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71
찰스 디킨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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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속에서 한 인간의 결단으로 피어난 구원과 사랑"

찰스 디킨스의<두 도시 이야기 읽고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으며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혁명보다 뜨거운 한 인간의 결단, 
현대지성 클래식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다-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이 솟구치던 시기였고, 불신이 드리우던 시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사람들 앞에는 모든 것이 놓여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p. 25, <두 도시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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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대비되는 단어들이 진술로  시작되는 문장들로  『두 도시 이야기』는 시작한다. 절망과 광기의 시대 속에서,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던 그런 상황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  
절망과 굶주림 그리고 고통 속에서 극단으로 몰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지고 폭력적일 수 있는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채 아무런 연민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죽고 죽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폭력적인 잔혹한 죽음과 광기 앞에서도 한 인간의 희생과 숭고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등 인간의 악함과 선함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대혁명 이라는 프랑스 격변기를 역사적 배경으로 다루고 있기에 그런 점에서 프랑스 대혁명을 소재로 한 대서사작인  <레 미제라블>과 비슷해 보이지만,  배경, 주제, 서사 구조에서 명확한 차이가 보인다.
 <레 미제라블>에서는 장발장의 개인적인 도피와 속죄의 여정을 통해 프랑스 사회 전체의 모순을 조망한다. 이에 반해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에브레몽드 가문과 마네트 가문이라는 소수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파명하고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두 도시 이야기>에서 찰스 디킨스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모순과 지배 체제의 착취와 악행 등에 의해 기인한 혁명이지만 혁명의 폭력성은 정당화될 수 없고, 혁명 이후의 민중의 광기로 인한 폭력에 비판과 경고를 보내고 있다. 글 중간 중간 폭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로 대변되는 작가의 생각과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다음의 문장들로 시작되는 글의 첫 부분은 마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이 솟구치던 시기였고 불신이 드리우던 시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사람들 앞에는 모든 것이 놓여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고, 동시에 모두가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요컨대, 그 시대는 우리의 현재와 너무 흡사하여, 목소리 큰 일부 권위자들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극단적으로 비교해야만 당대의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p.25 「제1부. 다시 살아나다. 1장. 시대」 중에서


또한 <두 도시 이야기>에서는  제목에서처럼 두 도시인 '런던'과 '파리'를 대조하면서 혁명의 의미를 탐구한다. 영국의 런던은 단순한 지리적 특징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들 마네트 박사, 루시, 찰스 다네이, 시드니 카턴 등이 안정을 찾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공간이다.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안전하게 도피할 수 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록 폭력이나 귀족과 같은 지배 계층의 횡포가 있긴 하지만, 인간적인 삶과 가족애를 발현할 수 있는 곳으로 대표 된다.


이에 반해 프랑스 '파리'는 프랑스 대혁명의 불길이 솟아오르는 공간이며 지배계층의 억압에 의한 고통과 분노 그로 인한 혼란과 광기가 지배하는 곳이다. 질서가 붕괴되고 복수성이 유일한 원동력이 되며 '기요틴'  즉 단두대가 정의의 상징처럼 숭배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요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운명 또한 런던과 파리 이 두 도시를 오가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드파르주 부부처럼 개인적인 고통을 혁명의 동력으로 삼아 복수심과 분노에 휩싸여  혁명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무자비한 폭력이 지배하게 된다. 처음에는 지배층의 억압과 횡포에 분노한 시민들에 의한 혁명이었지만, 점점 광기와 복수로 치달아가며 혁명의 의미를 상실한, 오직 피와 죽음의 복수만 있는 무자비한 폭력만이 지배하는 혁명이었다. 과연 누가 죄인인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광기  어린 군중 심리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 또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다.

그런 절망과 분노 그리고 광기의 상황 과 혁명의 열기 속에서 놓인 찰스 다네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적인 양심을 지키고 신의를 다하려는 그의 진심은 과연 광기 어린 폭력 속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심을 가지고 따뜻한 연민을 가진 여인 루시와의 결혼과 그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루시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자신의 죽음까지고 불사하고 숭고한 희생을 통해 고귀한 사랑을 보여준 시드니 칼턴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아무리 폭력이 난무하고 죽고 죽이는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숭고한 희생과 사랑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진정한 사랑과 구원은 제도나 혁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인류애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에 보여준 시드니 칼턴의 죽음으로 인한 희생과 구원은 가장 숭고한 형태의 사랑이자, 혁명의 잔혹함에 대비되는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가치임을 작가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내가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지금껏 해온 그 어떠한 일보다도 훨씬 더 근사하다. 내가 이제부터 가려는 길은 지금껏 걸어온 그 어떠한 길보다도 훨씬 더 평안하다.
-p.614


18세기 귀족의 폭압에 항거하여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 또한 폭력의 양면성의 측면에서 정당화될 수 없음을 폭력은 또 다른 ㅍ폭력을 낳게 되는 비극적인 순환에 대해 경고한다.  맹목적인 복수심에 사로잡혀 또 다른 폭력을 낳게 되는 광기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복수심을 기반으로 한 혁명은 결국 이상을 잃고 실패한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압제자들의 폐허 위에서 태어난 새로운 압제자들의 긴 행렬도 본다. 앙갚음의 도구가 그 주어진 역할을 다하기도 전에, 그들이 모두 그 도구로써 멸망하는 것을 본다. 나는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일어선 아름다운 도시와 눈부시게 빛나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그들이 긴 세월에 걸쳐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고 투쟁하는 가운데 승리와 패배를 거듭하는 모습을, 이 시대의 죄악과 그것을 잉태한 지난 시대의 죄악이 스스로 속죄함으로써 소멸해가는 모습을 본다. 
-p. 613


그런 폭력성 앞에서 인간의 연민, 사랑 그리고 구원은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개인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인간애만이 진정한 구원이자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작가는 시드니 칼턴의 희생과 루시 마네트의 따뜻한 연민과 헌신적인 사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이 책이 150년이 넘도록 다시 읽히고 사랑 받는 이유일 것이다. 단순히 역사 소설이거나 고전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가 AI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시대 속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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