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의 귀결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3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오리하라 이치의 서술트릭 도착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도착의 귀결은 구성과 편집 모두 특이한 작품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를 연상시키는 절해고도에서의 밀실살인사건을 그린 목매다는 섬, 스티븐 킹의 미저리처럼 한 작가가 열혈팬에게 감금된 채 강제로 밀실미스터리를 집필하는 이야기를 다룬 감금자등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서술트릭의 실체를 설명하는 해결편 챕터 도착의 귀결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재미있는 건 두 편의 소설 가운데 어느 쪽을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는 점인데, ‘일러두기에 따르면 이 작품을 처음 읽을 때는 목매다는 섬을 먼저, 다시 읽을 때는 감금자를 먼저 읽어볼 것을 권유합니다. 편집 역시 독특해서 해결편 챕터 도착의 귀결이 봉인된 채 책 한가운데에 들어있고 그 앞뒤로 목매다는 섬감금자가 붙어있는데, ‘감금자를 읽으려면 책을 180도 뒤집어 거꾸로 읽어야 합니다. 구성과 편집마저 트릭의 일환으로 삼은 느낌이랄까요?

 


시리즈 마지막 편답게 앞선 두 작품(‘도착의 론도’, ‘도착의 사각’)에 등장했던 인물과 공간이 총출연합니다. ‘도착의 론도에서 신인상 응모작을 도둑맞은 뒤 복수에 나섰던 작가 야마모토 야스오가 두 소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도착의 사각의 주 무대인 연립주택 메종 선라이즈와 201호의 여자 시미즈 마유미는 감금자의 주요 배경이자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목매다는 섬은 니가타 현의 절해고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 밀실살인사건을 다루는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시미즈 마유미라는 여자에게 이끌려 섬에 도착한 미스터리 작가 야마모토 야스오가 탐정 재능을 발휘하여 진상을 밝히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감금자는 넘버원 팬을 자처하는 여자에게 감금당한 야마모토 야스오가 밀실미스터리를 집필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겪는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를 그립니다. 그런데 고심 끝에 그가 집필을 시작한 미스터리의 제목은 바로 목매다는 섬입니다.

 

시리즈 1~2편인 도착의 론도도착의 사각이 서술트릭 초심자에게도 쉽게 이해된 작품들이었다면, ‘도착의 귀결은 미스터리 마니아들조차 어렵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다소 난해한 작품입니다. 전작들에 비해 좀더 심오하고 고급스런 서술트릭이 구사된 건 분명하지만 몇몇 무리한 설정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독자마다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제가 난해하게 느낀 이유를 요약해보면, 두 편의 소설 모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대목들이 적잖이 등장한다는 점, (꿈속에서 꿈을 꾸는) 이중악몽에 시달리는 주인공 야마모토 야스오의 심리가 워낙 불안정하게 그려져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지 종종 애매해진 점, 그리고 해결편 챕터를 읽고도 서술트릭의 쾌감이 느껴지기보다는 개운치 않은 찜찜함이 더 진하게 남은 점 등입니다.

 

저의 오독 또는 이해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다시 한 번 읽을 자신은 없습니다. 간혹 재독의 욕구를 자극하는 작품들이 있긴 하지만 도착의 귀결은 에너지 소모가 적잖은데다 난해하게 느낀 대목들을 다시 파헤쳐보고 싶은 생각이 딱히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순전히 심술 가득한 주관적인 이유로 별 3개라는 야박한 평점을 주고 말았는데, 그래도 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여기저기서 서평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제 마음을 움직일 만한 서평을 발견한다면 그땐 주저 없이 다시 읽기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사족으로... 작가는 전작들을 안 읽어도 괜찮다고 밝혔지만, ‘도착의 사각을 읽지 않은 독자는 감금자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거란 생각입니다. 아직 이 작품을 안 읽었다면 시리즈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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