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ㅣ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컨설턴트 회사를 경영하는 도미자와 미쓰루에게는 부업이 있다.

650만 엔에 살인을 의뢰받는 ‘청부살인업자’.

의뢰가 들어오면 작업 여부를 3일 안에 판단하고, 작업에 착수하면 2주 내에 실행한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며 ‘일’을 수행하지만,

“저 여자는 왜 한밤중에 공원에서 검은 물통을 씻을까?

퇴근길에 기저귀를 구입하는 저 독신남의 정체는 무엇일까?” 등

사람을 죽여 놓고 상대가 왜 죽어야 했는지를 추리하는 특이한 청부살인업자.

그는 어느 날, 허를 찌르는 의뢰와 마주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최근 들어 청부살인업자를 내세운 작품들을 부쩍 자주 읽게 됐는데,

특히 방진호의 ‘방의강 시리즈’와 찬호께이의 ‘풍선인간’은 개성 만점의 작품들이었습니다.

이시모치 아사미의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일상 미스터리라는 맥락에서 보면

찬호께이의 작품과 비슷한 결을 지닌 작품이긴 하지만 좀더 사실감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찬호께이의 주인공이 초능력 캐릭터인데 반해

이시모치 아사미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옆집 사는 이웃 같은 평범한 킬러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덧붙여 의뢰 접수자와 중간연락책 모두 멀쩡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캐릭터라

때로는 희화화된 느낌을, 때로는 지독한 사실감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일단 이들의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보면,

‘의뢰자 – 의뢰접수(치과의사) - 중간연락책(구청 공무원) - 킬러(경영 컨설턴트)’ 구조입니다.

즉, 의뢰자나 의뢰접수자는 중간연락책과만 닿을 뿐 킬러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킬러 역시 의뢰자나 의뢰접수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며,

중간연락책은 킬러에게 전할 기본 정보 외에는 의뢰자에 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나름의 신중한 작업 방식인 셈인데,

이런 특이한 프로세스 덕분에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 모두 특별한 재미를 지니게 됩니다.

 

사실, 청부살인업자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게 읽기만 한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긴 합니다.

실제로 수록된 작품 속에서 킬러 도미자와에게 살해당하는 이들은

지독한 악당이나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도미자와는 동기나 배경에 일절 관여하지 않은 채 묵묵히 의뢰를 수행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미자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소시오패스인 게 맞는데,

읽는 내내 어느 한구석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지 못한다는 점은 더더욱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또, 자신이 살해한 대상에 대해 ‘그(녀)는 왜 죽어야 했는가?’를 뒤늦게 추리한다든가,

의뢰자가 취소한 탓에 목숨을 빼앗지 않은 대상에 대해 별도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대목,

그리고 ‘표적이 된 살인청부업자’라는 소제목처럼 자신이 청부대상이 되는 케이스 등

상투적인 청부살인업자 이야기를 넘어선 예상 밖의 신선한 스토리들이 전개돼서

어떤 순간에는 ‘청부살인업자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도 되나?’라는,

약간은 당혹스러운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가운데 ‘동반자’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이 역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이 작품은 유일하게 킬러 도미자와의 시점이 아닌 작품입니다.

바로 의뢰접수자인 베테랑 치과의사 아쿠타가와 이세도노가 주인공인 이야기인데,

의뢰자와 의뢰접수자간의 팽팽한 속고 속이기 게임이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도미자와가 이끄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혔지만 작품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습니다.

다소 작위적인 설정이 있는가 하면, 재치 있는 반전을 담은 작품도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상 미스터리에 가까운 약간의 가벼움이 느껴진 탓에 별 0.5개를 빼긴 했지만,

소소한 재미와 적절한 사이즈의 반전, 특별한 청부살인업자 이야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족으로...

이시모치 아사미는 3년 전쯤,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로 처음 만났는데,

그때 쓴 서평을 보니 “하룻밤에 벌어진 연쇄살인마의 리얼한 살인기록이지만,

동시에 판타지 또는 지독한 심리극으로 분류될 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돼있습니다.

