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진저리치게 무료한 적이 있었다. 특히 오후 네다섯시쯤 되면 찾아오는 나른한 그 무료함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어 밖을 뛰쳐나가기 일쑤였던 적도 있었다. 그때 순간이나마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준 것들은 코끝을 스쳐는 선선한 바람과 꿈틀꿈틀 움직이는 작은 벌레들의 가녀린 생명력. 그리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색의 변화들과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었다. 「그녀의 완벽한 하루」 이 책은 그때의 기억들을 하나 둘씩 떠오르게 한다. 그 때의 아픔들과 왜 아파야만 했을까를 다시금 되새김질 하게 했다. 지나간 상처들의 아픔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있다는 세상의 말들이 있지만 상처들은 그다지 순한 기억으로 되새김질 되진 않는다. 다시 떠올려 기억한다는 것은 나른함도 아니오 평안함도 아니다. 단지 그때의 비수같던 가시돋친 상처가 지금은 조금 무뎌졌을 뿐이다. 아니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도 상처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피하고 싶은 두려움이다. 채민의 「그녀의 완벽한 하루」는 나에겐 오후 4시같은 책이었다. 시와 그 시를 표현한 그림과 글 속에 녹아있는 만화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삶과 생각들은 참기 힘든 무능력한 무료함과 삶을 짓누르는 커다란 바위덩어리같은 삶의 무거움으로 질식할 것만 같은 갑갑함이었다. 누군가가 삶의 캄캄한 깊은 수렁으로 내 발목을 움켜쥐고 깊고 깊은 물 속으로 끌어내리는 물귀신 같아 버둥거리고 빠져나오고 싶은 본능적인 간절한 몸부림(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그 느낌이 내 머리에 찬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도 삶의 희미한 희망 한줄기 조차 보이지 않아 단지 살아 있기 위해 사는 동안 끊임없이 버둥거리는 삶을 살기보다 '끝없는 비참함보다 비참한 끝을 보는 편이 낫다'(Perfect day)를 택했지만...그러나 그들의 마지막 간절한 절규 "도와줘" 그리고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를 '아무것도 가질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는 그 때가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다' 라는 신현림작가의 싯구절은 그래도 아무데도 떠나지 못하는 회색벽에 갇혀 핑퐁게임 같은 삶을 사는 우리네 현실에 각자에게 던져진 숙제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시와 만화!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다른 장르가 채민작가 특유의 시를 녹인 스토리와 만화로 우리의 삶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