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리스트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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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살인청부업자 방의강은 과거 조직의 보스인 사장늙은이의 호출을 받는다.

사장늙은이의 아들이자 청부살인업계의 거목인 다이스컨설팅의 정실장이 살해당했다는 것.

자신을 청부업계로 이끈 정실장에 대한 의리로 위기에 처한 정실장의 아내를 찾아 나서는데,

방의강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그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등장한다.

정실장의 죽음 뒤에 도사린 유령 리스트의 비밀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진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방의강의 목숨부터 날아갈 판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죽어도 되는 아이로 처음 만난 킬러 방의강 시리즈의 첫 편인 작품입니다.

청부살인, 시체처리업자, 무자비한 총격전 등 한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설정이 난무하지만

롤러코스터처럼 전개되는 스토리 덕분에 그런 비현실성은 쉽게 망각하게 되고,

오히려 짜릿한 킬러 액션의 매력을 듬뿍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방의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목표물의 목숨을 거둬들이는 냉혹한 킬러지만,

동시에 겁도 많고, 죽음의 위기에선 바지자락을 적시기도 하는 평범한 남자이기도 합니다.

혼잣말처럼 불평불만을 궁시렁대기도 하고, 썩은 수준의 블랙유머도 수시로 구사하는데,

총잡이 청부살인업자라는 비현실적 설정에도 불구하고

방의강이라는 캐릭터에게 몰입할 수 있는 건 아마 이런 인간적인(?) 면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부여된 미션은 과거 보스의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위기에 처했을지 모르는 보스의 며느리를 구해내는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방의강은 인간의 몸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잔혹한 폭력조직과 마주하게 되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거쳐 겨우 자신의 미션을 클리어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방의강의 슈퍼맨 원맨쇼보다는 사실감 높은 팀플레이를 설정했습니다.

적인지 아군인지 식별하기 어렵지만 돈이라면 기꺼이 한편이 돼주는 극강의 킬러도 등장하고,

명백히 적으로 만났지만 과거 인연으로 어쩔 수 없이 방의강을 도와주는 킬러도 등장합니다.

이런 설정 없이 무작정 방의강 혼자 모든 걸 해결했다면

아마 이 작품은 킬러 액션이 아니라 판타지로 흘러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하자면,

마지막까지 다 읽고도 이 작품 전체의 인물구도나 사건개요가 일목요연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제목이자 방의강의 미션에서 가장 중요한 단서인 유령리스트가 뭘 의미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방의강을 둘러싼 거대한 세력들 간의 관계도 굉장히 모호할 뿐입니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주인공의 목표가 무엇이고, 등장인물간의 전사(前史)도 애매하다보니

장면 하나하나는 재미있게 읽혀도 큰 그림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직전에 읽은 이 시리즈의 최신작 죽어도 되는 아이는 모든 것이 선명하고 분명해서

재미와 함께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는데,

아마도 이 작품이 시리즈의 첫 편인 탓에 이런 맹점들이 드러난 게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이 작품 뒤로 블라인드 코너’, ‘퍼스트 킬이 출간됐는데,

조만간 이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잔인한 킬러의 세계를 그린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지만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본업에 충실한 청부살인업자라는 매력적인 주인공의 중독성이

기대 이상으로 강렬하게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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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가 온다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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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떠났던 여대생이 인적 드문 산속에서 반백골로 발견된다.

살해된 시점도 알 수 없고, 주변에 지인조차 얼마 없는 탓에 수사는 난항을 겪지만,

수원중부경찰서 이평서 팀장은 그녀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한편 이웃을 무차별 폭행하여 살인에 이르게 한 사건을 조사 중인 법학대학원생 박심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던 피의자가 약을 끊은 지 17일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 피의자에게 약을 끊으라는 조언을 한 항우울제를 반대하는 모임에 관심을 갖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출판사 소개글에도 나와 있듯 이 작품의 주된 소재는 우울증입니다.

자살 혹은 타살로 보이는 여러 죽음이 등장하고 그 죽음의 기저에는 우울증이 깔려있습니다.

중년의 노련한 강력계 형사가 여대생의 죽음을 수사하고

예비변호사인 로스쿨 학생이 대낮에 상대를 무차별 폭행, 살해한 피의자를 조사하는데,

전혀 별개로 보이던 두 사건은 우울증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한 곳으로 수렴됩니다.

 

작가가 본문에서도 여러 번 반복하여 지적했듯 우울증은 단순한 우울감의 발현이 아닙니다.