기억은 희미해도 별 5개를 줬을 정도로 매력 만점의 작품이었다는 인상이 남아있는데,

이 청부살인 이야기와는 분위기도, 캐릭터도 완전히 다른 톤이라 살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느 쪽이 진면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채로운 필력의 작가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국내에 모두 7편의 작품이 출간됐는데, 짬나는 대로 한 편씩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처음 이 작품의 제목과 표지를 보곤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었다니 황망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아이가 죽기라도 했다면 엄청 비극적인 사건임에 분명한데,

왠지 제목과 표지가 풍기는 분위기는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각성제와 약물을 먹고 밤새 변호사 시험 준비를 했던 리즈 재럿이

급하게 시험장으로 가기 위해 차를 몰던 중 이웃집 아이 찰리를 치면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정신이 혼미하고 판단력마저 흐려진데다 변호사 시험에 목숨을 걸고 있던 리즈가

‘이성적인 판단’ 대신 자기도 모르게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찰리의 엄마인 캐롤이 실종신고를 하고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동네에 경찰들이 잔뜩 깔리자

리즈는 뒤늦게 남편 오웬에게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쯤에서라도 일이 바로 잡혔다면 다행일 텐데 리즈는 계속 진창 속으로 빠져들 뿐입니다.

 

사람이 여럿 죽어 나가는 잔혹한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비하면

우발적인 교통사고 자체는 어쩌면 소박한 소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웬만큼 독한 설정의 미스터리나 스릴러보다 마음을 졸이게 한 작품이었는데,

다소 신선함은 떨어지더라도 너무나 현실감 있는 관계설정과 심리묘사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희생자가 3살 된 어린 아이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한 이웃이란 점입니다.

10살 차이가 나지만 리즈와 캐롤은 꽤 친하게 지내왔고, 리즈는 찰리를 무척 예뻐했습니다.

사고를 숨긴 채 캐롤을 위로하며 마음 아파하는 역할을 ‘리얼하게’ 수행해야 하는 리즈는

죄책감과 갈등에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가해자 부부와 피해자 부부 모두 시한폭탄 같은 균열을 내재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양쪽 남편들은 아내를 ‘돈벌이를 위한 발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가정에 소홀했던데다 여자관계도 깨끗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이미 사건 전부터 위태롭던 두 부부의 관계는 찰리 사건 이후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공들여 키운 회사의 상장을 앞뒀던 오웬은 아내 리즈 때문에 꿈이 좌절될 상황에 처하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더니 결국엔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평소 아들 찰리에게 무덤덤하거나 곁을 주지 않던 데이비드가

사고 이후에도 아들 찾기보다는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 더 몰두하자 캐롤은 격분합니다.

결국 교통사고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사건이 살인, 은폐, 시체유기 등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사건에 연루된 두 부부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바닥을 칠 정도로 피폐해지고 맙니다.

 

이 작품이 섬뜩하게 읽혔던 가장 큰 이유는

‘언제든지 내게도 너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란 점입니다.

물론 CCTV나 블랙박스가 보편화된 지금은 처음부터 ‘은폐’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실수와 죄를 인정하고 달게 벌을 받으면 됐을 일을 한순간의 오판으로 악몽으로 만드는 것은

리즈가 특별히 어떤 인격이나 성격적인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라도 리즈의 상황에 처했다면 그녀처럼 덮어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고,

몇 번이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채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을까요?

리즈의 악몽은 그래서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읽는 내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리즈가 더는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시점에

사건은 의외의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되고 아무도 예상 못한 결론이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리즈는 이 예상 못한 결론으로 인해

또다시 ‘따뜻하고 용감한 이웃’이라는 기만적인 역할을 맡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합니다.

과연 ‘가해자 리즈’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스터리 자체보다 심리묘사가 돋보이긴 했지만,

두 부부의 상황이나 심리를 그리는 과정에서 중언부언 또는 동어반복이 자주 보여서

과연 460여 페이지의 분량까지 필요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당장 오늘부터 ‘운전조심’이라는 현실적인 교훈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이 말이 결코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란 점은 이 작품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덱스 ㅣ 레이코 형사 시리즈 7
혼다 데쓰야 지음,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자 8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입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시머트리’ 역시 단편집이었고,

(아직 못 읽은) 다섯 번째 작품 ‘감염유희’가 외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인 걸 보면

작가가 꽤 독특하게 시리즈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덱스’는 전편인 ‘블루 머더’ 이후의 히메카와 레이코를 그리고 있습니다.

