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우 - 비밀을 삼킨 여인
피오나 바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4년 전 유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던 글렌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아내 진은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녀 역시 희생자일까?

수많은 언론사의 제의를 뿌리치며 침묵을 지키던 진이

어느 날 베테랑 여기자 케이트의 독점 인터뷰에 응하면서

베일에 싸여 있던 남편과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출판사 소개글 인용)

 

● ● ●

 

최근 들어 가족에게 닥친 비극 또는 부부간의 심연처럼 깊은 갈등을 다룬 작품들은

예외 없이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나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를 언급하며

독자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곤 합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스티븐 킹은 “‘나를 찾아줘’와 ‘걸 온 더 트레인’을 좋아한다면

이 책도 읽고 싶을 것이다.”라는 추천사를 썼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나를 찾아줘’를 빗대어 홍보한 작품 가운데

100% 공감할 수 있었던 작품은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홍보글 때문에 ‘나를 찾아줘’의 판매고만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위도우, 비밀을 삼킨 여인’은 ‘나를 찾아줘’를 홍보 포인트로 삼은 작품 가운데

그래도 만족도가 꽤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반전이나 충격은 그리 센 작품은 아닙니다.

진실 자체보다 그것이 드러나는 과정, 즉 심리적인 묘사에 주력한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마지막 장까지 매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구성의 힘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우선, 네 명의 화자가 등장합니다.

유괴 용의자 글렌의 아내 진, 담당 형사 밥 스파크스, 베테랑 여기자 케이트 워터스,

그리고 유괴된 3살 소녀의 엄마 던이 그들입니다.

이들의 시선을 통해 독자는 동일한 사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네 화자의 치열한 ‘공격과 수비’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유괴사건의 진상을

점점 더 모호하고 복잡하게 만들어갑니다.

 

이외에도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교묘히 교차시킴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사건이 일어났던 2006년을 배경으로는 초동 수사과정과 언론의 집요한 취재는 물론

용의자로 지목된 글렌과 아내 진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어 현재 시점인 2009~2010년을 배경으로는 거의 미제에 그칠 뻔 했던 사건이

새로운 단서와 함께 재점화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렇듯 네 명의 화자, 과거와 현재의 교차 편집은

단순히 복잡하게 꼬아놓았다는 것 이상의 힘을 지니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기자와 경찰의 역할은 전형적인 모습을 보일 뿐이지만

딸을 유괴당한 던과 용의자의 아내로 전락한 진의 심리나 행동의 변화는

이런 구성의 힘 덕분에 훨씬 더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그려집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인 진의 캐릭터나 그녀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실제로 ‘나를 찾아줘’나 ‘걸 온 더 트레인’을 연상시킵니다.

 

부제인 ‘비밀을 삼킨 여인’은 말할 것도 없고,

‘훌륭한 아내, 그게 이제 내 역할이다. 남편 곁을 지키는 훌륭한 아내’라는 뒷 표지 카피는

언뜻 진을 남편의 공범으로 예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거꾸로 ‘혹시 그녀는 희생자인가?’라고 의심케 만드는 카피이기도 합니다.

네 명의 화자, 과거와 현재의 교차라는 구성의 힘은

마지막 장까지 그녀를 가해자와 희생자 중 어느 쪽으로 분류해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굳이 이 작품의 아쉬운 점을 꼽자면 분량의 문제입니다.

워낙 어마어마한 분량의 작품이 쏟아지는 요즘이라

겨우(?) 444페이지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중간중간 동어반복으로 보이는 대목들이 등장하면서 좀 느슨해진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조금만 정리됐더라면 훨씬 더 몰입도도 높아졌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올해의 기자상’까지 받았던 기자 출신 작가의 데뷔작이 이 정도라면

이후에도 사실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픽션을 자아내리라 기대해봅니다.

피오나 바턴이라는 이름이 과연 길리언 플린을 넘어설지 궁금해지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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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산 ㅣ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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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스릴러 작가 디온 메이어와는 지난 해 봄 ‘오리온’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극심한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경찰 출신의 초보 사립탐정 판 헤이르던을 앞세운 ‘오리온’이

남아공의 비극적인 역사와 판 헤이르던의 개인사를 잘 조합한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였다면,

‘악마의 산’은 아동 상대 범죄와 전통 무기를 이용한 연쇄살인이라는 잔혹한 사건과 함께

자의반, 타의반으로 심신이 붕괴된 인물들의 심리를 좀더 강조한 묵직한 작품입니다.

