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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드타이트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2년 전 이맘 때 구판인 ‘아들의 방’으로 이 작품을 읽고 서평을 쓴 적이 있습니다. 할런 코벤과는 ‘용서할 수 없는’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꽤 근사했던 첫 만남 덕분에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제법 실망을 느꼈고, 고백하자면, 당시에는 별 3개와 함께 거의 혹평에 가까운 서평을 남겼습니다.
한편에선 연이어 여성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진 10대 아들의 행방을 찾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두 이야기는 중후반부에 가서 어렵게 접점을 찾고, 예상치 못한 반전과 함께 숨겨진 비밀을 폭로합니다.

당시의 혹평은 상관없어 보이던 두 사건이 접점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서도, 또 메인 사건인 소년의 실종 계기와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한 탓이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글은 제 블로그에 남아있었습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그 서평을 삭제했기 때문이고, 삭제한 이유는 ‘홀드 타이트’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두 번째 읽은 뒤 그 서평을 찾아보니 제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홀드 타이트’를 읽기 전에는 어차피 처음과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생각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2년 전과는 반대로 큰 기대 없이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그때는 발견 못한 이 작품만의 미덕, 할런 코벤의 필력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이 숙명처럼 주고받아야 했던 애정과 증오심,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요하거나 강요받아야 했던 불편한 관계, 다른 가족의 불행과 내 가족의 불행의 무게를 재보는 어쩔 수 없는 이기심 등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하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홀드 타이트’는 과장 없이 그려내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궤도를 달리는 듯 보였던 연쇄살인사건 역시 뿌리를 찾아가보면 가족이라는 이름의 불편한 과거와 만나게 됩니다. 물론 이 연쇄살인사건의 뿌리를 억지로 주제의식에 맞춰 해석할 필요는 없고, 작품 전체의 재미와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병행 서사’로만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어쨌든 할런 코벤은 두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수렴시키면서 10대 소년의 실종 외에 독자의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맛깔난 서사를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2년 전의 혹평의 이유를 새삼 추정하자면, 아마도 결과에만 너무 집착했던 속전속결 식 책읽기 탓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즉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무엇이고, 10대 소년은 왜 사라졌으며, 두 사건은 어디서, 어떤 모양새로 만날 것인가, 라는 지엽적인 부분에만 신경 쓴 나머지 이야기 전반을 흐르는 큰 서사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 ‘홀드 타이트’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다면,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제겐 별 3개 수준의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그 다음에 읽은 ‘숲’이나 ‘영원히 사라지다’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비판에 가까운 서평을 남긴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사한 오류를 저질렀기를 기대하며(?)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물론, 연이어 세 작품에 대해 비판적인 서평을 남겼던 걸 보면, 분명 할런 코벤은 제 코드와는 잘 안 맞는 작가로 보이긴 합니다.)
아무튼...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읽었을 때 상반된 느낌을 얻는 일이 장르물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낯설지만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