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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그렉 올슨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 처음 이 작품의 제목과 표지를 보곤 ‘뭐지?’라는 느낌을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었다니 황망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만일 아이가 죽기라도 했다면 엄청 비극적인 사건임에 분명한데,
왠지 제목과 표지가 풍기는 분위기는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각성제와 약물을 먹고 밤새 변호사 시험 준비를 했던 리즈 재럿이
급하게 시험장으로 가기 위해 차를 몰던 중 이웃집 아이 찰리를 치면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정신이 혼미하고 판단력마저 흐려진데다 변호사 시험에 목숨을 걸고 있던 리즈가
‘이성적인 판단’ 대신 자기도 모르게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찰리의 엄마인 캐롤이 실종신고를 하고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동네에 경찰들이 잔뜩 깔리자
리즈는 뒤늦게 남편 오웬에게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쯤에서라도 일이 바로 잡혔다면 다행일 텐데 리즈는 계속 진창 속으로 빠져들 뿐입니다.
사람이 여럿 죽어 나가는 잔혹한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비하면
우발적인 교통사고 자체는 어쩌면 소박한 소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웬만큼 독한 설정의 미스터리나 스릴러보다 마음을 졸이게 한 작품이었는데,
다소 신선함은 떨어지더라도 너무나 현실감 있는 관계설정과 심리묘사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희생자가 3살 된 어린 아이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한 이웃이란 점입니다.
10살 차이가 나지만 리즈와 캐롤은 꽤 친하게 지내왔고, 리즈는 찰리를 무척 예뻐했습니다.
사고를 숨긴 채 캐롤을 위로하며 마음 아파하는 역할을 ‘리얼하게’ 수행해야 하는 리즈는
죄책감과 갈등에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또, 가해자 부부와 피해자 부부 모두 시한폭탄 같은 균열을 내재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양쪽 남편들은 아내를 ‘돈벌이를 위한 발판’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가정에 소홀했던데다 여자관계도 깨끗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이미 사건 전부터 위태롭던 두 부부의 관계는 찰리 사건 이후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공들여 키운 회사의 상장을 앞뒀던 오웬은 아내 리즈 때문에 꿈이 좌절될 상황에 처하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더니 결국엔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극단적인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평소 아들 찰리에게 무덤덤하거나 곁을 주지 않던 데이비드가
사고 이후에도 아들 찾기보다는 자신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에 더 몰두하자 캐롤은 격분합니다.
결국 교통사고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사건이 살인, 은폐, 시체유기 등 악화일로를 치달으면서
사건에 연루된 두 부부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바닥을 칠 정도로 피폐해지고 맙니다.
이 작품이 섬뜩하게 읽혔던 가장 큰 이유는
‘언제든지 내게도 너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란 점입니다.
물론 CCTV나 블랙박스가 보편화된 지금은 처음부터 ‘은폐’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실수와 죄를 인정하고 달게 벌을 받으면 됐을 일을 한순간의 오판으로 악몽으로 만드는 것은
리즈가 특별히 어떤 인격이나 성격적인 문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누구라도 리즈의 상황에 처했다면 그녀처럼 덮어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고,
몇 번이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채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을까요?
리즈의 악몽은 그래서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읽는 내내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리즈가 더는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시점에
사건은 의외의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되고 아무도 예상 못한 결론이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리즈는 이 예상 못한 결론으로 인해
또다시 ‘따뜻하고 용감한 이웃’이라는 기만적인 역할을 맡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합니다.
과연 ‘가해자 리즈’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야 독자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미스터리 자체보다 심리묘사가 돋보이긴 했지만,
두 부부의 상황이나 심리를 그리는 과정에서 중언부언 또는 동어반복이 자주 보여서
과연 460여 페이지의 분량까지 필요했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당장 오늘부터 ‘운전조심’이라는 현실적인 교훈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이 말이 결코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란 점은 이 작품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