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2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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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보스턴경찰서 강력반의 제인 리졸리가 엽기적인 연쇄살인범 ‘외과의사’를 체포한지 1년.

다시 찾아온 여름은 리졸리에게 새로운 연쇄살인사건과 함께 ‘외과의사’의 악몽을 일깨웁니다.

남편을 무기력하게 만든 뒤 그 앞에서 아내를 폭행하고 납치하는 새로운 연쇄살인범이

사건 현장에 명백한 ‘외과의사’의 ‘서명’을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1년 전 리졸리에게 체포된 ‘외과의사’는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지만

리졸리는 새로운 연쇄살인범이 분명 ‘외과의사’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돼있다고 확신합니다.

 

● ● ●

 

‘견습의사’는 전작인 ‘외과의사’에 이은 ‘리졸리&아일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속작인 ‘파견의사’까지 포함하여 ‘의사 3부작이라고 부릅니다.)

연쇄살인범의 엽기성에 관한 한 역대 어느 스릴러보다 잔혹하고 끔찍한 디테일이 눈에 띄는데

적잖은 작품들이 엽기와 잔혹에만 매달리다가 정작 중요한 서사는 허당인 경우가 많은데 반해

테스 게리첸은 이야기와 캐릭터 모두 그 깊이와 두께가 만만치 않은 작가입니다.

 

‘외과의사’가 교도소에 갇힌 사이 새로 등장한 ‘견습의사’는 처음엔 ‘지배자’라 불립니다.

부와 명예를 갖춘 매력적인 부부만을 골라 그들을 완벽히 지배한다는 뜻에서 붙인 별명인데,

남편 앞에서 아내를 폭행한 범인은 남편을 살해하곤 아내를 납치한 뒤

시간(屍姦)이라는 최악의 모욕까지 준 뒤 그 시체를 숲에 내다버리는 극악한 모습을 보입니다.

리졸리는 관할 지역이 아닌 곳에서 벌어진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외과의사’의 ‘서명’으로 보이는 현장 단서 때문에 적극적으로 사건에 뛰어듭니다.

 

전작에서 함께 ‘외과의사’를 추격했던 동료 토마스 무어가 피해자였던 캐서린과 결혼한 탓에

작가는 리졸리 곁에 새로운 인물을 설정해줬는데

문제는 그가 리졸리와는 정반대로 냉철하고 합리적인데다 ‘재수 없는 FBI요원’이란 점입니다.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와 그에 어울리는 고급 슈트로 철갑을 두른 듯한 게이브리얼 딘은

조용히, 하지만 언제나 ‘냉정한 관리자’의 모습으로 리졸리의 수사에 끼어듭니다.

다혈질의 폭주 캐릭터인데다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무리수까지 두는 리졸리에게

외부에서, 그것도 ‘재수 없는 FBI’가 자신의 사건에 끼어드는 건 절대 용납 못할 일입니다.

더구나 이 끔찍한 사건들에 대해 뭔가 자신만의 정보를 갖고 있는 듯한 딘의 행태는

리졸리에게 분노 이상의 감정을 자아내게 만드는데,

연쇄살인범 수사 못잖게 이 둘만의 ‘기승전결’도 독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첫 페이지는 물론 중간중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외과의사’의 1인칭 챕터가 등장하는데,

이것만 봐도 ‘외과의사’가 새로운 연쇄살인에 적극 개입하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과연 그는 어떤 식으로 교도소 밖의 새 파트너와 연대하고 있는 것인지,

또 그의 궁극적인 타깃인 리졸리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가 시종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한 시도 마음 편하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됩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애초 ‘외과의사’ 한 편으로 끝날 상황에서 시리즈로 발전한 덕분에

두 번째 주인공인 법의관 마우라 아일스가 ‘견습의사’에서 뒤늦게 등장했다고 (추정)합니다.

‘외과의사’에서 리졸리보다 메인 주인공으로 보였던 토마스 무어 형사가 사라진 것도 그렇고,

리졸리와 평범한 관계 이상으로 발전할 것 같아 보이는 FBI요원 게이브리얼 딘의 등장 역시

앞으로의 시리즈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얘깁니다.

