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타니 아키라,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차 보다는 커피를 자주 마시기는 하지만, 차를 마실때 만큼은 찻잔에 마실려고 노력한다.

'어울림직' 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오는 만족과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위안이

나를 스스로 즐겁게해 주는 까닭이다.

차만을 고집하는 차 매니아도 아니고, 정식으로 다도를 배운 적도 없어 차나 찻잔에 대해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지만, 커피와는 또 다른 차에서만 느낄 수있는 정화의 숨결을 사랑하다보니

차와 나란히 서있는 찻잔이나 찻사발 다구등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습관이 생겼다.

내 경우엔 찻잔에 간 빙열에 관심이 많은데, 언젠가 문화재시간에 들은 교수의 말을 기억해서다.

'빙열이 고르고 일정하게 간 도자기가 가치있는 도자기다. 그 무수한 금 사이엔 도공의 땀이 베이고

장인으로의 세월이 축적되어 있다. 빙열을 고르게 하는 힘이 도공의 힘이다.'

그래서인지 빙열이 고른 잔으로 차를 마실때면 그 빙열사이로 차의 맛을 더해주는 어떤 은은함이

베어나오는 듯 해 기분이 좋아진다.^^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사발이라는 그릇을 한마디로 응축시켜 내면까지 아우르게하는 제목! 흠, 멋지다!!^^

제목의 멋스러움에서 나아가 그동안 몰랐던 다완에 대한 지식과 일본 다완과의 차이점, 우리나라에선 귀한 대접없이

막쓰인다는 뜻의 막사발이 정작 일본으로 건너가서는 국보급 대접을 받는 이도다완이 된 씁쓸한 이야기, 임진왜란은

이도다완을 가져가기 위한 도자기 전쟁이었다는 새로운 사실들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15세기 당시 1300도 이상의 불로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과 조선 뿐이었다는 내용은 우리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찻사발의 선택기준이 되는 친절한 설명도 잊지 않았는데, 먼저 크기로는 지름이 10~15센치정도에 높이는 5~10센치,

무게는 300그램 전후가 좋고 형태는 적당하게 벌어진 원통형이어야 찻사발에 어울린다고 적는다.

찻사발에 어울리는 굽과 표면의 질감, 그려지면 좋을 그림과 유약의 빛깔을 일러주면서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고려다완인데, 이 고려다완은 조선시대 만들어져 대부분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우리가

우리 문화재를 잘 지켜야 함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대책으로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 환수에 노력을 기울여야 함도

중요한 일이라는 걸 깨우쳐주고 있다.

 

책에 소개된 사발들은 내가 어렸을 적엔 누구의 집이나 한 두개쯤은 다 가지고 있었을 법한 평범한 사발들이었다.

물론, 우아한 색과 운치를 더하는 그림으로 보통의 집에서 보기 어려운 격이 높은 사발들도 눈에 띄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막사발로 불리며 그야말로 막 쓰였던 그릇들이어서 그때 당시의 우매함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책을 넘기면서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실감하면서 언제부턴가 가볍고 실용적인 플라스틱과

스텐에 밀려 찾아보기 어렵게 된 사발들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찰하고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도다완이라는 일본이 붙인 이름보다는 황도다완이라는 우리식 말을 찾아가자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의 것을

찾아가는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저자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느낀다.

 

비어 있지만 천년의 세월을 담고 있고,

투박한것은 투박한대로, 우아한 것은 우아한대로 멋과 기품이 있는 사발.

그 잘게 간 금마다 베어나오는 우리 조상의 정신과 혼을 더욱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차를 마실 때 이전보다 더 오래 찻잔을 들여다 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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