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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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단편들



도스토옙스키 작가<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을 읽고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문장으로

인간이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탐구하다-





인생의 다양한 단면 중에서 '사랑'만큼 다채롭고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사랑은 알다가도 모른다'는 말처럼 사랑은 끝을 알 수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려한 것은 아닐까? 인생과 사랑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도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문장으로 사랑을 노래하면서 인간이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탐구하였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내는 사랑은  결코 단순하고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다.  이 책  『도스토옙스키 단편선』에 수록된 「백야」, 「첫사랑」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오히려 짝사랑에 가깝고 이루어지지 못하는 슬픈 사랑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백야」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남녀간의 달콤한 로맨스는 아니지만,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문장으로 사랑에 대한 찬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가장 아름답게 발현되었다. 그 사랑이 짝사랑이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든간에 사랑 자체의 고귀하고 숭고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백야가  다가가오는 어느 밤, 페테르부르크에 홀로 남은 공상가는 거리와 운하를 거닐며 상상 속의 세계으로 빠져든다. 그 때 운하 난간에 기대어 울고 있는 한 젊은 여인을 발견하게 되면서 백야의 사흘 밤은 시작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공상 속에서 살아가던 고독한 몽상가가 나스텐카라는 여린을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면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 비록 나흘 밤의 짦은 만남이고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상가의 그녀에 대한 순수하고 조건 없는 사랑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 어떻게 이렇게 지고지순하고 플라토닉 같은 사랑이 가능할 수 있을까? 조건적이고 가벼운 사랑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준다.  


비록 그 사랑의 결말이 이별일지라도,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로 인해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함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기쁨과 행복은 사람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 것일까! 가슴은 사랑으로 넘쳐흐른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전해지고, 모든 것이 즐겁게 미소 지었으면 좋겠다. 그 기쁨은 얼마나 전염되기 쉬운 것인가! 어젯밤 그녀의 말에는 얼마나 애정이 깃들어 있었고, 그 가슴 속엔 나에 대한 호의가 얼마나 넘쳤던가……!
-「백야」중에서-




 그러나 그런 사랑은 때론 마냥 기쁘고 달콤하지만은 않다. <첫사랑>에서 11살 소년이 보여주는 사랑을 통해 작가는 미지의 감정인 사랑에 처음 눈 뜨는 소년이 격게 되는 두근거림, 이유 모를 눈물 그리고 묘한 질투심과 자기 희생 등 사랑으로 겪게 되는 여러 감정들을 보여준다. 처음이라 낯설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투명한 사랑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백야>처럼 첫사랑이긴 하지만 <백야>에서는 낭만적이고 애틋한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첫사랑>에서는 날 것 그대로 풋푸하고 서툴지만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 인간은  유년의 첫사랑을 통해 사랑에 대해 알게 되고 좀 더 성숙하게 됨을 소년의 첫사랑 이후 깨달음을 통해 말해준다. 



나는 온몸을 풀잎처럼 떨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나의 최초의 자각, 내면의 발견, 내 본성의 아직 분명치 않은 통찰에 자유롭게 몸을 맡겼다. 나의 첫 유년기는 이 순간과 더불어 종말을 고했다. 

-p. 266, <첫사랑> 중에서



그리고 사랑의 본질 속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있음을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을 통해 보여준다. 

"아시다시피 질투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열정이다. 더욱이 불행하기까지 한 감정인 것이다.(p. 197) 는 말처럼 작가는 아내에게 정부가 있다고 의심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힌 남자가 아내를 미행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유쾌하고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그 소동이 어쩌구니 없이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데, 그 속에서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질투와 시기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보게 된다. 




이 책 『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에 수록된 3편의 단편들을 통해 영원하지 않은 사랑은 무의미한 것인지? 단 한 순간의 눈부신 기억만으로도 인간이 인생을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지? 찰나의 사랑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구원과 희망이 될 수 있는지 등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를  <백야> 속 마지막 문장에서 찾아보며 책장을 덮는다.



아, 하느님! 더없는 기쁨의 순간이여! 인간의 일생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지 아니한가 .....?

-p. 114, <백야> 중에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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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봄비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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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두 번 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봄비눈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 를 읽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어떤 1년을 보낼 건가요?"





너와 함께했다면, 내 삶은 더 반짝였을까?

그해 여름, 너를 다시 만나러 갈께!



