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장 행복한 탐정 시리즈 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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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행복한 탐정이라 불리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세 번째 작품인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후 거의 2년 만인데,

시리즈 1~2(‘누군가’, ‘이름 없는 독’)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또다시 신작과 만나게 됐습니다.

 

대기업 이마다 콘체른 회장의 사위이자 사내 홍보지 편집자였던 스기무라는

(전작에서) 자신이 인질로 연루됐던 버스 납치사건과 아내의 불륜으로 인해

재벌가의 사위라는 타이틀을 상실하면서 직장과 가정을 한꺼번에 잃게 됩니다.

전작은 스기무라가 본가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마무리됐는데,

희망장은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결국 탐정의 길을 걷게 된 스기무라의 사연과 함께

그가 의뢰받은 몇몇 사건들의 해결과정과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네 편의 수록작은 사실 행복한 탐정이라는 시리즈 타이틀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입니다.

(앞선 전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역시 말할 것도 없었지요.)

스기무라가 탐문과 추리를 통해 빚어낸 성과 자체는 명쾌하고 시원하지만,

그는 행복하다기보다 소소한 탐정생활에 만족하는 소시민처럼 보일뿐이고,

진실을 드러낸 이야기는 해피엔딩보다는 씁쓸하고 착잡하게 마무리되곤 합니다.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악당이라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피해자와 가까웠던 사람들은 범인의 악의로 인해 평생 잊히지 않을 상처를 간직하게 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믿을 수 없는 악의를 품을 수 있다!’는 편집 후기의 제목은

아마도 그런 맥락을 감안해서 지어진 것이라 생각됩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범인이 누구냐?’ 또는 사회가 이런 비극을 낳았다라는 서사 대신

소시민에 가까운 사립탐정의 눈에 비친 개인의 비극과 상처 자체에 초점을 맞춥니다.

잔인한 소시오패스나 연쇄살인범 이야기는 재미있게는 읽혀도 딴 세상 일일 뿐이지만,

평범한 개인이 저지른 끔직한 사건의 뒷이야기는 내 주변의 일처럼 여겨지기 마련이고,

그런 점에서 희망장에 수록된 네 작품은 뒤끝이 꽤 길게 남는 편에 속합니다.

 

특히 스기무라의 탐정으로서의 활약 자체보다

의뢰인을 포함하여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적잖은 무게를 실은 탓에

자꾸만 소설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오랫동안 고통스러울 것.”이란 인상을 받게 되는데,

미야베 미유키 소설에 익숙한 저로서도 이런 인상은 그리 편하게만 다가오진 않습니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인상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계속 찾아 읽긴 하지만 말입니다.)

사건은 작지만 고뇌는 깊다.”는 출판사의 책 소개글은

제가 받은 인상을 한 줄 카피로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기무라의 낡은 탐정사무소가 위치한 도쿄의 오가미 초 풍경이라든가

집 주인을 비롯한 이웃들의 캐릭터만 놓고 보면 포근한 일상미스터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실제로 그런 느낌의 수록작도 있지만

어쨌든 희망장은 그 어느 사회파 미스터리보다 더 묵직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또 범죄가 남기는 지워지지 않는 상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런 목적의식 때문인지 간혹 미스터리로서의 허술함이 눈에 띄는 대목도 있고,

단서나 증언이나 목격담 등에서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아쉬움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도 느꼈던 점인데,

시리즈의 숙명인지 작가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속작에서는 이런 아쉬움들이 조금은 덜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3.11 동일본 대지진이 언급된 도플갱어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아무래도 다른 수록작에 비해 미스터리 서사가 촘촘하게 설정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남자의 30년이 넘는 자책감과 그의 주변에서 반복되는 비극을 다룬 희망장도 좋았고,

스기무라가 탐정사무소를 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프리퀄로 그린 모래 남자도 괜찮았습니다.

독자에 따라 인상 깊은 수록작이 다 다르겠지만,

평범해서 오히려 보기 드문 사립탐정 스기무라 사부로의 활약은 매 작품마다 매력적입니다.

소위 초대박 작품은 아니지만,

스기무라 사부로의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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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누아르 1 : 3월의 제비꽃 (북스피어X) 개봉열독 X시리즈
필립 커 지음, 박진세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원제인 ‘March Violets’, ‘3월의 제비꽃1933년 히틀러가 독재자의 자리에 오르자

앞 다투어 나치당에 입당했던 기회주의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들 기회주의자들이 작품의 주요 캐릭터나 소재는 아닙니다.

