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 그래픽 평전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4
야론 베이커스 글.그림, 정신재 옮김, 서동욱 감수 / 푸른지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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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에서 '상급'으로 분류된 걸 5천 몇 백원 주고 샀는데 펼쳐보니 

앞 속지와 뒷 속지가 찢겨져 있네..

그래서 한번 보고 되팔려 버려질 운명인 책.

 

바루흐, 또는 벤투, 또는 베네딕투스 스피노자 생애에 관한 책은 처음 읽는다.

1633년 출생으로 그의 삶은 네덜란드의 경제적 최전성기와 겹쳐진다.

 

하지만 결코 평화로운 시기가 아니었고 전쟁과 종교 분쟁으로 얼룩진 시기였으니 바루흐는 박해를 피해 이베리아 반도에서 도망 온

유대인 디아스포라 집안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청과물과 견과류 장사꾼.

바루흐가 다섯 살 때부터 가세가 점점 기울다가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부친이 폐병으로 사망해

장례를 치른 직후 빚과 함께 가업을 물려 받았다.


엄마와 큰 누나, 큰 형은 폐병으로 진즉에 사망한 상태였고

남동생 하나, 여동생 하나가 살아있었음.

 

바루흐 또한 마흔 네살에 폐병으로 죽는데..


폐질환이 집안내력의 지병이었던 건가?

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은 부모가 같은 폐질환으로 사망했으니

 

이 경우는 가족이 공유하고 있는 잘못된 생활습관이 크다고 본다

취사나 난방 용도로 불을 오래 사용하는데 환기를 안 시킨다든지..

식습관도 그렇고 집안 마다 의외로 드러나지 않는 

생활방식의 차이가 크다는 걸 확인한 적이 있다.

 

 

심지어 바루흐는 장사꾼 일을 접은 대신 

생계 수단으로 렌즈 깎는 일까지 했으니

유리 미세 입자를 오지게 마셔서 수명을 더 단축했던 모양.



 

서문에 라틴어 번역이 잘못되어 있다. 라틴어를 따로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대충 영어랑 비슷하니까 금세 오류를 눈치챌 수 있는데 

대체 출판사 교열은 뭐한 걸까

감수했다는 서강대 교수 서동욱 씨는 뭘 한걸까?


ignorantia non est argumentum ->


 Ignorance is no argument. 

 

' 무지는 논증하지 않는다' ' 무지는 논거가 될 수 없다' 정도가 맞겠다




바루흐가 유년기 때 본 랍비들의 논쟁번역판에는 편집 실수로 대사가 뒤바뀌어 있다.


팔짱 낀 한 쪽은 카발라에 심취한 정통파이며 유대 민족 한 셋트 구원론자.

다른 한 쪽은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였던 이슬람권 학자인 마이모니데스 신봉자.


즉 유대인이라도 죄지으면 하늘로 들어올려지지 못한다는 주장을 하는 

반쯤 가톨릭화한 온건론자.



 ...


바루흐가 어린시절에 본 종교적 스캔들이며 그의 앞날을 예견하는 사건.


스페인 종교 박해를 피해 망명을 왔더니 이 디아스포라 공동체 내부에서도 종교 분쟁은 있었다.


역시 스페인에서 건너온 위리엘 다 코스타라는 자가 

유대교 경전의 신성을 부정했다가 파문을 당했다.

이후 고립이 심해지고 견디다 못한 위리엘이 반성한다면서 유대 공동체의 품으로 돌아 왔더니....

1차 처벌로 등짝에 채찍을 맞은 후..

 



2차 처벌로 시나고그 (유대교 회당) 문앞에서 동포들에게 밟힘, 이틀 후 자살.

바루흐가 일곱 살 때 목격했던 사건으로 어린 기억에 큰 충격이었을 거임.

 

이후 스피노자 또한 데카르트 철학에 심취해서

유대인 동료들을 멀리하고 이교도 계몽주의자들과 어울리면서

토라의 신성을 부정하는 말들을 흘리고 다니다가

랍비의 충고를 몇 번이나 듣고도 뉘우치지 않아 결국 파문 당했다.

 

아버지의 유업인 청과물과 향신료 장사를 하다가 스물 한 살에야,

같은 시장에서 거래 하던 이교도(?) 네덜란드인 장사치로부터

책방 주인이자 동네 사설학원 강사인 프란시스쿠스 판 엔덴 박사를 소개받고

삶의 방향이 확 달라진다.