시리즈 네 번째인 ‘인비저블 레인’에서 큰 사고(?)를 치고 이케부쿠로 서로 쫓겨난 레이코는

‘블루 머더’에서 큰 공을 세워 경시청으로의 복귀를 꿈꾸게 됩니다.

‘인덱스’는 단편집임에도 불구하고 레이코가 경시청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단순한 단편집이 아니라 시리즈의 중요한 변곡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각기 다른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해도 ‘블루 머더’ 이후의 사건 수습과정은 물론

경시청 복귀 후 새로운 동료를 만나는 이야기가 시간 순으로 그려지고 있어서

앞서 이 시리즈를 쭉 읽어온 독자에겐 별미 중의 별미처럼 읽힐 것입니다.

 

수록된 작품들은 소프트한 해프닝부터 진지한 수사까지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너무 말랑말랑한 나머지 레이코의 캐릭터가 낯설게 보이기도 하는데,

약간은 수다스럽거나 말괄량이 여형사처럼 느껴지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또, 젊은 날 경찰이 되기 전의 레이코를 동경했던 한 여성의 시점으로 그려진 작품도 있는데

레이코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된 듯한 신선한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작품에서 레이코는 좌충우돌, 돌직구, 뛰어난 추리 등 고유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나 또는 일부러 레이코를 물 먹이려 만든 상황 속에서도

레이코는 특유의 촉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곤 당당하게 그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수록작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순직한 동료 오쓰카 신지의 묘지 앞에 선 레이코가

그와 함께 했던 첫 수사를 회상하는 이야기인 ‘여자의 적’이었습니다.

사건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지만 오쓰카 신지와의 첫 만남과 첫 수사는

이 시리즈를 첫 편부터 읽어온 독자에겐 각별하게 읽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단편집이다 보니 이야기가 깊어지기 어렵고

시리즈 애독자 외에는 쉽게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힘든 대목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시리즈 첫 편부터 레이코와 인연을 맺어온 주변 인물들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그들간의 전사(前史)를 모르는 독자에겐 다소 낯설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한두 작품은 작가가 대놓고 ‘교훈적 메시지’를 주려고 작정한 것으로 보였는데

약간은 강요하는 느낌 또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편집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레이코의 경시청 복귀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인덱스’는 단순히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혹시 이 작품으로 히메카와 레이코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시리즈 첫 편인 ‘스트로베리 나이트’만 읽어도 이 작품의 미덕을 쉽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경시청으로 돌아온 레이코가 다음 장편에서 어떤 사건을 통해

‘히메카와 반 시즌2’의 오프닝을 장식할지 벌써부터 사뭇 기대가 됩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동료들은 물론 상관들까지 거의 물갈이 된 상태에서

레이코가 그들과 어떤 갈등과 충돌을 거쳐 이해와 화해에 이를지도 무척 궁금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블루 머더 ㅣ 레이코 형사 시리즈 6
혼다 데쓰야 지음, 이로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비저블 레인’(시리즈 4편)의 사건으로 경시청 수사 1과 히메카와 반은 뿔뿔이 흩어졌다.

히메카와 레이코 역시 이케부쿠로 경찰서로 자리를 옮긴 상태.

어느 날 관내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이 온몸의 뼈가 부스러진 상태로 살해된다.

탐문 결과, ‘블루 머더’라는 자가 이케부쿠로의 뒷골목을 공포에 빠뜨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블루 머더는 오로지 조직폭력배, 폭주족, 중국계 마피아 등만 살인 타깃으로 삼으며,

이미 수많은 악인들이 그에게 당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는 것.

한편, 센주 경찰서로 이동한 기쿠타는 탈주범을 쫓던 중 우연치 않게 레이코와 만나게 된다.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면서도 다른 길을 가야 했던 둘은 감정적 동요에 휩싸인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블루 머더’는 혼다 데쓰야의 ‘히메카와 레이코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작품입니다.

아쉽게도 앞선 4편(인비저블 레인), 5편(감염유희)을 못 본 상태에서 먼저 읽게 됐는데

가능하다면 4편인 ‘인비저블 레인’만큼은 꼭 먼저 읽은 뒤 ‘블루 머더’를 읽기를 추천합니다.