작가 필립 커는 전쟁준비에 광분한 당시 독일의 폭압적 분위기와

맹목적이든 공포에 기인한 것이든 오직 복종만이 생존을 보장했던,

언뜻 보면 코미디 같은 독재의 참상을 은유하기 위해 이 제목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말했듯 이 작품의 주인공 베른하르트 귄터는

레이먼드 챈들러가 창조한 하드보일드 캐릭터의 대명사 필립 말로를 떠올리게 합니다.

히틀러의 독재도, 공산주의의 망령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경찰(크리포)을 그만두고 사립탐정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38살의 남자입니다.

타고난 반골기질, 짜릿짜릿한 냉소와 비아냥, 집요하고 지칠 줄 모르는 탐문,

그리고 마초 기질과 훈남을 뒤섞은 듯한 언행은 베른하르트 귄터를 대표하는 캐릭터들입니다.

 

평범한 세상이었다면 그는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유능한 탐정으로 살아갔겠지만,

불평 한마디만으로도 인생이 끝장날 수 있었던 1930년대의 독일에서는

탐정 업무 자체보다 사방에 깔린 경찰이나 정보기관과의 충돌을 더 염려해야만 했고,

특히 권력자와 부자가 연루된 사건이라면 목숨을 걸 정도로 위협을 감내해야 했으며,

실제로 이 작품에서 귄터는 히틀러의 하수인들과 부딪히며 결정적인 위기를 겪곤 합니다.

그리고, 그 대목이야말로 이 작품을 평범한 탐정 이야기와 차별시키는 최고의 미덕입니다.

 

이미 사살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보내진 것이 분명한 유대인 실종자 수색을 주로 다루던 귄터는

어느 날 독일의 유력 철강 재벌에게 은밀한 의뢰를 받습니다.

그의 딸과 사위가 총에 맞은 뒤 불에 탄 채 발견된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들 부부의 금고에서 사라진 엄청난 보석들을 찾아달라는 것이 주된 의뢰 내용입니다.

경찰에게도 보석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철강 재벌은 귄터에게 엄청난 사례를 약속합니다.

하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귄터는 보석보다 더 중요한 뭔가가 사건의 이면에 있으며,

뭔가의 주변에 독일 권력의 상층부가 깊이 관련돼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당연히 그의 수사는 권력기관의 레이더에 걸려들게 되고,

게슈타포는 물론이고 폭력집단과 암살자까지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3월의 제비꽃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앞서 충분히 언급했던) 주인공 베른하르트 귄터의 캐릭터이고,

또 하나는 불온하고 공포로 가득 찬 당시 독일의 분위기에 대한 리얼한 묘사입니다.

특히 생소하면서도 두려움마저 자아내는 1930년대 독일에 대한 묘사는 압권입니다.

약간의 화장만 해도 무조건 창녀로 취급되는 세상,

누군가 위대한 독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선창하면 당연히 따라 불러야 하는 세상,

가족사진 대신 ‘2+1 기획상품으로 판매된 독재자의 사진을 거실에 걸어놓아야 하는 세상 등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나 어울릴 것 같은 코미디 같은 설정들이 수시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엄연히 히틀러와 나치가 지배하고 있던 1930년대 독일의 현실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로랑 비네의 ‘HHhH’(황금가지)가 나치 권력층 내부를 상세히 묘사했다면,

‘3월의 제비꽃은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거리의 숨 막히는 일상에 주력함으로써

장르물 이상의 역사소설로서의 미덕도 함께 갖춘 작품입니다.

번역하신 박진세 님께서 독일 내 좌파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귄터의 시각을 통해

당시 독일 시민이 느꼈을 공포와 타성과 무지에서 기인한 나치에의 묵종을

체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고 평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입니다.

 

두 가지 매력을 이야기했으니 이젠 두 가지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우선, 선명하게 정리되지 않는 미스터리 구도입니다.

귄터의 탐문은 그 방법이나 순서 모두 너무 정직할 정도로 일직선입니다.

