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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김봉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힙스터스러운 경쾌한 구어와 다자이식 익살 댄디즘을 장착하고 쿄토 산책으로 스타트를 끊는다. 식(食)을 찾아 냄새와 뉘앙스를 맡으며 정처없이 걷다 풍경 속에 스며들어 어느새 게이필의 깨방정을 쏟아낸다. 1인칭 화자 시점의 미식가는 자신의 주관성을 이국의 골목과 가로수길, 다리가 보이는 천변 등지에 몸 부비듯 바른다. 플랫하고 엷게 스민 色스러운 에센스를 시티팝 bgm인 양 팬시하게 배치할 줄 아는 영악함과 귀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애정행각이 교차하는 과거사의 아스라함과 핫스팟인 폐허의 컬렉팅으로 빼곡하다.
<컬리지 포크>에서 주인공이 연인이었던 일본인 교수의 sm사진 노출에서 수치, 분노와 함께 성적 흥분을 느꼈다는 대목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감정의 양가성을 다루는 것조차 요즘 소설들에서는 어쩐지 희귀해졌다.같은 단편의 스테이징 중 대학원 수업 환담의 일부를 이루는, 문예 비평의 어구들도 괴장되지 않으면서 격이 있고 지적이다.
안으로 고여드는 일본 사소설의 심리주의와 1인칭의 혼란스러운 내성으로 포괄되는 자유간접화법을 넘나들며 제4의 벽 너머 가상의 청자에게 말건내는 듯한 포즈. (쓰기가 아니라 플러팅의 말건내기!) 간혹 넘치는 멜랑꼴리와 애도를 빌미로 오바 액션을 양식화한 제스쳐처럼 내보이기도 한다.
다만 문장의 아름다운 육질을 음미할 줄 알던 롤랑 바르트가 끝내 제대로 된 소설을 못쓰던 이유 중 하나는, 마주치는 사건과 사물에 관념의 레테르를 달아주는 속도, 또는 비평적 프레이밍을 작동하는 기민한 습성 덕분이었다는 걸 기억하자. 하루키도 글쓰기 책에서 지적한 바 있듯이 등장인물의 내성에 있어서나 내러티브 주체의 범주화 능력에 있어서나 제빨리 분류하지 않는, 전망의 불투명성과 캐릭터의 느린 점성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적 멍청함'이 필요하다. 여하튼 작자는 키냐르나 이인성처럼 자기분석의 에세이와 스캔들의 점화 소멸을 다룬 픽션의 경계선에서 흥미로운 줄타기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