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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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로 서로 주고받은 편지 내용으로 이뤄진 세 편의 중편 모음집입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같은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천천히 과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십 년 뒤의 졸업문집에는 고교 시절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한 지아키와 그녀 대신 고이치와 결혼한 시즈카, 그리고 또 다른 동창생인 에스코와 아즈미가 등장합니다. 고교 시절이던 10년 전에 벌어진 사건과 지아키의 잠적에 대해 네 명의 여고 동창생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실에 접근해갑니다.

 

두 번째 이야기 이십 년 뒤의 숙제는 퇴직을 앞둔 초등학교 교사 마치코가 20년 전 비극적인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여섯 제자들의 안녕을 확인하고자 현재 교사로 재직 중인 오바를 통해 간접적인 서신을 교환하는 이야기로, 그날의 사고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과 기억을 갖고 있는 여러 인물들의 심리적 동요는 물론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나?’라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은 해외에서 국제자원봉사 중인 준이치와 그를 기다리는 연인 마리코가 중학교 시절 일어난 (준이치가 마리코를 구했던) 화재 사건에 대해 편지를 주고받다가 지금까지 알아온 사실이 모두 허구이며, 진실은 따로 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고백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형식미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편지라는 특성상 계속 화자가 바뀌는 것은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서술인 탓에 편지의 내용에 대해 계속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정인 또는 3인칭 시점으로 전개됐다면 굉장히 밋밋하고 특색 없는 일상 미스터리 정도로 남았겠지만, 미나토 가나에만의 개성 있는 작법 덕분에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백의 충격과 반전을 기대했던 독자에겐 나름 아쉬움과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제겐 고백직후 읽었던 야행관람차로 받은 실망감을 많이 상쇄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아직 그녀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했지만 미나토 가나에를 다소 기복 있는 작가로 여기게 되는 건 어느 독자의 평처럼 자신이 낳은 고백이라는 괴물때문에 빚어진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그녀의 신작이 발표된다면 어쩔 수 없는 기대감에 누구보다 먼저 서점을 찾게 될 것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그 기대감이 100% 이상 충족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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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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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을 다룬 드라마나 소설이 많이 나오면서 제각기 차별화된 특징을 갖추기 위해 다양한 설정들을 사용하는데, 이 작품 역시 특정 시간(1958)으로만 되돌아갈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주인공 에핑의 시간여행의 주된 목적은 케네디 대통령 암살 저지인데, 문제는 암살 사건이 1963년에 벌어지기 때문에 1958년에 도착한 에핑은 5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런 설정 때문에 1권은 시간여행을 통해 1958년에 온 에핑이 몇 가지 개인적인 사건을 해결하며 고생하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2권을 읽지 않은 상태라 (2권은 읽을 생각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에핑의 목적인 케네디 암살 저지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프롤로그의 성격 치고는 1권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지루한 느낌이었습니다. 드라마 두 회 정도 분량의 에피소드가 너무나도 익숙한 시간여행의 문법을 따라 정석대로만 진행되다 보니 1권 표지에 그려진 케네디의 얼굴이 자꾸 미끼로만 보이게 됐습니다.

 

1권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분들이 많은 듯한데, (특히 인터넷서점 별표는 대부분 5, 드문드문 4) 물론 스티븐 킹의 필력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탄탄함은 대단했지만, 이번만큼은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운 소감만 얻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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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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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에"

 

다 읽고 나서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본 뒤에야 “3년간 수상작이 없던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연작단편집 부문 수상작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사실, 미스터리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제목에 꽂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수록된 여섯 편을 읽고 나니, 제목에서 느낀 정서 그대로 애틋하고 안쓰럽고 그래도 어딘가 환하고 따뜻해지는, 그런 뒷맛이 남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첫 수록작과 마지막 수록작은 하이쿠 동인인 가타오카 소교의 죽음, 그리고 그와 관계를 가졌던 나나오의 이야기입니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이라는 제목은 죽은 카타오카가 지은 하이쿠에서 따온 것인데, 나나오가 카타오카의 유품을 전하기 위해 그의 고향에 내려갔다가 알게 된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과거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맥락도 전혀 다르고, 사건이나 주변 환경도 전혀 다르지만, 카타오카에게선 아사다 지로의 명품 칼에 지다의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절절함이 느껴집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처해있던 상황에서 느꼈을 절망감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을 간절히 바랐던 마음이 비슷한 깊이와 무게의 처연함을 전해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 네 편 역시 비슷한 정서들을 품고 있는 휴먼 미스터리입니다. 여섯 편을 관통하는 교집합은 골목 구석에 자리 잡은 운치 있는 맥주집 가나리야와 요리솜씨는 물론 사람 좋기로 소문난 주방장 구도입니다. 순한 맛부터 독한 맛까지 네 가지 맥주를 팔면서 기막힌 요리들을 안주로 내놓는 구도는 그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드는묘한 재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머리가 좋은지, 또 얼마나 많은 정보원(?)을 두었는지, 뛰어난 추리력으로 손님들의 고민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모두 만족스러울 수는 없는 일이라, 두 편 정도는 조금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한 1년 후쯤 꼭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작품입니다.