물론 수사 시작 단계에서 그가 손에 쥔 정보가 너무 빈약했고,

그 때문에 기초적인 탐문이 불가피했다는 점은 이해되지만,

그 과정이 ‘A를 만나 B얘기를 듣고, B를 만나 C의 정보를 얻고, C를 만나...’ 등으로 전개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이르면 정말 중요한 인물은 언제 나오나?”라는 불만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습득한 정보와 추리의 결과를 독자에게 알리는 과정 역시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서

독자에 따라 메모하며 읽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렇듯 선명하지 않거나 불친절한 미스터리 구도는 엔딩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지만, 조금 찜찜한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는 정도만 언급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과도한 직유와 은유가 섞인 문장들입니다.

초중반까지만 해도 작가의 비유는 위트도 느껴지고, 촌철살인의 매력으로 읽히곤 했지만,

거의 모든 사물과 풍경과 인물을 지칠 줄 모르는 직유와 은유로 수식한 문장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감만 전해줄 뿐, 굳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싶지 않게 됐습니다.

이 과도한 비유를 ‘3월의 제비꽃의 최고 미덕으로 꼽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반쯤만 줄였다면 좀더 편한 책읽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번역하신 박진세 님의 후기를 보니 베른하르트 귄터 시리즈는 모두 11편이 나왔다고 합니다.

3부까지 베를린 누아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고, 이어 8편이 더 나왔는데,

7부까지는 나치 치하를 배경으로, 8부부터는 냉전시대가 배경이라고 합니다.

베른하르트 귄터의 캐릭터만 보면 그만한 시리즈가 나올 정도로 매력적이란 게 이해되지만,

미스터리로서의 미덕이라든가 복잡하게 꼬인 문장들을 떠올려보면

후속작들을 계속 읽어야 될지 고민되는 게 사실입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비춰보아 분명 두 번째 베를린 누아르까지는 읽을 가능성이 높긴 한데,

첫 작품에서 느낀 아쉬움들이 조금만 줄어든다면

아마 11부까지의 완간을 응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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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말 엔시 씨와 나 시리즈 1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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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으로 일상 미스터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나 감동 또는 운치 있는 작품이라고 입소문이 돌면

신인이든 기성이든 가리지 않고 일부러라도 찾아 읽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1989년 출간 이래 일본에서 일상 미스터리의 고전이라 불린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은 꽤나 호기심을 끄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입니다.

화자이자 실질적인 주인공인 19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고풍스런 여대생입니다.

벤츠 타고 드라이브나 할까?”라는 프로포즈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괜찮은 고서점이 있는데..”라는 말엔 귀가 종긋합니다.

적은 용돈을 쪼개서라도 오페라나 가부키 등 유명한 공연은 놓치지 않고,

지하철에서 읽는 책은 죄다 동서양의 고전이며,

심지어 여행 갈 때 지니고 가는 책도 헤이안 시대의 속요집입니다.

 

해박한 고문학 지식 덕분에 는 라쿠고가(落語家)로 유명한 엔시 씨와 만나게 됩니다.

(라쿠고(落語)는 좀 생경한 일본 예능인데, 본문 시작 전의 일러두기를 보면,

근세기에 생겨나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일본 특유의 이야기 예술.

부채나 수건 같은 소도구와 함께 목소리, 추임새, 몸짓만으로

해학과 풍자가 섞인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연기한다.‘라고 돼있습니다.)

엔시 씨는 특정 유파의 5대 째 라쿠고가로, 어린 딸이 있는 마흔 즈음의 남자입니다.

안 그래도 라쿠고를 사랑하고 엔시 씨의 공연을 즐겨 찾던 로서는

우연히 찾아온 그와의 만남 덕분에 19살의 여름부터 겨울을 뜻깊게 보내게 됩니다.

 

엔시 씨는 라쿠고에 능한 예능인일뿐 아니라, 굳이 비유하자면 끝내주는 일상 탐정입니다.

궁금한 일이 생기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는 엔시 씨의 특별한 능력을 알게 된 뒤로

주변에서 소소한 사건 또는 의문들이 벌어질 때마나 그에게 묻는 버릇이 생겼고

엔시 씨는 빠르든 늦든 어김없이 사건과 의문을 풀어내서 를 놀라게 하곤 합니다.

