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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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서든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작을 만들어낸다는 일은 , 그 일로 인하여 초래될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피곤함 까지 염두에 둬야함은 두 말 할것도 없다.

작가 장정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 본 일은 없지만, 그가 펴낸 소설의 대부분은 (짧은 기간이든, 긴 기간이든) 화제에 오르내리며 조명을 받았고 호불호가 나뉘었으며, 예술이다 외설이다의 설전이'예외'없이 들리곤 했다. 몇 권 읽진 않았지만, 선정성이 짙은 그의 소설들은 읽는 재미만큼은 쏠쏠했다고 고백한다. 세상을 향한 비틀린 시선과 본능에 충실한 성애의 묘사, 불편함을 눈감지 않는 적나라한 표현들이 눈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가의 성향이 다 다르니 그의 성향이 그런가 보다..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권!

작가가 10년만에 내 놓은 우익청년 탄생기를 그린 '구월의 이틀'이 있다.

'금'과 '은' 두 청년을 내세워 이데올로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어쩌면 진부한 이야기다.

장정일이 왜 이런 진부한 이데올로기를 찾는 이야기에 촛점을 맞췄는지도 의아했지만, 작정하고 편을 가른 듯한 이분법적인 이야기 전개라니! 앞서 말한 비록 깊이 알지는 못하나 익히 들어온 그 장정일 맞는가?를  몇 번이나 생각해야 했다.

 

좌파는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우익이나  우파는 다 수구꼴통 입 닥치고 듣기나 하라는 좌익의 서슬에 어느편에도 손을 들어 줄 수 없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한치의 양보도 없는 그들의 기득권 싸움에 질렸기때문이라 여긴다.

어느 책 제목처럼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대답이 궁색한 나같은 사람들이 이런 시대에 회색분자로 살아가기도 쉬운일이 아님을 느낀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부산태생 은과 광주태생 금이 서울로 진학해 서로 다름과 같음을 확인하며 우정(?)을 쌓다가 시인을 꿈꾸던 은은 정치적 거물을 꿈꾸는 우파 청년으로, 시민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본받아 좌파 성향이 강하던 금은 문학을 택해 낙향한다는 이야기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뉴스를 보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벌어진 빨갱이 실랑이, 실랑이를 하던 젊은 부부의 죽음, 가각의 가정환경의 변화로 인한 가족들의 상경, 금이 빠진 연상의 여인과의 사랑, 은이 꿈꾸는 환영의 소녀에 대한 환상, 거북선생과의 만남을 통한 우익가담, 금과 은의 동성애....

벌써 이념의 향방을 암시하는 지리적 장소부터 편가르기라는 암시를 주는데 이름조차 금과 은이라니!!

작정을 했구나..싶어 장정일 식 이념 정면돌파가 어떻게 펼쳐질지 사뭇, 궁금했었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내는 멋있는 우익 청년의 탄생기를 나는 어디에서도 찾지못했다.

거북선생이 얘기하는 말 많은 빨갱이에 대항하는 할말없는 우파의 이념에 구역질이 났고, 새로운 도전이나 처절한 고뇌로 선택한 이념이 아닌 구태의연한 말에 휘둘리고 겉 멋에 혹해 탄생한 얼치기 청년을 봤을 뿐이다.

힘의 논리에 승복하고 계산에 의해 결정하고 빠르게 배반할 준비를 갖춘 영욕과 영달을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여인도 정치적 도구로 이용할 준비가 된 진절머리 나는 또 한명의 어린 정치인을 그리려 했음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그리고,(아마도 어떤 작가의 깊은 뜻이 숨어 있으리라 여겨지는)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이 갖는 개연성의 막연함은 이야기의 맥을 자주 흐렸고, 작중 화자들의 입을 통해 뭘 그리 가르치려드는지 딱, 짜증났다. 우익청년의 탄생을 극적으로 그리기 위한 반증의 사람과 사건이었다면 조연의 인물들이 제각기 튈려고 애를 쓰는 통에 우익청년은 찌그러져 있어야 했고, 우익청년을 돋보이기 위해 설치한 사건들은 비루하거나 비릿해 입을 자주 헹구어야 했다. 퉷,퉷...

 

우리가 바라는 멋있는 우익청년이 과거의 답습에서 벗어나 현실을 통한 미래를 투시하고, 기득권에 편승하지 않더라도 독야청청 푸른 향기를 머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이어서는 왜 안되는지..신념과 의지만으로 싸우는 청년을 꿈꾸기엔 그 바닥이 정화되어 있지 않다고 역설하는 것인지..

