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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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외곽의 아이이데 시에서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동의 시신이 발견된다. 전날 집 근처 마트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춘 피해 아동은 목 졸려 살해당한 후 시신 훼손의 흔적까지 가해져 있었다. 뉴스를 본 주부 호나미는 소중한 외동딸도 범인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한편, 경찰은 전력으로 수사를 펼쳐나가지만 범인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취한 행동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어린 아이가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인데 제목이 성모(聖母)’입니다. 범인은 초반에 공개되지만, 사건의 큰 그림은 정교한 트릭과 반전을 거쳐 막판에 공개됩니다. 피해자가 어린 아동이란 점은 지독한 미스터리 마니아에게도 굉장히 불편한 설정인데, 다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안도감과 공감이 몰려드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성모는 제목, 사건, 트릭, 여운 등 모든 면에서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마지막 20페이지에 모든 것이 뒤집힌다.”는 일본 원서의 홍보 문구대로 막판에 불꽃놀이처럼 연이어 터지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독자에게 범인을 공개한 작가 입장에서 이만한 반전과 트릭을 구축하려면 분명 꽤나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입니다.

서평을 쓰기 위해 폰으로 찍어놓았던 인상적이거나 위화감이 들던 페이지들을 살펴보니 실제로 한 줄의 문장, 한 개의 단어, 한 개의 문장부호에까지 작가가 얼마나 정교하게 트릭을 설정하고 감쪽같이 덫을 숨겨놓았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번역하신 이연승 님 말씀대로) “두 번은 읽어야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마지막 20페이지에 모든 것이 뒤집힌다.”는 홍보 문구에서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어 예전에 써놓았던 서평들을 뒤져보니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띠지 카피인 마지막 5페이지에서 세계가 반전한다!”와 거의 판박이처럼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아키요시 리카코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우타노 쇼고라고 하니 이 판박이 같은 홍보문구가 그냥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키요시 리카코는 암흑소녀란 작품으로 국내에 소개됐다고(2015) 하는데, 검색해보니 명문 사립고 여학생들의 아슬아슬한 암투와 충격적 결말을 다뤘다고 합니다. 라노벨로 분류돼서 그런지 제목도 생소하고, 혹 소문을 들었다 해도 선정성에 기댄 듯한 표지 때문에 절대 읽지 않았을 것 같긴 하지만, ‘성모를 읽은 이상 큰 맘 먹고 한번 찾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다 써놓고 훑어보니 정작 캐릭터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언급을 안 한, 무척 불친절하고 부실한 서평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인물 하나하나를 소개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가능하면 작품의 미덕을 인상 비평하듯 나열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출판사 스스로 리뷰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사전 경고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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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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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한 광기와 욕망이 뒤섞인 ‘7년의 밤’, 악의 민낯을 확실히 보여준 ‘28’. 이 두 작품에 빠져 정유정의 팬이 됐지만 이른바 악의 3부작의 대미를 장식했던 종의 기원은 전작보다 을 심오하게 다뤄야 한다는 작가의 중압감이 역력했던 탓에 실망감이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뒤에 나온 진이, 지니다정한 정유정이라는 카피 때문에 외면했는데, ‘완전한 행복은 그 제목만으로도 기대감이 생겼고, 다시 정유정!”이란 카피가 붙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유정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완전한 행복이라면 분명 타인의 고통과 상처와 죽음을 자양분으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야기의 몸체는 ‘7년의 밤이나 ‘28’에 못잖은 서늘한 공포로 가득 차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유치원생 딸 지유를 둔 신유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은 물론 그에 저항하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은 사이코패스이자 나르시시스트입니다. 타고난 그녀의 악마성에 기름을 부은 건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할머니의 시골집과 인근의 반달늪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딸 지유를 낳았지만 그녀의 지독한 자기애는 전혀 무뎌지지 않았고 오히려 완전한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태연히 타인의 고통과 상처와 죽음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는 지론대로 그녀 앞의 불행의 가능성들은 하나하나 뺄셈에 의해 소멸되고 맙니다.

