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원숭이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 들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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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을 덮은 뒤 미치오 슈스케 작품 가운데 읽었던 게 뭐가 있더라?”하면서, 독서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꽤나 당황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몇 권은 있으려니, 했는데 제대로 읽은 장편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이 리스트에 있었지만,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접었으니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결국 앤솔로지라 할 수 있는 혈안에 실린 단편 여름의 빛이 유일하게 끝까지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이었습니다.

왜 이런 착각을 했나, 곰곰이 돌이켜보니 광매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구체의 뱀’, ‘술래의 발소리’, ‘달과 게등 읽어봐야지, 하고 눈여겨봤던 작품들이 적잖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딱히 관심두지 않았던 외눈박이 원숭이부터 읽게 됐으니, 미치오 슈스케와는 별난 인연으로 시작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도청전문 탐정인 미나시는 유명한 악기업체로부터 의뢰받은 라이벌 기업 도청 미션을 수행하던 중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과 마주치게 됩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얼마 전, 미나시는 지지부진하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우연히 알게 된 후유에를 탐정사무소로 스카웃했습니다. 미나시가 특이한 귀 모양 덕분에 초능력에 가까운 청력을 갖고 있다면 후유에는 특이하게 생긴 눈과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시력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미나시는 큰 헤드폰을, 후유에는 큰 선글라스를 항상 착용하고 다닙니다.

이야기는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는 내용과 7년 전 미나시를 떠난 후 자살한 아키에의 사연을 추적하는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됩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 생각했던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미나시는 패닉에 빠지게 되고, 7년 전 아키에의 자살 역시 그 용의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미나시의 수사는 갈팡질팡하게 됩니다.

 

미스터리 외에도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미나시가 머무는 기묘한 아파트 로즈 플랫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과거 미나시의 탐정 스승이었던 노하라 영감, 무뚝뚝한 마키코 할머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도헤이, 쌍둥이 10대 도우미와 마이미, 미나시의 비서 호사카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소동극 같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냅니다. 후반부에 가면 미나시와 후유에를 비롯, 이들 모두의 엄청난 비밀이 드러납니다.

 

초반부를 읽으면서 왠지 제 취향이 아닌 가볍고 코믹한 장르물의 냄새가 나서 조금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귀와 눈의 소유자인 주인공들과 소동극의 조연 같은 로즈플랫의 구성원들도 그랬고, 사건 자체도 그다지 독하거나 개성 있는 편이 아닌데다, 미나시의 추리 역시 조금은 뜬금없는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반부터 두 사건의 이면에 있는 비밀들이 하나둘씩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긴장감과 속도감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느닷없이 이야기의 톤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두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미스터리 자체는 완결되지만, 정작 그 뒤에 깜짝 놀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걸 서술트릭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작가에게 완전히 당했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리 불러도 무리는 아닙니다. 작은 힌트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 정도만 밝히겠지만, 어쨌든 마지막 20여 페이지쯤부터 기가 막힌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왜 이 작품의 제목을 외눈박이 원숭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인데다, 초반의 약간 나이브한 내용과 전개 때문에 저처럼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마지막 장까지 달리고 나면 미스터리로서의 완결성은 물론 이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따뜻함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뒷표지에 적힌 홍보문구 냉철한 두뇌, 따뜻한 감성까지 요구하는 감성미스터리 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는 점도 동감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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