시리즈 이름 자체가 ‘리졸리&아일스 시리즈’인만큼 아일스의 역할은 점점 커지겠지만

FBI요원 게이브리얼 딘의 비중 역시 궁금함과 기대감을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10여 년 전에 읽었던 탓에 지금으로선 이후 그의 활약상은 전혀 가물가물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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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6-1 ㅣ 리졸리 & 아일스 시리즈 1
테스 게리첸 지음, 박아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혼자 사는 여자를 폭행하고 배를 갈라 자궁을 꺼냈던 살인마 앤드루 캐프라.

4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했던 그는 다음 목표였던 캐서린 코델 박사의 총에 맞아 숨진다.

그리고 3년 후, 보스턴에서는 또다시 자궁이 없어진 여자들의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앤드루 캐프라가 되살아난 듯 동일한 수법으로 여자를 살해하는 이 살인마에게

언론과 경찰은 ‘외과의사’라는 별명을 붙인다.

보스턴 경찰서 강력반의 토마스 무어와 제인 리졸리는

유일한 생존자였던 캐서린 코델을 열쇠 삼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려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최고로 꼽는 스릴러 3부작이 몇 편 있는데, 그중 하나가 테스 게리첸의 ‘의사 3부작’입니다.

사실 ‘의사 3부작’이란 건 제가 임의로 지은 이름이고,

실제로 이 작품들은 ‘리졸리&아일스 시리즈’의 1~3편인데,

각각의 제목이 ‘외과의사’, ‘견습의사’, ‘파견의사’라서 재미삼아 붙여본 이름입니다.

세 작품 모두 2006~2007년 사이에 출간됐고 매번 신작이 나오자마자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엔 서평 같은 건 남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때라 짧은 메모조차 남겨놓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외과의사’는 마치 처음 읽는 작품처럼 생소했습니다.

 

‘외과의사’가 ‘리졸리&아일스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서 제인 리졸리는 세컨드 주인공으로만 등장할 뿐이고,

법의관인 마우라 아일스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성 토마스’라는 별명을 가진 젠틀한 중년 형사 토마스 무어가 원톱으로 활약하는데,

그가 ‘견습의사’나 ‘파견의사’에도 등장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서평에 옮겨 쓰기조차 거북할 정도로 끔찍하고 엽기적인 살해수법이 등장하는데

의사 출신 작가인 테스 게리첸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단단한 문장들로 그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런 묘사는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도 예외 없이 발견할 수 있는데,

독자에 따라 (내용과 관계없이) 호불호가 갈리는 경계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초반에 연이어 참혹한 사체들이 발견된 이후로

이야기는 범인의 다음 목표로 확실해 보이는 캐서린 코델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범인이 생각보다 캐서린 가까이에 있다는 단서를 수차례 알아내고도

경찰의 수사가 제자리를 맴돌자 캐서린의 공포는 극에 달합니다.

그 와중에 젠틀한 중년 형사 토마스 무어는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기 시작하고,

돌직구 같은 성격의 리졸리는 그런 두 사람을 못마땅하게 바라봅니다.

 

사건의 잔혹함과 작가가 설정한 미궁의 깊이에 비해 ‘범인 찾기’는 다소 쉽게 해결됩니다.

하지만 450여 페이지를 읽는 내내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독자를 상대로 한 작가의 최적의 ‘밀고 당기기’ 전략 덕분이었습니다.

사건뿐 아니라 인물들의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갈등이 재미와 함께 적절히 배치됐고,

그 때문에 어느 한곳에서도 느슨하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이후 시리즈의 메인 주인공이 된) 제인 리졸리는

말 그대로 몸과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은 날것같은 캐릭터로 눈길을 끌었는데,

강력반의 유일한 여자형사인 그녀는 성장기부터 겪은 남녀차별에 분노하는 것은 물론

어떻게든 정글 같은 남성중심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24시간 날이 서있는 인물입니다.