 

예상했던대로 첫 페이지부터 온몸을 짓누르는 불편함과 불쾌감이 찾아들었습니다. 중반쯤 지날 쯤엔 몸은 중노동의 뒤끝처럼 천근만근이었고 머릿속은 급성 스트레스의 공격에 넉 다운되고 말았습니다. ‘7년의 밤이 그랬고 ‘28’은 훨씬 더 가혹했지만 완전한 행복역시 만만치 않은 정유정다움을 발산하는 작품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 뺄셈에 뺄셈을 거듭하는 신유나의 행보는 평범한 긴장감이나 공포심과는 레벨이 달랐고, 오래 전에 본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미저리를 떠올리게 할 만큼 숨을 턱턱 조이는 마성까지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건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화자를 맡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신유나 본인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챕터는 없다는 점입니다. 신유나의 심리나 감정이 모두 타인의 입, 표정, 행동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안 그래도 읽던 도중에 좀 의아하다 여겼는데, 정유정은 작가의 말을 통해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스스로도 화자 가운데 주인공이 없는 서사에 대한 첫 도전임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보다는 어떻게?”를 더 디테일하게 그림으로써 뺄셈의 공포를 더욱 강렬하게 묘사했다고 할까요?

 

캐릭터만큼 눈길을 끈 건 공간입니다. 공간은 장르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요소 중 하나인데, 특히 정유정의 작품은 공간 자체가 배후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7년의 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간이 댐으로 둘러싸인 불길하고 음산한 호수 세령호였고, ‘28’의 주 무대가 정체불명의 빨간 눈 괴질때문에 봉쇄된 뒤 피범벅의 아수라장이 돼버린 화양시였다면, ‘완전한 행복은 폐가나 다름없는 시골집과 그 일대의 습지, 그리고 그 습지 끝에 있는 반달늪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 장소들은 사이코패스이자 나르시시스트인 신유나의 캐릭터와 일심동체처럼 느껴지는 악의로 가득한 공간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 가차 없이 뺄셈을 휘두르는 신유나에게 시골집과 반달늪은 말하자면 사악한 에너지를 무한충전 받는 성소 같은 곳이라고 할까요? 사족이지만 밤마다 기괴한 울음을 내지르는 되강오리의 존재는 반달늪의 공포를 더욱 배가시키는 소름 돋는 설정이었습니다.

 

분명 몇몇 곳에서 아쉬움을 느낀 대목들이 있긴 했는데, 딱히 어디라고 꼬집어 말하기 힘든 건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도 불온하고 불편한 여운에 압도당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읽으면서 5개는 어렵고, 0.5개 정도는 빼자.”라고 생각했던 일만 떠오를 뿐입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김효선 MD에 따르면 완전한 행복은 정유정의 욕망 3부작중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합니다. 매번 스트레스에 사로잡히면서도 정유정의 마력에 허우적대는 독자 입장에서 욕망 3부작이란 타이틀은 그저 반가운 소식일 뿐입니다. 다음 작품에선 과연 어떤 위험한 욕망이 그려질지 벌써부터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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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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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영화나 드라마는 잘 못 봐도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 건 좋아하는 취향이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괴담이나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삼개주막 기담회라는 제목에 바로 눈길이 끌렸는데, 특히 미야베 월드 2처럼 시대물 기담이라 더 관심과 기대를 가졌습니다.

 

모두 여섯 편의 수록작이 실려 있는데, 수록작들의 공통점은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 삼개주막이라는 공간입니다. 마포나루의 다른 이름인 삼개나루 인근에서 30대 후반의 주모 김씨가 3남매를 키우며 꾸려가는 삼개주막엔 보부상, 방물장수, 전기수(傳奇叟, 돈을 받고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가), 허름한 양반 등 그야말로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듭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합석한 손님들이나 삼개주막 식구들에게 자신이 직접 겪은 기담 혹은 괴담을 들려주곤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만 보고 현재 혹은 미래의 배우자 얼굴을 정확히 그려내는 신비한 노인의 이야기(그림 그려주는 노인), 잔혹한 죽음을 불러온 처첩간의 혈투에 환생 코드가 버무려진 이야기(첩의 환생), 탐욕에 눈이 멀어 무차별 아동 유괴살인을 저지른 자들의 만행(유괴된 아이), 한밤중에 길을 잃은 선비가 만난 숲속 외딴 저택의 양반 일가족의 비밀(과거 보러 가는 길), 멀쩡한 며느리를 죽여 열녀문을 하사받으려는 사악한 음모(열녀) 등 호러와 판타지와 괴담이 골고루 포진돼있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하나는 수록작 대부분이 너무 익숙하고 낯익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작가는 매 작품마다 본 이야기가 일단락된 뒤 비하인드 스토리또는 마지막 반전을 마련해놓긴 했지만 그것이 너무 익숙하고 낯익음을 상쇄시킬 만한 큰 힘을 갖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첫 수록작인 그림 그려주는 노인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아무래도 신선한 소재 덕분이란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은 이야기 자체가 대체로 정직하고 얌전하다는 점입니다. 소재가 진부하더라도 이야기가 예상 밖의 전개를 보였다면 이 작품만의 강점이자 미덕이 됐겠지만 대부분은 소재만큼 낯익은 전개에 머무르고 말아서 읽을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첩의 환생이나 열녀는 다 아는 (혹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를 단지 조금 세련된 형태로 정리해놓은 느낌이라 실망감이 가장 컸습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은 한국 역사 기담이라는 출판사 홍보카피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6편의 수록작 중 전자가 1~2, 후자가 4~5편 정도라고 할까요?

