게 꽤 어렵다고 말한다. 모국어에 빨리 익숙해질수록 그 문법구조에 따른 논리력, 수리 능력도 함께 개발되기에 모국어에 먼저 익숙해진 다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때는 모국어의 언어적 지식과 감각을 이용하여 영어의 의미, 문장구성, 단어 형태에서는 유아기에 배우는 것보다 빠른 학습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가족 구성원 중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기 때부터 지속해서 영어를 할 수 있다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아마도 국제결혼, 유학생 등, 모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익혀야 할 상황에 놓인 경우라면 아빠는 한국어 엄마는 현지어로 지속해서 소통하면, 이중언어사용자(bilingualism)가 되기 쉽다는 건 이미 알려진 터라서.


이 책의 장점은 구성에 있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언어발달, 언어발달 지체기준, 언어치료, 부모교육에 관한 정보와 그림책 읽어주는 시기와 적당한 그림책 등에 관한 것을 알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발달단계에서 보이는 영유아의 행동 등도 싣고 있어, 줄곧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이른바 “영유아의 언어 능력발달”에 관한 가이드라인성격을 지니고 있다. 조기 영어교육, 디지털미디어는 언어발달에 도움이 될까 하는 보호자의 궁금증에도 충분한 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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