그 이유는 주요 인물 3명 사이의 관계와 감정이 전작의 연속선상에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인비저블 레인’ 이후 경시청에서 이케부쿠로 서로 쫓겨난(?) 주인공 히메카와 레이코,

경시청 히메카와 반 소속으로 그녀를 마음속에 품고 있던 거구의 형사 기쿠타 가즈오,

경시청에서의 마지막 수사 때 레이코의 파트너였던 중년형사 시모이 마사후미가 그들입니다.

 

그들은 각각 다른 경로로 희대의 살인마 블루 머더에게 접근합니다.

관할 구역에서 뼈가 전부 으스러진 야쿠자, 폭주족, 중국계 마피아의 시신이 발견되자

레이코는 조폭담당부서와 함께 수사에 나서지만 좀처럼 단서를 잡지 못합니다.

탈주한 전화금융사기범을 쫓던 기쿠타는 탐문 도중 이케부쿠로에서 레이코와 마주치게 되고

이어 자신이 쫓던 탈주사기범이 블루 머더와 관련 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최근 이케부쿠로의 폭력단들이 갑자기 꼬리를 내리고 잠잠해진 것을 이상하게 여긴 시모이는

7년 전 자신의 권유로 폭력단에 위장잠입했다가 소식이 끊긴 기노 가즈마사를 찾던 중

블루 머더 사건과의 접점을 알아내게 됩니다.

 

이들 중 특히 레이코와 기쿠타의 인연이 이 작품에서 꽤 중요한 모티브로 설정돼있는데,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으면서도 전작에서 운명적으로 갈라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레이코는 17살 때 당한 성폭행의 트라우마로 인해 남자공포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다,

기쿠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작에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쿠타를 완전히 잊지 못했던 레이코는

정작 기쿠타가 그 사이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자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기쿠타 역시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오랜만에 재회한 레이코로 인해 여러 감정에 휩싸입니다.

특히 시리즈 첫 편인 ‘스트로베리 나이트’에서 소중한 동료를 잃은 적이 있는 두 사람은

끔찍한 살인마 블루 머더를 뒤쫓으면서 그때와 같은 상처를 겪을까봐 속을 태우기도 합니다.

 

‘블루 머더’에는 꽤 많은 주제가 녹아있습니다.

어딘가 애틋해 보이는 레이코와 기쿠타 사이의 묘한 분위기,

어둠의 세력들만 골라 온몸의 뼈를 부숴 잔혹하게 살해하는 살인마 블루 머더의 범행 동기,

조직폭력배를 상대하는 일본 경찰조직의 비효율성과 정치적 타산에 대한 비판 등이 그것인데

거의 대등한 비중으로 분배된 세 가지 주제 때문에 ‘뚜렷한 핵심’이 흐려졌다는 생각입니다.

분량만 놓고 보면 살인마 블루 머더 이야기가 압도적이지만,

그를 쫓는 세 인물의 스토리가 각각 따로 노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레이코는 탐문이나 추리라는 본연의 역할에서 다소 수동적이거나 뒤처리 담당에 가까웠고,

기쿠타는 탈주범 추적보다는 레이코에 대한 회상에 더 몰두했으며,

중년형사 시모이는 무기력해진 일본경찰의 조직폭력배 응대 방침 비판에 더 열을 올립니다.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그려진 블루 머더의 범행동기와 심리묘사에 좀더 집중했더라면

작가의 의도도 훨씬 더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갖게 됐습니다.

야쿠자, 폭주족, 중국계 마피아만 골라 온몸이 곤죽이 되도록 뼈를 부숴 죽이는 블루 머더는

지금껏 본 여느 살인마보다 끔찍한 것은 물론, 동기조차 특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경과 동기에 대한 설명이 살짝 부족한 면도 있었고,

그래서 그의 진짜 범행 목적에 대해 선명한 대답을 듣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주제가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어도 시리즈를 쭉 읽어온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 가능하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히메카와 레이코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맥락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레이코의 과거가 궁금해서라도 앞선 시리즈를 찾게 되겠지만요.

레이코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형사인지, 어떤 여자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시리즈 첫 편인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러고나면 어쩔 수 없이(?) 후속작들을 찾아 읽을 수밖에 없게 되는데,

다소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묘사를 즐기는 혼다 데쓰야의 매력적인 필력은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잊기 어려운 중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더 포스 1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데니 멀론은 뉴욕 맨해튼 북부 특수수사팀의 리더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맨해튼 북부의 왕.