불같은 성격과 무모한 추진력과 남성사회에 대한 혐오는

때론 부메랑처럼 그녀에게 되돌아와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녀는 타협이나 후퇴 없이 종횡무진 좌충우돌할 뿐입니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외과의사’는 제 기억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해줬는데,

이어서 읽을 ‘견습의사’와 ‘파견의사’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리졸리&아일스 시리즈’는 ‘의사 3부작’ 이후에도 한국에서 모두 여덟 편이 출간됐는데

뒤로 가면서 살짝 힘이 빠지긴 했어도 무척 개성있고 재미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시리즈 다섯 편째 작품인 ‘소멸’을 제외하곤 모두 품절상태인데

기회가 된다면 중고서적으로라도 이 시리즈를 만나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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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ㅣ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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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킬러들이 각자의 미션과 사연을 가진 채 모리오카 행 신칸센에 오른다.

아들을 중태에 빠뜨린 소년 ‘왕자’에게 복수하려는 왕년의 킬러 ‘기무라’.

납치됐던 보스의 아들을 구하고 몸값이 든 트렁크를 운반하려는 콤비 킬러 ‘밀감’과 ‘레몬’.

파트너인 ‘마리아’의 지시로 ‘밀감’과 ‘레몬’이 운반 중인 몸값 트렁크를 탈취하려는 ‘나나오’.

그 외에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신칸센 안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인명을 ‘놀잇감’으로 여기는 14살 사이코패스 ‘왕자’의 잔혹하고도 교활한 잔꾀로 인해

시속 200km로 달리는 신칸센은 말 그대로 피범벅인 된 채 시체열차가 되고 만다.

종착역인 모리오카에 이르기 전에 과연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을 것인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 3부작’은 ‘그래스호퍼’-‘마리아비틀’-‘악스’로 이어집니다.

서평을 쓰지 않던 10년 전쯤 ‘그래스호퍼’를 읽었고,

두 번째 작품인 ‘마리아비틀’을 건너뛰고 세 번째 작품인 ‘악스’를 2년 전에 먼저 읽었는데,

사실 어느 작품을 먼저 읽든 큰 관계는 없습니다.

물론 (기억은 거의 안 나지만) ‘그래스호퍼’에 등장했던 전설적인 킬러들의 이름이

‘마리아비틀’ 곳곳에서 종종 언급되곤 하지만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서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각자의 사연과 미션을 위해 신칸센에 오른 인물들은 마치 리그전처럼 충돌합니다.

거액의 몸값이 든 트렁크를 놓고 거친 숨바꼭질을 벌이던 그들은

상대가 동종업종에 종사하는 킬러라는 것을 인지하면서 팽팽하게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잔혹하기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4살 사이코패스 ‘왕자’의 농간 덕분에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킬러들은 속절없이 피비린내를 자초하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새 인물들까지 가세하면서 신칸센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대충돌은

종착역인 모리오카에 이를 때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킬러들마다 제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는 점이 내내 눈길을 끌었는데,

한때 잘 나가는 킬러였지만 지금은 알코올중독에 부모에게 어른 취급도 못 받는 기무라,

꼬마기차 토마스의 광팬이자 다분히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분위기 파악 잘 못하는 레몬,

킬러의 교과서 같은 예리함과 촉을 지닌 밀감,

머피의 법칙의 최대 피해자이자 사사건건 불운을 몰고 다니는 나나오 등

잔혹한 킬러지만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풀린 듯한 친근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희미하긴 하지만 시리즈 첫 작품인 ‘그래스호퍼’의 인상은 “정말 재미있다!” 그 자체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청부살인업자의 이야기라서 ‘재미’라는 표현 자체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어설픈 주제의식이나 철학 같은 사족 없이 거침없이 폭주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비틀’보다 먼저 읽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악스’는 중도에 포기했는데,

‘아내에게 구박 받고 쩔쩔 매는 경력 20년의 살인청부업자’라는 주인공 설정은 흥미로웠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읽을거리가 너무 없던 나머지 도중에 책을 덮고 말았습니다.

 

‘마리아비틀’은 굳이 비교하자면 두 작품의 딱 중간쯤 되는 작품입니다.

