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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물 사용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화장지를 옆에 두고... 햇살 좋은 창가에 나를 맡기고 이 책을 읽으리라.
그리고 맘껏 울리라.......
왜? 표제가 그녀의 눈물사용법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의자를 갖다놓고 자리에 앉았다.
헛! 그런데.....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니고... 8편의 단편 모음집이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곧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이런 류의 소설을 정말 오랫동안 읽지 않았었지."
영화건 드라마건 멜로물 등 로맨스에 관련된건 전혀 보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노래까지도 사랑타령은 이제 그만! 그랬었다.
언제부터인가 이젠 사랑타령이나 인생 어쩌구 하는 노래나 드라마, 영화따윈 시시해 보였다.
친구들의 사랑타령도.... 삶의넋두리도.
이런 현상을 늙는다고 하는 걸까?
이젠 다큐멘터리가 더 재미있고 여행프로그램도 털털한(?) 뽀얀 흙먼지 가득 날리며
타박타박 걷는 관조적인 나그네 같은 삶을 사는 그런게 더 좋다....
그랬던 내가 천운영씨의 소설집을 읽겠단다.
허허헛!!!
덜컹거리는 전철안에서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전날 읽긴 했는데 텍스트가 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거니와 분위기는 전철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덜컹거리는 전철 안에서 읽는 소설의 묘미도 또한 쏠쏠하니까.
사내, 소년, 아내, 노파. 이 첫번째 단편은 작가의 거침없는 표현들 속에 사내의 소심함과 아내와의 나른한 관계,
18살 짜리 소년의 경쾌한 대사, 사내의 소년의 밝고 건강한 젊음에서 오는 동경과 질투와 증오, 망상.
......
이 단편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아주 어린 과거의 시절과 현재의 시간을 넘나들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순간순간의 단편 기억들이 그동안 한번도 떠오르지 않다가 글을 읽으면서 영화의 스틸컷처럼
마치 프로젝트슬라이드 넘기는 소리같이 착착 소리를 내며 내 머리속을 순간적으로 찰칵거리며 지나간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내용인데도.... 또한 이상의 '날개'까지.. 연결되는 이 스토리 전개는....아마도 사내와 아내와의 관계때문이리라.
『조명 아래 쑥스럽게 웃고 있는 여자는 아내가 아니다. 상의를 벗고 앉은 여자는 바로 늙고 야윈 노파다. 그는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이 살아나는 것을 본다. ...... 조명 아래에서 노파의 몸은 부끄러워하고 시샘하고 달아오르는 소녀의 몸이었다. 소멸과 생성이 공존하는 원숙한 자연이자 소녀인 노파의 몸.』
이 장면은 최광호사진작가의 할머니 임종 직전에 찍은.... 흑백사진 쭈글쭈글한 조모 나신의 사진이 떠오른다.
최광호작가 또한 자신의 가족들을 뷰파인더로 그들의 일상을 그려낸 작가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임종 직전의 할머니 나신을 많이 찍었는데 그 흑백사진은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던 인상깊은 사진이었으니까.
10년도 훌쩍 넘긴 지금도 그 사진이 눈에 선하니 이 글과 연결지어지는 건 당연하리라.
천운영의 세 번째 소설집 속에 담겨 있는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 '그녀의 눈물 사용법', '알리의 줄넘기', '내가 데려다줄게',
'노래하는 꽃마차', '내가 쓴 것', '백조의 호수', '후에' 이 8편의 단편들은 원초적이며 냉정하며 거침없는 표현들이 인상적이다.
그래서 처음엔 거부감이 강하게 들었지만 소설을 조금씩 읽다 보니 그녀의 냉소적이면서 후려치는 문맥들에 조금씩 적응이 된다.
한편으론 가슴 속이 후련해지는 부분도 있다. 일종의 배설작용(?)인가?
어쨌든 천운영작가! 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이 책으로... 그런데 그녀와의 첫 만남이 너무 독하고 너무 진하다.
그래서일까? 난 이 소설들을 읽으며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아니 읽으면서 울어버리면 내 가슴에 느껴지는 소설의 빡빡함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가슴이 더 답답했다.
오래 전 소설가 한강의 글을 읽고 두번째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어딘가로 가서 펑펑 울고 싶어졌다.
악! 하고 크게 소리지르고도 싶어졌다.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가까운 안양천이라도 가려고 한다.
차소리로 주변의 소리들에 내 고함소리는 파묻힐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