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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회복 -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
주디스 루이스 허먼 지음, 김정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트라우마 3부작 “진실과 회복”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트라우마 시리즈 3으로 이른바 3부작의 마지막으로 ‘폭력 피해자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30년 넘게 다룬 사례를 바탕으로 1)<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박은미, 김은영 옮김, 삼인, 2010)과 2)<트라우마-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최현정 옮김, 사람의 집, 2012)가 출판됐으며, 3)인 이 책<진실과 회복-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은 번역가 김정아가 옮겼고, 북하우스에서 나왔다. 편의상 1)2)는 심리학연구자, 현장활동가가 각각의 목적에 따라 한국어로 옮겼다. 앞의 두 권의 책을 읽어야만 이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각 권을 따로따로 읽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2)<트라우마>의 1부 외상 장애와 2부 회복단계를 요약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 구성은 3부 9장 체제이며, 1부에서는 권력을, 여기에 독재와 평등의 규칙, 가부장제가, 2부에서는 정의의 비전으로 인정, 사회, 책임지기를 각 장으로 구분하여 다루고 있고, 3부 치유에서는 배상, 재활, 예방에 관하여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학자들의 견해, 관련 사건의 소개와 분석까지 다양한 관점의 목소리까지를 망라한 스토리텔링으로 전체를 조망해볼 수 있도록 해둔 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는 죽음, 심각한 부상, 성폭력 등과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으로서 신체적, 심리적 안녕을 위협하는 충격적인 경험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 등도 포함된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된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트라우마와 PTSD가 밀접한 관계이기에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예도 있지만, 트라우마는 원인, PTSD는 질병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책은 20년부터 생각했던 것으로 아동기 성 학대, 성폭행, 성매매, 성희롱, 가정폭력 생존자 30명(여성 26명, 남성 4명)은 22세에서 60세까지 대부분은 3040으로 정리한 논문은 2005년 저널<바이얼런스 어게인스트 위민>의 “회복적 정의”특집호에 실었던 것을 기본으로 다시 작업한 것이다.
지은이의 인터뷰는 무엇이 당신이 입은 피해를, 최소한 그 일부라도 보상해 줄 수 있을까? 당신은 가해자와 방관자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피해자가 복수를 노리는 것으로 정형화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분노와 원한 감정 그리고 용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독재와 평등, 가부장제는 독재의 규칙과 흡사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음습한 것까지 닮아있다. 권력과 정의의 버전, 치유 순으로 본다.
독재의 규칙, 힘의 지배와 방관자 문제
지은이는 주로 젠더 기반 폭력의 영역에서 예를 가져오지만, 어떤 예든 밑바닥을 흐르는 힘의 논리, 유전무죄의 원칙(?)이 통한다. 힘 있는 사람의 규칙은 늘 폭력과 협박을 통해 강제된다. 이는 독재국가에서도 똑같다. 법과 관행은 통치 집단의 지배를 뒷받침하고 통치 이데올로기는 평화와 사회적 조화라는 가식을 유지하기까지 한다. 폭력이 인정됐을 때, 피해자를 비난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어떤 기본적 인권도 어떤 시정조치도 누릴 수도 기대할 수도 없다. 법전, 법정 모두 독재자나, 지배집단의 임의적 권력의 도구일 뿐이니 정의는 없다고 한다.
방관자들은 권력 앞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독재의 규칙에 따라야만 하는 처지에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독재자의 공범 되기, 무언의 목격자가 되어 아무것도 못 본척하기 등 적극적으로 공범이 되거나, 침묵하거나 둘 중 하나다. 여기에서 용기를 논한다. 진상을 알리고, 주변의 냉소를 극복할 용기를 내고, 생존자들이 정의를 말할 때 이야기는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화해, 더 큰 공동체와 화해다.
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사실은 당연하지 않은 현실이 너무 많아서다. 국가로 보든 지역으로 보든 간에,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멀게는 44년 전의 5.18이 그러하다. 독재의 규칙에 너무도 잘 따른다. 방관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피해자를 양심 불량으로 몰면서 본질을 왜곡하면, 다들 편하니.
정의의 버전
인정이다. 피해 생존자들은 가해자의 진상 인정뿐만 아니라 적극적 또는 소극적 공모자인 방관자의 진사 인정 또한 필요하다고. 이런 인정은 가해자의 자백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공동체에 이런 사실을 알려지기를 바란다. 피해자의 잘못인 것처럼 개인적인 불행으로 여기는 풍토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정의를 세우지 못한 장애물이었다고.
많은 피해자는 놀랄 정도로 가해자의 처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죄의 인정과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더 관심을 둔다. 물론 국가 형사 사법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배경도 있다. 생득적 사회적 지위에 따른 처벌의 수위가 전혀 다르다. 즉, 젠더, 인종, 계급에 따라서 차별적이라는 말이다.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응보의 고통을 받기보다는 범행 인정하기, 세간의 질책에 시달리기, 자기 행동 반성, 재활에 임하기를 원한다.
회복적 정의의 가능성과 한계
회복적 정의는 국제적 운동으로 몇십 년부터 바람직한 정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원리가 가해가 처벌하기가 아닌 범죄 피해 바로잡기에 있으므로 불의는 상처이므로 정의는 치유여야 한다. 회복적 정의의 핵심가치는 장악하지 않기, 힘 실어주기, 존중하는 마음으로 경청하기다. 이른바 비폭력적인 해결수단으로 인과응보의 틀에서 선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존자 의제”는 가능성이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의 인간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가해 행동을 어떻게 중지하게 할 것인지, 제도 안에 깊이 박혀있는 억압체제의 해체 등 가해자 처벌 대신 생존자를 위한 안전과 치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가능성과 한계를 없애는 데는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 남성우월주의 문화의 해체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