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살인법
저우둥 지음, 이연희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이른바 묻지마 살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야말로 눈앞에 있는 아무나를 죽이고 체포된 용의자들은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범행이유를 대며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듭니다.

세상이 미워서, 나만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아무라도 죽이면 기분 좋아질 것 같아서...

실제로 한국에서도 이런 범죄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고 그 양상도 점점 더 잔혹해진 탓에

과연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까 무척 궁금해졌던 게 사실입니다.

 

주인공은 대만의 변호사 위윈즈인데, 사랑하는 연인을 묻지마 살인으로 잃었던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사형당하고 싶어 어린이를 살해한 묻지마 살인범을 변호하게 됩니다.

사형이 능사가 아니라 그를 변호하여 살려놓은 뒤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범인의 심리를 연구해야 한다는 심리상담가의 요청을 받은 그는

고민 끝에 변호가 아니라 비극을 막기 위한 노력이라 자위하며 의뢰를 수락합니다.

 

법정 장면이 꽤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치열한 공방이 펼쳐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위윈즈가 묻지마 살인범의 심리에 대해 고민하거나

또는 여러 전문가로부터 동종 범죄의 사례와 학설에 대해 경청하는 장면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중반부쯤엔 논픽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게 되는데,

사실, 그다지 새로운 정보들은 아니어서 다소 지루하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위윈즈의 변호가 성공해도 소위 심신미약을 내세운 면죄부가 되는 셈이니 찜찜할 것 같고,

실패한다면 결국 그는 뭘 위해 이 고통스런 변호를 맡았던 건가, 역시 찜찜할 것 같았는데,

작가는 막판에 이르러 최근 벌어진 묻지마 살인의 감춰졌던 진실을 폭로하면서

이야기를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극적으로 급회전시킵니다.

 

하지만 이 막판 급회전이 확실히 좋은 전략이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묻지마 살인에 대한 사회적 논쟁,

, 여론과 언론에 의한 마녀재판의 가능성, 심신미약이라는 처벌 회피를 위한 법망의 구멍,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범인의 사회 복귀에 대한 대중의 공포 등

앞서 끌고 온 주제들이 이 막판 급회전때문에 갑자기 다 휘발돼버린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지식한 방식으로만 주제를 다루다가 이야기가 끝났다면 특색 없는 작품이 됐겠지만,

원래 주제와 결이 다른 억지 미스터리가 등장하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급마무리된 것 역시

어딘가 자연스럽지도 못하고 인공적으로 보여서 공감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중화권 미스터리가 꾸준히 출간되고는 있지만

극히 일부 작품을 제외하곤 대체로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다소 허술해 보이는 디테일이나 설정들도 눈에 자주 띄고,

작품 속 인물과 배경도 영미권이나 일본 작품들에 비해 낯설게 느껴지곤 하는데,

개인의 취향 탓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 역시 그런 느낌을 수시로 받은 게 사실입니다.

주제는 매력적이었지만 전개와 마무리에서 모두 아쉬움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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