휘몰아치는 재미와 긴장감은 ‘그래스호퍼’와 맞먹지만

왠지 ‘재미있는 이야기’ 그 이상의 뭔가를 담으려 했던 작가의 의도가 너무 도드라진 나머지

사족 같은 주제의식의 과잉이 눈에 거슬렸고 그 결과 분량도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본편 뒤에 실린 일본 평론가의 해설이나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면,

“‘인간의 폭력과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라고 돼있는데,

사실 일반적인 폭력과 선악의 개념이 (킬러들이 주인공인) 이 작품에서 통용될 리 없으니

이런 소개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14살 사이코패스 ‘왕자’를 통해 ‘용서 받을 수 없는 악’에 대해 거듭 설파한 대목도

이야기의 본 흐름과 동떨어진 채 강요처럼 느껴져서 그다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물론 킬러가 주인공인 이야기니까 단지 말초적인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뜻도 아니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앞뒤 안 가리고 사람을 죽이는 킬러가 미화돼야 한다는 뜻도 아니지만,

거기에다 ‘인간의 폭력과 악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포장을 씌우는 건

안 어울려도 한참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사카 고타로에게 흠뻑 빠진 건 처음 읽은 작품이 ‘사신 치바’와 ‘그래스호퍼’였기 때문인데

(아직 몇몇 대표작을 못 읽었지만) 고백하자면 제겐 이 두 작품이 그의 베스트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뒤로 계속 아쉬움과 실망을 느껴왔다는 얘긴데,

아직 못 읽은 그의 대표작 중 한두 편 정도만이라도

‘사신 치바’와 ‘그래스호퍼’의 감흥을 다시 한 번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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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ㅣ 모노클 시리즈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여덟 번째로 만난 온다 리쿠입니다.

7~8년 전쯤 일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는 ‘목요조곡’, ‘여름의 마지막 장미’부터 시작했는데,

이후 읽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非미스터리 ‘꿀벌과 천둥’까지 제외하면

제대로 된 온다 리쿠의 몽환적 세계를 겪은 것은

‘몽위’, ‘달의 뒷면’, ‘나와 춤을’, ‘Q&A’ 등 네 작품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표 시리즈인 ‘도코노 시리즈’, ‘3월 시리즈’, ‘간바레 메구미 시리즈’는 손도 못 댔으니

어쩌면 아직 온다 리쿠를 “좀 안다.”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평 이전에 이렇듯 구구절절 긴 서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다 리쿠의 ‘전설적 데뷔작’인 이 작품을 포함해서

책장 안에 그녀의 여러 작품이 꽤 오랫동안 방치돼있는 게 사실인데,

매번 손을 댔다가도 어떤 이유에선지 주저하다가 결국 다른 작품을 집어 들곤 했습니다.

그만큼 온다 리쿠의 몽환적 세계에 발을 디디는 게 쉽게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물론 ‘몽위’나 ‘달의 뒷면’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도 있지만,

역시 취향 면에서 보면 온다 리쿠는 전적으로 저와 잘 맞는 작가라고는 할 순 없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마력 덕분에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여섯 번째 사요코’는 1991년에 발표된 온다 리쿠의 데뷔작입니다.

출판사가 정리한 간략한 줄거리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 학기 첫날 사요코라는 여고생이 지방의 고등학교로 전학 온다.

이 학교에는 ‘사요코’라는 수수께끼의 괴담이 전해지고,

붉은 꽃과 열쇠를 물려받아 그해의 ‘사요코’로 지목된 자는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올해는 두 명의 ‘사요코’가 등장하고,

진짜 ‘사요코’의 정체를 밝히려 한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데….

 

줄거리만 보면 학교괴담을 소재로 한 호러와 판타지로 보이지만

그에 못잖게 로맨스를 곁들인 10대의 성장기가 함께 그려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호러와 판타지 서사에도 불구하고 꽤 명쾌하게 읽힐 것 같지만

실은 지금까지 읽은 온다 리쿠의 어느 작품보다 읽는 내내 갈팡질팡했던 작품입니다.

호러와 판타지는 좀처럼 머릿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지 못했고,

로맨스와 성장기는 왠지 따로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무슨 이야기를 읽었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습니다.

 

서평을 쓰기 전에 인터넷 서점과 블로그 등을 통해 여러 독자의 서평을 읽어봤지만,

다소 극과 극을 달리는 서평들을 보며 제가 영 잘못 읽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생각이 비슷한 서평에서 인상적인 구절들을 인용해보면,

 

“오싹함과 무서움마저 없었다면 의미 없는 책이 될 뻔 했다.”

