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작가 유인경
김하인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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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작가 유인경

 

<국화꽃향기>로 유명한 김하인 작가의 멜로소설이다. 처음엔 전작의 멜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했다.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회색빛 짙은 이 시대에 그만의 감수성 어린 문체를 통해 오랜만에 마음의 정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신예 작가 유인경>은 꽤나 작가 자전적인 소설이었다.

 

그가 <국화꽃향기>로 스타작가로 거듭난 후 작품을 쓰며 얼마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기본적인 뼈대는 이러하다. 작가의 정신은 유인경이라는 젊은 처자가 소유하고 작가는 유인경이라는 젊은이의 몸을 소유한다. 말 그대로 작가 김기하는 유인경의 소설을 대필해주고 그 대신 유인경의 몸을 탐할 수 있게 된다. 멜로물을 쓰는 작가 김기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하인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물, 그것도 멜로소설만 쓰는 김기하 작가는 문학이라는 것도 결국 밥벌이 수단 이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지극히 독자 중심의 글을 쓴다. 문학의 순수성을 외면하게 되고 결국 작가라는 직업을 직장인 쯤으로 치부하게 되는 순간, 그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게 된다. 그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유인경. 그녀는 순수문학과 돈·인기의 탐욕 사이에서 방황하는 김기하의 약점을 파고 들어온다.

 

이 책을 읽으며 장르문학을 하는 사람의 비애를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히트를 치는 소설을 쓰는 게 여러면에서 힘든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위안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 김기하 작가를 통해 김하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쳇바퀴 돌 듯 이어지는 ‘독자맞춤 연애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의 서글픔이었을 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그런 서글픔을 간직하고 연애소설을 써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게 됐다는 것. 세상이 각박해지며 그가 쓰는 멜로물도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막장이 판을 치고 좀 더 자극적인 소재가 부각되는 시기이니 그의 순수하고 맑은 문체며 순애보적인 사랑 이야기가 먹히기 어렵다는 자조석인 고백이다.

 

김기하 작가를 통해 김하인이 말했듯이 진정한 사랑 이야기가 통하는 시대를 기다려야 한다. 어린이 유괴 범죄를 김기하, 유인경이 정반대로 풀어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유인경이 대박을 터뜨렸다. 김기하가 이야기했듯이 똑같은 이야기를 김기하가 냈다면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자극적인 것들이 주를 이룬다. 젊고 아름다운 몸매를 소유한 유인경이 쓴 자극적인 소설이 소위 말해 먹히는 소설이다. 하지만 장르소설이라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정제된 소설만 쓰는 김기하는 차마 양심을 팔면서까지 쓰고 싶지 않은 소설. 성공의 지름길을 알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는 지금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놓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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