 

마지막 수록작인 옹기장의 꿈의 엔딩을 보면 작가가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그렇다면 다음 작품에선 좀더 과감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줄 것을 바라고 싶습니다. 귀신, 환생, 예지력을 다루는 호러 판타지 기담은 작가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은 비교적 자유로운 장르지만 삼개주막 기담회는 왠지 틀에 박힌 점잖고 모범적인 교과서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꼭 찾아 읽긴 하겠지만 여전히 진부한 기담을 만나게 된다면 그 뒤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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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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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럽 스릴러 가운데 남녀 콤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우가 몇몇 있는데, 마르틴 S. 슈나이더와 자비네 네메즈는 (제가 알기론) 경력과 나이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입니다. 한쪽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면 한쪽은 새내기의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신참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외적인 면만 아니라 성격에서도 극단적으로 대비됩니다. 슈나이더가 괴팍하고 거만한데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고집쟁이라면 자비네는 다정다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평범한 축에 속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둘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절차와 규정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돌직구 같은 경찰이란 점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독일 연방범죄수사국에 근무하는 슈나이더는 천재와 광인(狂人)을 오가는 사건분석가이자 범죄심리학자입니다. 타고난 반골기질에 오만함과 거만함으로 똘똘 뭉쳤지만 거의 완벽한 프로파일링 능력 덕분에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한 인물입니다. , 극단적인 방법 마리화나에 취한 채 범행 현장에 틀어박혀 범인의 행동과 사고를 유추한다든지 도 마다하지 않는 이해 불가한 일면도 있습니다. “살인자의 뇌에 들어가서 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사는 프로파일러로서의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 슈나이더와 인연을 맺었던 자비네는 연방범죄수사국 아카데미에서 사제 관계로 슈나이더와 재회합니다. 슈나이더는 여전히 불친절하고 거만했지만, 자비네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아카데미 입학에 그가 적잖은 힘을 써줬음을 눈치 챕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슈나이더와 자비네가 맡은 독일의 살인사건들인데, 처음에는 범행 수법도 다르고 희생자 간의 연관성도 없어 보였지만, 두 사람의 집요한 수사 끝에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충격적인 진상이 드러납니다. 또 하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이어 발생한 소녀 유괴살해사건으로, 희생자들의 등에서 단테의 신곡지옥 편을 묘사한 끔찍한 문신이 발견된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빈의 여검사 멜라니 디츠가 노회한 경찰 하우저와 함께 이 사건을 맡습니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두 사건은 후반부에 가서야 접점이 드러나게 되고, 슈나이더-자비네 콤비가 멜라니 디츠와 협력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사건의 잔혹함이라든가 심리극을 연상시키는 복잡다단한 묘사 등 유럽 스릴러 특유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슈나이더-자비네 콤비의 캐릭터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도 없고, 또는 물과 불처럼 상극으로만 보이는 두 주인공이 날선 공방과 비아냥, 협조와 동지애를 주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은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슈나이더는 자신과 꼭 닮은 자비네에게 무자비한 스승이자 이 세상 최고의 멘토가 돼줍니다. 자비네 역시 슈나이더의 모난 부분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에게도 그와 꼭 닮은 경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0.5개를 뺀 것은 사건 해결 과정이 다소 구태의연하고 안이하게 설정된 탓이 제일 컸고, 결론을 위해 억지스럽게 그려진 몇몇 인물들 간의 작위적인 관계라든가, 두 사건 사이의 접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느낀 위화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슈나이더-자비네 콤비의 캐릭터만 놓고 보면 5개 이상의 별도 충분한 작품입니다. 물론 주연급 조연으로 소녀 유괴살해사건을 담당한 멜라니 디츠의 공도 컸습니다. 그녀가 앞으로도 슈나이더-자비네와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중요한 카메오로 한번쯤은 얼굴을 비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사건 자체보다 주조연 캐릭터의 힘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까요? 이런저런 아쉬움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매력적인 슈나이더-자비네 콤비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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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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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사일런트 코너’, ‘위스퍼링 룸에 이은 제인 호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남편 닉의 갑작스런 자살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했던 FBI요원 제인은 이후 무장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하는가 하면 어린 아들의 목숨까지 협박받기에 이르렀는데,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그녀가 알아낸 악당의 정체는 나노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인간의 뇌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신기술을 확보한 테크노 아르카디언이었습니다.

