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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개주막 기담회 ㅣ 케이팩션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5월
평점 :
무서운 영화나 드라마는 잘 못 봐도 무서운 이야기를 읽는 건 좋아하는 취향이라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대 괴담이나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을 즐겨 읽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삼개주막 기담회’라는 제목에 바로 눈길이 끌렸는데, 특히 ‘미야베 월드 2막’처럼 시대물 기담이라 더 관심과 기대를 가졌습니다.
모두 여섯 편의 수록작이 실려 있는데, 수록작들의 공통점은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 삼개주막이라는 공간입니다. 마포나루의 다른 이름인 삼개나루 인근에서 30대 후반의 주모 김씨가 3남매를 키우며 꾸려가는 삼개주막엔 보부상, 방물장수, 전기수(傳奇叟, 돈을 받고 소설을 읽어주는 낭독가), 허름한 양반 등 그야말로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듭니다. 그리고 그 손님들은 합석한 손님들이나 삼개주막 식구들에게 자신이 직접 겪은 기담 혹은 괴담을 들려주곤 합니다.
상대방의 얼굴만 보고 현재 혹은 미래의 배우자 얼굴을 정확히 그려내는 신비한 노인의 이야기(그림 그려주는 노인), 잔혹한 죽음을 불러온 처첩간의 혈투에 환생 코드가 버무려진 이야기(첩의 환생), 탐욕에 눈이 멀어 무차별 아동 유괴살인을 저지른 자들의 만행(유괴된 아이), 한밤중에 길을 잃은 선비가 만난 숲속 외딴 저택의 양반 일가족의 비밀(과거 보러 가는 길), 멀쩡한 며느리를 죽여 열녀문을 하사받으려는 사악한 음모(열녀) 등 호러와 판타지와 괴담이 골고루 포진돼있는 무척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두 가지 면에서 아쉬움이 남았는데, 하나는 수록작 대부분이 너무 익숙하고 낯익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작가는 매 작품마다 본 이야기가 일단락된 뒤 ‘비하인드 스토리’ 또는 마지막 반전을 마련해놓긴 했지만 그것이 ‘너무 익숙하고 낯익음’을 상쇄시킬 만한 큰 힘을 갖진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첫 수록작인 ‘그림 그려주는 노인’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아무래도 신선한 소재 덕분이란 생각입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움은 이야기 자체가 대체로 정직하고 얌전하다는 점입니다. 소재가 진부하더라도 이야기가 예상 밖의 전개를 보였다면 이 작품만의 강점이자 미덕이 됐겠지만 대부분은 소재만큼 낯익은 전개에 머무르고 말아서 읽을수록 점점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첩의 환생’이나 ‘열녀’는 다 아는 (혹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를 단지 조금 세련된 형태로 정리해놓은 느낌이라 실망감이 가장 컸습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어디선가 들은 것도 같은 한국 역사 기담”이라는 출판사 홍보카피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6편의 수록작 중 전자가 1~2편, 후자가 4~5편 정도라고 할까요?
마지막 수록작인 ‘옹기장의 꿈’의 엔딩을 보면 작가가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만일 그렇다면 다음 작품에선 좀더 과감하고 파격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줄 것을 바라고 싶습니다. 귀신, 환생, 예지력을 다루는 호러 판타지 기담은 작가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괜찮은 비교적 자유로운 장르지만 ‘삼개주막 기담회’는 왠지 틀에 박힌 점잖고 모범적인 교과서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꼭 찾아 읽긴 하겠지만 여전히 진부한 기담을 만나게 된다면 그 뒤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