후회로 점철되는 삶 속에서 만약 당신에게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인생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만약 당신이 죽은 후, 원하는 시절로 돌아가 1년을 산다면 당신은 과거의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마치  과거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인생 게임' 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한 결정이 인생의 바꾸게 된다. 그래서 다시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타임슬립해서 과거를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해도 결국 결과는 마찬가지일뿐이라는 사실을 인생을 살아가고, 나이를 들면서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최선의 선택과 결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어떤 결정을 해도 그 결과는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이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인생도 그렇지만,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책  『파랑의 끝에서 너를 기다린 하루』를 읽으며 사랑은 타이밍임을, 사랑한다면 재고 따지고 망설이지 말고 사랑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죽은 주인공 여름에게 죽기 전 과거의 1년 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승에서는 BCD를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 Choice 이라고 해석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해석입니다. C는 'Choice'가 아니라 'Chance' 입니다. 우리에겐 삶이 끝나고 죽음으로 가는 사이,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p. 19


 

삶이 끝나고 죽음으로 가는 사이 주어지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의 어떤 순간으로 가겠는가? 이야기 속 여름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절, 인생에서 가장 그리웠던 사람을 찾아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너무 사랑했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사랑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떠나 보내야 했고, 평생 그리워하던 그 단 한 사람인 유현을 찾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  좋아했지만 남자 친구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정작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충실하지 않아서 놓쳐 버렸던 첫 사랑, 두 번째 생에서 여름은 과연 이번에 그녀에게 주어진 1년 간 그에게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두 번째로 주어진 기회에서는 그와 행복한 연인이 될 수 있을까?


"21살이던 2008년 8월, 마지막 금요일로 돌아갈게요. 내 마음에 충실한 삶을 살아 보고 싶어요."



그래서 두 번째 생에서 여름은 유현을 처음 만나게 된 그 날로 돌아가서 유현을 만나고 그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 그리고 원하던대로 그와 마음이 통해 연인이 되지만, 또 다시 그녀는 유현과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여름은 자신의 마음에 충실했고, 그에 대한 사랑 고백을 했지만, 결국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결과 속에 숨겨진 충격적인 반전을 보게 된다.

 


우리는 첫 번째 생을 살 때면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실제로 그 기회가 주어지고 두 번째 삶을 살면서 느꼈다. 두 번째도 실수투성이구나. 여러 번 한다고 잘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그러니 처음이란 변명 대신, 최선을 다해 그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거구나.

-p. 309


그 반전을 보면서 유현이가 얼마나 여름이를 사랑했는지, 그녀를 사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렸는지, 그가 어떤 희생을 감수했는지를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여름과 유현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서로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된 사랑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눈이 건반이 아닌 그의 입을 좇았다. 분명 그는 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그동안의 일들이 반주에 맞춰 머릿속을 스쳤다. 유현이 너도 이번 생이 두 번째구나. 너도 돌아온 거구나."

-p. 356



이 책을 통해, 만약 나에게 두 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후회가 남지 읺게 지금 이 순간, 이 생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라고! 지금 그 소중한 감정과 마음에 충실 하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은 타이밍인 것이다. 

사랑한다면 재고 따지고 망설이지 말고 사랑하라! 

당신은 지금 소중한 사랑의 감정을 무수한 핑계를 대며 망설이며 뒤로 숨기고 있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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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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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네 발의 총성"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20세기 실존주의 문학 최고의 고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어제인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가 왔다.'모친 사망. 명일 장례. 삼가 조의.' 

이건 아무런 뜻도 없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p. 9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다. 하지만 문장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 그 죽음에 대한 슬픔, 애도, 비통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양로원에서 온 전보처럼 다소 딱딱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인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혼란을 느끼지만 소설 속 주인공인 뫼르소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어머니의 죽음은 그에게 아무런 뜻도, 중요성도 없다. 이 문장 속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 인물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세상의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관념과 규범에서 벗어난 고독한 존재이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이방인'임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그의 태도와 생각은 엄마의 장례식에 가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양로원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엄마의 관을 마주하게 된다. 관을 열어 어머니 얼굴을 보겠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 라고 말한다. 몇 번을 물어도 그의 대답은 'No'이다. 왜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것일까. 양로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노인들의 밤샘 조문의 모습과 그의 조문은 상당히 비교된다. 자신의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다던 한 여자분의 끊임없는 울음과도 너무나 대조된다. 