 

하지만, 장정일의 이야기는 언제나 술술 읽히는 재미가 있다는 점은 높이 산다. 입맛이야 비리든 달든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책이 가장 나쁜 책이라 여기는 내 관점에선.

 

빙하시대를 불태워버릴 열정으로 살아야하는 젊은 날의 이틀.

그 이틀을 열정적으로 살면 나머지 삼백 예순날 하냥 섭섭해 울지 않을 수 있을런지..

책을 읽는 이틀 동안, 문제작을 던져 준 작가의 의도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제발 더 이상 우익 청년의 빛나는(?) 장년기는 쓰지말기를 혼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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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빈손 사라진 훈민정음을 찾아라 신나는 노빈손 한국사 시리즈 4
한정영 지음, 이우일 그림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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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아이들이 보는 책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격세지감을 느끼곤 한다.

화려해진 일러스트며 부연 설명, 각종 참고가 되는 짜투리 지식과 재미와 학습을 함께 아우르는

책 내용까지!

이렇게 좋은, 잘 만들어져 나오는 책이 많은데 왜? 책 읽기를 싫어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이런 수준의 비슷한 책이 지천인지라 다 똑같은 책으로 보이긴하겠지만.ㅠ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책을 강제로 사주기도 하고.. 나는 아닌데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사주기도 했지만, 노빈손 시리즈만큼은 아이와 내가 (드물게^^) 의견일치를 보이며 즐겨 읽는 책 중의 하나다.

아이가 선호하는 재미, 부모가 바라는 학습효과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어 두말없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선택하게 되는 책이다.

 

노빈손 한국사 시리즈 4탄!!

사라진 훈민정음을 찾아 역사속으로 떠나는 노빈손의 좌충우돌(언제나 그러했듯이^^) 탐험기다.

특히, 이번엔 노빈손 10주년 기념 원고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문구를 보고 그 내용이 더 궁금했었다.

여태까지의 노빈손과 달라진게 있을지, 공모전에서 발탁(?)된 노빈손이니 어떤 새로운 신공 하나쯤 더 가지게

했을지도 모르지..하는 기대로 책을 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전편의 노빈손과 차별없이 똑 같은 노빈손이라는데 대해 약간 실망을 쵸큼...--;;)

역시, 노빈손은 노빈손일때 노빈손 시리즈가 빛을 발하고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는것에 동의를 하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인사동의 한 책방에서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갈아입고 난 후, 언문 금지를 공표한 연산조(1504년)의 역사로 여행을 떠난다.

하필이면 언문을 금지하고 탄압하고 있는 시대에 한글이 적힌 옷을 입고 나타난 노빈손이라니!!^^;;

이때부터 좌충우돌 노빈손을 도우는 선비 윤휘와 소녀무사 매향과 함께 암호문을 풀고 훈민정음이 숨겨진 곳을 찾기위해

훈민정음을 없애려는 '대명회'와 싸워나간다.

 

세종대왕의 둘째딸 '정의공주'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하고, 정의 공주의 넷째아들 '안빈세'도 실제 인물임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아, 죽을 때 까지 배워야한다는 걸 또 한번 깨달았다.^^)

다만, 안빈세는 성종때 사람이지 연산군때 사람이 아니었지만 책의 재미를 위해 까메오(?)로 출연시켰음을 밝혔는데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상식이 부족해서인지 정의공주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거니와 한글창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걸 알고 정의공주를 다시 보게되었다. (공주라고 말그대로 공주처럼만 살았던 건

아니었구나..하는 존경심과 함께!!^^)

 

익히 보아 온 책의 옆 면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시대상이나 상식이되는 용어의 해설을 친절히 담아 주는 것은

언제나 감사한 보너스고, 인터뷰나 인터넷 댓글,기사내용을 모방한 조선 아고라, 조선 서당, 조선 뉴스, 조선 강의등도

책 중간 중간을 알차고 재밌게 읽으면서도 생각의 방향을 전환 시킬 수있는 좋은 지면 할애였다.

 

P.89 페이지 훈민정음 해례본을 읊고 있는 노빈손의 그림이 있는데, 역시 만화에 먼저 눈길이 가는 아이는

책을 넘기다 말고 "이거 우리 나라말 맞냐?"고 물었다. 지난날을 떠올리며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으며 해석해 주니

나를 보는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크~ 엄마도 한 때 공부 좀 한단 소리 들었다구!!^^)

 

세종로에 세종대왕 동상이 위풍도 당당하게 놓인 이 싯점에 읽는 노빈손 훈민정음 이야기는 한글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아이들이 한글에 대한 소중함과 깊이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하는..ㅠㅠ) 시리즈물에 대한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노빈손 시리즈는 언제나

기다려지고 볼 때마다 기대를 져 버리리않는 책이다.

