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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 - 상 ㅣ 미쓰다 신조 작가 시리즈 2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미궁초자’라는 희귀한 동인지를 헌 책방에서 구한 ‘나’와 아스카 신이치로는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괴담들을 읽는 동안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현실적 현상들이 자신들의 주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거짓말 같은 상황을 겪습니다. ‘안개 저택’을 읽고 난 후에는 무섭도록 짙은 안개가 자신들을 빨아들일 듯 다가왔고, ‘자식귀 유래’를 읽고 난 후에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듯한 패닉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앞서 ‘미궁초자’를 읽은 사람들이 감쪽같이 행방불명됐다는 이야기가 헛된 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인정한 두 사람은 괴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괴담 속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실제로 설전과 논쟁 끝에 추리를 완성하는 순간 두 사람을 위협하던 괴현상들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하지만 마지막 편인 ‘목 저택’을 읽던 중 ‘미궁초자’라는 동인지 자체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앞선 여섯 편과는 격이 다른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고 맙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 덕분에 미쓰다 신조의 광팬이 되긴 했지만, ‘작가 시리즈’ 첫 작품인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에서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던 터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작자미상’의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역시 미쓰다 신조의 작품답게 독특하고 기괴한 캐릭터와 사건들이 설정되어 있고, 괴담을 읽은 주인공들이 겪는 초자연적 현상은 독자를 슬금슬금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수록된 일곱 편의 괴담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기보다는 직접 체험한 것을 묘사한 느낌이 강했고,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애쓰는 모습 역시 허황된 괴담놀이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분투처럼 읽힙니다.
일곱 편의 괴담이 제각각의 특징을 갖고 있고, 그 해법 또한 매번 기발하게 제시되고 있어서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과는 사뭇 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이만큼 힌트를 줬으니 한번 맞춰보시지?” 식으로 매번 독자에게 승부를 걸어오는 듯한 전개 덕분에 문장 한 줄, 단어 하나까지 허투루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마력을 발휘합니다. 정통 추리는 물론 서술트릭, 애너그램까지 총동원 된 기법들을 읽다 보면 그의 뇌구조가 궁금해질 정도로 미쓰다 신조의 필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다만, 이런 식의 전개가 모든 독자에게, 심지어 ‘도조 겐야 시리즈’의 광팬들에게조차 보편적인 호감을 불러일으키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미쓰다 신조가 정교한 설계에 따라 이야기를 구성했다기보다 영감이라도 받은 것처럼 쉬지 않고 단 한 번에 써내려간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조금은 무리수를 둔 흔적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느낌은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에서도 받은 적 있고, 그 당시에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머릿속 어딘가 남아있는 찜찜함 때문에 몇 번이고 중요한 대목들을 다시 들춰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자미상’은 그 때와는 조금은 다른 종류의 찜찜함을 남겼는데, 아마 엔딩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쯤까지만 언급하겠지만, 2013년에 출간된 일본 미스터리 가운데 상당한 호응을 얻은 걸 보면,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느꼈던 찜찜함은 아마 깔끔한 마무리를 좋아하는 제 취향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괴담을 다루지만 언제나 명쾌하게 사건이 종결되는 ‘도조 겐야 시리즈’는 제겐 신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최고의 시리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