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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잠언록 - 인위적으로 하지 말라 자연히 이루어진다
황천춘 엮음, 이경근 옮김 / 보누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선입견인지 몰라도 옳고 가르침이 되는 말들은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아, 또 저소리..
다 알고 있는데 언제나 같은 레파토리로 사람을 훈육하려드니 귀에서 튕겨나가고 되려 반감만 생기게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공자왈, 맹자왈,노자라고 다를손가...누가 어떤 사상의 토대로 어떻게 지혜를 주고자 한 말인가에는
관심도 없었고, 정확하고 깊이 있게 알고 있는 말도 물론 없다. 그저 잔소리 용으로는 그만일 뿐, 그 나물에 그 밥인 다른 모양
같은 실체를 가진 한 부류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많이 살아온 생은 아니지만) 살아가다보면 아, 그 말의 깊이가 이런 데 있었구나..싶어지는 순간이 분명, 오더라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앞서간 사람들이 왜 그렇듯 공자왈, 맹자왈을 외치며
나를 훈계하려 들었는지, 마뜩찮고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된다.
그 순간부터 어쩌면 서서히 어른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고 볼 수있을 것이다. 귀에 딱지가 앉은 그 말들을 떼어서
나보다 어린 누구에게 다시 그 딱지를 붙이고자 애쓰는 그 즈음이 시작인 것이다.
각설하고,
나에게 노자는 귀에 딱지를 앉게하던 면에서 보면 한 걸음 비켜서 있던 인물이다.
노자를 들먹여가며 이래야 한다,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를 논했던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이 앞서 말한 분들에게 뒤쳐지거나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훈계코저하는 맥락과 맞지 않아서 일테지만,
이제 이 책을 펴고 보니 노자의 시선을 땅위의 오골오골한 질서의 정렬보다는 그 위에서 바라보는 이상향을 노래하고 있다.
달관의 경지에서 바라본 시선을 느낄 수있는데, 그래서인지 노자의 일생 또한 베일에 가려있고 신비감에 싸여있다.
'도경'과 '덕경'으로 이루어져 있는 노자의 사상은 5천 자에 불과하고 이를 합쳐서 '도덕경'으로 불리지만, 노자의 사상은
세상의 질서를 가르치고 이치를 깨닫게 하는 책이 아니고 질병을 치료하는 처방전 역할을 한다는데 더 점수를 주고싶다.
병명을 알고있지만, 고칠 수있는 처방전이 없다면 온갖 이설들이 난무하고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겠지만 처방전을
제시할 수있는 거목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은 더욱 윤택하게 발전되어 온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 담긴 노자의 사상은 노자가 땅에서 발을 떼고 막연한 이상향만을 그린 도인만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 준다
넓고도 깊은 철학사상에서 처세, 인생, 정치, 전쟁, 관리원칙까지 세상에서 마땅히 지키고 실천해야 할 덕목들은 짚어
주면서도 더 나아가 이상향을 제시하는 넓은 안목을 아우르고 있다.
見素抱樸, 少私寡欲 -현소포박, 소사과욕 (P.180)
소박함을 드러내고 질박함을 품으며 사심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하라.
많이 들어 온 말인 듯 하면서도 하나하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실천하기 쉽지 않은 말이라 가슴에 새기게 된다.
노자의 이러한 가르침들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그의 사상을 이해하느데 도움이 되는
예로 첨부한 교훈이 되는 얘기들을 같이 읽다보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깨우치는 바가 적지않음을 느낀다.
예화 끝에 덧붙이는 서양철학 명언에서도 노자 사상과 상통하는 교집합을 읽을 수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어느곳에서도 고전만한 삶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를 구할 수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루하고 딱딱하기만 한 훈계용 잔소리들이 가득한 책임에 틀림없는데, 읽을 수록 그 맛과 깊이가 새록새록
다르게 느껴져 괜히 흡족하면서도 누군가를 향해 잔소리를 하기위한 준비가 아닌가 싶어 움찔 놀라기도 한다.
그래서 노자는 미리 경계를 했나보다.
知者不言, 言者不知 -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이는 알지 못한다 라고!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값진 보물들로 가득 차 있어, 두레박을 내리기만 하면 그 보물들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노자를 향한 니체의 말을 빌미삼아 일단 이 책의 반짝거림을 알았으니 내린 두레박에 올라오는 보물들로 인해
마음이 충만해지는 기쁨을 오롯이 느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