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메이드 2 - 하우스메이드의 비밀
프리다 맥파든 지음, 황성연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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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의 나이에 대학에 다니며 사회복지사가 될 계획을 갖고 있는 밀리 캘러웨이는 살인 전과 때문에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하우스메이드 외에는 일자리를 찾기 힘든 형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IT 재벌인 더글러스 개릭의 연락을 받고 맨해튼 펜트하우스의 하우스메이드가 된 밀리는 자신의 천운에 감격하지만, 이내 평범하지 않은 개릭 부부의 상황을 감지하곤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손님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 웬디, 처음엔 친절했지만 밀리가 웬디에게 관심을 갖자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남편 더글러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인 웬디의 멍투성이 얼굴, 그리고 빨래와 세면대에서 발견되는 핏자국 등 밀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일이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밀리는 웬디가 처한 끔직한 상황을 직접 목격합니다.

 


서평에 앞서 ‘편집’에 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빠른 속도로 책을 읽는 편인데도 12개나 되는 오타를 발견했는데, 모든 독자가 다 그렇진 않겠지만 제 경우엔 책읽기를 방해하는 오타를 견디지 못합니다. 또 그런 상태로 책을 판매한 출판사의 태도도, 일반독자조차 쉽게 찾아내는 12개의 오타를 방치한 편집자와 번역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우스메이드 2’는 내용만으론 별 5개도 충분하지만, 편집에 관한 한 별 1개도 주고 싶지 않습니다.

 

과거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10년을 복역한 밀리는 출소 후 하우스메이드로 일하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을 여러 번 구해낸 적 있습니다. 때론 불법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남자들을 응징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 결코 외면하지 못하는 ‘모태 오지라퍼’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밀리가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한 건 그것이 “법을 어기지 않고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리는 맨해튼의 펜트하우스에서 또다시 가혹한 상황에 처합니다. 전형적인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웬디를 모르는 척할 수 없었던 밀리는 그녀를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씁니다.

 

밀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건 6개월 된 연인 브록의 존재입니다. 은수저 출신의 변호사인 그는 밀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결혼까지 꿈꿉니다. 하지만 밀리는 자신의 살인 전과를 언제까지고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와의 사랑이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그런 와중에 펜트하우스의 일이 터지자 밀리는 자신에겐 사랑과 결혼이란 게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허상임을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한편 위기에 처한 여자들을 구할 때마다 자신과 함께 행동했던 전 연인의 존재가 늘 밀리의 마음 한 편에 남아있습니다. 그가 곁에 있다면 웬디를 구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에 2년 전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고 이별을 초래한 그가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이 연인의 이름이나 캐릭터를 밝히지 않은 건 전작인 ‘하우스메이드’에 대한 대형 스포일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서평에서 이 연인의 이름을 공개할 텐데, ‘하우스메이드’를 읽지 않은 채 그 서평들을 접한 독자라면 아쉽지만 그 스포일러를 감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별 1개를 뺄 정도로 아쉬웠던 건 ‘서론’이 너무나도 길고 장황했던 점입니다. 본격적인 사건은 중반부쯤에 터지는데, 그 전까지는 전작과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되는데다 유사한 상황들이 반복될 뿐이고, 현재 연인인 브록과의 갈등 역시 밀리를 ‘민폐캐릭터’로 보이게 할 정도로 지루하게 되풀이됩니다.