 

터닝 포인트이자 철학 인생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

판 엔덴은 가톨릭 예수회 신자이면서 초기 계몽주의자로

스피노자에게 라틴어와 자유주의 정치사상과 데카르트 철학을 가르쳐준다.


(데카르트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초정을 받기 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쭉 살았었고 그가 죽은지도 5년 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책방 교습소 서클에서 만난 다른 학생들이, 훗날 박해를 피해 

떠돌던 스피노자의 경제적 정신적 스폰서가 되어주었고

그를 중심으로 한 추종자 서클이 거기서부터 형성된다.

바루흐는 판 엔덴의 집을 들락 거리다가

선생 딸래미와 일생 단 한 번의 연애에 빠지기도 한다.

책에만 빠져 있어서 관계 관리의 기름칠을 안하고 방치하다가

다른 동료에게 가로채임 당하지만..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삶.

 

 

파문 당한 이 후에는 유대인 이름 바루흐 대신

라틴어 식 이름 베네딕투스라는 이름을 고집하게 된다.

상인 시절 벤투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는데

이건 포루투갈 출신으로서의 정체성에 애착하던 시절에 쓰던 이름임.

 

  셋 다 '축복받은 자'라는 뜻.

 

 베네딕투스의 20대와 30대 시절 까지 세 차례에 걸쳐

 네덜란드는 영국과 큰 해상 전쟁을 벌인다.

두번째 전쟁에서 세 번째 전쟁으로 건너 가는 사이에는

 흑사병이 돌아서 수만 명의 시민이 죽어 나가고,

 재림 예수라고 자칭하는 사비타이 제비라는 사람이 나타나

 수많은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현혹했다.

 이 광신에는 바루흐를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던 노 랍비와

 바루흐의 친 남동생도 휩쓸렸다. 1660년대의 일.

 

1670년대에 들어서자, 네덜란드의 페리클레스라고 할 수 있는,

 지난 20여년 동안 공화국의 자유와 관용과 상업 정신의 정치적 보호자였던

 재상 요한 드 비트가 거리에서 정치 폭도에게 습격당해 살해당하고

 배가 갈리고 내장이 꺼내진 채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서

 숲속 짐승의 밥이 되는 사건이 터진다.

 

스피노자 사망 2년 전의 일이다.

 

 

 스피노자의 친구 하나가 성경을 비판하는 책을 냈다가 감옥에 갖혔다가

 가혹한 환경에 병사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14년 동안 고심해오던 에티카 저술 작업을 마침내 완성보긴 하지만

 이런 저런 사건들을 목격한 후

 결국 출판을 보류하고 얼마 안되서 죽는다.

 친구들에게는 서랍 속의 유고들을 남기고

 그 밖의 다른 재산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니

 

 후원자 그룹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근근히 버텨온 셈이었다.

 

 ....

 

이 작품은 주로 종교적 독단과 정치 투쟁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스피노자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그 정치적 노력을 뒷받침하는 형이상학의 얼개에 대해서는 

겉핥기 식으로라도 부족해 보인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말풍선 속의 대사가 뒤바뀐 

어이없는 실수가 보이고,

 '하나님''하느님'을 뒤섞어서 쓴 것도 

아마 부주의 탓이겠지만 거슬린다.

 

그럼에도 생애와 역사적 배경을 알게 되니 

그가 한 개 유한한 신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패시브한 무력감을 느끼며 어떠한 영향을 감내하며 살아왔나 

실감나게 시뮬레이션하면서 볼 수 있었다.

 

 

역시 철학 사상이란 가치중립적인 기하학 해법이 아니라 

수난 당한 자의 생애가 튕겨내는 창조적 반동이자 숨은 이력임을 재확인한다.

 

 

당시의 네덜란드는 고대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나 중국의 전국시대처럼

전쟁의 한복판이면서 국가 단위로 볼 때는 부를 바닥내거나 

역동적 에너지를 잃지 않는 그런 시기였다

소모와 생산적 충만 사이에 끼인 듯한 이런 비스듬한 컨디션에서 

문화 토양도 융성해지는 거 같다...

 


형이상학 종교 예술 등 궁극의 지식은

결국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있느냐 라는 심판대 앞에서 가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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