흑인 동료 빅 몬티, 이탈리아계 단짝 친구 필 루소 등과 함께

맨해튼 북부 지역에서 일어나는 마약과 폭력 사건들을 해결해온 영웅 경찰이다.

이 영웅 경찰이 어느 날 부패 혐의로 체포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뉴욕시 정관계와 경찰 등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다.

데니 멀론은 이들 모두와 촘촘히 연루돼 있고, 이들 부패의 핵심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

멀론이 무너지면 뉴욕 권력의 핵심부가 통째로 무너지게 된다.

소설은 의협심 넘치던 모범 경찰이었던 멀론이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구치소에서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경찰이 주인공인 ‘대부’를 상상해보라.”라는 스티븐 킹의 추천사는

이 작품을 가장 적확하게, 가장 의미심장하게 압축한 한줄 평입니다.

‘대부’의 주인공들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마피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그들에게 열광했듯

일찌감치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더 포스’의 주인공들에게도 독자들은 열광하게 됩니다.

데니 멀론에겐 ‘대부’의 주인공들처럼 기꺼이 대신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친구들도 있고,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증오의 대상(동료경찰이든 마약폭력조직이든)도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친구와 적들 모두 ‘부패’라는 사슬로 견고히 엮여있습니다.

 

데니 멀론과 동료들은 현장에서 수거한 마약과 돈을 빼돌려 미래를 준비하기도 하고,

돈 한 푼 안 내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여자를 향유하는 것은 물론,

맹렬하게 대치중인 흑인, 중남미, 이탈리아 계 마피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자신들만의 이익을 취하는 위험한 행보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크리스마스 때마다 맨해튼 북부의 빈민들에게 칠면조를 돌리기도 하고

시한폭탄 같은 할렘의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근무하기도 합니다.

경찰 내부에도 데니 멀론 무리를 못마땅히 여기는 동료나 상관들이 부지기수지만,

언제나 대단한 성과를 올리는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데니 멀론의 탄탄대로는

너무나도 사소해 보이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파멸로 이끌어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고,

그제야 지난 18년 동안의 경찰 생활에서 자신이 야금야금 넘어왔던 ‘선’들을 기억해냅니다.

처음엔 공짜 커피에서 시작됐지만, 어느 샌가 100달러 지폐를 당연한 듯 받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안락한 미래를 설계하고도 남을 토대를 차곡차곡 쌓아왔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부패경찰 데니 멀론의 참회록’이란 뜻은 절대 아닙니다.

뉴욕의 권력가들은 그의 파멸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의 입이 열릴까봐 전전긍긍하게 되고

데니 멀론은 날개 없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전세를 뒤엎기 위해 마지막까지 분투합니다.

자신을 파멸로 이끈 마피아와 갱조직을 궤멸시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고,

자신의 파멸로 이익을 보려는 권력자들에게는 호된 반전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부패경찰인 데니 멀론의 마지막은 해피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 ‘대부’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어떤 느낌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권 합쳐 700페이지가 넘는 대단한 분량이지만 주말 하루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1권이 데니 멀론과 그의 동료들, 소위 다 포스(Da Force)의 화려한 무용담에 할애됐다면

2권은 브레이크 없이 내리막길을 치닫는 그들의 파국을 긴장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명확한 ‘주적(主敵)’ 없이 경찰, 마피아, 갱, 권력자들의 복잡한 갈등관계가 그려지고 있어서

독자에 따라 쉽게 따라갈 수 있는 핵심줄기가 모호하다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피아의 식별이 불분명한 뉴욕의 정치-법조-경찰-갱-마피아간의 먹이사슬 관계는

이 작품의 필수요소이자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평을 마치고 “경찰이 주인공인 ‘대부’를 상상해보라.”라는 스티븐 킹의 코멘트를 다시 보니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붙인 긴 서평이 참 허망하고 무색해 보입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더 포스’가 영화로도 만들어질 계획이라는데,

아무래도 마피아가 주인공인 ‘대부’만큼의 위압감을 갖긴 어렵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비장미만큼은 충분히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