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커플
재키 캐블러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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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을 떠나 브리스톨의 고급주택가 클리프턴에 자리를 잡은 30대 부부 젬마와 대니는 새 집과 주변 풍광에 만족하며 여유 있는 삶을 만끽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 대니가 사라지고, 젬마는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그 무렵 대니와 비슷한 외모의 남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한 사건 때문에 초긴장상태에 있던 경찰은 대니 역시 동일범에 의한 피해자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정황이 젬마를 가리키기 시작합니다. 경찰은 대니가 오래 전에 런던에서 살해됐을 지도 모른다는 추정과 함께 젬마를 의심하는데, 대니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혐의를 벗을 수 없음을 깨달은 젬마는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힙니다.

 

여러 번 실망을 겪은 탓에 웬만해선 가족이나 부부가 등장하는 심리 스릴러는 읽지 않는 편인데, ‘나를 찾아줘’와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홍보카피에 끌려 읽게 된 작품입니다. 100페이지 내에 확실한 ‘미끼’가 안 보이면 그만두겠다는 생각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초반부터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흥미로운 경찰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어떻게든 끝까지 달려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이야기의 뼈대는 심플합니다. 멀쩡하던 남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와 비슷한 외모의 남자들이 연이어 살해되고, 경찰은 남편을 잃은 아내를 동정하다가 점차 “그녀가 혹시 연쇄살인범이 아닐까?”라고 추정하게 되고, 그러다가 막판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실종과 살인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사라진 남편 때문에 절망에 빠진 젬마의 공포와 불안정한 심리가 꽤 많은 분량에 걸쳐 반복적으로 묘사된 점은 읽기 전부터 각오한 바지만, 그래도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행보가 한 챕터씩 번갈아 전개된 덕분에 지루하고 실망스럽기만 했던 다른 심리 스릴러들에 비하면 페이지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생각지도 못한 단서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젬마가 점차 유력한 용의자로 ‘업그레이드’되는 구성은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 하거니와 “혹시 젬마가 진짜 범인일까?”라는, 위화감 가득한 의구심까지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밝혀진 ‘대니 실종 사건’의 진실이나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은 충격적인 반전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지만, 진범의 범행동기 자체는 예상 밖의 신선함(?)을 제공합니다.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 운이 과도하게 영향을 미치긴 했어도 뜻밖의 범행동기 덕분에 큰 허점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무리수로 평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고, 제 경우엔 심리 스릴러를 향해 한껏 낮아진 눈높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대보다 괜찮았다고 느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눈물과 한숨과 자책이 뒤섞인 젬마의 절망감에 대한 반복적 묘사라든가 경찰과 젬마 모두 각자 억지라는 걸 알면서도 거듭 이리저리 가설을 세워보는 장면들이 간혹 짜증을 일으키긴 했지만 심리 스릴러와 연쇄살인 미스터리가 적절하게 안배돼서 큰 거부감 없이 마지막까지 한 번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그 매력이 온전히 발휘되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에이번 경찰서의 헬레나 경감과 데번 경사 콤비는 시리즈가 기대될 만큼 눈길을 끈 캐릭터였습니다.

 

그리 높은 평점을 주진 못했지만, 심리 스릴러에 지친 독자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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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페이스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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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돈만 밝히는 괴팍한 천재로 소문난 성형외과 의사 히이라기 다카유키. 마취과 의사이자 대학원생으로 히이라기 클리닉에서 일하게 된 아사기리 아스카는 럭비공 같은 히이라기의 괴벽도 괴벽이지만 아름다움을 위해 몸에 칼을 대는 성형 자체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말 못할 사정을 가진 환자들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한 뒤 천재적인 실력으로 완벽한 성형을 이뤄내는 히이라기를 지켜보며 아스카는 복잡한 심정이 됩니다. 어느 날, 4년 전 미제로 남은 ‘성형미인 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형사들이 히이라기를 찾아오자 아스카는 깜짝 놀랍니다. 더구나 프리랜서 언론인까지 히이라기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접근해오자 아스카는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론 4년 전 사건과 히이라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가면병동’, ‘시한병동’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치넨 미키토의 작품입니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인질극과 납치극을 다룬 ‘가면병동’과 ‘시한병동’은 현직 의사인 작가의 지식과 장르물의 미덕이 골고루 배합된 작품들로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에 맞먹는 웰 메이드 메디컬 미스터리였는데, ‘리얼 페이스’ 역시 그에 못잖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미스터리 – 4년 전 ‘성형미인 연쇄살인사건’의 진상과 히이라기 다카유키의 비밀 – 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까지 작가는 여러 환자의 사례를 통해 ‘성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는 괴팍한 천재 히이라기와 돌직구 마취의사 아스카 사이의 충돌을 그립니다. 성형이란 그저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구해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정신외과’라고 주장하는 히이라기는 겉으론 돈만 밝히는 듯 보여도 환자의 사정에 진정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수술을 거부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아내의 얼굴을 전처와 똑같이 바꿔 달라는 재벌, 신분을 바꾸기 위해 다른 얼굴을 요구하는 야쿠자, 성형수술을 거듭한 끝에 엉망이 돼버린 연예인 등 거만하고 유별난 환자들 앞에서 히이라기는 자신만의 성형 철학을 조금도 굽히지 않습니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의 수술비를 요구하면서 말입니다.