물론 본격적인 사건이 터진 뒤부터 마지막 장까지는 프리다 맥파든 특유의 몰아치는 반전과 짜릿한 스릴러 서사의 쾌감이 연이어 폭죽처럼 터집니다. 펜트하우스에서 벌어진 폭력과 학대의 진상이 드러나는가 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 속에서 허우적대던 밀리는 천운 같은 반전 덕분에 큰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모태 오지라퍼 하우스메이드’로서의 타고난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우스메이드 시리즈’는 모두 세 편이 출간됐습니다. ‘The Housemaid's Wedding’이라는 단편이 있긴 하지만, 장편으론 2024년에 출간된 ‘The Housemaid Is Watching’이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치명적인 하우스메이드 밀리 캘러웨이의 세 번째 활약도 조만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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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로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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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영문학 강사 시나 고스케는 동료 오쓰코쓰와 함께 신슈의 N호수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하고, 조카딸 유미와 단둘이 사는 전직 의사 우도의 저택에 방을 빌린다. 그런데 N호수로 향하는 버스에서 한 노파가 “그곳에 가면 피의 비가 내리고 N호수가 새빨갛게 물들 것”이라는 예언을 남긴 채 사라진다. 저택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도와 유미 외에 다른 이의 기척을 느끼고, 얼마 후 호숫가에서 신비로운 미소년을 발견한다. 한데 미소년 목격담을 들은 우도는 왠지 심하게 동요한다. 그리고 인근의 화산이 폭발한 날, 시나와 오쓰코쓰는 ‘신주로’라는 이름의 그 미소년이 우도의 목을 베는 광경을 목격한다. (출판사 소개글을 일부 수정 후 인용했습니다)

 


유리 린타로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조한 더벅머리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보다 꼭 10년 앞선 1936년 ‘신주로’로 데뷔한 경시청 수사과장 출신의 명탐정입니다. “백발 머리를 보면 일흔 살 노인 같지만 건장한 몸이나 까무잡잡한 얼굴은 그가 아직 40대의 장정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라는 묘사대로 일단 외모부터 긴다이치 못잖게 독특한데, 애초 요코미조 세이시가 시리즈까지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은 아닌 듯 ‘신주로’에서 유리 린타로의 활약은 분량이나 역할 면에서 조연 정도에 그칩니다. 또 소개글에 따르면 “신문기자 미쓰기 슌스케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 ‘유리·미쓰기’ 시리즈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신주로’에 미쓰기가 등장하지 않은 걸 보면 유리 린타로가 주인공으로서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건 후속작부터가 아닐까, 추정됩니다.

 

유리 린타로가 중반부쯤 등장해서 미스터리 해결사를 맡긴 하지만, ‘신주로’의 메인 주인공은 화자이자 연쇄살인사건의 목격자인 시나 고스케입니다. 오쓰코쓰에게 이끌려 신슈의 N호수를 찾았다가 비현실적인 외모를 지닌 미소년 신주로의 연쇄살인을 목격한 시나는 경찰의 수사가 미궁에 빠진 가운데 도쿄로 돌아와서도 좀처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한동안 행방이 묘연하던 신주로가 도쿄에 출몰하여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자 다음 희생자는 자신이 아닐까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팔묘촌’을 비롯하여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여러 작품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신주로’는 좀더 고풍스러운 문체, 집요함마저 느껴지는 탐미적인 분위기,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설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화산 분화와 함께 지옥으로 변한 N호수, 호숫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기괴한 저택, 괴팍한 백부와 함께 사는 아름다운 외모의 유미, 그리고 그 일대에 출몰하여 피해자의 목을 잘라 사라지는 미소년 살인귀 신주로 등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보다 좀더 날것 같은 분위기와 음울하면서도 관능적인 기운을 발산하는 인물들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또한 진주라는 이름(真珠郎)에 걸맞게 비현실적인 외모를 지닌 신주로가 어떻게 살인귀가 된 건지, 살인의 동기와 목적은 무엇이며 왜 잘린 목을 들고 사라지는 건지, 목표물만 살해할 뿐 현장의 목격자들을 방치하거나 부상만 입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여러 가지 미스터리가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극합니다.

 


“본격 추리소설로의 노선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 과도기적 작품이므로 트릭과 동기의 치밀성은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라는 ‘작품해설’ 속 설명대로 마지막에 진실이 밝혀지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살짝 아쉬움을 느낀 독자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요코미조 세이시 특유의 거칠고 잔인하면서도 애잔함을 놓치지 않는 고전미를 한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트릭 역시 찬찬히 복기하다 보면 결코 부족하지도, 허술하지도 않다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색창연한 시대적 배경,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아날로그풍의 감정들, 그리고 탐욕과 복수와 배신의 조합이 낳은 참혹한 연쇄살인은 시대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제 취향에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습니다.

