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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 트러블 - 성인지 페미니즘
오세라비 외 지음 / 가을밤 / 2020년 12월
평점 :
이 책을 받기 훨씬 전부터 나는 유튜브에서 유재일 님, 오세라비 님, 여명숙 님 채널의 팔로워였다. 문재인 시대의 광기라고 할 수 있는 K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기꺼운 마음에 서평단 신청을 했다.
일괄하자면 한국의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들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서 어떻게 나라를 말아먹고 있나 하는 내용이다. 분량은 100페이지 조금 넘고 저자가 세 명, 거기다 추천사가 일곱 개나 된다. 정세에 맞는 기동성 있는 개입을 우선시하는 소책자 정도로 보면 되겠다. 차례의 세부 타이틀만 훑어 봐도 논지의 방향과 목표가 어떠한지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내용 요약 좀 더 해 보자. 오세라비 님의 꼭지는 ‘성인지 감수성’ 개념이 어떠한 배경에서 발생했고, 그 개념이 일차적으로 표방하는 바와는 다르게 어떠한 이면 전략에 따라 작동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 집단이 어떻게 국가 정책과 예산을 빨아먹고 있고,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는 이데올로기를 보편적 평등으로 위장 한 채 학교 교육으로 침투 전파해나가기 시작했는지 묘사하고 있다.
성 평등을 수단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 단체들에게도 인맥이라는 게 있고, 연줄에 따라 낙하산 공무원을 곳곳에 심고 있으며, 여가부가 비대해지고 성인지...라는 머리말이 붙은 각종 사업의 예산 규모를 불려나가고 사실상 성별 문제와 별 관계없는 일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타조직 속으로 세를 확장한다. 이 따위 풍경. 진보라는 이름의 위선, 환멸을 지금 문재인 정권 만큼 극명하게 보여준 이전 정권이 있었나 싶고, 그게 과장된 탄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요한 님의 꼭지는 2018년 이전엔 쓰이지도 않았던 이 용어가 어떻게 급작스럽게 이슈화되고 사법부 판례에까지 인용되게 되었는지, 피해자 중심주의를 확대하면서 죄형 법정주의를 무너뜨리고 물적 증거 없이도 단지 피해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대개 여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만으로 피고소인인 타겟에게 승소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코메디 같은 상황을 지적하고, 다문화 주의와 정체성 정치, PC가 휘어 잡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특히 스페인이 어떤 몸살을 앓고 있는지 비교 차원에서 들여다 본다.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문재인을 포함한 정치인과 사법부 꼰대들이 성인지 감수성을 단순히 양성평등 하자는 취지로만 뭉뚱그려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요한 님은 이를 페미에게 기만당한 일이라고 보지만 다르게 보면 꼰대들 자신이 지적으로 게을러서 대충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묻어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세 번째 전혜성 님의 꼭지는 여가부가 보급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 어린이책이 얼마나 치우쳐 있는지에 포커스를 맞춰서 지적한다. 이 글은 매우 짧고, 앞서 두 글에서 언급한 내용 속에 거의 다 포함되므로 실은 빠져도 상관없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책 맨 앞에 붙은 일곱 개의 추천사 다음으로 또 하나의 추천사 정도로 편집되어도 큰 손실은 없으리라 본다.
공짜로 받은 책이기는 하지만 직언 몇 가지를 해보겠다. 우선 책 구성과 밀도에 불만이 생긴다. 급하게 씌어진 흔적이 보이고, 혹은 어쩌면 처음 기획과는 다른 모양새로 틀어진 게 아닌가 소설을 써본다. 주제를 충분히 소화해서 자기화해서 씌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지금 쓰고 있는 내 글의 울퉁불퉁한 문장에서 보이듯이 말이다. 오세라비 님은 날 것의 보도 자료에 겨우 액자를 치듯 옮겨 적고 있는 것 같았고, 요점에 방점을 찍어야 할 적절한 순간을 놓치고 필치가 표류하는 듯하다. 안요한 님의 글에도 명백히 비문이 종종 보이고, ‘위험한’, ‘황당한’,‘속고 있다’ 등 수식어와 술어를 끼워 넣으며 이미 정해진 필자의 입장을 비치고 있을 뿐 그보다는 좀 더 논증으로 개입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세 번째 글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한 바 그대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언뜻 스쳐지나갔던 또 하나의 걱정. K 페미니즘에 대항하는 논리로 성의 고귀함, 가족 공동체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향수의 보수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통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선 이탈의 충돌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남조선 페미니즘의 방식에서 가장 분노를 느끼는 점이 픽션 속의 욕망 까지도 등급을 매기면서 문화를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는 사회적 약자가 되므로 잠재적 피해자를 자처하면서, 또는 (되돌이키고 고백할 필요가 없는) 결백한 자가 되면서 문외한인 공중에게 무엇이 진정한 도덕인지 까지 가르치려고 든다. 입장이 다른 상대와 토의하지 않으며 익명으로 몰려다니면서 감정의 칼부림이면 충분하다. 그들의 아빠이거나 삼촌인 자칭 민주투사 출신 - '우리민족 끼리'를 외치면서 3대째 왕조 체제인 북조선을 긍정하는 주사파 따위가 '민주화 세력'이라니 어불성설이 아닌가?- 586 실무 권력자들에게 엉겨 붙어 힘을 분양 받고, 불복하는 개인에게는 죄의식의 형벌 문신을 더 깊게 새기는 빅 브라더 놀이를 하려고 든다,
K 페미니즘이 결국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경전에 기대 마을 공동체의 도덕을 해석하고 투석형을 명령하는 (시아파 이슬람 식의) 이맘 정치, 이항대립 근본주의에 기반한 사이버 트롤링, 질롯 당원, 잠재적 가해자라고 낙인찍힌 이들의 사생활에 히잡 씌우기라고 본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근본주의radical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말을 조금 변형해서 말하자면, 생체 공학이 아직까지 인체 구조를 자유 자재로 개조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가 깃든 신체 유형의 복지를 극대화하려고 드는 이익 집단에 지나지 않는 걸로 보인다. '정의'는 핑계일 뿐. 출세지향을 숨기는 교활이거나, 권력감의 막연한 팽창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그 적나라한 의미에 직면하지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 레밍떼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