반면, 안 그래도 성형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던 아스카는 히이라기의 기행에 깜짝 놀라면서도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성형의 이면에 자리한 새로운 세계에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합기도 유단자인 아스카는 ‘고용주’인 히이라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태도를 보이려고 하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하고,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서는 돌직구 캐릭터인데, 이 작품에서 미스터리 서사를 빼버린다면 히이라기와 아스카의 이야기는 ‘메디컬 코미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쾌하고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프롤로그’와 세 차례에 걸친 ‘막간’ 챕터의 화자는 ‘성형미인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입니다. 경찰은 4년 전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종적을 감춘 인물이 최근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지만, 독자 입장에선 ‘프롤로그’와 ‘막간’을 읽어도 이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속단할 수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린 아스카는 단독으로 4년 전 사건과 히이라기의 비밀을 조사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사실마저도 마지막 장에 이를 데까지 몇 차례의 반전을 겪기 때문에 독자와 아스카 모두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절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습니다.

 

별 0.5개를 빼게 만든 딱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클라이맥스에서 느껴진 억지스러움입니다. 범인의 심리와 행동을 100% 정확하게 예상한 주인공은 마치 천리안 또는 관심법(觀心法)의 능력자처럼 보였는데, 예상과 한 치만 다르게 범인이 행동했더라면 모든 게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현실감도 부족해 보였고 다소 과한 억지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반전을 위한 설정이긴 했지만 왠지 고육지책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본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정신외과’로서의 성형에 관한 이야기와 연쇄살인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데다, 병원 시트콤의 주인공 같은 히이라기와 아스카의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가세하면서 무거움과 가벼움을 롤러코스터처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현직 의사만이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 병원 관련 묘사들은 직접 보는 듯 생생했고, 전작들처럼 마지막까지 독자를 몰아치는 거듭된 반전도 대단했습니다. 개인적으론 히이라기-아스카 콤비가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욕심나기도 하지만, 메디컬 코미디라면 모를까 메디컬 미스터리로 확장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라노벨 풍의 작품들과 ‘동물의 몸에 깃든 저승사자 이야기’를 제외하면 아직 못 읽은 치넨 미키토의 작품이 두어 편 되는데, ‘리얼 페이스’ 덕분에 조만간 허겁지겁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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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ㅣ 마호로 역 시리즈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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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교외의 소도시 마호로에서 ‘다다 심부름집’을 운영하는 다다 게이스케는 어느 날 고교 동창 교텐 하루히코와 우연히 만난 뒤 내키지 않는 동업을 시작합니다. 개 산책, 정원 청소, 문짝 수리 등 “네가 하면 되잖아!” 싶은 의뢰가 대부분이지만 지역 밀착형 심부름센터로서 “무엇이든 맡겨주세요!”라는 경영 방침을 가진 다다 심부름집엔 가지각색의 의뢰인이 찾아옵니다. 혼자 일하는 데 익숙했던 다다는 친하기는커녕 학창시절 심각하게 미워했던 교텐과 함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는데, 거기엔 나름의 사연이 있습니다. 또 둘 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깊고 오래된 상처를 갖고 있지만 결코 서로에게 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년 동안 이런저런 의뢰를 함께 수행하면서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미우라 시온은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를 주로 구사하기 때문에 독하고 잔인한 장르물을 좋아하는 저와는 거리가 먼 작가여야 당연하지만, 일본서점대상 수상작인 ‘배를 엮다’에 반한 뒤로 ‘마사&겐’, ‘그 집에 사는 네 여자’ 등 틈나는 대로 종종 만나오곤 했습니다. 모두 세 편으로 구성된 ‘마호로 역 시리즈’는 여러 번 제목을 들어본데다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라 언젠간 꼭 읽어야지 생각해왔지만, 뒤늦게 개정판이 나오고야 읽을 기회를 잡게 됐습니다.

