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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손바닥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윤덕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국내 기준으로) 이 작품이 ‘살육에 이르는 병’보다 두 달 정도 먼저 출간됐지만, 인터넷서점이나 카페에 올라온 서평을 살펴보면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독자가 아비코 다케마루와의 첫 인연을 ‘살육에 이르는 병’을 통해 맺은 것 같습니다. 그런 탓인지 “기대감은 만발했으나 실망했음”이란 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쪽에 더 가까운 편임을 전제로 간략하게 서평을 써볼까 합니다.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홀수 장이 ‘교사’, 짝수 장이 ‘형사’로 되어있고, 마지막 9장만 ‘미륵’이란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교사 쓰지는 여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 때문에 근무하던 학교도 옮겨야 했고, 아내 히토미와는 각 방을 쓰며 거의 별거상태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히토미가 사라집니다. 냉전 중이었던 상황 탓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쓰지는 경찰이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누명을 벗기 위해 아내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곧 히토미가 ‘구원의 손길’이라는 신흥종교단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형사 에비하라는 야쿠자와의 연루설에 뇌물수수 등 부패혐의로 내사를 받던 중 아내 가즈코가 러브호텔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자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집안에서 발견된 고가의 미륵상을 통해 가즈코를 살해한 범인이 ‘구원의 손길’이라는 신흥종교단체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만난 두 남자가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해, 또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구원의 손길’에 잠입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탑니다.
두 챕터 쯤 읽은 후 이 작품의 제목이 ‘미륵의 손바닥’이라는 것을 새삼 떠올리곤 두 남자의 결말이 꽤나 씁쓸하겠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아무리 애써봐야 결국 ‘미륵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꼴밖에 안됐다는, 그런 결론이 기다릴 것 같은 짐작 때문이었습니다.
두 남자의 이력을 보면 그런 결말을 맞게 돼도 그리 불쌍하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둘은 각각 원조교제와 부정부패라는 ‘전과’가 달려있고, 아내를 찾는 목적도, 아내의 살해범을 찾는 목적도 전혀 정의롭지 않습니다. 쓰지는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마지못해 아내를 찾아 나선 셈이고, 에비하라는 아내가 살해됐다는 사실보다는 러브호텔에서 저지른 불륜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꽤 센 반전과 충격을 주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살육에 이르는 병’을 먼저 본 업보(?) 탓인지,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아쉬웠습니다. 미륵의 정체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고, 분량이 크게 넘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급 마무리된 이유도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물론 아비코 다케마루만의 개성은 충분히 엿볼 수 있지만, 앞서 깔아온 이야기의 기초공사들이 허망해진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100% 몰입해서 읽기가 어려웠던 것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신흥종교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만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정도는 아니다보니 리얼리티 면에서 왠지 ‘남 얘기’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무래도 ‘신흥종교’라는 소재 자체는 그리 매력적이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나절도 안 돼 마지막 장까지 달릴 수 있었던 것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만든 ‘쉬운 전개와 복잡하지 않은 구도’ 덕분이었습니다. 이런 점은 장르물에 있어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이 작품에 관해 판정 내리자면 장점 대 단점이 4:6 정도? 그래도 장점을 4로 본 것은 쉽고 안이하게(?) 읽은 덕분에 결말의 충격을 어느 정도는 무방비 상태에서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의 서평에 “아예 더 많은 내용을 넣어서 보다 긴 장편으로 만들거나, 반대로 단편 정도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전적으로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