가까이에서 우울증을 겪는 사람을 지켜본 탓에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또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쉽게 공감하거나 위로해주기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어서

우울증이라는 소재가 미스터리 속에 제대로 녹아들 수 있을지 우려가 되기도 했고,

우울증을 겪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살 수 있을지도 회의적이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의 주된 소재가 우울증이란 걸 미리 알았으면 안 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확인했던 송시우의 필력은

우울증이라는 소재를 자살, 타살, 소시오패스, 음모론 등 다양한 코드들과 함께 잘 버무렸고,

덕분에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 멋진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너무 명백한 살인사건이라 피의자의 우울증 조사 자체에 회의적이었던 로스쿨 학생 박심이

성실함과 집요함을 무기로 우울증이 갖는 파괴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 가는 과정이나

변사 사건으로 쉽게 덮을 수도 있는 반백골의 여대생 사건을 맡은 이평서 팀장이

사소한 단서 하나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 모두

탄탄한 구성과 성실한 문장들을 통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우울증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미스터리의 힘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거대 제약사와 의료계가 우울증을 이용하여 막대한 이익을 올린다는 음모론이라든가

상대의 우울증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려는 그릇된 인물에 대한 묘사,

, 우울증 환자들끼리 소모임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이 예상치 못한 파국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설정은

직설적인 우울증 서사만을 우려했던 저에게는 무척 신선하게 읽힌 대목이었습니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달리는 조사관’, ‘아이의 뼈등을 통해

믿고 읽는 한국 장르물 작가로서의 매력을 발휘했던 송시우의 힘을 유감없이 느끼긴 했지만,

아쉬운 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약간은 과도한 우울증에 대한 강의였습니다.

후반에 수록된 도움받은 책들목록만 봐도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알 수 있지만

논문 수준에 가까운 우울증에 대한 설명은 때론 스토리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구성이라 해도 때론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0.5개가 빠진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만 더 이야기하자면 너무 특이해서 거부감이 들었던 인물들의 이름입니다.

박심, 반탁신, 박이음, 설리사 등이 그것인데

생경함 때문에 오히려 비현실적인 존재로 보이게 만든 작명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작가는 후속작의 여지를 대놓고 남겨놓았는데,

과연 예비변호사 박심과 노련한 형사 이평서가 새 사건으로 재회하게 될지 사뭇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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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새의 비밀 - 천재변리사의 죽음
이태훈 지음 / 몽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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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함과 성실함으로 정평 난 천재 변리사 송호성이 인적 드문 골목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송호성과 죽마고우이자 라이벌 변리사인 강민호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송호성이 직접 선발한 어딘가 비밀스러운 사연이 많아 보이는 수습 변리사 선우혜민 역시

강남경찰서의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다.

숨진 송호성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영수증 한 장.

그리고, 그 뒷면에 적힌 수수께끼 같은 메모, ‘AERUS-IL’에 숨겨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익숙하지 않은 변리사라는 직업을 소재로 삼았고,

특허전쟁이라는 문제를 살인사건에 대입시킨 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습니다.

, 작가 본인이 오랫동안 특허 업계에 종사한 만큼

변리사나 특허라는 소재에 관해서만큼은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천재 변리사가 살해되고 그 죽마고우가 용의자로 꼽히는데다

베일에 싸인 듯한 수습 변리사 역시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 수사를 맡은 강남경찰서 내 형사들 간의 갈등과 공 다툼도 동시에 전개되는데,

1주일 뒤 국정원에게 수사권을 넘기기 전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제한 설정까지 더해져

그들 간의 치열한 다툼은 수사 자체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특허변리사가 연루된 사건이다 보니

당연히 특허분쟁을 둘러싼 갈등, 정치권과 기업이 개입된 이권 다툼이 예상됐는데,

거기에 주인공들의 과거사, 형사들의 공 다툼, 국정원 요원의 탐욕까지 끼어들면서

분량에 비해 이야기가 다소 복잡해지기도 했고 사족처럼 늘어난 대목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동원된 다양한 리소스들이 제대로 배합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주요인물들의 유년기의 이야기나 강남경찰서 형사들의 공 다툼은 꼭 필요해 보이지 않았고,

천재 변리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특허분쟁은 너무 뻔한 공식대로 전개되는데다

현실감마저 부족해 보여서 긴장감을 갖고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특허변리사라는 주요 소재가 딱히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국정원 요원은 설정된 캐릭터에 비해 어설픈 언행만 거듭했고,

