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좋은 기억을 갖고 있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을 때 다소 당황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 이런 이야기였나?” 아니면 내가 간직했던 여운과는 너무 많이 다르네.” 등등...

어지간해선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나가사키는 옛 기억과는 사뭇 다른, 아쉬움이 더 많이 느껴진 작품이었습니다.

 

패전 직후 우후죽순처럼 조직된 고만고만한 야쿠자 가운데 하나인 나가사키의 미무라 .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뒤 어머니, 동생과 함께 야쿠자인 외숙에게 의탁한 주인공 미무라 슌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겪은 다사다난하고 일그러진 성장통을 그린 작품입니다.

 

한때 위세를 떨쳤지만 초라하게 무너져가는 야쿠자 집안의 명멸을 지켜보며 성장한 슌은

그 또래들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들과 조숙한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밤마다 벌어지는 흉포한 문신 사내들의 질펀한 술자리를 지켜봐야 했고,

거기에 호응하는 여자들의 음란한 목소리와 웃음을 들어야만 했고,

칼에 맞거나 그보다 더 위험한 처지에 빠진 야쿠자들의 모습에 무방비로 노출돼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슌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순하게 전염된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미무라 가의 사람이란 걸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어릴 때부터 나가사키를 떠나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번번이 그 욕망이 좌절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다만, 동경까지는 아니어도 야쿠자라는 족속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순 없었고,

그런 탓에 그는 한쪽 발은 거친 세계에, 한쪽 발은 자신만의 세계에 담근 채

혼란스러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인물이었습니다.

 

오래 전 기억으로는 이 작품을 다 읽은 뒤 애틋한 여운이 꽤 남았던 것 같은데,

이번엔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라기보다는 토막토막 끊긴 미무라 슌의 일기장처럼 읽힌 탓에

나가사키의 느낌은 굉장히 건조하고 무색무취에 더 가까웠습니다.

물론 자신이 의지하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자신의 곁을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도

정작 본인은 나가사키에 발목이 잡힌 채 쇠락한 미무라 가에 남게 된 슌의 이야기는

호기심도 충분히 자아내고 긴장감도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그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의 내면에 가까이 갈만하면 툭툭 끊기는 이야기 때문에 좀처럼 이입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를 나가사키에 눌러 앉힌 그 무엇에 대한 추상적이고 친절하지 못한 설명은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이상의 여운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제게 여운을 남겼던 건 1960~80년대라는 시간과 나가사키라는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그 시간과 공간이 예전의 기억만큼 매력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습니다.

 

작품마다 꽤 호불호가 갈리는 요시다 슈이치지만 이런 정서의 작품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인데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오랜만의 다시 읽기가 아쉬움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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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이른바 묻지마 살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야말로 눈앞에 있는 아무나를 죽이고 체포된 용의자들은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범행이유를 대며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세상이 미워서, 나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아무라도 죽이면 기분 좋아질 것 같아서...

실제로 한국에서도 이런 범죄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고 그 양상도 점점 더 잔혹해진 탓에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무척 궁금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주인공은 대만의 변호사 위윈즈인데, 사랑하는 연인을 묻지마 살인으로 잃었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사형당하고 싶어 어린이를 살해한 묻지마 살인범을 변호하게 됩니다.

사형이 능사가 아니라 그를 변호하여 살려놓은 뒤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범인의 심리를 연구해야 한다는 심리상담가의 요청을 받은 그는

고민 끝에 변호가 아니라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 자위하며 의뢰를 수락합니다.

 

법정 장면이 꽤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위윈즈가 묻지마 살인범의 심리에 대해 고민하거나

또는 여러 전문가로부터 동종 범죄의 사례와 학설에 대해 경청하는 장면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중반부쯤엔 논픽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게 되는데,

사실, 그다지 새로운 정보들은 아니어서 다소 지루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위윈즈의 변호가 성공해도 소위 심신미약을 내세운 면죄부가 되는 셈이니 찜찜할 것 같고,

실패한다면 결국 그는 뭘 위해 이 고통스런 변호를 맡았던 건가, 역시 찜찜할 것 같았는데,

작가는 막판에 이르러 최근 벌어진 묻지마 살인의 감춰졌던 진실을 폭로하면서

이야기를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극적으로 급회전시킵니다.

