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페이스
치넨 미키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돈만 밝히는 괴팍한 천재로 소문난 성형외과 의사 히이라기 다카유키. 마취과 의사이자 대학원생으로 히이라기 클리닉에서 일하게 된 아사기리 아스카는 럭비공 같은 히이라기의 괴벽도 괴벽이지만 아름다움을 위해 몸에 칼을 대는 성형 자체에 대한 반감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말 못할 사정을 가진 환자들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한 뒤 천재적인 실력으로 완벽한 성형을 이뤄내는 히이라기를 지켜보며 아스카는 복잡한 심정이 됩니다. 어느 날, 4년 전 미제로 남은 성형미인 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형사들이 히이라기를 찾아오자 아스카는 깜짝 놀랍니다. 더구나 프리랜서 언론인까지 히이라기에 대한 정보를 캐기 위해 접근해오자 아스카는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론 4년 전 사건과 히이라기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가면병동’, ‘시한병동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치넨 미키토의 작품입니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인질극과 납치극을 다룬 가면병동시한병동은 현직 의사인 작가의 지식과 장르물의 미덕이 골고루 배합된 작품들로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에 맞먹는 웰 메이드 메디컬 미스터리였는데, ‘리얼 페이스역시 그에 못잖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미스터리 4년 전 성형미인 연쇄살인사건의 진상과 히이라기 다카유키의 비밀 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전까지 작가는 여러 환자의 사례를 통해 성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는 괴팍한 천재 히이라기와 돌직구 마취의사 아스카 사이의 충돌을 그립니다. 성형이란 그저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구해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정신외과라고 주장하는 히이라기는 겉으론 돈만 밝히는 듯 보여도 환자의 사정에 진정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수술을 거부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아내의 얼굴을 전처와 똑같이 바꿔 달라는 재벌, 신분을 바꾸기 위해 다른 얼굴을 요구하는 야쿠자, 성형수술을 거듭한 끝에 엉망이 돼버린 연예인 등 거만하고 유별난 환자들 앞에서 히이라기는 자신만의 성형 철학을 조금도 굽히지 않습니다.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의 수술비를 요구하면서 말입니다.

반면, 안 그래도 성형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던 아스카는 히이라기의 기행에 깜짝 놀라면서도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뭔지 조금씩 알아가면서 성형의 이면에 자리한 새로운 세계에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합기도 유단자인 아스카는 고용주인 히이라기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태도를 보이려고 하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기도 하고,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서는 돌직구 캐릭터인데, 이 작품에서 미스터리 서사를 빼버린다면 히이라기와 아스카의 이야기는 메디컬 코미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유쾌하고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프롤로그와 세 차례에 걸친 막간챕터의 화자는 성형미인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입니다. 경찰은 4년 전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종적을 감춘 인물이 최근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지만, 독자 입장에선 프롤로그막간을 읽어도 이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속단할 수 없습니다.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린 아스카는 단독으로 4년 전 사건과 히이라기의 비밀을 조사하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사실마저도 마지막 장에 이를 데까지 몇 차례의 반전을 겪기 때문에 독자와 아스카 모두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절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습니다.

 

0.5개를 빼게 만든 딱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클라이맥스에서 느껴진 억지스러움입니다. 범인의 심리와 행동을 100% 정확하게 예상한 주인공은 마치 천리안 또는 관심법(觀心法)의 능력자처럼 보였는데, 예상과 한 치만 다르게 범인이 행동했더라면 모든 게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현실감도 부족해 보였고 다소 과한 억지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입니다. 반전을 위한 설정이긴 했지만 왠지 고육지책처럼 보였다고 할까요?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본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정신외과로서의 성형에 관한 이야기와 연쇄살인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데다, 병원 시트콤의 주인공 같은 히이라기와 아스카의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가세하면서 무거움과 가벼움을 롤러코스터처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현직 의사만이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 병원 관련 묘사들은 직접 보는 듯 생생했고, 전작들처럼 마지막까지 독자를 몰아치는 거듭된 반전도 대단했습니다. 개인적으론 히이라기-아스카 콤비가 등장하는 시리즈물이 욕심나기도 하지만, 메디컬 코미디라면 모를까 메디컬 미스터리로 확장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라노벨 풍의 작품들과 동물의 몸에 깃든 저승사자 이야기를 제외하면 아직 못 읽은 치넨 미키토의 작품이 두어 편 되는데, ‘리얼 페이스덕분에 조만간 허겁지겁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