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들 토라 시리즈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지음, 박진희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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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북유럽 느와르의 여왕이라는 출판사의 홍보를 보고도 읽기를 꽤 주저했었는데,

그 이유는 작년에 읽다가 중도 포기했던 오사 라르손의 화이트 나이트때문이었습니다.

여왕이라 칭해진 작가에 대한, 과도하지만 확인할 길 없는 찬사와

주인공이 수사 비전문가인 여자 변호사(‘화이트 나이트의 레베카는 세무 변호사이고,

부스러기들의 토라 역시 초라한 로펌의 민사(?) 변호사입니다)라는 공통점 때문에

(정말 근거 없는 선입관이었지만) 중도 포기라는 불편한 트라우마가 떠올랐고,

그래서 다른 독자들의 평을 살펴본 뒤 읽을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작가의 데뷔작이자 토라 시리즈의 첫 편인 마지막 의식이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곤

괜한 기대감과 함께 아니면 말고식의 편한 마음으로 부스러기들을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의 토라 시리즈는 출간 되는대로 찾아 읽고 싶어졌습니다.

일단 캐릭터 플레이가 좋고, 구성도 촘촘하게 잘 짜였고,

스릴러 코드들은 쉽고 간결한 문장들 속에서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습니다.

장점에 대한 설명이 좀 두루뭉술하게 보일 수 있지만,

평점 별이 4개에 그친 이유와 함께 아래 서평에서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 ● ●

 

늦은 밤의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항구.

초호화 요트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돌진하다가 방파제에 충돌합니다.

문제는 3명의 선원과 4명의 가족이 사라진 채 빈 요트만 항구로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복사기 교체할 비용에도 전전긍긍하는 소규모 로펌의 중년 여변호사 토라 구드문즈도티르는

요트에서 사라진 가족의 노부모로부터 생명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가족들이 실종이 아니라 사망했음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뛰어듭니다.

그러던 중 해변으로 신원불명의 시신이 흘러들어오고,

요트 선장이 마지막 교신을 통해 요트 안에 여자의 시신이 있다고 연락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여전히 가족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조사는 시간이 갈수록 미궁에 빠지지만,

토라는 가족의 사망 확인이라는 당초의 미션을 넘어

요트 안에서 벌어진 참극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 ● ●

 

이야기는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경찰에 압류된 요트를 조사하고, 승객과 선원의 지인들은 물론

요트의 전 주인 등 관련자들과 단서들을 탐문하는 토라의 이야기가 하나이고,

요트에 탔던 아이에르의 시점으로 그려진 며칠간의 기이한 참극 이야기가 또 하나입니다.

 

아이에르는 전 주인의 파산으로 요트를 인수받게 된 조정위원회 위원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해 가족들 아내와 쌍둥이 딸 과 함께 요트에 승선하게 됐습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불친절했고, 바다는 출발과 동시에 요동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내 끔찍한 비극이 요트에서 발생하고, 요트 안의 사람들은 동요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고 싶은 아이에르 가족들의 희망은

요트의 발목을 잡은 부유하던 컨테이너 박스와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때문에 좌절됩니다.

그 와중에 연이어 비극은 발생하고, 사실상 밀실이나 다름없는 망망대해의 요트 안에서

아이에르와 가족들의 공포는 극에 달합니다.

 

토라는 요트 위에서 벌어진 일을 진술할 생존자 한 명 없는 상태에서

망망대해의 밀실에서 벌어진 참극을 추리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럽습니다.

또한 애초 그녀가 받은 의뢰가 보험금 수령을 위한 사망 확인이기 때문에

대놓고 경찰의 수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점도 한계입니다.

하지만 토라는 빈약한 단서를 꼼꼼히 체크하고 주변 인물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놓친 부분까지 파악하는 개가를 올립니다.

 

현재 벌어지는 토라의 조사와 수일 전의 과거에 벌어진 요트에서의 참극은

정교하게 직조된 구성에 의해 미스터리의 힘을 한껏 발휘합니다.

독자들은 토라와 아이에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경험하게 됩니다.