어느새, 나도 아이도 노빈손의 팬이자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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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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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침없는 하이킥이라니!!

레미본야스키는 아마 전생에 공생원 마나님이었을지도 몰라.. 껄껄 웃으며 책을 덮었다.

 

신명난다는 말.

어깨나 몸 일부가 저절로 들썩인다는 동작의 형태로 기억하던 말이 글을 읽는 중에 느껴지는 리듬의 형태로도 그려진다는 걸 알았다.

책의 신명은 주인공인 우리 공생원 마나님에서 기인하긴 하지만 마나님 옆자리에 앉은 대책없이 찌질하고 소심하기 짝이없는 공생원의

추임새도 한 몫한다. 덧붙여 마나님 주변에 포진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나름의 성깔들은 제각각의 나발로 고저를 맞추고,

히야~싶은 (지금은 가고 없는 할매들이나 주로 썼을 법한)입에 감기는 비유와 당길 때와 풀어 줄 때를 아는 문장의 감칠맛! 

'돌풍이 괴성을 지르며 골목을 쏘다녔다'는 표현, '해학이 질펀히 눌러앉아 책장을 마구 넘겼다'로 바꾸어 본다.^^

 

바느질이나 자수보다 울타리 수선이나 텃밭 가꾸는 데 혁혁한 능력이 있는 마나님과 이렇다 할 집안도 돈도 직업도 없는 마흔다섯 한량

공생원 사이의 스무세해 만에 한 임신이 발단이다.

스물세해 동안 아이가 없었다면 시대상으로 봤을 땐, 칠거지악으로 분류되어 시앗을 봐도 열둘은 봤거나, 당장 고 백 홈!을 하달 받아도 깨깽했었어야 했겠지만, 기골 장대하고 늠름하기까지한 마나님께는 그 세월은 임신으로 가기 위한 인내의 세월이었지 주눅의 시간은

아니었듯 싶다.

마나님이 홀몸이 아님을 아는 순간부터 공생원 이 양반 즉시 삼신할미께 감사의 꽃다발을 던지고 열 달 내내 버선발이 닳도록 귀하신

몸을 읊어도 쉬원찮을 판인데 뜻밖에도 반응은 냉~하다.

이유인 즉,

아이 없음이 공생원의 문제라고 의원의 진단이 있었던 바, 임신하지 못하는 아내를 내칠 수 없었던 것도, 임신한 아내를 기꺼워 할 수

없었던 것도 모두 이때문이라!

임신한 아내의 배를 두두리는 대신 '끄응~' 신음소리와 함께 조용하고 옹졸하게  제 살 파먹기식 마나님 주변 남정네들에 대한 추리가

시작되는데...

 

쓰는 내내 노는 마음이었다는 작가의 마음은 읽는 독자에게로 그대로 옮아와 생각하기에 따라선 무척 아슬아슬한 상황임에도

가슴을 졸여가며 읽어야 하는 부분을 찾기 힘들다.

질펀하게 앉아 즐기는 마당놀이처럼 이야기가 주는 해학과 리듬에 놀다보면 시간의 흐름따라 판은 정리가 되어가고 인물들은 제각각의

표정과 몸짓으로 작품과 어울리는 위치에 서 있다. 우린 원래 각개로 활동하던 콤비네이션이었어! 짠~ 브이를 그리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들이라니!!^^

상식으로 알아야 하거나 알아두면 좋은 시대적 용어와 풍경들이 제법 등장해 꽁생원의 잔혹한(?)추리만 쫒던 나같은 독자는

'제발 전문 용어일랑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사전이나 참고서 쪽으로 돌려주시고'하는 볼멘소리가 나와야 정상인데, 읽어

가면서도 눈에 걸려 행간이 덜컥거리지 않음은 작가의 역량이란 말 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할머니들 고쟁이 가랑이에서 찾아 낸 듯한 넘치지 않는 비유와 묘사의 문장에 밑줄 그을 연필을 자주 찾아야 했다는게 혹에 티라면

흠이랄까..^^;;

 

개인적 취향이지만, N.G 장면이나 뒷 얘기를 모아 보여주는 성룡영화같은 엔딩을 무척 좋아한다.

거침없는 하이킥에서 끝났어도 좋았으련만,끝내 몰라도 상관없을 이야기의 할애.

개인적 성향까지 고려해주신 작가의 친절에(논란의 여지가 있는 병역특혜와도 같은^^;;) 가산점을 투하한다.^^

별 반 점 추가!!