 

다다 심부름집에 들어오는 의뢰만 보면 가볍고 코믹한 톤의 이야기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또 ‘행복과 구원에 대해 이야기’, ‘두 사람의 오묘하고 유쾌한 동거’라는 홍보 카피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다와 교텐의 의뢰인들은 사소하지만 귀찮은 일거리를 들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야기 역시 팽팽한 긴장감이나 대단한 반전이 깃든 미스터리를 품고 있진 않습니다. 하지만 다다와 교텐의 동거는 유쾌하다기보다는 어딘가 묘한 불편함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행복과 구원은 절대 평화롭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다다와 교텐은 고교 3년 동안 같은 반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습니다. 다다 입장에선 실어증에 걸린 듯 말문을 닫았던 교텐이 못마땅했고, 교텐에게 다다는 존재감 자체가 희미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엔 아무도 모르는 내밀한 사연이 있었고, 그 때문에 다다는 심부름집 소파를 제멋대로 차지한 교텐을 쉽게 내치지 못합니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의 ‘현재의 상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저 둘 다 이혼했고, 자식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정도만 알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10여 년 전의 고교시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돼있는 건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 두 사람이 타인들의 의뢰를 함께 수행하면서 조금씩 상대의 상처를 감지하기 시작하고, 끝내 그 상처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생각이 너무나도 달라 몇 번의 충돌 끝에 두 사람은 파국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뒤늦게 상대가 자신에게 행복과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귀찮고 사소한 일처럼 보였던 의뢰는 간혹 의외의 상황을 촉발시키곤 합니다. 살인, 마약, 폭력, 출생의 비밀 등 예기치 못한 사태들이 끼어들면서 다다와 교텐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그 덕분에 마호로 경찰서 형사의 집요한 관심을 사기도 합니다. 또 마호로 역 뒷골목의 매춘부, 새파랗게 젊은 조폭 보스, 부모가 없으면 좋겠다는 당돌한 초등학생, 살인을 저지른 친구를 비호하는 여고생 등 강렬한 캐릭터의 조연들이 등장하여 이야기가 느슨해질 만하면 때맞춰 긴장감을 일으키곤 합니다. 물론 이들은 알게 모르게 다다와 교텐 사이의 멀고도 깊은 골을 조금씩 좁혀주는 역할을 맡는데, 이 매력적인 조연들이 이어지는 시리즈 후속편에서도 그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미우라 시온의 작품이니만큼 씁쓸한 비극으로 마무리되지 않을 거란 건 익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다다와 교텐이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깨닫는, 그래서 “상처는 언젠가 회복된다.”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소 쉽고 안이해 보였던 건 무척 아쉬웠습니다. 나름 큰 고비와 갈등을 겪은 뒤에 얻은 깨달음이긴 하지만, 그 고비와 갈등이 조금만 더 세고 길게 그려졌더라면 다다와 교텐의 해피엔딩이 훨씬 더 짙은 여운을 남겨줬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은 나오키상을 수상했고, 후속작인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은 TV드라마로, ‘마호로 역 광시곡’은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극성(劇性)만 놓고 보면 후속작들이 더 강렬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는데, 기대보다 약간은 밋밋하게 읽힌 시리즈 첫 편 때문인지 언제쯤 다다와 교텐의 다음 이야기를 읽게 될지는 장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읽지 못한 미우라 시온의 작품은 늘 관심권 안에 두고 지켜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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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ㅣ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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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크리스토프와 긴 여행을 준비하던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11반의 피아 키르히호프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벌어진 연이은 살인사건 탓에 여행을 포기하고 수사에 합류합니다. 희생자들은 평범하고 원만한 사람들이었지만, 파괴력이 큰 총알에 의해 뇌와 심장을 관통당합니다. 단서 하나 못 잡고 당황하던 피아와 강력11반 반장 보덴슈타인은 어느 날 부고장으로 꾸며진 범인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범인이 10년 전 장기이식수술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복수를 벌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무수한 용의자만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 그 누구도 범인으로 특정하기 힘든 난감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타우누스 스나이퍼’로 별명 붙은 범인의 복수극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지나 새해가 돼서도 멈출 줄 모릅니다.