 

하반기엔 ‘유리 린타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자 또 하나의 명품인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신주로’에서는 딱 필요한 만큼의 활약만 펼치고 퇴장해서 무척 아쉬웠지만, 시리즈 마지막 작품에선 명탐정 유리 린타로의 매력을 제대로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신주로’와 함께 수록된 단편 ‘공작 병풍’(1940)은 유리 린타로가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로맨스와 판타지와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결합된 단편이라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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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12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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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연방법원 판사 줄리아 커먼스와 그녀의 경호원 앨런 드레이먼트가 판사의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새 파트너 프레더리카 화이트와 함께 플로리다로 날아간 에이머스 데커는 사건 현장을 보자마자 위화감에 사로잡힙니다. 현지 요원은 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품은 자의 보복살인으로 추정했지만, 한 사람은 총으로 깔끔하게, 한 사람은 칼로 무참하게 살해된 현장을 본 데커는 ‘별개의 살인사건’일 가능성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 시절 첫 파트너였던 메리의 자살, 데커의 뇌에 이상 변화가 감지됐다는 연구소의 통보문, 느닷없이 배정된 새 파트너, 그리고 최근 들어 자꾸 떠오르는 죽은 아내와 딸의 추억 등 데커는 극도로 불안하고 심란한 상태에서 좀처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해 곤경에 빠집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에이머스 데커의 일곱 번째 이야기인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여느 전작들보다 이 시리즈의 팬들에게 호기심과 기대감, 안타까움과 연민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오랜 파트너 알렉스 재미슨이 뉴욕으로 떠난 뒤 데커에게 반강제로 배정된 새 파트너 화이트는 첫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물론 데커와 비슷한 가슴 아픈 상처를 지닌데다 수차례 충돌과 화해를 거듭하며 데커의 진지한 파트너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단숨에 시리즈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한편 매 작품마다 아내 캐시와 딸 몰리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던 데커가 메리의 자살로 인해 더더욱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며 우울증 이상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라든가 뇌에 이상 변화가 감지됐다는 통보 때문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이는 장면은 그에게 주어진 잔혹한 운명을 다시 한 번 절절히 느끼게 만들어서 독자의 마음을 안타깝고 스산하게 만듭니다.

 

데커는 화이트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다른 범인에 의해 벌어진 별개의 살인사건’으로 여기고 수사를 진행합니다. 탐문을 거듭할수록 판사와 경호원의 숨겨진 사연들이 밝혀지고 두 사람의 살해 동기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데커의 추론은 힘을 얻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초능력에 가까운 데커의 과잉기억증후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 불안하고 심란한 상태에서 좀처럼 수사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새 파트너 화이트가 큰 힘을 발휘합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듯한 데커에게 정면으로 대들기도 하고, 언성을 높여가며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던 화이트지만 그의 과거 속 비극과 현재의 고통을 알게 된 뒤로는 자신의 가족사와 속내까지 터놓으며 치유와 위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의 구도만 보면 592페이지라는 분량은 다소 과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데커의 무간지옥 같은 고뇌, 화이트의 현실적인 고민,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롤러코스터 같은 교감이 미스터리 못잖게 중요한 서사라서 그 부분에 꽤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 작품입니다. 다른 작품 같으면 과도한 분량에 다소 불만을 품었겠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는 사건보다 두 사람의 개인사가 더 강렬한 인상을 풍겨서 조금도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데커와 화이트의 수사는 판사와 경호원 주변 인물들을 거듭 탐문하는 게 전부입니다. 물론 탐문 중에 얻어낸 정보를 통해 새 인물들이 조사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하고, 오랜 과거 속 사건과 인물까지 소환되면서 사건의 외연은 초반보다 엄청나게 확장됩니다. 막판까지 반전이 거듭되는 가운데 화이트의 도움으로 초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게 된 데커는 판사와 경호원의 죽음의 진상을 극적으로 밝히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했던 몇 가지 의문 - 왜 데커에게 새 파트너가 갑자기 배정됐나? 왜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현지 요원들이 아닌 데커와 화이트가 수사의 주체가 됐나? - 이 마지막 장에서 풀리면서 짜릿한 쾌감과 함께 앞으로 이어질 후속작에서의 두 사람의 활약에 큰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검색해보니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2022) 이후 에이머스 데커의 여덟 번째 이야기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6시 20분의 남자 시리즈’가 3편까지 나왔던데, 데이비드 발다치가 언제쯤 데커-화이트 콤비의 두 번째 이야기를 선사할지 그저 궁금하고 기다려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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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아일랜드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임희선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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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아일랜드’에서 “무인도에 딱 세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이란 주제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던 단골손님 여덟 명이 실제로 무인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낚싯대, 에어매트리스, 공기총, 술 등 제각각 세 가지 물건만 지닌 채 무인도에 도착한 일행은 낭만적인 첫날을 보내지만, 다음날 아침 그들 앞엔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타고 온 배가 사라진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섬을 빠져나갈 수 있으며 유일한 생존자는 10억엔의 상금을 받게 된다”는 충격적인 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다 함께 섬을 빠져나가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며 협력하지만 얼마 안 가 첫 희생자가 나타나자 상황은 급변합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공포와 두려움 속에 섬은 이내 피비린내로 뒤덮이기 시작합니다.

