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히스토리 15 :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 글로벌 네트워크의 출현, 우주.생명.인류 문명, 그 모든 것의 역사 빅 히스토리 Big History 15
조지형 지음, 이우일 그림 / 와이스쿨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기사에서 해외 직구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을 봤다. 내수 경기가 침체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국내 소비자들은 해외 제품을 값싸게 사기 위해 직접구매를 선택하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실현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세계 언어가 통일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를 하는데 경제영역의 벽도 허물어지는데 언어통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렇게 세계는 긴밀히 연결돼 있고 평준화되고 있다.

 

과거 글로벌 네트워크는 어떤 식으로 이뤄졌을까. 언제 어떤 방법을 통해 세계가 하나로 통하게 됐을까. 이 책에는 아프로유라시아, 아메리카-대서양, 오스트레일리아-태평양 섬 등으로 나눠 글로벌 네트워크 성장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무역, 종교, 역병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글로벌 네트워크를 분석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아프로유라시아는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거대한 그룹을 말하는데 이 커다란 땅덩어리를 연결하는 길이 바로 비단길이었다. 처음엔 중국에서 생산된 비단을 서역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길인데 오아시스길이라고도 한다. 비단 외에 옥, 향신료 등 각 나라, 지역마다 특산물이 있는데 이것들을 교환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길이 열렸다. 인도양에 있는 계절풍을 이용해 홍해에서 인도를 가로질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바닷길도 열렸다. 이런 길들은 수많은 상인들을 통해 이미 확보됐고 널리 전파됐는데 이런 길의 출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은의 글로벌 교환은 빅히스토리의 대전환점을 이뤘다. 페루에 은이 대거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은의 거래가 이뤄졌는데 은은 전지구적인 이동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인삼이 인기있을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의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특별 제조한 은화를 보유했다고 하니 은의 글로벌 교환으로 세계는 경제적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은이 상품을 넘어 화폐로서의 기능도 했다는데 세계를 단일 경제권으로 묶었으니 대전환점으로 꼽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만 교환을 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동물이 가는 곳에는 전염병도 돌게 된다. 안토니우스 역병,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등 수많은 역병이 돌았고 흑사병, 천연두, 황열병 등 쥐, 모기를 매개체로 전염병이 창궐했다. 과거에는 병이 왜 창궐했는지 이유도 모르고 죽은 사람이 많았다. 병이 돌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개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면역력이 생기면 병은 사그라졌다. 에스파냐 사람들이 처음 인디언들에게 갔을 때도 처음엔 그들을 정복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는 면역력이 있지만 인디언들에겐 면역력이 없는 전염병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전염병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죽지 않는 유럽인들을 ‘신이 선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사는 유럽인들 편이었다. 그 외에도 힌두교, 이슬람교의 출현 등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의 출현과 전파, 쇠퇴의 과정을 아는 것은 꽤 흥미로웠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시리즈들도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남자친구가 제일 문제다 -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당신의 연애를 위한 과학적 충고
김성덕 지음 / 동아엠앤비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는 나이를 먹어가며 이상형이 바뀐다. 어렸을 때에는 외모를 따지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남자의 경제력을 본다. 남자들이 자손 번성에 신경쓰는 반면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데 집중한다. 이성을 볼 때 남자들은 질보다는 양을 중시하지만, 여자들은 양보다는 질, 즉 남자의 경제력을 중요시한다. 이렇게 이 책의 저자는 남녀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롤러코스터>, <세친구> 등으로 유명한 김성덕 PD. 자칭 타칭 남녀공학박사로 통하는 김 PD는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른지 공학적으로 접근하며 독자들을 설득한다. 그는 남자의 약점을 스스로 고하며 여성들이 쇼핑에 공을 들이는 것 못지않게 남성을 꼼꼼히 공부하고 탐구하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의 행동 중 이해되지 않는 부분의 대부분은 ‘본능’이 이유인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왜 백화점에서 사지도 않을 옷, 구두들을 돌아보며 시간낭비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게 바로 여성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옛날 남성은 사냥을 하러 나가 있었고 여성은 아이들과 집을 지켰다. 혹시 모를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여성은 자신의 집과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을 살피고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일’이 됐다. 다급한 상황에 대비해 물건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파악하는 것은 본능이 됐다. 사지도 않을 물건이지만 가격은 어떻고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여성이 잘하는 일에 해당한다. 즉 여성에게는 즐겁고 당연한 일이란 것이다. 남자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여성들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가. 이런 내막을 안다면 남성들과 쇼핑을 할 때 어느 쪽이든 타협할 수 있는 실마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주구장창 외치는 말 중에 ‘여성들이여! 결혼 전에 남자의 경제력, 성격, 본성 등에 대해 철저히 따지고 공부하라’가 있다. 물건 살 때는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지며 시간을 들이지만 결혼 전 남자를 고를 때는 환상 속에 대충 남자를 골라 결혼을 한다. 그는 말한다. ‘환상 속에 그대는 없다.’ 금은 황홀한 황금빛을 띄고 있지만 나노 단위로 쪼개면 붉은색을 띈다고 한다. 세심하게 관찰해보면 황금빛 환상이 깨지게 되는데 저자는 금과 남자도 비슷하다고 말한다. 결혼 전 남자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숨기려는 본능이 있는데 결혼 후 체험하게 되는 남자의 모습은 나노 단위로 쪼갠 금과 같다. 그러니 남자를 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것.