 

하지만 이 막판 급회전이 확실히 좋은 전략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묻지마 살인에 대한 사회적 논쟁,

, 여론과 언론에 의한 마녀재판의 가능성, 심신미약이라는 처벌 회피를 위한 법망의 구멍,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범인의 사회 복귀에 대한 대중의 공포 등

앞서 끌고 온 주제들이 이 막판 급회전때문에 갑자기 다 휘발돼버린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지식한 방식으로만 주제를 다루다가 이야기가 끝났다면 특색 없는 작품이 됐겠지만,

원래 주제와 결이 다른 억지 미스터리가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급마무리된 것 역시

어딘가 자연스럽지도 못하고 인공적으로 보여서 공감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중화권 미스터리가 꾸준히 출간되고는 있지만

극히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대체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다소 허술해 보이는 디테일이나 설정들도 눈에 자주 띄고,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영미권이나 일본 작품들에 비해 낯설게 느껴지곤 하는데,

개인의 취향 탓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 역시 그런 느낌을 수시로 받은 게 사실입니다.

주제는 매력적이었지만 전개와 마무리에서 모두 아쉬움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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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젤스 플라이트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6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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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보슈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인 앤젤스 플라이트

언뜻 제목만 보면 LA공항을 무대로 하이재킹이나 비행기 테러를 다룬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앤젤스 플라이트는 LA 일각의 급경사 구간을 오르내리는

91m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철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입니다.

 

늦은 밤, 막차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신 때문에 현장에 불려나온 보슈와 그의 팀원들은

자신들이 사건을 맡을 순서도 아니고, 심지어 관할지역도 아닌 탓에 잠시 혼란을 겪지만

이내 경찰 수뇌부에서 자신들을 투입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피살자 중 한 명인 하워드 일라이어스는 좋게 얘기하면 인기 있는 유명 흑인 인권변호사지만,

경찰 입장에선 수시로 LA경찰국을 상대로 거액의 민사소송을 거는 개새끼일뿐입니다.

대부분 경찰의 폭력과 인종차별과 부패와 부당 수사가 소송의 재료였기 때문에

LA 경찰 가운데 일라이어스에게 당하지 않은 경찰이 드물었고,

그중 몇몇은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일라이어스를 죽여버리겠다고 선언했을 정도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인 1999년의 LA1992년의 폭동의 후유증과 불씨가 여전한 상태였기에

흑인과 소수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던 유명한 흑인 인권변호사의 죽음은

또다시 악몽 같은 폭동을 야기할 위험한 기폭제나 다름없는 사건입니다.

문제는, 누가 봐도 그에게 살의를 가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이란 점,

, 바로 다음 날 그가 LA 경찰 15명을 상대로 한 큰 법정싸움을 벌이기로 예고돼있던 터라

문제의 심각성은 LA경찰국뿐 아니라 LA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 위력을 갖고 있습니다.

 

만일 범인이 경찰로 드러날 경우 1992년의 폭동에 버금가는 대혼란이 자명한 상황에서

경찰 수뇌부는 다분히 정치적인 수사를 결정했고 그로 인해 보슈가 투입된 것입니다.

수뇌부가 내세운 표면적 이유는 보슈가 일라이어스에게 소송을 당한 적이 없다는 것이지만,

실제 더 큰 이유는 그의 팀원들(에드거, 키즈민)이 모두 흑인이란 점입니다.

, 흑인이 살해된 사건에 백인 경찰들만 투입됐을 때 제기될 수 있는 일말의 의혹

흑인 경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라는 를 통해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인 것입니다.

 

이처럼 앤젤스 플라이트LA의 시한폭탄 같은 갈등을 토대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보슈 입장에선 유력한 용의자인 동료 경찰들을 향해 칼날을 뽑아들어야 하는 것은 물론

정치적 수사를 강요하는 경찰 수뇌부와도 싸워야 하는 힘겹고 난감한 미션입니다.

실제로 보슈는 수사 도중 동료 경찰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협박장을 받기도 하고,

오직 2의 폭동을 막는 것에만 연연하는 경찰 수뇌부와 수시로 격한 갈등을 벌이곤 합니다.

 

워낙 주목을 받는 사건이다 보니 보슈 팀 외에 지원세력이 가세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건 지원세력 중 하나는 보슈와 철천지원수 관계인 채스틴으로 대표되는 감찰계이고,

또 하나는 역시 보슈와 악연에 가까운 FBI라는 점입니다.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세 종족의 팀플레이는 그 자체로도 긴장감 넘치는 설정인데,

여기에다 정치적 해결을 바라는 경찰 수뇌부까지 끼어들면서 수사는 난맥상을 보일 뿐입니다.