 

‘타우누스 시리즈’ 가운데 뿌리 깊은 원한에 기인한 복수극을 그린 ‘깊은 상처’와 여러 모로 비슷한 느낌을 준 작품입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에다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까지 장착한 추악한 인간들, 그들로 인해 몸과 마음에 치유 불가능한 상처를 입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했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상처받은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탐욕의 화신들을 향해 복수하는 범인 등 캐릭터와 사건은 물론 정서나 여운에 이르기까지 닮은 부분이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초반부터 범인이 뛰어난 저격수라는 점은 물론 그 정체가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지만, ‘누구나’ 범인이 될 가능성과 동기를 지니고 있기에 독자는 마지막까지 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또한 피해자 가족에게 전달된 부고장 형식의 메시지를 통해 범인의 의중과 희생자들 사이의 연관성까지 공개함으로써 경찰과 독자에게 일종의 ‘도전장’을 던지기도 합니다.

 

“죄 지은 자들은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 그들이 무관심, 욕심, 허영, 부주의를 통해 초래한 것과 똑같은 고통을... 나는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리러 왔으니 죄를 짊어진 자들은 두려움에 떨 것이다.” (p214)

 

하지만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비롯한 호프하임 경찰서 강력11반은 희생자들의 면면이 범인의 주장처럼 ‘죄를 짊어진 자들’이 아닌 탓에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범인의 목적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는 것이라는 걸 깨닫곤 큰 충격에 빠집니다.

 

범행 자체는 끔찍하고 잔혹하지만,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물론 독자마저도 출판사의 소개글대로 “배신감과 더불어 깊은 슬픔과 공감”이라는 복잡하고 역설적인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누구를 혐오해야 할지, 누구를 동정해야 할지, 정답을 알면서도 선뜻 답을 낼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할까요?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보덴슈타인이 여러 차례 순도 100%의 과격한 분노를 쏟아낸 건 어쩌면 ‘복잡하고 역설적인 감정에 빠진 독자’를 대변하고 위로하기 위해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나이퍼에 의한 연쇄살인사건 만큼이나 피아와 보덴슈타인이 겪는 가족 문제가 적잖은 분량에 걸쳐 묘사됩니다. 결혼을 앞둔 설렘, 아직도 앙금이 남은 전 남편 헤닝과의 관계, 그리고 20년 넘게 벽을 쌓아놓고 살아온 부모형제에 대한 증오심 등 피아의 마음속에서 복잡하게 자리 잡은 가족에 대한 애증이 그려지는가 하면, 이혼 후 삶의 뿌리가 흔들렸지만 이제는 거의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던 보덴슈타인이 실은 여전히 혼란의 한복판에 놓여있음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줍니다. 가족에 대한 두 사람의 애증과 혼란은 범인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들의 사연과 맞물려 가족이란 무엇인지, 언제나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인지, 혹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존재는 아닌지 등 어려운 질문들을 연이어 던집니다.

 

‘타우누스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개인적인 수준의 사건들을 좀더 큰 맥락의 서사 - 역사적 배경, 사회구조적 문제, 지도층의 도덕적 부패 등과 연관시킴으로써 단순히 ‘범인 찾기’에 그치지 않고 묵직한 여운과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데 있습니다. ‘산 자와 죽은 자’ 역시 그런 점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야금야금 늘어나다가 이제는 가뿐히 600페이지를 넘기는 게 당연시된 분량이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적 복수라는 소재에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미덕까지 겸비한 덕분에, 또 평소보다 더 많이 힘들어하고 더 많이 괴로워하고 더 날것 같은 감정들을 쏟아낸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매력적인 콤비 플레이 덕분에 시리즈 가운데 랭킹을 매긴다면 꽤 상위권에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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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늑대 ㅣ 스토리콜렉터 16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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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하임 경찰서 강력 11팀의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연이어 터진 미스터리한 사건들 때문에 곤혹스런 지경에 빠집니다. 성폭행과 학대의 흔적을 지닌 채 익사체로 발견된 소녀 사건은 신원확인조차 안 돼 막다른 벽에 부딪혔고, 유명 방송인 한나 헤르츠만이 지독하게 폭행당한 뒤 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사건 역시 단서 하나 잡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2년 전 정직 당했던 악명 높은 동료 프랑크 벤케가 갑자기 지역범죄수사국 내사팀이 되어 나타나선 복수를 다짐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던 세 개의 사건은 시간이 갈수록 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하고, 피아는 지금껏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끔찍한 아동 성범죄가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좋아하지만 어린 소년, 소녀가 피해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학대와 성범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사악한 늑대’는 이른바 아동 포르노 마피아의 끔찍한 만행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 두 번째 읽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겁고 불편한 책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앞선 시리즈들이 늘 그랬듯 굉장히 많은 등장인물과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여러 사건이 초반부터 독자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특히 ‘사악한 늑대’는 세 개의 사건이 하나 같이 복잡하게 설정돼있어서 더 어지러웠는데, 누구나 막판에 이 사건들이 한 방향으로 수렴될 거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중반까지만 해도 과연 어떤 식으로 접점을 이룰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는 제각각 흘러가기만 합니다.