“성장소설, 판타지, 괴담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나고 맙니다.”

“학교 괴담으로 나가다가 괴담이 빠져버리는 이야기.”

 

무슨 내용으로 서평을 써야 할지조차 막막했던 게 사실인데,

쓰다 보니 주절주절 별 알맹이도 없는 넋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 막막한 건, 책장에 아직도 갇혀 있는 십여 편의 온다 리쿠의 작품들인데,

언젠가 읽기야 읽겠지만 어느 대목에서라도 ‘여섯 번째 사요코’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면

아무래도 쉽사리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누구라도 이 작품의 미덕이라든가 작가의 진의를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고마운 일일 텐데

그걸 듣고도 과연 제가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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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배신 ㅣ 스토리콜렉터 84
로렌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비행기 사고로 남편 마크를 잃은 테스는 깊은 절망과 우울에서 허우적댑니다.

그녀의 유일한 의지처이자 안식처는 곧 8살이 되는 아들 제이미가 전부.

그런 그녀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몰아닥칩니다.

갑자기 찾아온 사별 전문상담사 셸리, 동생 마크의 빚을 갚으라며 유산 정리를 보채는 이안,

어느 날인가부터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은 정체불명의 불길한 사내,

그리고 마크가 남긴 막대한 보험금과 그가 테스 몰래 추진하던 비밀 프로젝트의 진실 등

테스는 항우울제로 인해 몽롱한 상태에서 마주친 이 모든 사태들이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 ● ●

 

최근 몇 년간 영미권의 여성-가족 심리스릴러가 봇물처럼 출간돼왔는데,

‘완벽한 배신’ 역시 가족의 붕괴를 겪은 30대 중반의 여성 테스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시작과 동시에 칼에 찔린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 테스의 상황과 함께

(테스에 따르면) 아들 제이미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설명됩니다.

이어 50여일 전으로 되돌아가 테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테스의 심문 장면, 상담사 셸리와 마크의 형 이안의 진술 장면이 끼어드는데

덕분에 ‘누가 테스를 찔렀는가?’ ‘테스의 주장대로 제이미는 납치됐나?’라는 미스터리가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됩니다.

 

마치 테스가 죽은 남편 마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구어체로 쓰인 문장들은

테스의 불안과 공포, 절망과 자학의 감정을 더욱 애절하고 피부에 와 닿게 만듭니다.

남편 마크와 아들 제이미의 존재가 이 세상의 전부였던 테스에게

마크의 죽음과 제이미의 이른 사춘기 같은 반항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인데,

그런 심정들을 저 세상에 있는 마크에게 절절이 풀어놓는 듯한 감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미처 몰랐던 마크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는 것과 함께

마크가 남긴 유산을 노리는 듯한 미지의 인물들로 인한 불안과 공포 역시

객관적인 서술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강력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완벽한 배신’이란 제목은 꽤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제목입니다.

말 그대로의 ‘배신’이란 의미만 있다면 이야기가 다소 싱거울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과연 누가 테스를 배신했는가?”라는 의문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작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모든 등장인물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곤

독자로 하여금 그 미스터리의 진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보기 좋게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칩니다.

또, ‘진범 찾기’를 엔딩으로 삼았던 기존의 심리스릴러와는 사뭇 다른,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지는 심정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됩니다.

 

다만, 450여 페이지 내내 한탄과 후회와 자책에 빠진 테스를 바라보는 일은 힘에 부칩니다.

1인칭 편지체의 문장은 앞서 얘기한 장점과 미덕도 갖춘 게 분명하지만

반대로 그 안의 감정들이 너무 농도 짙게 전달되기 때문에 피로감을 높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반칙’까지는 아니어도 앞서 읽은 분량들을 조금은 허망하게 만드는 엔딩 역시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몇몇 트릭과 장치와 인물의 비밀은 다소 쉽고 안이하게 설명되거나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첫 장편에서 이만한 결과를 낸 걸 보면 작가의 필력이 평범치 않아 보이는 것은 분명합니다.

언제쯤 신작 소식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작가목록에 올려놓아도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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