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밤에 본 것들
재클린 미처드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앨리와 로브, 줄리엣은 밤에만 외출할 수 있는 XP(햇빛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색소성 건피증) 환자입니다. 줄리엣의 리드로 파르쿠(야마카시와 유사한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져든 세 사람은 밤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앨리는 어느 건물의 창을 통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이후 세 사람의 주변에서는 우연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사고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심지어 크고 작은 부상을 입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어느 날, 앨리는 자신이 창을 통해 목격했던 남자를 축제장에서 발견합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 남자의 정체까지 파악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앨리는 자신 뿐 아니라 절친인 로브와 줄리엣까지 커다란 위험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에 여러 가지 코드들이 융합되면서 무슨무슨 스릴러라고 신조어처럼 칭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면에서 굳이 이 작품의 카테고리를 설정한다면 아마 성장 스릴러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2013년에 읽은 스페인 작가 마이테 카란사의 독이 서린 말이나 게임 스릴러에 가까운 우르술라 포츠난스키의 에레보스가 비슷한 범주였지만, ‘우리가 밤에 본 것들은 좀더 순수한 성장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거기에 17살인 세 명의 남녀 주인공 모두 희귀병을 앓고 있다 보니 메디컬 스릴러의 코드도 함께 버무려져 있어서 캐릭터는 물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희귀병에 걸린 주인공들과 그들의 가족, 이웃들이 병에 굴복한 채 무기력하고 침체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완강히 저항하면서, 때로는 선선히 받아들이면서 병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XP라는 병명을 처음 접한 일본 소설 태양의 노래’(덴카와 아야)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파르쿠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는 주인공들의 긍정적인 태도나 그들의 일탈사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응원을 보내주고 싶을 만큼 밝고 건강해 보입니다.

물론, ‘주간형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깊은 상처와 아픔 역시 마치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 사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감사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할 것이다.”라는 평을 남긴 것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릴러로서의 구조는 그다지 탄탄해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이 탐정이나 형사처럼 탐문과 추리를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이 우연한 목격 또는 당사자의 고백 등으로 이뤄지고 있고, 특히 후반부에 가서는 앞서 벌여놓은 이야기들을 제대로(일반적인 의미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추측에 불과한 것이지만, 작가의 이력으로 볼 때 스릴러보다는 성장에 좀더 신경을 쓴 엔딩을 원했던 것 같고, 그 결과 보편적인 스릴러의 공식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이해는 되지만, 아쉬움이 남는 엔딩으로 느껴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보입니다.

 

화려한 이력에 비해 재클린 미처드의 한국 출간은 이 작품이 처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스릴러 전문 작가는 아닌 것 같지만, “결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라는 평이 과장이 아니라면 그녀의 작품들이 국내에 좀더 많이 출간되기를 기대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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