 

꽃 아래 봄에 죽기를... 쳐다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애잔해지는, 그런 글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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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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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와 미나토는 2010년 전후쯤 단편집 꽃밥을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당시 남겨놓은 짧은 메모를 보면, “이야기 자체가 참 독특해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간다.”, “죽음과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 수도 있구나.”라는 짧은 평이 적혀있습니다.

 

오늘은 서비스데이도 그 맥락을 이어간 작품입니다. 표제작인 중편 오늘은 서비스데이는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나타나 오늘 하루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이라며, 주인공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권하며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려나가자 잠시 기분이 좋았지만, 한순간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큰 재앙을 겪게 되면서 마냥 행복할 것 같던 그의 서비스데이는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엔딩은 해피하게 마무리되지만, 재미있는 한 편의 로망 소동극을 본 느낌입니다.

 

그 외에 실제 사건 사고와 관련된 소품들을 자랑하는 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쿄행복클럽’, 오래된 아파트에 손목의 형태만 남아있는 루리코라는 유령의 이야기를 다룬 창공 괴담’, 사후 세계에 도착했다가 망각의 강을 건너기 직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푸르른 강가에서등이 실려 있습니다.

 

슈카와 미나토의 장편이 어떤 느낌일지는 잘 감이 안 잡히지만, 적어도 단편에 관한 한 탁월한 재주를 지닌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깊이라고 할까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점에서는 좀 약한 듯 하고(물론 그렇지 않은 단편도 있지만), 대체로 소동극의 색채가 강하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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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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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이자 아동상담소 소장인 쿠마베는 친구를 통해 아동학대 피해자 아키를 소개받습니다. 상담 도중 미심쩍은 부분이 생긴 그는 직접 가정 조사에 들어가는데, 아키의 어머니인 키미에로부터 학대의 주범이 그녀 자신이란 고백을 듣습니다. 쿠마베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웃과 주변을 상대로 좀더 깊은 조사를 시도하지만, 대부분 아키 가족과 등을 진 이웃들은 쿠마베에게 냉소적인 반응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던 중 키미에의 내연남이 쿠마베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아키를 끌고 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키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쿠마베는 어느 날 한 남자아이로부터 (아키의 일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전화를 받습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고백이란 것은 그것이 자신의 행동임을 털어놓는 일인데, ‘얽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탓에 살인의 대상이 소녀인지 아닌지 무척 모호해지는, 그야말로 제목 자체가 많은 의문을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분명 소녀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상 쉽고 편한 마음으로 읽어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된 바였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터뷰어가 아동학대를 당하면서 성장한 아키의 유년기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아키가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던 아동상담소의 쿠마베 소장, 아키를 도와줬던 남자친구, 아키의 담임교사, 의사 등 아키 주위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 ‘10년 전 그날 그 사건에 대해 회상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아키가 겪은 불행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모두가 감춰온 또는 모른 척 해온 비밀과 거짓말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적잖은 강도의 반전과 함께 출판사 소개글대로 슬프고도 무서운 결말에 이릅니다.

 

이야기는 촘촘하게 잘 짜였고, 인터뷰 대상인 인물들의 캐릭터나 배치도 기승전결에 따라 흥미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소재와 형식 때문인지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은 조금 약합니다. 오히려 읽는 동안 조금은 불편하고 화가 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아동학대를 비롯하여 어린이가 피해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론 그런 이유 때문에 영화 도가니를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 작품 역시 수시로 덮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단순한 돌직구처럼 아동학대 자체를 다룬 작품이란 뜻은 아닙니다)

 

오래 전 처음 읽은 후에 남겨놓은 메모를 보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찾아서 읽어볼 것이라고 돼있습니다. 아쉽게도 인터넷서점에는 사토 세이난의 작품이 이 작품밖에 없는데, 언젠가 새 작품이 출간된다면 다짐한대로 꼭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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