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든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라는 류의 말.

자기 변명일 수도 있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관조의 시선일 수도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감히 생각컨데.. 

정말 입장을 바꿔서 온전히 상대방이 되어 생각하거나,

겪어 보지 않은 일이니 기꺼이 입 다물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기란 하늘과 땅을 뒤집어 놓고 생각하기만큼 어렵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일은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느껴 볼 수없는 일 일 뿐이다.

미세한 간극에서 갈라지는 천갈래, 만갈래 감정의 파생들을 더듬어 보듬기는 불가능하다고 ..

나는, 여기니  말이다.

 

도피행의 타에코를 만나고 나서 혼자서 비분강개하는 나를 본다.

 

여자가 아니고서는,

더우기 그 나이의 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이해 할 수없는

몸통만 유지되고 속은 비어가는 마른 대궁같아지는 삶을 온전히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기꺼이 입도 다물수 없다는 말이다. 

 

자궁적출 수술과 남편에게서 '이제 여자로서는 끝났다'는 말을 듣게 되고,

감정과 행동의 모든 표현을 '역시 갱년기라니까'로 정리해 버리는 가족들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나만의 섬을  만들어가는 중년의 타에코에게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믿고 의지하던 개 (골든 레트리버종) 포포가 옆집아이이 괴롭힘을 참고 견디다 순간의 위험을 감지하고

그자리에서 아이를 물어 뜯어 죽이는 일이 생긴것이다.

사건이 이슈화 되면서 더 이상 포포는 살려둬서는 안되는 개가 되고,

타에코는 진정 자신을 믿고 따라주었던 충실한 동반자를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야음을 틈 탄  도피는 힘든 중에서도 새로운 사건들에 휘말려 점점 포포의 입지를 좁게 만들지만,

타에코와 포포는 살기위해 더 깊이 도피한다.

 

살기위해 선택한 은둔의 도피행은 포포에게 '습성의 변화'를 가져오고,

타에코도 '내이름은 부인이 아니예요' 라고 스스로에 대한 주체성을 되돌려 받는다.

왜 나이든 여자는 예사로운 감정의 표출에도 망설여야하고, 끓어 오르는 분노도 휴식 시켜야하는지에 대해

속상하고 실망스러웠지만 타에코의 도피행의 끝에 선택한 삶에 대해선 박수를 보냈다.

누구 한 명쯤, 늙어가는 여자의 눈 속에서 깊어지는 연륜과 젊을 시절 불꽃같은 열정만으로는 알아낼 수없는

지나온자의 지혜를  알아 줬어도 좋으련만...

 

다시 생각해보면,

타에코가 데리고 도피한 것은 단순한 개가 아니었다.

가족들과 둘러싸여 있을 때 느낀 살벌한 고독을 이겨 낼 수있게 도와준,

삶을 의지하고 안고 버틸 수있는 마음의 기둥이었다.

 

입장 바꿀 일도아니고, 내가 겪은일도 아니어서  두루뭉술한 감정으로 타에코를 이해한다는 말은

걸례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차마 못하겠다.

단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한 발 물러선 비겁한 사람이 되어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 밖에.

 

타에코의 도피행은 그녀의 도피행을 우리로 지켜보게 함으로,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며 사는 삶을

넌지시 가르쳐준다. 감사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