미스터리를 푸는 역할을 맡은 변리사나 형사는 주인공다운 포스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감 없는 설정들도 눈에 거슬렸는데,

그토록 천재 변리사라 불린 인물이 왜 그렇게 가난에 시달렸는지도 잘 모르겠고,

국정원은 당장 수사권을 회수할 상황에서 왜 1주일씩이나 경찰에게 시간을 줬는지 모르겠고,

USB, 영수증, 메모 등 주요단서들은 너무 쉽거나 안이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미스터리로서의 치밀함도, ‘특허변리사라는 소재의 특별함도

제대로 독자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변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에 쏟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 서사나 소재의 특별함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살았더라도

작가의 의욕이 어느 정도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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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섬광 - 김은주 미스터리 소설
김은주 지음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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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미스터리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다

(거의 처음 읽는 것 같은) 한국작가의 메디컬 미스터리라 무척 기대가 됐던 작품입니다.

 

일단 오프닝은 흥미롭습니다.

15살 소녀 수인이 5년 만에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날, 동갑내기 소년 고윤이 투신자살합니다.

고윤은 수인과 거의 동시에 코마상태에 빠졌다가 1년 만에 깨어났고,

그 뒤로 아직 코마상태인 수인을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독백처럼 들려주던 소년입니다.

수인은 코마상태에서도 고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고윤의 죽음이 병원이나 경찰의 결론처럼 일반적인 자살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수인과 고윤의 담당간호사였던 희정 역시 고윤이 절망감에 자살한 것이 아니며,

그에 관한 결정적인 단서도 손에 넣지만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 못합니다.

다른 경찰들과 달리 고윤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형사 무원은 이리저리 조사를 진행하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의문을 해결해줄 단서를 찾아내지 못해 답답할 따름입니다.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두운 터널을 함께 달린 형사, 간호사, 소녀.”라는 본문 속 표현처럼

이 작품은 무원, 희정, 수인이 고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았던 대형병원의 추악한 이면,

모두의 무관심 속에 무기력하게 절망해야 했던 의료사고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

그리고, 진실을 알면서도 오락가락하는 사건 관련자들의 불안감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됩니다.

 

사실, 이야기는 무척 단선적입니다.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소녀라는 특별한 설정 외에는

신약 개발, 대형병원의 횡포, 인명조차 도구로 여기는 탐욕, 무기력하게 이용당한 희생자 등

전형적인 메디컬 미스터리의 요소들이 공식처럼 배치돼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 역시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흘러갑니다.

분량도 300여 페이지에 불과해서 금세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는데,

문제는, 다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하기도 하고,

특히 긴장감 같은 건 거의 느끼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입니다.

그 아쉬움을 일일이 다 언급하면 서평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메모했던 단문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단서들이 다 노출됐는데 정작 주인공들은 아무 행동도 안 한다. 고민만 하고 있다.

  각자 갖고 있는 단서나 의구심을 상대에게 보여주기만 해도 모든 게 해결될 텐데...

- 주인공 형사의 가족사나 트라우마가 이 작품에 꼭 필요한 설정이었나?

  정작 형사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별 역할을 한 게 없다.

- 사건과는 무관하게 자기 연민에만 빠진 조연들. 왜 등장한 걸까?

  그들의 어두운 개인사를 일일이 다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 악당은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무기력하게 주인공에게 당하고 만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악당.

- 제목을 너무 추상적으로 지었다.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메디컬 미스터리라고 해도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되고 긴장감이 팽배해야 하지만,

이 작품의 전반적인 기조는 조용함그 자체입니다.

수인은 고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힐 결정적 증거가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희정 역시 결정적 증거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저 고민만 할뿐 아무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무원은 형사로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탐문만 할뿐 정작 실속은 별로 없습니다.

세 인물이 한 번만 진지한 대화를 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패를 드러내기만 했어도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 있었고 이야기는 좀더 확장성을 지닐 수 있었을 텐데,

작가는 엉뚱하게 주인공과 조연들의 개인사나 심리상태 묘사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니 긴장감 없는 책읽기과 다 읽은 뒤의 허전함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재 자체나 필력만 보면 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뽑히기에 충분한 퀄리티지만

이 작품을 원작으로 2차 콘텐츠가 제작되려면 훨씬 더 역동적인 서사가 가미돼야 할 것입니다.

조용함자체가 미덕인 메디컬 미스터리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 인물이나 사건은 애초 조용함과는 거리가 멀게 설정됐기 때문입니다.