 

‘악마의 산’은 크게 세 인물의 이야기로 정리됩니다.

우선,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가족에게 내쫓긴 후 ‘술독에 빠진 자신과의 전쟁’을 벌이며

아동성폭행범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마 체포에 나선 중년 경찰 베니 그리설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오리온’에서 주인공을 돕는 역할로 특별출연(?)한 뒤

후속작인 ‘프로테우스’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코사족 출신의 흑인 토벨라 음파이펠리는

좀도둑들에게 (양)아들을 잃은 뒤 연쇄살인마로 변신하여 피의 향연을 벌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압적인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던 크리스틴은

불장난 같은 사랑의 결과로 얻은 딸과의 생계를 위해 몸을 팔며 살아가던 중

악마와도 같은 마약상을 만나면서 파국의 길을 걷게 됩니다.

 

디온 메이어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을 통해 세 인물의 행로를 찬찬히 보여줍니다.

각각 별개의 것처럼 보이던 세 인물의 이야기는 점점 한 방향으로 수렴되다가

베니 그리설이 ‘개인의 복수’로 보이는 참혹한 연쇄살인사건을 맡게 되고,

크리스틴과 그녀의 딸이 그 사건에 연루되면서 한길로 모입니다.

중반부에 좀 못 미친 지점까지 세 인물의 과거와 현재가 비교적 밀도 있게 묘사된 탓에

독자에 따라서는 ‘서설이 너무 길고 장황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 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작가가 ‘긴 서설’을 택했는지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범인은 초반부터 노출되고, 이야기 역시 충격과 반전보다는 예정된 순리(?)대로 전개되지만

이는 ‘속도’보다는 ‘깊이’에, ‘누가?’보다는 ‘왜?’에 초점을 맞춘 작가의 의도 때문입니다.

뛰어난 능력과 발군의 수사력 덕분에 장래가 촉망되던 형사였지만

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알코올중독에 빠진 베니 그리설은

가장이자 중년남자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의 고민은 물론

남아공에서 백인 경찰로 살아가야 하는 스트레스까지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또 한때 비밀 암살요원으로 암약했던 토벨라는 비극적인 사고로 (양)아들을 잃으면서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복수를 위해 또다시 손에 피를 묻히기로 결심하지만

복수가 거듭될수록 자신의 행위에 대해 고뇌와 갈등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항적인 소녀 크리스틴이 생계를 위해 콜걸로 변신하는 과정과

악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모습은 빈부, 마약, 성매매 등

남아공에 만연한 사회적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것만큼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사적 복수의 문제’ 역시 중요한 테마입니다.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야기한 사적 복수에 대해

디온 메이어는 ‘어느 한쪽의 주장’보다는 찬반론을 공정하게 배분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경찰 내에서조차 ‘사적 복수를 감행하는 연쇄살인마’를 놓고 지지와 증오로 갈리는 장면이나

사적 복수에 나선 토벨라가 매번 과거의 살인기계답지 못한 소심함과 갈등을 겪는 장면,

또 사적 복수에 반대하던 베니 그리설이 정작 ‘자신의 문제’가 됐을 때 겪는 혼란 등을 통해

디온 메이어는 독자 개개인의 판단을 묻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테마가 좀더 크게 다뤄지기를 바랐지만,

디온 메이어가 보여준 색다른 엔딩 덕분에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스릴러로서의 미덕과 매력을 모두 겸비했으면서도

‘악마의 산’은 가해자와 피해자, 경찰과 범인, 남과 여 등 다양한 개개인의 심리는 물론

남아공 특유의 사회적 이슈들까지 깊이 있게 다룬 작품입니다.

앞서 읽은 ‘오리온’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러고 보면 디온 메이어는 단순한 이야기꾼 이상의 필력을 지닌 작가임이 분명한 듯 합니다.