그는 눈물조차 흘리지 않고 결코 울지 않는다. 너무나 무심한 태도를 보이고 그래서 죽은 사람이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 제 3자가 죽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이런 무관심하고 냉혹한 모습은 읽는 동안 계속 충격이었다. 왜 그는 이렇게 무관심하고 냉담하게 행동하는 것일까.


이런 그의 냉담한 태도와 행동은 양로원장, 수위 등 주변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게 되고,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와 슬픔을 보이지 않는 모습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하고 힘들고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사회 규범과 맞지 않는 이방인으로 평가 받게 된다. 



그는 장례식 이후 전혀 애도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변함없는 일상을 해나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수영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말이다.그렇게 언제나 변함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느 때와 똑같은 일요일이라고, 이제 엄마의 장례를 치렀고 다시 직장에 나갈 거라고, 그리고 요컨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p. 42



그는 장례식 이후 전혀 애도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변함없는 일상을 해나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 함께 수영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말이다.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게 회사에 가서 일하고 집으로 귀가하는 그런 일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의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데 뫼르소는 자신의 아파트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자신의 개에게 욕설을 퍼붓고 매질을 하는 개주인인데 나중에 개를 잃어버리고 나서는 절망과 실의에 빠진다.


또한 뫼르소는 같은 층에 사는 다른 이웃인 레몽과 친하게 되는데, 동네에서 그는 여자들로 먹고 산다고 한다. 뫼르소는 그와 친하게 지내며 , 이야기도 나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함께 저녁도 먹는다. 거의 친구같이 친하게 지내지만, 이것이 뫼르소의 불행의 시작이었을까.


왜냐하면 레몽은 아랍인들에게 위협을 받고 쫒기고 있는데, 그 일에 뫼르소에 연루가 되게 된다. 왜 뫼르소가 아랍인에게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 아랍인이 뫼르소 본인 자신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는 끝내 무엇에 홀린 듯 방아쇠를 당긴 것일까.  이로 인해 뫼르소는 어떻게 될까. 이렇게 그의 불행의 서막은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그리고 그의 살인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하지만, 재판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내용은 그가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것보다는 왜 그가 그의 엄마 장례식에 가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느냐, 엄마를 왜 양로원으로 보냈느냐 등과 같은 엄마와 그의 원만하지 못한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그의 엄마 장레식때도 애도하지 않고 울지도 않는 냉혈안이기 때문에,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의 분노로 인해 사람을 죽인 것이다 라는 논리가 만들어졌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와 친하게 지내고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그의 적이 되어서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다. 


 


그런데 그가 엄마 장례식에 가서 제대로 애도를 표하지 않고 울지 않은 것과 그가 아립인을 살해한 것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검사의 주장이나 증인들의 증언 내용, 배심원들 판단을 보면서 왜 그들은 그의 엄마의 장례식과 살인 사건을 연결지으려 하는 것일까. 



피고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것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아니면 사람을 죽인 것 때문에 기소된 겁니까?" 방청객들이 웃었다. 

-p. 151


그의 말대로 그 재판 속에 뫼르소 자신은 없었다. 그의 동기, 그의 생각, 판단, 감정 등은 하나도 고려되지 않고 그들 멋대로 판단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떻게 보면, 그들이 나를 빼놓고 내 사건을 다루는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나의 개입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 운명이 나의 의견을 들어 보지도 않은 채 결판나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의 말을 중단시키고 '아니, 그런데 누가 피고입니까? 피고 자리에 선다는 건 중요한 일입니 다. 저도 할 말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인정하는 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얻는 이득은 오래가지 않는 법이다.

p. 154




그리고 뫼르소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해 완전히 폭력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괴물로 바뀌게 된다. 그는 결코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도 냉혈안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거짓말을 못하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못하고 신념을 믿고 사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데 말이다.

알베르 카뮈도 그런 타자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론 뫼르소가 그렇게 사람들하고 원만히 어울려 지내고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는 사람은 아닐지라도 그에게 사형이란 처벌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것은 과연 범죄인 것일까? 그 소신이 그런 시민 윤리와 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소신을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어느 새 부조리한 인물로 낙인 찍히고 마는 것인가.

 작가는 뫼르소를 통해 사회적 위선과 거짓 그리고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는 세상의 부조리한 진실을 그대로 마주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개인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규정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폭로한다.  


