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깥에서 번져 오는 슬픔의 냄새,
용정의 허무 할 정도로 짧은 봄,
인간을 성장하게 만드는 모순과 투쟁,
그리고,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랑이라는 것.
먹물을 깊게 빨아 들여 오래 바래지 않을 질 좋은 화선지에 쓰인, 굵은 고딕의 글씨를 마주하는 느낌의 책이다.
용정 만철의 측량기사 김해연의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암울한 시대 민족의 상처로 남은 민생단이라는 낯선 사건속으로 노래가 깊어지는 걸 읽으며
이건 시대적 상황에 고뇌하는 젊은 이념에 대한 책이구나..했다.
안세훈, 박도만, 최도식, 이정희.. 천국을 보고자 했으나 결국에는 제가끔 지옥을 보게 될,
누구도, 심지어는 그들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네 명의 젊은 혁명가들이 맞는 잔인한 세계에
온도가 다른 사랑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 김해연의 상실된 청춘의 노래를 듣게 되리라 여겼다.
이상적인 소비에트국가 건설을 위해 중국 공산화를 먼저 외쳐야 했던 국제주의자와
조선인만의 공산국가을 염원했던 민족 공산주의자들의 어둡고 가슴아픈 과거에 대해,
누가 옳았다고도, 누가 아니라고도 말하기 힘든 민족의 암울한 역사에 대해 이제 불편한 진실을 말해보자고
부추키려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1932년 용정의 9월 이정희의 편지에서 시작돼 1932년 9월 이정희의 편지로 끝나는 책을 덮으며,
이건, 색깔이 다른 옷을 벗고 나면 똑같은 체온을 가진 몸이 있는 젊은 사랑노래가 아닌가 싶어졌다.
간도땅에서 이념도 돈도 민족도 아닌 사랑을 위해 죽을 수있는 사람의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없는 무기력한 자신의 손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해연과
해연의 그런 손을 감싸쥐는 여옥의 사랑은 이념의 무거운 옷을 벗기고 그 몸에 살을 부비게 하는 이유로.
또,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 남아 있는 끝 닿을 곳없이 아련한 이정희의 편지속 아픔보다는
해지기 전에 어서 오라는 목적지를 짚어주는 어랑촌 여옥의 붉은 마음에 왈칵 눈물을 쏟아지는 이유로.
땅에서 측량해서 그리는 지도와 하늘에서 사진으로 찍어 판독하는 두개의 지도 사이에서
애써 하나의 지도만을 바라봤던 김해연의 고통은, 어두운 밤의 노래를 사랑의 세레나데로 부르고 싶었던 이유라 믿고 싶다.
낮과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이쪽 아니면 저쪽에서 상대를 견제해야했던 어쩔수 없는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조선인 통역과 조선어로 대화하면 중국인이 그 내용을 의심하고, 중국인과 일본어로 대화하면 조선인이 의심하던
누구도 믿을 수없던 각자 지녔던 의심과 도무지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의 시대적 배경이 잘 이어져 있다.
어둠을 응시하면서 어둠을 믿을 수 없는 눈동자와 말이 되어 나오질 않는 상처에 대해 실어증을 택하게 되는 개인적인 아픔까지.
낯설기만한 간도에서 벌어진 우리 민족의 참혹한 역사적 사건을 학술적 접근에서 이해를 도운 책 뒤의 해제는
소설의 영역을 이해하고 역사적 사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게해 준 고마운 첨부였다.
다만, 독자의 몫으로 돌아와야할 작가가 밝히지 않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까지 명시해 준것은
눈감았으면 더 좋았을 싶은, 화사첨족은 아니었나...싶은 아쉬움이다.
낯설고도 충격적인 민생단사건, 북한 김일성과도 맥락이 닿아있는 그 깊고 긴 뿌리를 파내고 묻은 흙들을 털어보이는
작업에서 작가의 고충 또한 만만찮았음을 후기에서 읽는다.
작가의 고뇌의 흔적을 내내 흡족하고 기쁘게 즐길수 있어 나는 감사할 따름이고.^^
무거운 질량의 소재임에도 덜고 쌓아야 할 곳의 적절한 균형잡힌 배치로 포로록, 포로록.. 책장은 바람을 탄 듯
금방 마지막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