 

칠순이 가까운 엄마에게 읽어보시라 건네는 책은 많지 않다.

경박하고 날려서 싫다, 어둡고 비려서 싫다, 케케묵고 새로울게 없더라..유달리 책 까탈이 심한 엄마께 언제까지나 셰익스피어나

읽으시라고 할 수도 없고..

엄마에게 사드리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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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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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스스로 이 책은 매 순간 명멸하던 감상의 향연이라고 적는다.

饗宴 이자 香煙.

 

한창훈의 글에선 바다냄새가 배어있다고 한다.

바닷냄새가 배어 있는바다사람...어쨌든, 그가 바닷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그가 쓴 글이나 쓰는 말, 바다를 표현하는 문장들에서 아, 정말 바다사람 맞구나..를 느낀다.

내 할아버지의 손을 보고 부연의 설명 한마디 없이도 '농부가 맞구나'를 아는것 처럼.

 

나는 어릴적 바닷가에서 살았고(정확히는 섬이다.) 바다를 도시의 아파트 풍경만큼이나 질리도록 봐왔다.

하지만, 누군가 바다냄새~하고 바다앞에서 탄성을 지르며 좋아할때면 일부러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내가 기억하는 바다냄새와 뭔가 비율이 맞지 않은 까닭이다.

동네마다 특유의 바다향이 있을 수 도 있겠으나, 내가 기억하는 바다냄새는 비릿함과 짠 냄새가 고루 분포된

삶의 냄새였다.

그 속에서 좌절하고 그속에서 일어설 힘을 찾는 삶의 원천이 비릿하게 파닥이는 냄새.

그 비릿함을 나는 맡을 수없는데 모두 바다냄새야~하며 좋아할때면 처음 바다 나들이를 나 온

산골 아이처럼 기억에 없는 새로운 향에 노출된 양 어리둥절해 한다.

바다냄새란 이런 걸 말하는 거구나...

어쩐지 남루한 옛 기억은 다 지워야 따돌리지 않는 동화속 입양아이처럼 슬쩍 슬퍼지기도 한다.

 

각설하고..

작가가 말했듯 이 책이 명멸의 잔치이고 향기이듯이 그를 한 뼘더 가까이 느끼게 해 주기엔 충분했다.

어릴적 태어난 섬의 기억과 젊은 날 떠나고 또 돌아오길 반복한 지난한 삶이 묻어 있는 바다,

뭍에서 만난 사람들, 작품의 배경이 특별한 사연들이 있는 아무렇지 않은 이웃들, 아이와 아내...

소설에서 그를 바다사람이라는 걸 느꼈다면, 산문으로 인해 진짜 바다냄새가 배어있음을 확인시켰다.

 

'당신이 고향에 두고 온 것들 중에 무엇이 가장 그리운가.'

울란바토르에서 유학 온 여학생이 가족이나 친구, 연인도 아닌 사막에서 불어오는 독한 바람, 극도로

추웠던 바람, 너무너무 지겨웠던 바람(P.100)이 제일 그리웠다고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창훈의 글

속엔 거친 파도와 비릿한 바다냄새를 그리워하는 그 냄새를 떠날 수없는 삶들이 조탁되지 않고

진정 바다와 함께 호흡한 사람들의 날 것인 삶을 생생히 느께게 하는 힘이있다.

 

더러 눈에 익은 작가들과의 에피소드는 책읽는 즐거움을 더 했고, 나와는 너무나 먼 사람처럼 느껴지던

박영근 시인이나 너무 큰 이름 이문구 작가, 지금도 쟁쟁한 공선옥님, 유용주 시인 같은 분들의

인간적인 냄새를 대신 전해주어 내가 왜 더 친밀감있게 느껴지는지 의아해했었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어부를 본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바다가 그리움이나 동경의 대상이 아닌 죽고 살아가는 시작이자 곧 끝이기도 한 터전임을 방이 이모,

방이 이모부, 방헌 외숙,외할머니..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그러나 절절한 이야기를 통해

대신 말해주고 있다.

 

세상은 나쁜 것과 나쁘지 않은 것, 두가지만 있었다. 나쁘지만 않으면 우리는 그런을 좋다, 라고 말했다.(P.219)

 

나쁘지만 않으면 좋은 것.

우직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인한 무모한 희생들을 흔하게 보이면서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은 삶들.

이게 한창훈이 가지고 있는 글의 힘인지, 바닷냄새를 아는 사람만이 쓸 수있는 글의 힘인지 잘 모르겠다.