또한 왜 살인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뫼르소는 '태양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너무나 황당한 이 대답은 중요한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 당시 뫼르소의 살인에는 거창한 동기가 없었다. 그 당시 햇빛이 너무 강렬했고, 땀이 눈에 들어갔고, 칼날에 반사된 빛이 눈을 찔렀을 뿐인 사소하고 우연한 상황이 벌어졌다.


존재 전체가 팽팽히 긴장했고, 나는 권총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나는 손잡이의 볼록하고 매끈한 부분을 만졌다. 그때, 둔탁하고 귀를 먹먹하게 하는 소음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제거했다. 내가 낮의 균형을, 행복해하던 해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움직임이 없는 시체 위에 네 발을 더 쏘았고, 총알들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깊이 박혔다. 그것은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p. 97


이처럼 작가는 살인과 같은 삶의 비극 또한 거창한 계획이나 의도가 아닌 시소한 상황과 우연에 의한 이유로 일어날 수 있음을, 세상의 많은 일들이 우연과 출동에 의해 일어남을, 세상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 법정, 종교, 도덕관몀이 얼마나 허략하고 인위적인 관습인지, 얼마나 부조리한지 폭로한다. 죽음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며 우리 현실은 부조리하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준다. 
또한 뫼르소가 사형을 앞두고 사제의 종교적인 구원이나 상고를 거부한 것처럼, 세상의 기만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며 내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실존적 모습임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책이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지금까지 사랑과 인기를 받은 이유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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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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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사유와 통찰"

헤르만 헤세  <데미안>을 읽고



"당신은 진정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자전적인 성장 소설-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새가 알에서 부화하는  과정과, 아기가 어미의 자궁에서 나오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비슷해보인다. 새가 알이라는 세계를 깨고 나오듯, 아기 또한 자궁이라는 세계를 깨고 나와 탄생한다. 이처험 존재가 세상을 만나는 과정은 이처럼 힘든 과정이 수반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부수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세계와 싸우며 살아간다. 인생이라는 삶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둘러싼 세계에 맞서서 투쟁하고 싸우며 살아간다. 모든 인간의 인생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맞서 싸우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정한 길을 가기도 하지만 삶의 방향성을 잃고 헤매이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이 어려운 시기를 거친다. 보통 사람에게 이 시기는 자신의 끓어오르는 생명력이 주변 환경과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 앞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가기 위해 가장 쓰라리게 투쟁해야 하는 시점이다. 운명일 수밖에 없는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인간은 인생에서 단 한 번 겪지만, 어린 시절이 뿌리부터 흔들리며 무너져 내릴 때, 그동안 정든 개 슬금슬금 차취를 감추며 불현듯 고독과 우주 공간의 냉혹함을 실감할 때 우리는 죽음이 이런 것이 아닐까 괴로워 한다."

-p. 80


그렇게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헤매일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아정체감에 혼란이 올 때, 이 책은 그때마다 나를 붙잡고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고 성찰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두 가지 세계를 만나게 된다. '밝음'과 '어둠'의 세계, 선과 악의 세계,  즉 크루머의 세계와 데미안이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렇게 상반되는 세계의 대립 속에서 싱클레어는 자아가 미성숙한 '어린 나'에서 데미안을 통해 자아를 성숙하고 깨어있는 존재인 '성숙한 나'로 성장하게 된다. 그런 자아성장의 과정을 헤르만 헤세는 주인공 싱클레어를 통해 보여준다. 그 모습은 정말 새가 알에서 부화하는 과정처럼 힘들고 자아성찰이 요구된다. 


그리고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알이 순조홉게 완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줄탁동시'라는 말처럼 라는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 속에 밖에서 알을 깨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조력자가 바로 데미안인 것이다. 그렇게 싱클레어는 데미안으로 자아를 인식하고 자아가 깨어있게 된다.



그 깨어있는 자는  데미안이 말한 '카인과 아벨'이야기에서의 카인과 같은 자,  '탁월함'과 같은 특별한 표시를 가진 카인의 후예들이다. 데미안에 따르면 그 표시를 가진 자들은 서로 알아보고 만나게 된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만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카인의 표시를 가진 용기있는 사람들과 아벨과 같이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는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그 세계는 서로 공존하며 맞닿아 있다.


