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새겨진 소녀 스토리콜렉터 44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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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스릴러 가운데 남녀 콤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경우가 몇몇 있는데, 마르틴 S. 슈나이더와 자비네 네메즈는 (제가 알기론) 경력과 나이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입니다. 한쪽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라면 한쪽은 새내기의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신참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외적인 면만 아니라 성격에서도 극단적으로 대비됩니다. 슈나이더가 괴팍하고 거만한데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고집쟁이라면 자비네는 다정다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평범한 축에 속하는 캐릭터입니다. 다만, 둘 사이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절차와 규정 따위는 무시하고 오직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돌직구 같은 경찰이란 점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독일 연방범죄수사국에 근무하는 슈나이더는 천재와 광인(狂人)을 오가는 사건분석가이자 범죄심리학자입니다. 타고난 반골기질에 오만함과 거만함으로 똘똘 뭉쳤지만 거의 완벽한 프로파일링 능력 덕분에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한 인물입니다. , 극단적인 방법 마리화나에 취한 채 범행 현장에 틀어박혀 범인의 행동과 사고를 유추한다든지 도 마다하지 않는 이해 불가한 일면도 있습니다. “살인자의 뇌에 들어가서 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대사는 프로파일러로서의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새카만 머리의 금발 소년에서 슈나이더와 인연을 맺었던 자비네는 연방범죄수사국 아카데미에서 사제 관계로 슈나이더와 재회합니다. 슈나이더는 여전히 불친절하고 거만했지만, 자비네는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아카데미 입학에 그가 적잖은 힘을 써줬음을 눈치 챕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하나는 슈나이더와 자비네가 맡은 독일의 살인사건들인데, 처음에는 범행 수법도 다르고 희생자 간의 연관성도 없어 보였지만, 두 사람의 집요한 수사 끝에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충격적인 진상이 드러납니다. 또 하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이어 발생한 소녀 유괴살해사건으로, 희생자들의 등에서 단테의 신곡지옥 편을 묘사한 끔찍한 문신이 발견된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빈의 여검사 멜라니 디츠가 노회한 경찰 하우저와 함께 이 사건을 맡습니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두 사건은 후반부에 가서야 접점이 드러나게 되고, 슈나이더-자비네 콤비가 멜라니 디츠와 협력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사건의 잔혹함이라든가 심리극을 연상시키는 복잡다단한 묘사 등 유럽 스릴러 특유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슈나이더-자비네 콤비의 캐릭터입니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도 없고, 또는 물과 불처럼 상극으로만 보이는 두 주인공이 날선 공방과 비아냥, 협조와 동지애를 주고받으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은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재미를 선사합니다. 슈나이더는 자신과 꼭 닮은 자비네에게 무자비한 스승이자 이 세상 최고의 멘토가 돼줍니다. 자비네 역시 슈나이더의 모난 부분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에게도 그와 꼭 닮은 경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0.5개를 뺀 것은 사건 해결 과정이 다소 구태의연하고 안이하게 설정된 탓이 제일 컸고, 결론을 위해 억지스럽게 그려진 몇몇 인물들 간의 작위적인 관계라든가, 두 사건 사이의 접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느낀 위화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슈나이더-자비네 콤비의 캐릭터만 놓고 보면 5개 이상의 별도 충분한 작품입니다. 물론 주연급 조연으로 소녀 유괴살해사건을 담당한 멜라니 디츠의 공도 컸습니다. 그녀가 앞으로도 슈나이더-자비네와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중요한 카메오로 한번쯤은 얼굴을 비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사건 자체보다 주조연 캐릭터의 힘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까요? 이런저런 아쉬움을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매력적인 슈나이더-자비네 콤비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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