토라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아이에르와 그의 아내, 쌍둥이 딸의 생존을 기대하게 되지만,

요트에서 벌어지는 참극을 읽다 보면 비극 외엔 달리 탈출구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마지막 챕터까지 독자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데,

설마 하면서도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던 범인의 정체도 놀라웠지만,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 엔딩은 한편으론 억지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아쉬운 점을 세 가지만 꼽자면,

하나는 어딘가 사족처럼 느껴지는 토라 가족의 이야기가 적잖은 분량을 차지했다는 점입니다.

시리즈 중 어느 작품에선가는 가족들이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토라 가족의 이야기는 긴장감과 속도감을 저하시키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때때로 만연체 또는 중언부언처럼 읽히는 문장들입니다.

특히 토라의 탐문 과정을 묘사한 지점에서 자주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인지 마음 급한 독자들에겐 간혹 건너뛰고 싶은 문장들이 눈에 띄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어딘가 모호한 마지막 총정리입니다.

토라가 설명하는 사건의 전체 그림은 언뜻 이해는 되지만 추론에 기댄 부분이 많은 탓에

깔끔하고 명료한 엔딩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약간의 찜찜함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슬란드의 스릴러 여왕100% 만족감을 준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만날 토라 시리즈 첫 편인 마지막 의식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이슬란드의 중년 여변호사 토라가 어떻게 화려하게 데뷔했는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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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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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죽은 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를 잘 알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래서 그 진술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면 그건 나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울까요?

미묘한 차이를 넘어 사람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기억을 토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나의 진실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악녀에 대하여는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의문의 죽음을 맞은 신비한 여인

도미노코지 기미코의 27명의 지인들이 유력 주간지 기자와 가진 인터뷰 형식의 소설입니다.

지인 중에는 그녀를 거쳐 간 남자들도 있고, 가족도 있고, 호불호가 갈리는 타인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녀를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현명하고 주관이 뚜렷한 여자로 기억하는 반면,

누군가는 그녀를 희대의 사기꾼에 두 얼굴을 가진 악녀로 기억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녀가 잠자리에서 비명에 가까운 고성을 지른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평범한 수준 또는 오히려 수줍어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분에 넘치는 응원과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그녀로부터 평생 치유되지 못할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분노합니다.

심지어 몇몇 남자들은 그녀가 낳은 두 아들의 아버지가 자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단순한 기억의 오류라고 하기엔 그들의 진술은 일관되고 앞뒤가 딱딱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긴 세월에 걸쳐 기미코가 주변사람들에게 보인 모습은

(그들의 진술을 믿자면) 그야말로 팔색조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제각각이었고,

그것도 다중이에 버금갈 정도로 극과 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대낮에 화려한 빨간 드레스를 입은 채 7층에서 추락사한 정황을 놓고도

그녀다운 자살이다’, ‘그만큼 죄를 지었으니 타살당한 게 분명하다며 공방이 벌어집니다.

 

지인들의 진술이 한 챕터씩 이어질 때마다

독자는 첫 페이지 이후부터 나름 머릿속에 그려온 기미코의 캐릭터를 계속 수정해야 합니다.

희대의 악녀타고난 팜므 파탈사이를 오락가락하며

그녀에게 분노하다가, 그녀를 동정하다가, 때론 그녀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대체 마지막 페이지에서 드러날 기미코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녀는 왜 그렇게 영화 같은 죽음을 맞이한 것인지,

자살이라면 왜? 타살이라면 누가 범인인지?, 너무너무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로만 봐서 원작소설에서는 어떻게 묘사됐는지 잘 모르지만

읽는 내내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의 여주인공 유키호가 생각났습니다.

참혹한 유년기와 빛과 그늘이 교차한 성장기, 그리고 비극적인 엔딩까지

이상하게도 유키호의 그림자가 기미코의 삶 여기저기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결코 꿈꿀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희비극 같은 삶을 살았던 기미코.

과연 27명의 진술 가운데 어떤 것들이 그녀의 진실을 제대로 가리키고 있을지,

아니, 그런 진실에 관한 진술이란 게 애초에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무척이나 어렵고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동시에 독자 스스로 정답 없는 자문을 하게끔 만듭니다.