 

주인공 베니 그리설이 알코올중독의 진창에서 제대로 빠져나왔는지 분명히 그려지진 않았지만

이 작품이 시리즈 첫 편인 것을 감안하면 이후에는 좀더 사건에 매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속작인 ‘13시간’에서의 베니 그리설의 활약을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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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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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이지만 별 세 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줬습니다. 약간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있으니 감안하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사키 조의 대표작 ‘경관의 피’, 그 9년 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경찰소설의 대가답게 이번에도 사사키 조의 문장은 거침없으면서도 사실적이고 독자의 몰입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힘을 발휘합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명확한 캐릭터와 역할을 지니고 있어서 굳이 정리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됩니다.

주인공 안조 가즈야의 캐릭터나 안조 가문 3대에 걸친 경관의 내력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전작인 ‘경관의 피’를 먼저 읽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작가는 그런 수고 없이도 안조 가즈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끔 여러 가지 정보와 설명을 제공합니다. 이야기는 ‘경관의 피’ 마지막 장면이 다시 한 번 리플레이 되면서 시작됩니다.

 

문제 경찰을 내사하라는 지시를 받고 조사를 진행해온 안조 가즈야는 고민 끝에 자신의 상관이자 전설적인 조폭 전문 형사 가가야 히토시를 상부에 고발합니다. 결국 가가야는 제복을 벗고 시골로 내려가 낚싯배를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9년이 지난 현재, 도쿄의 각성제 판매 양상이 급변하면서 경시청에 비상이 걸립니다. 조직범죄대책부 1과 계장이 된 가즈야는 업무가 겹치는 5과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각성제 시장의 혼돈을 수사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일으킵니다. 이를 계기로 정보 수집의 한계를 느낀 경시청은 가가야를 5과의 계장으로 복직시킵니다. 가즈야의 1과가 난맥상처럼 꼬인 정보 탓에 헤매는 동안 5과는 가가야의 활약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면서 1과를 압도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절정부에 이르러 가즈야와 가가야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3대 경관이라는 타이틀이 명예이면서 동시에 트라우마인 안조 가즈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랬듯 평탄치 못한 경찰의 길을 걷습니다. 이른 나이에 승진시험에 통과하여 경부가 된 영광도, 조직범죄대책부의 계장에 오른 기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할 만큼 따가운 눈길에 휩싸입니다. 누군가는 그의 영광과 기쁨이 선대의 후광이라고 시기하고, 누군가는 그가 상사였던 가가야를 고발한 대가로 그 영광과 기쁨을 누린다고 비난합니다.

 

독자를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은 9년 전 가즈야의 고발로 제복을 벗었던 가가야가 그를 내쳤던 경시청의 간청에 의해 복직을 결심하는 장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복직 시점은 가즈야가 최대의 위기에 빠진 때였고, 두 사람은 9년 만에 라이벌인 1과와 5과의 계장으로 맞닥뜨리게 된 것입니다. 가즈야가 아직 새내기 계장으로 정보 수집에 애를 먹는 반면, 가가야는 복직과 동시에 거물들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과시합니다. 이래저래 독자들이 기대하던 최고의 빅 매치가 성사된 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 밀려든 아쉬움이 너무 컸다는 점입니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왜 이 작품에 ‘경관의 조건’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굳이 안조 가즈야의 9년 후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그릴 필요가 있었는지 약간의 실망과 적잖은 허탈감까지 느꼈습니다. ‘경관의 피’가 3대라는 장구한 시간 속에 벌어졌던 사건들과 함께 경찰로서의 자부심과 고뇌, 부자간의 갈등과 화해 등을 극적으로 그려냈다면, ‘경관의 조건’은 단지 사건에만 매몰된 작품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가즈야의 위기와 가가야의 복직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변곡점입니다. ‘경관의 피’에서 미처 다 그려지지 못한 두 사람의 갈등, 즉 정보 수집을 위해서라면 어둠의 세력들과 공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가가야와, 경찰의 본분과 정도를 지키기 위해 상사를 고발했던 가즈야의 갈등이 9년 만의 재회 이후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가 너무 궁금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갈등은 개인적인 부분도 있지만, 경관의 ‘조건’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사키 조는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 사건에 올인한 나머지 정작 가즈야와 가가야의 갈등을 (제대로 된 충돌 한 번 없을 정도로) 이야기의 주변부로 몰아냈습니다. 적어도 후반부엔 한번쯤 두 사람의 충돌이 세고 진하게 묘사되리라 기대했지만 사사키 조는 엉뚱한 사건과 인물들에게 분량을 할애하면서도 정작 두 사람의 정면 대결은 엔딩에 이르기까지 회피했습니다. ‘경관의 피’가 3대에 걸쳐 경관이 가야할 길, 경관의 도덕과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경관의 조건’은 동시대에 서로 다른 도덕과 가치관을 지닌 두 경찰의 이야기여야 했습니다. 그래야 ‘경관의 조건’이라는 제목도 나름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 아닐까요?