 

익사체로 발견된 소녀 사건이 3주가 되도록 성과가 없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유명 방송인 한나 헤르츠만의 납치-폭행 사건에 투입됩니다. 유력한 용의자를 두 명이나 포착했지만 행방이 묘연하거나 혐의점을 찾지 못해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자 피아와 보덴슈타인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합니다.

“이번 사건은 정말이지 꼬이고 꼬여서 풀릴 줄 몰랐다.”(p323)는 피아의 푸념처럼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사건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합니다. 그만큼 난감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면 당연히 흥미진진하고 긴장감이 넘쳐야 하는데, 실은 이 작품이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또 3/4지점쯤부터 폭발적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면 꽤나 야박한 점수를 주고도 남았을 만큼 중반까지의 이야기는 산만하고 느슨하고 지루하게 읽힙니다. 뭐랄까... 충격적인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위해 과도할 정도로 기초공사를 탄탄하게 한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세 사건의 접점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그 접점이 다름 아닌 독일과 유럽의 권력층과 부유층으로 구성된 아동 포르노 마피아라는 게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 건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비롯하여 중요한 조연들에게 피해자 또래의 딸이 있다는 점, 그래서 그들 모두 진상에 다가갈수록 자신의 딸들도 ‘늑대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겁에 질리는 모습들입니다. 또 사방팔방에 인맥과 조직을 갖춘 아동 포르노 마피아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들을 가차 없이 파멸시키는 대목이나 어렸을 적 학대를 당했지만 성장하면서 더 끔찍한 가해자가 돼버린 인물, 그리고 ‘늑대들’에게 삶과 인격이 완전히 파괴당한 피해자들의 사연 등은 무거움이나 불편함 이상의 착잡한 감정을 독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습니다.

 

아동 포르노 마피아 이야기만큼 독자의 눈길을 끈 건 피아와 보덴슈타인에게 복수를 선언한 예전 동료 프랑크 벤케의 과거사입니다. (사실 아동 포르노 마피아와 벤케의 과거사를 하나로 엮은 건 살짝 무리수처럼 보이긴 했습니다.) 애초 전직 군인 출신으로 유능한 형사였던 벤케를 개망나니에 악의로 가득 찬 인물로 만든 10여 년 전의 사건은 그 자체로 무척 흥미진진한데, 특히 그 사건이 아동 포르노 마피아 사건으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덕분에 피아와 보덴슈타인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건 물론 그들의 상관인 니콜라 엥겔 수사과장의 과거까지 폭로된다는 설정은 독자의 궁금증을 한껏 고조시키고도 남을 만큼 흥미롭습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분량이 늘어나더니 ‘사악한 늑대’에선 기어이 600페이지를 찍고 말았습니다. 중반까지의 산만하고 느슨한 전개만 아니었다면 아동 성범죄라는, 불편하지만 몰입할 수밖에 없는 묵직한 주제가 좀더 독자의 공감을 살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았는데,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넬레 노이하우스로서도 다소 과하더라도 탄탄한 기초공사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그저 막연하게나마 추정할 뿐입니다.

‘사악한 늑대’는 완결되지 않은 거대한 두 개의 떡밥을 남긴 채 마무리됩니다. 비록 읽은 지 7년이 지나긴 했지만 다음 작품인 ‘산 자와 죽은 자’는 별개의 사건을 다룬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연 남겨진 두 개의 떡밥이 어떤 식으로 해소될지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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