 

세계적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하고 머리가 좋다고 알려진 유대인이 제일 잘하는 것이 뭔 줄 아는가. 바로 ‘따지는 것.’ 소개팅 자리에서 웃긴 것이 남자는 쉴 새 없이 여자를 웃기려고 하고 여자는 그에게 잘 보이려고 얌전히 내숭 떨며 미소 짓는다. 여자는 더 이상 얌전할 필요가 없다. 여성이 잘 나가는 시대다. 예전처럼 얼굴도 모르는데 부모님이 짝지어준 사람과 결혼하는 시대도 아니다. 만나는 남자를 대충 운명이라고 믿고 결혼해서는 안 된다. 그의 집안부터 경제력, 주사 등 적극적으로 따져볼 것이 많다. 경제력을 직접 알아보기 뭣하다면 주변 남자친구를 이용해도 좋다. 수동적으로 대처하다가는 큰 후회만 남긴다.

 

여자가 30세에 결혼한다치면 남자와 70년을 같이 살아야 한다.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사랑도 유통기한이 있다. 어차피 쓸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는 사랑만 믿고 덜컥 결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의 본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기술돼 있는 이 책이 많은 여성들에게 고민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왜 남자들은 바람기가 있는지, 왜 여자 입장에서 남자들이 어리게 보이는지, 결혼 전에 남자에게서 꼭 확인해 봐야할 것은 뭔지 등 연애를 하고 있거나 결혼을 앞둔 여성들 모두 읽어보면 공감가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내 남친이, 내 남편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이 책을 읽어보자. 감성 이전에 머리로 이해하면 생각보다 답이 빨리 나올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대가 당신의 브랜드를 외면하는 이유 - 2014년을 지배할 20대 트렌드 F.A.C.E.T
대학내일20대연구소 지음 / 하다(HadA)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가 당신의 브랜드를 외면하는 이유

 

요즘 핫한 광고 중 하나가 현대차의 ‘융합이란 무엇일까요?’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숙녀에게 ‘융합이란 뭘까요’하고 물으니 그녀가 답한다. ‘퓨전?’ 각기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융합의 정의를 내리게 한다. 융합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쉬운 ‘비유’를 사용한 셈이다. 20대 브랜드가 상징하는 의미로 이 ‘융합’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20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기제인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동시에 융합해 처리하고 있는지 말이다.

 

20대는 복잡한 세대이기에 그들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 시장도 ‘융합’을 승부수로 띄웠다. 20대를 사로잡은 브랜드로 소개된 이니스프리, 유니클로, 핫식스, 나이키, 지산 월드 록페스티벌 등을 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마케팅은 융합이라는 수단을 쓰고 있다. 이니스프리는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다. 그린이라는 키워드를 넣어 청정섬 제주의 친환경적인 재료들을 이용한다. 유니클로는 다양한 주체들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핫식스는 청년과 멘붕을 합쳐 청년 트렌드를 이끄는 광고를 만들었다. 나이키도 마찬가지다. 달리기는 이제 다이어트 수단을 넘어 문화가 됐다. 그 문화를 즐기는데 달리기 행사나 앱을 통해 톡톡한 동기부여 수단을 창출해내고 있다.

 

20대들이 사용하는 브랜드, IT기기, SNS 등을 살펴보면 그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관계보다 ‘정보’를 먹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다른 세대보다 20대들이 압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페이스북’을 보자. 페이스북은 굳이 자기 입으로 자신의 활동을 말하지 않아도 태그 한번으로 자신의 취미, 관심사 등을 입증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태그들이 모이면 자신의 이미지를 의도대로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제 멋에 사는 세대,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세대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두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관심사는 다양하고 넓지만 깊이 있는 정보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매일 먹는 학교식당 반찬보다 어쩌다 한 번 가는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를 페이스북에 올린다. 어쩌다 한 번 향유하는 그런 수단들을 마치 매일 그것들을 누리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은 깊이 있고 정통한 정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무한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20대들은 페이스북도 하나의 스펙쌓기 연습용처럼 이용하는 것이 아닌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내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보이면 자기위안이 되는 심리랄까. 개중에는 ‘진짜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긍정적 기제로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만약 20대들이 ‘융합’이라는 단어를 잘 활용해 긍정적인 시너지를 이끌 수 있다면 분명 20대가 이끄는 미래는 예상을 뛰어넘는 창조적인 미래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근대 일생의례 이야기 - 도란도란 민속학자가 들려주는
서종원 외 지음 / 채륜서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근대 일생의례 이야기

 

인생을 살다보면 곰곰이 과거를 유추해봐야 할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인생을 살다보면 큰 방점을 찍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일생의례’다. 출생, 혼인, 상례, 제례 정도가 현대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방점이 된다. 여기에 성년, 환갑까지 합쳐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우리 문화를 설명해놓은 것이 <우리의 근대 일생의례 이야기>다.

