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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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사일런트 코너’, ‘위스퍼링 룸에 이은 제인 호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남편 닉의 갑작스런 자살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했던 FBI요원 제인은 이후 무장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하는가 하면 어린 아들의 목숨까지 협박받기에 이르렀는데,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그녀가 알아낸 악당의 정체는 나노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인간의 뇌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신기술을 확보한 테크노 아르카디언이었습니다.

호박색 액체에 담긴 신물질은 인간의 뇌 속에 특별한 네트워크를 설치하는데, 이 네트워크에게 장악된 인간은 특정 메시지에 절대 승복하게끔 개조됩니다. 즉 누군가가 내리는 명령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살인자나 노예가 되거나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뇌를 통제할 대상의 선택 기준은 문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입니다. 즉 자신들이 계획하는 미래에 반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신의 권위를 손에 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밀한 감시카메라와 위치추적 장치, 혁명적인 사물인터넷과 소프트웨어 등 먹잇감을 손쉽게 주무를 수 있는 엄청난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앞선 두 작품에서 제인은 숱한 위기를 겪으며 이 전무후무한 악당의 정체를 밝혀낸 것은 물론 최고위직 일부를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위세는 대단했고 무엇보다도 정관계, 정보기관, 언론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라 그 누구에게도 이들의 정체와 범죄를 알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이미 간첩행위와 반역, 살인죄로 기소된 제인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홀로 고독한 싸움을 벌여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테크노 아르카디언이 자신의 가장 약한 고리인 아들 트래비스를 노린다는 점 때문에 제인의 싸움은 몇 배나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전개됩니다.

 

구부러진 계단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최정점을 파악하고 잔당들을 소탕하기 위해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려는 제인의 싸움을 그립니다. 그녀의 타깃은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최고위직이자 법무부 고위관료로서 직전 작품인 위스퍼링 룸에서도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던 부스 헨드릭슨입니다. 그를 통해 세상을 납득시킬 수 있는 확실한 물리적 단서를 손에 넣으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또 다른 큰 줄기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촉망받는 쌍둥이 남매 소설가인 타누자와 산자이 슈클라의 뇌를 통제하려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집요한 추격전이 그것입니다. 문명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인기 소설가는 그들에겐 더없이 위험한 요인인 탓에 동원가능한 모든 시스템을 통해 집요하고 잔혹한 추격전을 펼칩니다.

 

개인적으론 구부러진 계단제인 호크 시리즈의 최종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최정점과의 마지막 대결은 다음 작품으로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쉬웠던 건 적잖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제인의 행보는 전편에 비해 그리 멀리 나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부스 헨드릭슨을 앞세워 모든 악행의 시발점이 된 구부러진 계단 아래 으스스한 공간에 이르는 제인의 여정은 실은 무척 단선적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녀가 겪는 위기와 갈등은 숨 가쁘게 그려졌고, 딘 쿤츠의 문장은 여느 스릴러와 달리 깊고 그윽한 맛을 지니고 있어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결코 지루하거나 느슨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굳이 결말을 다음으로(이마저도 확실하진 않지만) 미룰 정도로 장황한 분량이 필요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 제인의 이야기와 함께 병행된 쌍둥이 남매 작가 추격전은 나름 임팩트와 스릴을 갖추긴 했어도 이미 이 시리즈의 전작을 읽은 독자에겐 전혀 새롭지 않은 내용들이라 그 많은 분량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통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전작인 위스퍼링 룸에서 짧지만 강렬한 오프닝을 담당했던 헌신적인 특수아동교사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테러로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라 건더슨 사건과 별 차이 없는 내용을 주인공의 이야기에 맞먹는 분량으로 세세히 묘사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딘 쿤츠의 문장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유려하고 감칠맛이 돌아서 그 어떤 이야기가 됐든 독자의 눈길을 확 잡아끄는 힘이 있습니다. 결말이 다음 작품으로 밀린 점이나 과도하게 부풀려진 조연들의 이야기의 아쉬움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딘 쿤츠의 매력적인 문장들이 많은 부분을 상쇄시켜준 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후속작이 나왔을 땐 그 작품이 확실히 제인 호크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지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만일 그런 정보가 없다면 읽을지 말지 잠시 고민하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다시 결말이 미뤄진다면 그땐 아무래도 노작가의 과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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