하지만, 삶의 여정이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듯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이미 자기 안에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데미안의 말처럼, 내 안으로 깊이 내려가 내 본래의 형상을 찾고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아팠다. 하지만 원할 때마다 열쇠를 찾아 내 안으로 깊이 내려가, 그곳의 어두운 거울, 운명의 형상들이 잠들어 있는 어두운 거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면, 나는 내 본래의 형상, 완전히 그를 닮은 형상을 만난다. 그, 나의 친구이자 인도자와. "

-p. 270



이 책을 삼독을 하면서도, 여전히 이 책은 나에게 새롭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어린 시절, 나에게 처음 던진 질문 '나는 누구인가?" 그때는 그 질문이 한없이 어렵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는데,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누구인지...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매번 이 책을 읽으며 찾으려고 노력했듯이, 앞으로도 난 이 책을 읽으며 수십 번 던진 질문을 할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라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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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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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의 흥망성쇠 미래"

헨리 지  <인간 제국 쇠망사> 를 읽고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가장 찬란한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 "



-영국 왕립학회 과학도서상 수상 작가 헨리 지의 신작-


 


"인류의  찬란한 성취는 어떻게 몰락의 씨앗이 되었는가?"


출산율의 감소,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의 감소, 늘어가는 각종 전염병, 에너지 고갈과 식량 부족으로 에너지와 식량 위기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심상치 않다. 그래서 과거에 유행했던 종말론과 인류 멸망설이 다시등장하고 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과 AI 발달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던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오랜 생물의 역사를 통해 모든 생물종의 보편적인 운명을 보건대, 우리 현생 인류도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멸망과 몰락의 시기가 앞으로 2세기 안에 올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어떻게 하면 우리는 악화일로로 치닫아 몰락의 길로 가고 있는 것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몰락의 가속도를 줄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여러 생물 종 중에서 어떻게 유일한 지배자가 되었는지, 여러 호미닌 중에서 유일하고 지배적인 호미닌이 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인간 제국 쇠망사』는  제목처럼,  시간을 거슬러 인류의 출현부터 멸종 직전에 이르기까지 현생 인류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불과 5만 년 전까지도 호모 사페엔스는 여러 호미닌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다른 종들을 제치고 유일한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여러 고고학적 증거와 자료들을 바탕으로 그 과정을 추적하며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한 단서를 제공한다.


저자가 제시한 일명 카레니나 원리인 '행복하고 번영하는 종은 모두 비슷한 모습이지만 멸종될 위기에 처한 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망각의 길에 들어선다' 는 내용은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듯 하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근거로 인간 문명이 성취한 발전 속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과 달리 누구도 발을 디딘 적이 없는 곳까지 대담하게 천천히 독보적으로 침입하엿던 종이다. 또한 10만 년전부터 시작한 생물학적, 행동적, 인구학적인 변화로 인해 천천히 기하급수적으로 그 종족수가 축적되어 수만 년 후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전 세계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서식 영역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전 지구를 아우르게 되었고 이것은 다른 어떤 종도 달성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장 찬란한 순간, 몰락이 시작되듯, 우리가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종이 모든 경쟁자를 제거한 후에는 내려가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인간이 쇠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로 인구증가율의 감소를 제시한다. 옛말에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다윈이나 파스퇴르, 게이츠나 잡스, 베이조스나 머스크,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을 낳으려면 1억, 심지어 10억 인구의 문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인구 감소를 쇠락의 원인으로 제시한다. 특히 과잉된 인구가 현재 인구 감소로 이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시하는데 그 원인으로 기후변화와 감염성 질병의 증가로 제시한다. 


예전에는 증가하는 인구로 인해 지구가 폭발할까봐 걱정했다면, 이제는 감소하는 인구로 인해 인류가 멸망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자는 인류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길로 지구가 아닌 달과 화성 같은 우주 개척을 그 해결 방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아직 지구와 같이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 발견되지 앉았고, 달이나 화성 탐사선의 우주 개척 시도 또한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솔직히 이 해결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저자 또한 우주 개척이 말처럼 쉽지 않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비록 그 방법이 아직은 태동 단계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인간이 가진 상상력, 생명력 그리고 신기술이 결합한다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비록 우주 개척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 위기를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의 경고처럼 이러다 2세기 안에 멸망의 길로 갈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함께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어서 좋았다. 



인류는 선택에 직면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의 진화 역사에서 유례없는 정치적, 사회적, 생물학적, 환경적 위기를 마주하고, 또 처음으로 이 종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전환점에 도달한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선택이다.

-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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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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