단지,

어릴적 맡고 자랐던 - 비릿하고 짠 냄새가 적정 비율로 섞인-  바다 냄새를 폐속 깊이 들여마실 수 있게

가장 근사치의 값으로 그릴수 있는 이는 한창훈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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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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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쓸 수있는 얘기를 나만의 시선으로 옮겨와  모두의 공감을 끌어내기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그 방면의 매니아를

형성해 내는 것보다 성숙하고 깊은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속에서 가시적인 성과없이 어제같은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지난한 삶.

담장에 햇살 들 듯 지난한 삶의 틈새로 짧게 비치는 작은 행복에 기뻐하고, 잊을만하면 뒤통수를 치는 이름도 제각각인 아픔들속에 배어있는 감정의 갈래들을 잘 벼려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은 위로를 주고 인생의 미더움을 느끼게 하는 글...

요컨데,

이런 글을 가장 맛갈나게 잘 쓰는 이가 오정희작가라 나는 생각한다.

 

사춘기적 나는 마흔까지 사는 건 몹.시. 부끄러운 (사실은 치욕적이라고..ㅠㅠ)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도전할 과제는 다 잃고 꿈이 거세(?)된 펑퍼짐한 아줌마로 살아가는 듯한 모습들에서 나 역시 저 대열에 합류에 똑같이

살아 가리라 여기니 마흔이 되도록 산다는 게 소름끼쳤다.

스무살만 넘기면 아름답게 죽어야지..

모두가 아름답게 기억할 때 꽃 지듯 홀홀 떠나야지..

몽매하고 날리는 어린 생각으로 밤마다 시를 썼었다.

마흔 즈음의 삶이 인생의 깊은 향을 흡입하기에 얼마나 적합한 시간인 줄 꿈에도 모른 채.

 

오정희 작가의 글은 옹기 그릇같다.

질박하고 아무렇지 않다.

별스러울것도 없고 눈에 반짝 띄거나 생경한 얘기로 귀를 세우게 하지도 않는다.

어느 동네 반상회에 나가도 들을 수있는 얘기, 누구나 한 번쯤은 삶의 모퉁이를 돌다보면 만나게 되는 가슴이 쓸어지는

얘기들로 기쁨과 슬픔의 비례치를 균등하게 조율해 내는 끄덕거림이 있다.

당사자가 아니고는 들이 쉴 수없는 세세한 숨결과 저 밑바닥에 가라 앉아 있는 앙금의 농도까지 가늠하는 투과의 시선.

얘기를 품어 숨을 쉬게 하고 맛의 최정점으로 숙성시킨 후, 그 그릇이 아니면 그 맛을 낼 수없는 옹기의 매력처럼

구질구질해 벗어나고싶던 삶에도 진득한 향이 배고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발원지를 알 수없는 따스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책에 수록된 25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소설이라기 보다 꽁트에 가깝게 느껴진다.

아침, 저녁으로 마주치는 일상들을 의외의 결말로 이끌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얘기들은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삶의 이면들을 잘 보여준다.

 

다시 만난 옛사랑이 꺼내는 보험서류, 자원봉사로 하는 미아 안내방송이 내 아이인줄도 모르는 이웃집 아줌마, 가슴을 울리던

소쩍새 소리는 알고보니 쓰레기차 소리였고 호로록 핀 목련에 마음을 뺏기다 보면 밥은 타고 식구들의 볼멘소리로 마음도 탄다.

 

맥아더 기도문에서 인용한 것처럼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P.203)'는 글들은

새겨 읽을 수록, 어쩌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인생에서  오욕칠정의 덫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P.119) 조금씩 알아가는

마흔 즈음의 나이에 읽으면 흡사 오래 알아 온 친구와 뒷탈 걱정않고 주변의 허물을 얘기하듯 후련해진다.

 

그리고, 

마흔 즈음의 아줌마도 사춘기 소녀처럼 피는 꽃에 앓기도 하고, 새로운 일들을 갈망하며, 새로운 시작을 끊임없이 꿈꾸며 산다는 걸 이제는 안다.

맑은 정신도 기력도 다 도둑맞은 마냥 퍼져있는 삶으로 보일진 모르지만, 마흔의 가슴에도 꽃은 피고 새가 운다는 걸 작가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대필해 준 듯하다.

 

내 존재의 증명이 옅어져 사는게 허무하고 무력감을 느낄 때, 그런 생각으로 매번 마음이 허물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또 일어서야 할 수많은 제목들을 찾아내는 더 이상 푸르지 않으나 속으로 여문 사람들을 향한 격려와 위로의 책.

이쁠것도 없는 표지의 여인조차 괜히 마음에 들고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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