 

작가의 의도적 설정이겠지만 엔시 씨를 사심(?)없는 중년 유부남으로 설정함으로써

와 엔시 씨 사이에 남녀의 케미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스승 같고, 때로는 아버지 같고, 때로는 친구나 연인 같은 두 사람은

오히려 남녀의 케미가 없기에 더 담백하고 따뜻하게 읽히는 캐릭터입니다.

물론 엔시 씨와 나시리즈가 6편이 나왔다고 하니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아직은 모를 일입니다만..^^

 

하늘을 나는 말에는 모두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일상 미스터리인 만큼 살인 같은 무겁고 잔인한 사건은 전혀 없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범죄 수준의 사건 또는 일상적인 의문들이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숙부집에만 가면 악몽을 꾸곤 했던 노교수의 오랜 궁금증을 풀어준다든가,

카페 구석에 몰려 앉아 홍차에 무려 7~8스푼의 설탕을 넣는 여성의 비밀을 캔다든가,

유치원 앞에 놓여있던 장난감 목마가 하룻밤 사이에만 실종됐던 이유를 추론한다든가

그야말로 순도 100%의 일상 미스터리가 전개됩니다.

 

솔직하게 평하자면,

와 엔시 씨의 캐릭터에 매혹된 독자라도

5편에 담긴 일상 미스터리는 조금은 만족도가 떨어질 여지가 많습니다.

이 작품이 1989년에 출간됐고, 그 영향으로 많은 일상 미스터리가 출간됐다고 하지만,

요즘 들어 꽤 수준 높은 일상 미스터리(물론 진정한 의미의 일상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사건의 수위도 세고, 미스터리의 성격이 강한 내용들입니다만) 작품이 많아서 그런지,

고전 또는 정통 일상에 가까운 하늘을 나는 말의 다섯 수록작들은

상대적으로 밋밋하고 심심하게 읽힙니다.

간혹 비약이 심한 엔시 씨의 추리도 눈에 거슬릴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론 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그래서 엔시 씨에게 의뢰하게 되는 사건 자체가

장르물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의 성장소설에 어울리는 수준과 규모에 머물고 있어서

이 작품을 미스터리로 접근한 독자들에겐 아쉬움이 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엔시 씨와 나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밤의 매미

1991년 제4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았고, 곧 국내에도 출간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는 계속 이어서 읽을 것인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워낙 독한 쪽의 취향을 가진 제가 또다시 착한 이야기를 택할지 말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사건 같은 사건도 있으면 좋겠고, 너무 신비한 엔시 씨도 좀 현실적이면 좋겠고,

반전이든 감동이든 나름의 비장의 무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욕심입니다.

물론 추리작가협회상을 받은 걸 보면 첫 작품에 비해 미스터리가 강조된 것 같기도 하고,

, 두 사람의 케미라든가 20살이 된 의 성장도 무척 궁금해서 이래저래 고민 중입니다.

일단 제가 좋아하는 독하고 센 이야기를 1~2권 정도 읽은 뒤에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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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이웃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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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6월의 첫날입니다.

올해는 19876월 항쟁으로부터 꼭 30년이 흐른 해입니다.

독재자의 시대가 막을 내린 뒤에도 어둠과 불의로 가득 찼던 1980년대는

그해 6월을 기점으로 거대한 하나의 시퀀스를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그 결과는 미미했고, 대중은 그 미미한 결과에 만족하면서 더 이상의 싸움을 포기했지만

어쨌든 새로운 시대를 연 전기가 됐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선한 이웃은 그해 6월을 전후로 한 1980년대의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답지 못한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할까?

87년을 살아낸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준다.

그해 여름 시민들은 최루탄에 얼룩진 광장에서 희망의 노래를 불렀고,

진압경찰에게 쫓기면서도 삶을 찬미했다.”

 

선한 이웃에는 그 시대를 상징하는 극적인 캐릭터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부도덕한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키워진 끝에 정보요원으로 살아야만 했던 남자,

운동권의 살아있는 전설로 회자되며 정보기관을 희롱하는 신출귀몰한 남자,

시저의 암살을 다룬 연극 공연 직후 정보기관의 먹잇감이 된 신인 연극연출가,

그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선과 악마저 자신이 설계한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관리관 등...