호박색 액체에 담긴 신물질은 인간의 뇌 속에 특별한 네트워크를 설치하는데, 이 네트워크에게 장악된 인간은 특정 메시지에 절대 승복하게끔 개조됩니다. 즉 누군가가 내리는 명령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살인자나 노예가 되거나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뇌를 통제할 대상의 선택 기준은 문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입니다. 즉 자신들이 계획하는 미래에 반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신의 권위를 손에 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밀한 감시카메라와 위치추적 장치, 혁명적인 사물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등 먹잇감을 손쉽게 주무를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선 두 작품에서 제인은 숱한 위기를 겪으며 이 전무후무한 악당의 정체를 밝혀낸 것은 물론 최고위직 일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위세는 대단했고 무엇보다도 정관계, 정보기관, 언론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 그 누구에게도 이들의 정체와 범죄를 알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이미 간첩행위와 반역, 살인죄로 기소된 제인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홀로 고독한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테크노 아르카디언이 자신의 가장 약한 고리인 아들 트래비스를 노린다는 점 때문에 제인의 싸움은 몇 배나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전개됩니다.

 

구부러진 계단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최정점을 파악하고 잔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려는 제인의 싸움을 그립니다. 그녀의 타깃은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최고위직이자 법무부 고위관료로서 직전 작품인 위스퍼링 룸에서도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던 부스 헨드릭슨입니다. 그를 통해 세상을 납득시킬 수 있는 확실한 물리적 단서를 손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또 다른 큰 줄기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촉망받는 쌍둥이 남매 소설가인 타누자와 산자이 슈클라의 뇌를 통제하려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집요한 추격전이 그것입니다. 문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인기 소설가는 그들에겐 더없이 위험한 요인인 탓에 동원가능한 모든 시스템을 통해 집요하고 잔혹한 추격전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론 구부러진 계단제인 호크 시리즈의 최종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최정점과의 마지막 대결은 다음 작품으로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웠던 건 적잖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제인의 행보는 전편에 비해 그리 멀리 나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부스 헨드릭슨을 앞세워 모든 악행의 시발점이 된 구부러진 계단 아래 으스스한 공간에 이르는 제인의 여정은 실은 무척 단선적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녀가 겪는 위기와 갈등은 숨 가쁘게 그려졌고, 딘 쿤츠의 문장은 여느 스릴러와 달리 깊고 그윽한 맛을 지니고 있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결코 지루하거나 느슨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결말을 다음으로(이마저도 확실하진 않지만) 미룰 정도로 장황한 분량이 필요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 제인의 이야기와 함께 병행된 쌍둥이 남매 작가 추격전은 나름 임팩트와 스릴을 갖추긴 했어도 이미 이 시리즈의 전작을 읽은 독자에겐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들이라 그 많은 분량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통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전작인 위스퍼링 룸에서 짧지만 강렬한 오프닝을 담당했던 헌신적인 특수아동교사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테러로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라 건더슨 사건과 별 차이 없는 내용을 주인공의 이야기에 맞먹는 분량으로 세세히 묘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딘 쿤츠의 문장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유려하고 감칠맛이 돌아서 그 어떤 이야기가 됐든 독자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힘이 있습니다. 결말이 다음 작품으로 밀린 점이나 과도하게 부풀려진 조연들의 이야기의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딘 쿤츠의 매력적인 문장들이 많은 부분을 상쇄시켜준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속작이 나왔을 땐 그 작품이 확실히 제인 호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지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만일 그런 정보가 없다면 읽을지 말지 잠시 고민하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결말이 미뤄진다면 그땐 아무래도 노작가의 과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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