 

안 그래도 수사 때문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보슈에게 닥친 또 하나의 불행은

겨우 1년 동안 맛본 엘리노어와의 행복한 시간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누군가와 행복을 공유하는 것이 불가능한 고독한 코요테같다고 여기면서도

보슈는 엘리노어를 웃게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행복이나 사랑이란 건 애초부터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점점 멀어지는 엘리노어를 지켜보는 일은 보슈에겐 더더욱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증거 수집이나 용의자 심문 과정에서 조금만 을 어겨도 법정에서 불리해지는가 하면,

용의자가 강압적인 수사를 당했다고 우기기만 해도 민형사소송에 휘둘리는 것은 물론

동료경찰인 감찰계도 모자라 민간인 감찰관까지 앞세운 조직에게 끊임없이 감시당하기도 하고

정치적 입김에 한없이 약한 수뇌부 때문에 제대로 일도 할 수 없는 게 LA경찰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약이 없을 때 무소불위 경찰이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는

현실 속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기도 합니다.

앤젤스 플라이트는 바로 이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 스릴러입니다.

 

그동안 해리 보슈 시리즈가 대체로 범죄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앤젤스 플라이트는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까운 서사를 지닌 작품입니다.

경찰, 언론, 여론이 퍼부은 압력과 강요를 향한 보슈의 저항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지만

동시에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보슈의 고뇌도 그 어느 때보다 깊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을 포기할 수 없는 보슈에겐 너무도 힘든 시간들이었고,

그 시간들의 후유증이 앞으로 보슈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칠 거란 건 명확해 보입니다.

그래선지 마이클 코넬리는 이후 캐시 블랙 주연의 보이드 문이라는 스탠드얼론을 출간하면서

다시 한 번 보슈에게 휴식의 시간을 준 것 같은데,

그 다음 작품인 시리즈 7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에서 보슈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마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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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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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네시로 가즈키를 처음 알게 된 작품이 바로 ‘GO’입니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서점에서 발견한 ‘GO’에 대한 첫 인상은 이게 뭐야?”였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악동이 마구 그린 듯한 표지에 당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날개에 실린 작가에 대한 소개글을 보곤 여러 가지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는데,

사실, 그가 재일교포 작가로는 처음 나오키 상을 수상했다는 점보다는

그의 아버지가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글귀에 눈길이 확 끌렸습니다.

이후 아버지의 전향과 함께 매국노 소리를 들으며 일본인 학교로 전학간 뒤 차별을 겪은 점도,

법대에 진학해 인권변호사를 꿈꾸던 그가 작가가 됐다는 점도 솔깃한 대목이었습니다.

 

주인공인 고교생 스기하라는 작가 본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흡사한 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전직 권투선수이자 북조선 국적인 아버지는 철저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스기하라 본인 역시 조총련 계열의 민족학교를 다니다가 일본인 고교로 진학하며

매국노 소리와 함께 온갖 차별과 멸시를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父子) 설정만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재일교포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예상되는데,

악동의 장난처럼 보이는 표지가 예고하듯 이야기는 전혀 다른 톤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은 나의 연애를 다룬 것이다.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평화주의니 귀족주의니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

스기하라의 일성으로 포문을 연 작가는 그야말로 예측불허, 좌충우돌 스토리를 펼쳐놓습니다.

 

어릴 적부터 권투선수 출신 아버지로부터 혹독하게 단련된 스기하라는

싸움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는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역사학, 철학 서적을 탐독하는가 하면,

민족학교 시절부터 절친인 정일의 소개로 일본 고전소설도 독파하는 괴짜이기도 합니다.

, 민족학교의 김일성 우상화 교육에 관해선 코웃음을 치는 반골의 기질도 지니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이후 일본인 학교로의 진학이라는 큰 결심을 했던 스기하라는

어느 날 사쿠라이라는 일본 여학생에게 홀딱 빠지고 맙니다.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쳐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 거야.”라고 스스로 주장하지만

정작 사쿠라이 앞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를 차마 드러내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나의 연애를 다룬 것이다.”라는 첫 일성이 있긴 했지만,

이 작품은 사쿠라이와의 연애만큼이나 지독한 스기하라의 성장통을 함께 그리고 있습니다.

그 통증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무래도 그의 정체성으로 인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전향 때문이긴 해도) 북한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지만

그렇다고 그의 일상이나 생각에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입니다.

오히려 일본인 학교로의 진학을 결심한 것은 물론

재일한국인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에의 동참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합니다.

재일교포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가진 한국인에게는 더 큰 증오를 발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인 사쿠라이에게는 자신이 재일 한국인임을 밝히지 못합니다.

 

‘GO’는 유쾌한 성장소설이자 순수한 연애소설이면서

한편으론 10대 재일 한국인이 겪는 지독한 고민과 저항의식을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나오거나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어느 논픽션이나 딱딱한 주제의 소설보다 더 깊고 묵직한 울림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런 분위기야.”라고 단정해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스기하라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뭉클함이 마음을 뒤덮습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아버지가 스기하라에게 들려준 명언(?)