 

기대가 컸기 때문에 아쉬움도, 실망도 컸던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서점의 서평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호평 일색입니다. 어쩌면 제가 잘못 읽은 탓일 수도 있지만 ‘경관의 피’가 선사했던 거대한 서사의 힘을 ‘경관의 조건’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작의 성공에 편승한 후속작이라는 혹평이 더 어울려 보였습니다. 사사키 조가 경찰소설의 대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 관해서만큼은 제목도, 주제도 그답지 않았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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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 ㅣ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전행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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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할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시기적으로는 해리 보슈 시리즈 중 ‘나인 드래곤’ 직후를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나인 드래곤’이 2009년, ‘파기환송’이 2010년에 출간됐습니다)

초장부터 해리 보슈 시리즈를 언급한 이유는 해리 보슈가 이 작품에서

이복동생인 주인공 미키 할러와 거의 동급의 역할로 협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 ●

 

12살 소녀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24년간 복역해온 제이슨 제섭이

유전자 감식이라는 새로운 증거를 내밀며 재심을 받게 됩니다.

정황상 승소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LA지검은 ‘저주받은 자들의 변호사’ 미키 할러에게

특별검사를 제안하며 제섭의 유죄를 밝혀줄 것을 요청합니다.

오랫동안 형사변호사로서 검찰과 대적해왔던 할러에게는 희대의 기회가 온 것입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제안이었지만 할러는 단지 ‘정의감’이라는 이유 하나로 수락하게 되고,

전처이자 유능한 검사인 매기 맥퍼슨을 차석 검사로,

이복형이자 베테랑 LA경찰인 해리 보슈를 수사관으로 합류시킵니다.

그야말로 드림팀이 뜬 것입니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 결과를 뒤엎을 새로운 단서와 증인을 찾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보석허가까지 받아낸 제섭은 LA시내를 활보하며 수상한 행보를 일삼고 있고,

재판까지 남은 한정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갈 뿐입니다.

 

● ● ●

 

사실 시리즈의 첫 편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영화로만 봤고,

2편인 ‘탄환의 심판’은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소설로 미키 할러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작 미키 할러에게는 몰입하지 못하고 계속 해리 보슈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정통 법정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대 변호사와의 지적 대결, 증인과 단서를 찾기 위한 지난한 노력,

심문 과정에서의 연이은 반전, 법정 밖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위기 등

법정 스릴러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잘 갖추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혼한 상태에서 한 팀이 된 할러와 매기의 팀웍이나

이복형제지만 데면데면하기 짝이 없는 할러와 해리의 협업은

사건 자체를 떠나 개인적인 갈등까지 긴장감 있게 살려내는 재미있는 구도입니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는 할러와 매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라든가

현장 형사와 양복 입은 법조인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해리와 할러의 갈등은

본 사건 외에도 쏠쏠한 재미를 주는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법정 스릴러 최고의 대가로 존 그리샴을 꼽지만

미키 할러를 앞세운 마이클 코널리 역시 만만치 않은 필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이클 코널리의 청산유수 같은 문장들은 법정 스릴러의 한계,

즉,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 한정된 사건의 약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술술 읽힙니다.