 

(줄거리 요약 가운데 일행이 섬에 들어가게 된 ‘경위’와 생존경쟁에 내몰리게 된 ‘과정’을 생략했는데, 나름 이 작품의 첫 반전이기 때문입니다. 출판사 소개글과 뒤표지 카피에는 그 ‘경위’와 ‘과정’이 모두 공개되어 있는데, 가급적이면 아무 정보 없이 본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소개된 아키요시 리카코의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한 번도 이런 장르를 다룬 적이 없는 작가라 반가움에 앞서 뜻밖이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별 5개를 준 ‘성모’와 ‘암흑소녀’처럼 서스펜스와 미스터리가 결합된 서사가 그녀의 ‘전공’이라고 단정해왔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기타노 타케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배틀 로얄’(2002)을 너무 좋아해서 아키요시 리카코가 그린 서바이벌 스릴러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는 영화 ‘배틀 로얄’이나 수잔 콜린스의 ‘헝거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가운데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지고 험난한 지형의 무인도를 배경으로 피비린내 나는 살육극이 연이어 벌어집니다. 같은 술집의 단골들로 늘 웃음과 농담을 주고받던 인물들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타인들의 진면목에 놀라기도 하고, 스스로도 서바이벌 스릴러의 인물답게 극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인상 좋은 아저씨 같던 인물은 실은 칼로 사람을 베는 손맛을 갈망하던 사이코패스였고, 유튜버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청년은 살인이 난무하는 가운데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으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습니다. 모두에게 민폐 캐릭터로 낙인찍힌 인물과 모두에게 호감과 안도감을 주던 인물 등 갖가지 군상들이 살아남기 위해 변신하는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매 챕터마다 화자가 바뀌는 가운데 희생자가 발생하는데, 작가는 매번 독자의 예상을 뒤집어가며 전략적 이합집산을 꾸미고 다음 희생자를 선정하곤 합니다. 마지막 생존자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지만 클라이맥스와 엔딩에 이르는 과정에 연이어 반전이 벌어지곤 해서 끝까지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서바이벌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속도감도 무척 빠르고 등장인물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다만 사건 위주로 급하게 전개되다 보니 전체적으로 가볍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었던 점(특히 생존을 건 마지막 대결은 현실감이 떨어질 정도로 너무 가볍고 만화스러웠습니다), 다소 피상적으로만 그려진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좀더 깊고 디테일했더라면 좋았을 거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300페이지가 살짝 넘는 짧은 분량인데 제가 아쉽게 느낀 부분들을 꾹꾹 눌러 담아 한 100페이지 정도 늘렸더라면 훨씬 더 인상적인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작품으로 아키요시 리카코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살짝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는데, ‘성모’와 ‘암흑동화’는 그녀의 진가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니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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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귀결 ㅣ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3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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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하라 이치의 서술트릭 ‘도착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도착의 귀결’은 구성과 편집 모두 특이한 작품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를 연상시키는 절해고도에서의 밀실살인사건을 그린 ‘목매다는 섬’과, 스티븐 킹의 ‘미저리’처럼 한 작가가 열혈팬에게 감금된 채 강제로 밀실미스터리를 집필하는 이야기를 다룬 ‘감금자’ 등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서술트릭의 실체를 설명하는 해결편 챕터 ‘도착의 귀결’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재미있는 건 두 편의 소설 가운데 어느 쪽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는 점인데, ‘일러두기’에 따르면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목매다는 섬’을 먼저, 다시 읽을 때는 ‘감금자’를 먼저 읽어볼 것을 권유합니다. 편집 역시 독특해서 해결편 챕터 ‘도착의 귀결’이 봉인된 채 책 한가운데에 들어있고 그 앞뒤로 ‘목매다는 섬’과 ‘감금자’가 붙어있는데, ‘감금자’를 읽으려면 책을 180도 뒤집어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구성과 편집마저 트릭의 일환으로 삼은 느낌이랄까요?