 

내가 죽은 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나를 잘 알던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얘기한다면,

그래서 그 진술을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면 그건 나의 진실에 얼마나 가까울까요?

미묘한 차이를 넘어 사람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기억을 토로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나의 진실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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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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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편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탐정 일을 접었던 켄지와 제나로는 한 재력가의 저택으로 거의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뒤 사건을 떠맡게 됩니다. 재력가의 의뢰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켄지의 사수였던 명탐정이 같은 의뢰를 받고 조사를 벌이던 도중 홀연히 실종됐다는 점입니다. 어딘가 불온한 냄새가 풍기는 의뢰였지만 두 사람은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조사에 나서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딸의 행방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연이은 살인사건과 위기일발의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러난 재력가와 딸의 엄청난 비밀에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팬이면서도 그의 대표작인 이 시리즈를 아직도 마스터하지 못한 것은 쏟아지는 신작들의 유혹과 저의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지만, 변명하자면 맛있는 요리를 아껴뒀다가 나중에 먹고 싶어 하는 심리처럼 불과 여섯 편밖에 안 되는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를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에 데니스 루헤인의 커글린 가문 3부작더 드롭을 읽긴 했지만,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를 읽은 지 2년 반이나 지난 걸 깨닫곤 켄지와 제나로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지기 전에 서둘러 신성한 관계를 꺼내들었습니다.

 

무릇 액션스릴러라면 일단 재미있어야 합니다. 주인공도 매력적이어야 하고, 사건은 쉴 틈 없이 몰아치고 그만큼 반전도 거듭돼야 하고, 무엇보다 그럴 듯한리얼리티로 독자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데니스 루헤인은 스릴러 작가의 미덕을 완비한 타고난 이야기꾼이 분명합니다.

(사건을 의뢰한 재력가의 말을 빌리면) 켄지와 제나로는 정직하고 잔혹한 탐정입니다. 심플한 설명이지만 단번에 매력이 느껴지는 캐릭터입니다. 사실, ‘정직잔혹은 대부분의 장르물 주인공이 갖고 있는 덕목이긴 하지만, 이들에겐 남녀 파트너라는 설정이 주는 묘한 케미도 있어서 더욱 시선을 끄는 힘이 있습니다.

 

신성한 관계는 켄지와 제나로의 정직’, ‘잔혹’, ‘케미가 골고루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전편인 어둠이여~’의 경우, 두 사람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워낙 많이 소개된 것은 물론 사건 자체에 가족들이 여기저기 연루된 탓에 이야기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고, 조금은 모호하거나 혼란스러웠던 연쇄살인의 동기 때문에 약간의 찜찜함이 남았던 반면, ‘신성한 관계는 그와 반대로 깔끔하고 속 시원한 액션 스릴러인데다 남녀 관계로 발전하는 듯한 켄지와 제나로의 모습도 엿보여서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한 리듬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시로 뒤집어지는 반전들이 마지막 장까지 이야기를 오리무중으로 만드는데 그 덕분에 모두가 용의자다.”라는 켄지의 새 좌우명이 여러 번 실감나게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범인을 응징하는 장면은 여느 장르물의 엔딩보다 기발하고 잔혹해서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뒤로 가라, 아이야 가라’, ‘비를 바라는 기도’, ‘문라이트 마일등 세 편이 남았는데, 마음 같아선 내리 읽고 싶지만, 역시나 조금씩 아껴가면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장르물마다 실망을 느끼며 권태를 느낄 때쯤이면 켄지와 제나로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저의 권태를 한 방에 날려주겠지만, 동시에 남은 작품이 또 하나 줄어들었다는 아쉬움도 함께 전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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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농장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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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무척 세고 독한 작품입니다.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표지도 눈길을 끕니다.