앞으로 스기하라가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는 가이드입니다.

노 소이 코레아노, 니 소이 하포네스, 조 소이 데사라이가도.”

(나는 조선사람도 일본사람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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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만두를 먹는 가족
이재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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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출간된 국내외 장르물 중 여러 사정으로 못 읽은 책들을 찾던 중에

영양만두를 먹는 가족이라는 다소 호기심을 자극하는 특이한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새로운 한국 장르물 작가를 만날 때마다 늘 반가운 마음이라 더 끌렸던 것 같은데,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덕분에 잠깐의 여유가 난 틈을 타 속도전으로 읽어버렸습니다.

 

빨간 눈이라는 별명을 가진 는 흥신소 또는 사립탐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어느 날 는 미지의 의뢰인으로부터 컨테이너 화재사건의 조사를 의뢰받습니다.

화재로 사망한 신인범은 사건 발생 전 10억 원의 생명보험을 들었는데

특이하게도 그의 가족들이 골고루 수익자로 설정돼있던 탓에 는 의구심이 발동합니다.

단순 화재일 수도 있고, 방화 살인일 수도 있고, 자살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는 신인범의 가족은 물론 주변사람들까지 샅샅이 탐문하며 정보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의 이면에 숨어있던 가슴 아프면서도 잔혹한 진실을 발견합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 작품의 가장 큰 화두는 가족입니다.

본인 스스로 아버지의 가족자신의 가족으로부터 내쳐진 경험이 있는

사망한 신인범의 가족들을 탐문하면서 내내 위화감 또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어딘가 일그러진 듯 하면서도 한편으론 보통의 가족처럼 평범해 보이는 그들은

의 눈엔 모두가 용의자거나 혹은 그저 안쓰러운 유가족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의 의구심에 불을 붙인 건 그들 모두 너무나도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가족들 외에 신인범에게 살의를 지닐 만한 또 다른 인물들도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의 촉은 신인범의 가족에게 쏠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가족이 가장 냉혹한 집단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썼다.”라고 밝힙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면서도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라는 점에서,

또 그 상처의 깊이와 후유증이 웬만한 타인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냉혹한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그린 작가의 의도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자살의 정황이 분명하지만 만약 살인이라면 가족 외에는 달리 범인이 있을 것 같지 않고,

혹시라도 가족 외의 범인이 나타난다면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보니

의 조사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과 동기에 더 주목하며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물론 여러 가지 변수들이 의 조사과정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긴장감을 갖게 하는데,

그 변수들이 가족이라는 냉혹한 집단과 뒤섞이면서 끝내 참혹한 진실을 드러내고 맙니다.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문장과 시니컬하기 이를 데 없는 독설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곳곳에서 반짝이는 재치 있는 비유도 매력적이라 작가의 글빨에 반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개인적 취향 때문이긴 하지만 마지막 느낌은 그리 개운치는 않았습니다.

잠깐의 여유가 난 틈을 타 속도전으로 읽은 탓일 수도 있지만

뭔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찜찜함을 간직한 채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가해자의 동기와 목적도, 피해자의 심리와 의지도 다소 모호하게 마무리됐기 때문입니다.

속도전이 낳은 오독이거나 제 독해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주제를 위해 무리한 결말을 이끌어냈다는 아쉬움이 든 게 사실입니다.

냉혹한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그리기 위해 작가가 조금은 억지를 부린 느낌이랄까요?

(사실, 또 다른 냉혹한 집단의 가족이 적잖은 비중으로 등장한 점도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주제를 위해 인공적으로 설정된 듯 보였습니다.)

 

사소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읽는 내내 거슬렸던 부분을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들어본 적도 없는 일개 동네신문사 기자라는 명함을 내미는 에게

신인범의 주변사람들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꼭 필요한 정보들을 전부 설명해준다는 점입니다.

경찰이나 대형언론사 기자라 해도 의심하거나 불쾌히 여길 상황이지만

등장인물 대부분 아무런 의심이나 이의 제기 없이 순순히 다 털어놓습니다.

의 활동의 대부분이 탐문인 점을 감안할 때 너무 안이한 설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은 글빨을 지닌 한국 장르물 작가를 만난 것은 역시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작가의 출간목록을 살펴보다가 2013오늘의 작가상수상작인 펀치가 눈에 들어왔는데,

기회가 된다면 펀치를 읽은 뒤 충분한 여유를 갖고 이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

속도전이 낳은 오독인지, 독해력의 부족인지, 정말 아쉬울 수밖에 없는 작품인지

한번쯤은 꼭 재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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