 

그 가운데에는, 생존을 위해 악에 부역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눈앞의 삶을 위해 자신의 운명을 팔아넘긴 죄”(267p)를 저지른 자도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가 진짜 정의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인지도 구분 못하거나

지금 누리는 삶이 자신의 것인지 타인에 의해 조작된 것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스스로 괴물이 됐다는 사실마저 눈치 채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한 이웃이지만 결국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 자들입니다.

 

작가의 말대로 인간답지 못한 시대였기에 존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어쩌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시대사람은 여전히 같은 얼굴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말을 한번만 더 인용을 하겠습니다.

 

나는 80년대의 분위기를 지금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애썼다.

최종 수정을 막 끝낸 시점에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고 블랙리스트 사건이 뒤를 이었다.

마치 1987년에서 시간의 필름을 잘라 2017년에 이어붙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야기가 1987년이 아닌 지금, 2017년의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은 여러 사람의 시점을 번갈아 앞세우며 전개됩니다.

인물들은 시대의 광풍에 휩쓸리며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게 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가치를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분투합니다.

그들은 각자의 챕터를 통해 자신의 삶과 신념과 목표를 강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에 대해 회의하기도 하고 변명하기도 하고 비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운명은 조금도 자신의 의지대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동시에 작가는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을 기반으로 한 연극 엘렉트라의 변명

꽤 비중 있는 소재로 끌어들입니다.

한쪽에서 신출귀몰한 운동권의 전설을 체포하기 위한 집요한 첩보전이 벌어지는 동안

한쪽에선 치열한 연극 논쟁이 벌어집니다.

쫓는 정보원과 쫓기는 연극연출가,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여배우라는 설정 때문에

연극 엘렉트라의 변명은 첩보전 못잖은 분량과 비중을 부여받았는데,

어떤 때는 첩보전이 연극처럼 보이고, 어떤 때는 연극이 첩보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엘렉트라의 변명은 괴물과 악, 정의와 저항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작가의 지적 허세상징의 과잉이 낳은 무리수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그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감정이입을 요구해가면서까지,

그리스-로마의 연극과 셰익스피어에 무지하거나 낯선 독자들에게 혼란을 줬어야 할까요?

엘렉트라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갈등과 파국의 어느 지점을

선한 이웃의 주제의식과 연결시켜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것은 저만의 경험일까요?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히 털어놓자면,

일체의 비유 없이 돌직구처럼 80년의 광주를 그린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떠올려 보면,

꽤 많은 상징과 은유를 동원하여 광주 이후의 80년대를 그린 선한 이웃

어쩌면 연극 엘렉트라의 변명때문에 주제 자체가 흔들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정명의 전작을 읽었던 독자로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80년대라는 인간답지 못한 시대를 그린 작품이었기에

통속적이라도 좋으니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80년대의 분위기를 지금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애썼다.”는 작의는 전달됐겠지만,

예상보다 훨씬 큰 비중으로 그려진 연극 관련 내용 탓에

왠지 빠른 돌직구를 기다리고 있다가 어이없는 느린 변화구에 헛방망이질을 한 타자처럼

조금은 당혹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시대의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도, 어떻게 풀어도 여전히 아프게 읽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달라진 것 없어 보이는 오늘날,

그 시대를 통찰하는 작가들이 있어서 고맙고 반갑게 느껴집니다.

예상치 못한 막판 반전은 1987년과 2017년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통렬히 보여줬고,

