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목횟집 시평시인선 31
권순자 지음 / 시평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을 사물을, 이름을 불러 내게로 다가오게 해 꽃으로 피워낼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

시인이다.

어제와 어쩌면 작년 요맘때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계절, 시간, 풍경, 사람들조차  시인의 눈길이 닿은 곳은 신기하게도

내가 보던 촛점에서 뽀샵처리가 되어있거나 명도, 채도의 비율이 확연히 높아져 있음을 느낀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크고 자세히 다가옴은 물론이거니와 무심한 마음의 세포분열까지 현미경으로 관찰해 적어나간 듯한

시를 볼 때마다 그들과는 다른 내 눈이 원망스럽다.

시퍼런 파도의 입속으로 몸을 던져 삼백석 공양미로 얻어 낸 개안이리라..여기면서도

파란만장의 여정에는 먼산이고, 세련된 라식의 기술이 단시간에 내게도 개안의 날들을 허락할지도 모른다는

어리석고 어두운 눈으로 그들의 글들을 쓰다듬고 쓰다듬어 본다.

 

권순자 시인의 '우목횟집'

시인의 눈을 따라 걸어가는 바닷길은 어쩐지 조요롭고 쓸쓸하다.

더 이상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 지느러미를 바짝 말려버린 북어(P.10)와 물결치는 파도를 잠재우고 열망도 희망도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마트에서 잡은 고등어(P.22)는 자맥질을 멈춘 해녀(p.20)처럼 휘어진 뼈로 둥글게 몸을 마는 늙은 포구의 여자(p26)와 닮아있다. 등이 푸르러 자유로웠던, 생명력이 파도처럼 출렁이던 어제의 시간들은 소금으로 염장되고 모래톱에 박혀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는 애잔함과 안타까움들을 담고있다. 

이제는 바다가 눈으로 만져지지 않고 귀 안에서만 출렁이는 기억의 풍경이 되었음을 시인을 말하고자 했음일까?

 

기억의 시간을 지나 시인이 살고 있는 도시로 들어서면 오라버니가 타고 다니는 대형 트럭에는 불가능한 희망 덩어리가 (P.49)

단단한 삶의 꿈으로 흔들리고 있고  해진 꿈을 옷걸이에 걸며 실낱같은 희망을 손질하는 수선집 여자(P.60)가 살고있다.

도시의 팍팍한 삶이 건너온 기억의 시간만큼이나 만만치 않지만 어느곳에나 부푼 젖통을 흔들며  잠자리 날개 팔랑이듯 팔 저으며 오시는(p.68)꽃으로 피는 어머니가 계시고 시멘트 깊숙이 뼈를 세워 (P.110)사랑 할 대상들을 찾는다.

몸의 물기를 말리고 뼈마저 닳게하는 고된 삶이었지만 소통의 징검다리를 통해 말(語)의 젖을 물리고 싶은(P.89) 시인의

목소리를 듣는다.

 

화려하거나 떠들썩하지 않은 깊은 시선.

뒷전으로 물러나 앉은 쓸쓸한 것들에 대한 착한 연민.

우리가 기억하고 보듬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시인은 바다를 갇우어 출렁대는 우목횟집으로 초대해

일러주고 있다.

 

기억의 바다로 걷다보면,

수족관에 갇혔던 파도는 어느새 마음에서 출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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