다만, 그의 문장의 역동성은 현장 형사인 해리 보슈와 좀더 잘 어울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해리 보슈에 비해 정적일 수밖에 없는 미키 할러의 이야기가

조금은 단선적으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프레임 안에 갇힌 해리 보슈 역시 자신의 시리즈 때와 비교하면

조금은 소소한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연히 미키 할러 시리즈라 그만큼의 역할로 조정했겠지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 요즘

그래도 믿고 찾게 되는 마이클 코널리의 작품이 꾸준히 출간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올해도 ‘The Wrong Side of Goodbye’라는 해리 보슈의 19번째 시리즈가 출간됐다는데

아직 미출간된 작품들과 함께 얼른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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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지 않음, 형사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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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사회파 미스터리의 미덕에 대하급 경찰소설의 매력까지 지닌

찬호께이의 국내 첫 소개작 ‘13.67’의 열혈독자라면

저처럼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서도 비슷한 매력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 상 수상’이라는 이력에서 예감할 수 있듯

이 작품은 서사보다는 정교한 플롯과 연이은 반전을 앞세운 독특한 작품입니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기억’이라는 조금은 미묘한 ‘정신의 영역’을 끌어들임으로써

앞선 ‘13.67’의 리얼리즘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 ● ●

 

홍콩 경찰 쉬유이는 어느 날 아침 숙취와 함께 잠에서 깹니다.

부부살인사건을 수사하던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2003년을 살고 있었지만

잠에서 깬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2009년입니다.

무려 6년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입니다.

그가 수사하던 사건은 이미 종료된 상태였고, 용의자는 차량사고로 사망한 상태입니다.

그는 엉겁결에 여기자 루친이와 함께 당시 피해자의 유족 취재에 동행하게 되는데,

사망한 용의자가 진범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위화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만 하루 동안의 조사를 통해 쉬유이는 나름 진상을 파악해내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기치 못한 충격적인 반전과

사라진 6년간의 기억 속에 숨어있던 기가 막힌 진실이었습니다.

 

● ● ●

 

보통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경우 대표작(가장 대중적인?)부터 먼저 출간된 뒤

그 반응에 따라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 또는 데뷔작이 출간되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처음 소개된 대표작에 비해 조금은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의 경우 실망감까지 느낀 것은 아니지만

비장하고 스케일이 큰 경찰 서사를 기대했던 터라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고 할까요?

 

하지만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통해 찬호께이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분명 그만의 독특한 필력과 구성이 가진 매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 경찰의 인생을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하여 더 큰 울림을 전해줬던 ‘13.67’도 그랬지만

이야기 자체만큼이나 구성이 갖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찬호께이는 이 작품을 통해 또 한 번 입증하고 있습니다.

 

기억상실에 걸린 쉬유이가 만 하루 동안 진실 찾기에 나선 동안

찬호께이는 소챕터들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과거를 조금씩 떡밥처럼 소개합니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독자는 묘한 위화감과 이물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느낌은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까지 계속 독자를 괴롭힙니다(?).

특히 논리적으로는 100% 설명하기 어려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기억상실이 개입되어

독자의 ‘즐거운 괴로움’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배가됩니다.

 

사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기억상실은 평범하다 못해 진부한 소재로 여겨지지만

찬호께이는 쉽게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의 구조 속에

이 진부한 소재들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고 녹여냈습니다.

쉬유이의 사라진 6년의 기억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아, 이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물론 파격적인 마지막 반전과 약간은 장황하게 설명된 ‘기억’에 관한 과학적 지식에 대해

일부 독자는 공감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고 작위적이라고 평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미묘하기 이를 데 없는 ‘뇌와 정신의 영역’에 대한 작가의 설명은

어떤 부분에서는 끼워 맞추기 식 해설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런 약점들이 작품 전체의 미덕을 훼손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뭐랄까, 조금은 무모하지만 새로움을 앞세운 신선한 실험작의 장점이 더 살아있다고 할까요?

또, 그런 부분이 높게 평가받아 시마다 소지의 극찬을 이끌어낸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찬호께이의 다음 출간작이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편의 작품만으로도 국내에 그의 후속작을 기대하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리라 여겨집니다.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13.67’에 맞먹는 대하급 경찰소설이기를 기대하지만,

‘기억나지 않음, 형사’처럼 파격적인 내용과 형식의 작품이라도 기꺼이 환영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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