 


시리즈 마지막 편답게 앞선 두 작품(‘도착의 론도’, ‘도착의 사각’)에 등장했던 인물과 공간이 총출연합니다. ‘도착의 론도’에서 신인상 응모작을 도둑맞은 뒤 복수에 나섰던 작가 야마모토 야스오가 두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도착의 사각’의 주 무대인 연립주택 메종 선라이즈와 201호의 여자 시미즈 마유미는 ‘감금자’의 주요 배경이자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목매다는 섬’은 니가타 현의 절해고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 밀실살인사건을 다루는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시미즈 마유미라는 여자에게 이끌려 섬에 도착한 미스터리 작가 야마모토 야스오가 탐정 재능을 발휘하여 진상을 밝히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감금자’는 넘버원 팬을 자처하는 여자에게 감금당한 야마모토 야스오가 밀실미스터리를 집필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겪는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를 그립니다. 그런데 고심 끝에 그가 집필을 시작한 미스터리의 제목은 바로 ‘목매다는 섬’입니다.

 

시리즈 1~2편인 ‘도착의 론도’와 ‘도착의 사각’이 서술트릭 초심자에게도 쉽게 이해된 작품들이었다면, ‘도착의 귀결’은 미스터리 마니아들조차 “어렵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다소 난해한 작품입니다. 전작들에 비해 좀더 심오하고 고급스런 서술트릭이 구사된 건 분명하지만 몇몇 무리한 설정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독자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제가 난해하게 느낀 이유를 요약해보면, 두 편의 소설 모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대목들이 적잖이 등장한다는 점, (꿈속에서 꿈을 꾸는) 이중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 야마모토 야스오의 심리가 워낙 불안정하게 그려져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종종 애매해진 점, 그리고 해결편 챕터를 읽고도 서술트릭의 쾌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개운치 않은 찜찜함이 더 진하게 남은 점 등입니다.

 

저의 오독 또는 이해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다시 한 번 읽을 자신은 없습니다. 간혹 재독의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도착의 귀결’은 에너지 소모가 적잖은데다 난해하게 느낀 대목들을 다시 파헤쳐보고 싶은 생각이 딱히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순전히 심술 가득한 주관적인 이유로 별 3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주고 말았는데, 그래도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여기저기서 서평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제 마음을 움직일 만한 서평을 발견한다면 그땐 주저 없이 다시 읽기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사족으로... 작가는 “전작들을 안 읽어도 괜찮다”고 밝혔지만, ‘도착의 사각’을 읽지 않은 독자는 ‘감금자’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입니다. 아직 이 작품을 안 읽었다면 시리즈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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