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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삶을 연결해보려는 의지,
힘겹지만 몸을 곧추세워 걷어보리라는 다짐,
지금은 아닐지라도 혹, 만나게 될지모르는 희망으로의 한 걸음..
처음 만나는 박경화( 미인이기도 하셔라..^^;;)의 단편들은 표지에 그려진 여인의 눈빛 만큼이나
끝간데 없이 아득하다.
상처없는 영혼들이 어딨을까 마는,아직도 상처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가을몽정, 어항, 딤섬, 스무개의 담배,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태엽감는 여자,현실은 비스킷, 어느 삭제되지 않은 비망록..
수록된 8편의 단편들은 아.직.은 젊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화가나는 상황에서 콸콸 쏟아지는 웃음을 참비 못하는 어이없는 버릇처럼
노신사의 사랑고백을 어이없어하면서도 정해진 약혼을 연기하고 떠난 사람을 막연히 그리워하는 <가을 몽정>,
예민하고 치료가 필요한 남편과 가까워지기 힘든 이웃, 깨진 어항이 가져다 주는 낙태의 조짐 <어항>,
상처가 되는 줄 알면서도 껴안을 수 밖에 없는 고양이와 엄마, 그리고 남자 <딤섬>,
자신이 처해 있는 나쁜 상황들에 과일향기와 담배연기 만큼의 위로라도 찾고 싶은 남자와 여자 <스무개의 담배>,
오리 피, 기실 그것이 아무것 아니라해도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기둥이라 여기고 싶은 아버지의 슬픈 위로 <지금 그대로의 당신들>,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말고 간절히 원하지 말아야하는 삶에서 벗어나 허기를 채우고 싶던 여자의 허망한 로맨스 뒤에 오는
미래까지 저당 잡히는 치명적이고 잔인한 형벌<태엽감는 여자>,
유일하게 남자의목소리로 말하는 받아내야 하는 삼천만원의 생활비와 지켜내야 할 아이의 목숨사이의 이중주 <현실은 비스킷>,
견디기 힘들어 도망쳐 나왔던 집보다 더 나을 것 없는 스무살 아가씨 앞에 놓인 처참하고 슬프기만 한 현실
<어느 삭제 되지 않은 비망록>..
누구의 삶 하나 녹록해 보이질 않는다.
상처의 자국들로 성한 곳 하나 없어 보인다.
그들의 얼굴은 표지에 그려진 고양이를 껴 안고 있는 여자의 얼굴과 닮아 있다.
껴안을 수록 상처를 입게 되리란 걸 알지만, 껴안지 않으면 채워질 수없는 따뜻함의 갈급을
위험하게, 때론 위태하게 부여잡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걸음걸이와 다시 태엽을 감는 몸짓에서 나는 다행이라는 안도의 날숨과 위로의 토닥임을 보내고 싶어진다.
낯설면서도 새로이 만나는 목소리에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심취해 가는 흡인력을 느꼈지만,
독자로 아쉬운 점은 너무 같은 색깔들로 그려진 그림들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상처와 비슷한 경험..
글의 깊이나 공명이 적지 않음에도 뭔가 한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을 계속 먹는 느낌어서 혀를 깨우고 입을 헹굴 어떤 다른 맛,
슬쩍 뿌려줌으로 입안을 화~하게 만드는 향신료같은 작품이 하나쯤 있었더라면 싶었다.
보색의 대비같은 효과가 있었더라면 이 글들은 더 깊은 심연으로 우리를 끌고 가지 않았을까..했었다.
변덕스럽고 한가지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얕고 천박한 내 취향을 탓해보면서도
작가가 쓴 상반되는 빛갈의 다채로운 맛을 음미할 기회가 곧 오기를 조심스레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