그 시간동안 늙고 변질돼버린 주요 인물들의 현재의 모습은

때론 공감을, 때론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입니다.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시대를 오늘의 독자에게 전하려 했던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를 보내고 싶은 선한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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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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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보렌스홀트 갑문 수로에서 성폭행과 교살의 흔적이 남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지역경찰과 함께 수사에 나선 국가범죄수사국 형사 마르틴 베크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 발생 3개월 만에 시신의 신원을 알아내는데 성공하지만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집니다. 중간에 승선한 갑판 승객까지 포함하여 100명이 넘는 다국적 승객과 선원들을 조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르틴 베크는 미량의 단서조차 포기하지 않은 끝에 결국 용의자를 특정합니다. 다만, 범죄사실 입증을 위해 위험하지만 유일한 작전을 펼쳐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북유럽 미스터리의 원점’, ‘경찰소설의 모범이라 불리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스웨덴 작가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1965년부터 10년에 걸쳐 공동집필한 작품으로, ‘로재나는 그 시리즈의 포문을 연 첫 작품입니다. 이전에 한국에 유일하게 소개된 작품은 시리즈 대표작인 웃는 경관’(동서문화, 2003)인데, 늘 읽어봐야지 하다가도 오역과 오타에 관한 평이 많아서 계속 미뤄두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시리즈 1~2편인 로재나연기처럼 사라진 남자가 새로 출간됐다는 소식을 듣곤 드디어 스웨덴 국가범죄수사국 형사 마르틴 베크와 첫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다 읽은 후에 서문과 후기, 출판사 소개글 등을 읽다 보니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에드 맥베인의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작가 본인들의 고백인지 평론가들의 추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1950년대 중반에 시작됐으니 10년 정도면 북유럽에도 그 여파가 미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 대한 한 줄 평을 해본다면 아마 차갑고 우울한 ‘87분서 시리즈’”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사건은 여름에 벌어지지만 마르틴 베크의 수사는 주로 으슬으슬한 가을과 겨울에 이뤄집니다. 그래서인지 비와 눈이 내리는 스웨덴 곳곳의 이른 아침과 밤풍경이 자주 묘사되는데, 그런 분위기를 더욱 차갑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마르틴 베크의 캐릭터입니다. 딱히 열정적이라 할 수는 없어도 경찰로서의 사명감만큼은 확실한 인물이지만, 해체 직전의 가족, 몸에 밴 듯한 우울함, 툭하면 거북해지는 속, 그리고 일 외에는 특별히 관심 갖는 것이 없어 보이는 건조함 등 때문에 어지간한 하드보일드 캐릭터보다 더 딱딱하고 무채색 같은 인물로 보였습니다. ‘87분서 시리즈의 스티브 카렐라와는 무척 대조되는 캐릭터인 셈입니다. 물론 그의 주변에는 유능하고 유쾌한 동료들이 포진돼있습니다. ‘87분서 시리즈의 마이어를 닮은 콜베리와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 멜란데르가 그들인데, 그들 덕분에 한없이 가라앉을 수 있는 이야기의 톤이 어느 정도 생기를 갖게 됩니다.

 

마르틴 베크의 캐릭터는 후속 작품을 통해 좀더 지켜봐야 그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처음 만난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못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소설의 핵심인 사건과 수사부분에서 느낀 아쉬움 때문입니다. 헨닝 망켈의 서문과 평론가의 해설, 또 출판사의 소개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 ‘로재나는 경찰의 근본적인 덕목, 즉 참을성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 느리고 짜증스러운 현실 수사에서 유발되는 긴장감을 사용해 철저한 사실주의를 구현했다.

 

이 두 문장은 분명 로재나의 미덕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제겐 로재나가 안고 있는 아쉬움을 그대로 드러낸 문장으로 읽혔습니다. ‘참을성철저한 사실주의를 위해 전개는 한없이 느려졌고 디테일은 과도하게 묘사됐는데, 그 때문인지 마치 6개월에 걸친 수사일지를 통째로 읽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을성은 덕목이 아니라 무기력으로 읽혔고, ‘철저한 사실주의는 전혀 긴장감을 유발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무겁고 우울한 주인공의 캐릭터마저 더해지다 보니 얼마 안 되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셜록 홈스 식 수수께끼 풀이가 만연하던 1960년대 스웨덴에서 최초로 현실적인 경찰수사를 다룬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신선한 충격을 준 건 사실이겠지만, 2017년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87분서 시리즈역시 비슷한 아쉬운 점들을 갖곤 있지만 그래도 긴장감과 속도감, 다양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탄력 있게 만들어주고 있기에 호평 속에 여러 권의 시리즈가 연이어 출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리즈가 기여한 바를 기리기 위해 스웨덴 범죄소설작가 아카데미에서 마르틴 베크 상을 제정하여 매년 훌륭한 범죄소설에 시상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분명 북유럽 미스터리의 한 획을 그은 시리즈임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로재나를 읽고 나니 (오역과 오타가 있더라도) 시리즈 대표작으로 꼽히는 웃는 경관을 먼저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작품을 통해 두 커플작가의 필력과 주인공 마르틴 베크의 매력을 재발견한다면 다시 돌아와 시리즈 2편인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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