문장이나 필력만 보면 후속작을 충분히 기대할만한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후속작도 장르물이라면 좀더 역동적인 서사를 고민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번역물의 오타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작가의 작품에서 오타가 발견되면 참 난감합니다.

작가의 오타인지, 편집자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씁쓸함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 너무 많다 싶어서 따로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제 눈에 띈 것만 정리한 것입니다.

 

p31, 6. 희정의 성식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희정은)

p34, 4. “수인을 손을 뻗어...” (수인은)

p47, 7. “형사라면 누구나 불량식품으로 시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불량식품으로부터)

p70, 10. “레지던트들이 자신의 말을 경철하고 있다는..” (경청하고)

p84, 1. “자신과 같이 처지에 있던 친구의...” (같은)

p114, 8. “아이들 이야기를 드리려면 5년 전 일부터 말씀을 드려야...” (들려드리려면)

p116, 1. “무원의 말이 희정은 누가 가방 속으로 손이라도 불쑥 넣은 양 당황...” (말에)

p144, 6. “매일 작은 책상 앉아서 일하고 있는 그녀가...” (책상에)

p151, 1. “무원의 희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형사의 입장에서 이해했다.” (무원은)

p153, 9. “1인실은 그런 것들은 아주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보기에...” (것들을)

p184, 8. “친구가 털어놓은 비밀은 들은 것은 물론...”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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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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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저갱 =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로, 지하 세계나 지옥 따위로 연결되는 곳.”

 

어감 자체도 꽤나 음울한 분위기를 발산하는데 그 의미는 한결 더 심각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작가는 독자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그러니까 지옥 따위로 연결되는 곳이 아니라 지옥 그 자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가 등장합니다.

밑바닥을 전전하며 소심하게 살아오던 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곤

자신 안에 내재돼있던 소시오패스의 기질을 발견한 뒤 잔혹한 살인마로 진화합니다.

소시오패스들이 모여 만든 회사의 중간간부인

의뢰인들이 지목한 자들을 길고 긴 시간동안 잔혹하게 고문한 뒤 쓰레기처럼 처리합니다.

전직 의사인 는 약물과 가스를 이용하여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앞선 두 명의 는 명백히 소시오패스라 칭할 수 있는 자들인데,

이들이 먹잇감을 선택하고 처리하는 방식은 정의로운 사적 복수에 입각한다는 점입니다.

내재된 소시오패스 기질을 발견한 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은

자기 주위의 사악한 자들을 차례차례 응징해나갑니다.

그럴 때마다 엔돌핀의 폭발과 함께 삶의 희열을 만끽하던

자신에게 부여된 난이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한판을 준비합니다.

두 번째 는 범죄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회사의 차장님인데,

그는 늘 하얀 가면을 쓴 채 먹잇감들의 뼈와 살을 가뿐하게(?) 발라내곤 합니다.

, 그의 타겟 역시 모두 악인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 명의 는 각각 싸움꾼’, ‘사냥꾼’, ‘파수꾼이란 이름으로 한 챕터씩 화자를 맡다가

막판에 이르러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이야기 중심으로 모여듭니다.

 

정의를 구현하는 소시오패스는 어쩌면 사적 복수에 관한 한 최고의 설정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조사부, 현장부, 처리부 등으로 분업화된 소시오패스 회사 소속의 유능한 차장님은

사적 복수를 즐겨 읽는 저로서는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로 보였습니다.

다만, 이 작품이 사적 복수 자체를 주제로 한 작품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제대로 된 형벌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라는 홍보카피가

이 작품의 메인스토리나 주제 자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만 놓고 보면 별 5개도 부족한 작품이긴 하지만,

0.5개를 뺀 이유는 서사나 스토리의 힘보다는 폭력 그 자체에만 너무 몰두했다는 점,

꽤 놀랍기는 해도 막판 반전이 다소 설명이 부족했고 작위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무저갱이라는 제목이 주제를 반영하기보다는 겉멋처럼 보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라는 점에 대해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설정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물론 이 작품에서 ?’라든가 주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여운 같은 건 남지 않았고, 단지 피비린내만 진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저 역시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족으로...

일단, 잔혹한 폭력 묘사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있는 독자는 이 작품을 피해야 합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가장 잔인한 장면들만으로 400여 페이지가 꽉 차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지간해선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저도 일부 장면에서는 꽤나 심기가 불편할 정도였는데,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긴 해도 때론 과도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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