제목과 표지가 풍기는 불온한 기운만 놓고 보면 살육에 이르는 병에 못지않은 작품이지만,

실제 내용은 포장과는 달리 따뜻하고 묵직하면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의료행위에 관한 도덕적 딜레마와 인간의 탐욕이 낳은 참극을 다루는 과정에서

몇 차례의 살인사건과 죽음이 등장하는 메디컬 미스터리의 미덕도 충분히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짜릿한 청량음료가 아니라 공들여 오래 우려낸 녹차의 맛이라는 출판사의 소개처럼

이 작품은 병원 내 정치적 알력, 미스터리한 연쇄살인, 충격적 반전보다는

의료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삶과 죽음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라는 주제에 더 충실한 작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짜릿한 청량음료같은 가이도 다케루의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와는

여러 면에서 차별화된 메디컬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햇병아리 간호사가 엿들은 무뇌아라는 한마디, 모든 것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카피와

장기농장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대략의 스토리는 짐작이 됩니다.

훌륭한 간호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이제 막 병원 생활을 시작한 노리코가

소아장기이식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병원의 어두운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병원 안팎의 여러 인물이 각자 다른 이유로 무뇌아를 이용한 소아장기이식에 가담한 가운데,

노리코를 좋아하는 이식 팀 의사, 간호학교 동기인 절친 간호사 등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으며 노리코와 함께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만일 이 작품의 인물구도가 단순한 선과 악으로 설정됐거나

이야기의 포인트가 범인 또는 진실 찾기에 맞춰졌다면

아마 짜릿한 청량음료로서의 매력은 훨씬 더 배가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가는 노리코를 통해 독자에게 난감한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당신의 아이가 이식수술 없이는 살 가망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

누군가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무뇌아의 장기 이식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무뇌아는 인간일까? 인간이 아닐까? 무뇌아에게 삶과 죽음이란 게 존재할까?

뇌가 살아있어야만 인간인가? 아니면, 사지와 장기가 꿈틀대기만 해도 인간으로 봐야 할까?

어차피 하루도 채 못 산다면, 그 장기를 이용하여 여러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닐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에 따라 노리코와 그녀의 적들이 구분됩니다.

하지만 누구의 대답도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의료인이라도 도덕적 가치관에 따라 대답이 다를 수 있고,

3자의 입장일 때와 내 아이가 아픈 당사자일 때의 대답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첫 근무처인 소아과에서 장기이식만이 유일한 대안인 어린 환자들을 대하는 노리코로서는

정답이 무엇인지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변수 인간의 탐욕 - 를 더 추가함으로써

자칫 윤리적 논쟁만 하다가 그칠 수 있는 서사에 긴장감과 미스터리 극성을 탑재시킵니다.

누군가는 오로지 부와 명예를 위해 무뇌아들을 이용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의사로서 연구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모든 윤리적 판단을 잊기도 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단물에 빠져든 사악한 개미떼 같은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이런 장치들 덕분에 마지막에 이르러 장기농장이라는 제목의 진짜 의미가 드러납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농장의 진짜 의미 말입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적잖은 분량 속에 작가는 미스터리와 도덕적 딜레마 외에

이런저런 따뜻한 이야기들을 꽤 많이 담아놓았습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벚나무와 연못의 그림 같은 풍광,

출퇴근 때마다 이용하는 오래 된 케이블카의 아날로그 같은 정서,

산꼭대기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어릴 적부터 살아온 바닷가 마을의 정경,

그리고 스무 살을 갓 넘긴 청춘의 설레는 첫사랑 등이 그것인데,

이 모든 것들은 노리코의 진실 찾기와 잘 어우러지면서

앞서 말한 대로 공들여 오래 우려낸 녹차의 맛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대목에서는 과한 부분도 있어서 분량의 문제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충격적인 메디컬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라면 좀 싱겁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간결하면서도 탄탄한 서사 속에

휴머니즘과 미스터리가 적절히 배합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목이나 표지가 자칫 안티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2009년에 국내 출간된 하하키기 호세이의 폐쇄병동을 곧 읽어볼 생각입니다.

일본에서는 장기농장보다 늦게 출간됐지만,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책 소개를 보니 장기농장과 비슷한 톤의 작품인 것 같은데,

그의 휴먼 메디컬 미스터리의 또다른 매력을 꼭 맛보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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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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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부유물처럼 살다가 외롭게 죽어 간 아버지,

그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삶을 견디다가 끝내 치매에 힘입어 기억을 지워버린 어머니,

진작 자신의 출생을 결정할 수 있었다면 마씨 집안에 태어나기를 거부했을 것만 같은,

그래서 결국 발목 잡는 것도 없고, 인연도 없는삶을 택해 멀리 남태평양으로 도망친 형,

그리고 그런 가족들에게 달라붙지도, 도망치지도 못한 채

그들이 남긴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그저 남루한 삶을 이어갈 뿐인 동생...