 

인생을 많이 산 사람일수록 느낀다. 의례라는 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짜여진 문화인지 말이다. 출생, 성년, 혼인의례까지 치러본 나로서는 아직 남아있는 관문이 몇가지 있지만 조상들이 각 의례마다 얼마나 깊은 의미를 두고 행동을 했는지 느끼게 된다. 말 그대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서 살다보니 인생을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의례를 치르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기쁠 때는 기쁜 것을 서로 축하하며 의미를 두고 슬플 때는 위로하며 슬픔을 나눈다.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문화가 줄거리라서 생소한 내용도 많았다. 전차가 다니는 경성이라든지 풀각시놀이 같은 것은 책에서나 읽었던 생소한 내용이다. 과거 신문기사, 사진 등을 통해 접한 서울은 똑같은 땅 위에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이 맞는 것인지 눈을 의심케 했다. 아마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도 지금의 모습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시대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참으로 다른 환경을 마주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현대 들어 서양 문물이 들어온 지 오래됐고 그래서 삼신할머니 같은 이야기는 할머니들에게나 들어볼 수 있는 얘기가 됐다. 하지만 각 의례마다 무사함을 기원했던 조상들의 마음 씀씀이와 정성이 느껴져 읽는 내내 친근함을 느꼈다. 물질과 성공을 지향하는 시대에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조상들의 모습이 당연하지만 존경스러웠다. 원치않는 아이를 낳고 아이를 버리는 사람도 많은데 아이를 가지면 몸가짐을 조심하고 좋은 생각만 하며 태어난 후 금줄을 엮어 표시하는 풍습을 보니 정겨운 생각마저 들었다.

 

성년이 되면 관(모자)을 씌워 주거나 들돌을 들어 시험을 보기도 했다는데 그리 오래 전 얘기도 아니건만 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정해준대로 결혼해야 했던 얘기, 환갑을 맞으면 크게 잔치상을 차렸던 얘기 등은 지금과는 다른 내용이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읽어본다면 과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좋은 소스를 얻게 될 것이란 생각이다.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과거 조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들의 생각이 담긴 문화라는 것은 우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과거 문화를 설명하고 현세대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좋은 교육의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예작가 유인경
김하인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예 작가 유인경

 

<국화꽃향기>로 유명한 김하인 작가의 멜로소설이다. 처음엔 전작의 멜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회색빛 짙은 이 시대에 그만의 감수성 어린 문체를 통해 오랜만에 마음의 정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신예 작가 유인경>은 꽤나 작가 자전적인 소설이었다.

 

그가 <국화꽃향기>로 스타작가로 거듭난 후 작품을 쓰며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기본적인 뼈대는 이러하다. 작가의 정신은 유인경이라는 젊은 처자가 소유하고 작가는 유인경이라는 젊은이의 몸을 소유한다. 말 그대로 작가 김기하는 유인경의 소설을 대필해주고 그 대신 유인경의 몸을 탐할 수 있게 된다. 멜로물을 쓰는 작가 김기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하인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물, 그것도 멜로소설만 쓰는 김기하 작가는 문학이라는 것도 결국 밥벌이 수단 이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지극히 독자 중심의 글을 쓴다. 문학의 순수성을 외면하게 되고 결국 작가라는 직업을 직장인 쯤으로 치부하게 되는 순간, 그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게 된다. 그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유인경. 그녀는 순수문학과 돈·인기의 탐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김기하의 약점을 파고 들어온다.

 

이 책을 읽으며 장르문학을 하는 사람의 비애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히트를 치는 소설을 쓰는 게 여러면에서 힘든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 김기하 작가를 통해 김하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독자맞춤 연애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의 서글픔이었을 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런 서글픔을 간직하고 연애소설을 써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게 됐다는 것. 세상이 각박해지며 그가 쓰는 멜로물도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막장이 판을 치고 좀 더 자극적인 소재가 부각되는 시기이니 그의 순수하고 맑은 문체며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가 먹히기 어렵다는 자조석인 고백이다.

 

김기하 작가를 통해 김하인이 말했듯이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통하는 시대를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 유괴 범죄를 김기하, 유인경이 정반대로 풀어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유인경이 대박을 터뜨렸다. 김기하가 이야기했듯이 똑같은 이야기를 김기하가 냈다면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자극적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 젊고 아름다운 몸매를 소유한 유인경이 쓴 자극적인 소설이 소위 말해 먹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장르소설이라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정제된 소설만 쓰는 김기하는 차마 양심을 팔면서까지 쓰고 싶지 않은 소설. 성공의 지름길을 알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금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놓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