서로를 당기기도 밀쳐내기도, 서로에게 상처주기도 상처받기도 하면서

가족이라는 끈에 묶여 60여 년을 살아온 마씨 집안의 신산스러운 삶...

 

● ● ●

 

지금까지 읽은 김훈의 소설 가운데 (단편을 제외하고) 가장 작은 소설입니다.

작가 스스로 후기를 통해 작은 소설이라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냥 뼈대만 추려서 말하면 공터에서는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남루한 가족의 이야기이고,

좀더 보태려고 해도 서사 자체만으로는 크게 확장해서 설명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후기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김훈은 왜 이 이야기를 쓴 것일까?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그 기억과 인상들은 오랫동안 내 속에 서식하면서 저희들끼리 서로 부딪치고 싸웠다. (중략)

모두 버리고 싶었지만 마침내 버려지지 않아서 연필을 쥐고 쓸 수밖에 없었다. (중략)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나는 그 기억과 인상들이 이제는 내 속에서 소멸하기를 바란다.”

(작가 후기 )

 

다른 독자들의 소감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아쉬웠다는 평이 제법 눈에 띄었습니다.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막상 작가의 후기를 읽고 나니,

마씨 집안 연대기의 진정성과 인물들의 존재감이 조금은 묵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기억과 인상의 파편이라 칭한 것은

실제 현실에 존재했던 작가 주변의 인물이나 사건이 남긴 흔적일 수도 있고,

전작들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아쉬움 또는 쓰고 남은 상상력의 잔재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됐든 작가 스스로 세상에 내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숙제였다는 점에서

그가 마씨 집안의 60여년의 시간을 그린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만주, 길림, 상하이를 전전하다

한국전쟁 중의 부산에서 아내 이도순을 만난 마동수는

평생을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바람처럼 나타나곤 했던 부평초 같은 남자입니다.

이도순은 흥남 철수 길에 전 남편과 딸을 잃은 뒤 마동수를 만나 두 아들을 낳았지만,

마동수를 만난 일도, 두 아들을 낳은 일도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온 여자입니다.

장남 마장세는 그런 부모들을 원망하고 증오한 끝에

베트남 참전 직후 괌으로 도망치듯 날아가 그곳에서 모든 가족의 연을 끊고 살아갑니다.

차남 마차세는 마씨 집안의 불온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무력한 인물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요양원의 어머니를 모시며

자신을 닮은 여자 박상희를 만나 누니라는 딸을 낳으며 또다시 일가를 이룹니다.

그들은 서로를 용서하지도, 서로에게 화해를 권하지도 않습니다.

선을 긋거나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대상으로 여길 뿐입니다.

그것은 시대의 탓만도 아니고, 그들의 타고난 인격 탓만도 아닙니다.

숙명일 수도 있고, 업보일 수도 있고, 시대와 인격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그냥 그렇게 마씨 집안의 60여년을 담담하게 들여다보듯 풀어놓고 있습니다.

 

캐릭터도 스토리도 새로움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고,

서사는 김훈이라는 이름이 예고한 깊이나 무게에 비해 작고 가벼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훈 특유의 은유와 상징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어느 작품에서나 그랬듯 그의 문장은 곱씹을수록 향기가 짙어졌고,

극단적인 감정은 오히려 짧고 평범한 언어로 쓰인 탓에 더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딘가 허허로운 뒷맛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 뒷맛은 김훈의 서사에 대한 기대감이 배반당한 탓일 수도 있고,

거점이나 발 디딜 곳을 잃고 부초처럼 살아온 마씨 집안의 내력 탓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의 후기를 읽고 나름 위로(?)받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쨌든 다음 작품에서는 김훈만이 남길 수 있는 깊은 후유증을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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