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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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줄거리가 포함된 서평입니다.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제도에 반감을 갖고 있던 28살의 가와이 조지는 클럽의 여급으로 일하던 15살 나오미에게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훌륭한 여자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클럽에서 빼낸 후 동거를 시작합니다. 가와이는 나오미에게 음악과 영어를 배우게 하고,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며 훌륭한 여자의 자질을 갖추게 만듭니다. 하지만 어느 새 주종 관계는 역전되고 맙니다. 저축이 바닥나고 월급이 빠듯해져도 가와이는 극에 달한 나오미의 사치를 다 받아줬고, 또래 남자친구들을 거침없이 집으로 불러들이는 상황도 애써 참아냅니다. 시간이 갈수록 가와이는 점점 나오미의 노예로 추락했고, 결국엔 몸과 마음을 모두 지배당하는 마조히즘에 가까운 늪에 빠집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력을 보니 네 번이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일본인 최초로 미국 예술원 명예회원으로 선출됐을 정도로 걸출한 인물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좀 오래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1886년에 태어났으며 이 작품이 1920년대 중반에 쓰였다는 건 첫 페이지를 펼친 뒤에야 알게 됐습니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상징이라는 홍보 문구 덕분에 책을 집어 들긴 했지만, 거의 90년이 지난 시점에 세계문학의 숲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새롭게 출간된 이유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한 소녀를 친구로 삼아 그녀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산다는 것은 정식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과는 다른 각별한 재미가 있을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가와이 조지의 1인칭 서술로 이뤄진 8년의 기록은 파괴적이고 자유분방한 삶을 누린 팜므 파탈 나오미의 성장기이자, 욕망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잃어가는 가와이의 몰락기입니다. 원제인 痴人에서 痴人은 바보 또는 미치광이라고 해석되는데, 가와이는 두 가지 해석이 동시에 가능한 인물입니다. 그는 서양식 욕조에서 나오미의 몸을 닦아주며 차츰 성장해가는 그녀의 육체에 빠져듭니다. 특히 그녀의 발은 가와이에게는 페티시즘의 대상인데, 그를 바보 또는 미치광이로 만드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노골적인 성적 묘사는 거의 한 줄도 등장하지 않지만, 나오미의 몸 곳곳을 바라보는 가와이의 눈빛은 탐미주의 거장의 작품답게 집요하지만 천천히, 농밀하지만 은근하게 묘사됩니다.

나오미와의 동거가 시작된 뒤 가와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의 언행에 무조건적으로 헌신합니다. 천진난만했던 10대 소녀가 시간이 흐를수록 상스러운 말과 천박한 행세에 찌든 길거리 여자로 변신할 때도, 그리하여 안하무인 여주인처럼 가와이 자신을 깔아뭉개기 시작했을 때도, 또 수많은 남자에게 거리낌없이 몸을 내맡길 때도 가와이는 채 1시간도 지속되지 못할 순간적인 분노만을 느낄 뿐 결국엔 그녀에게 굴복하고 맙니다. 말 그대로 바보이자 미치광이일 수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인 1920년대의 도쿄는 서양문물의 빛과 그림자가 어지럽게 뒤엉킨 혼돈의 도시였습니다. 가와이가 나오미에게 가르쳤던 음악과 영어, 나오미가 빠져들었던 화려한 댄스홀, 퇴폐적인 프리섹스와 물질만능주의, 한 여자를 육체적으로 공유하는데 동의한 엘리트들의 문란함 등 욕망이 일그러진 형태로 자유롭게 분출되던 그곳에서 나오미를 훌륭한 여자로 키우겠다며 고군분투했던 가와이의 전근대적이고도 왜곡된 심리는 당시 문화적 충돌이 몰고 온 사회적 혼란을 잘 반영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다만, 작품 자체로만 보면 창녀에 가까운 나오미의 패륜을 수차례 목격하고도 차마 그녀를 버릴 수 없어 번번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 가와이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민폐 캐릭터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또 나오미의 방탕함과 가와이의 초조함 외엔 별다른 이야기가 전개되지 못한 탓에 좀더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상황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가장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연재됐던 1920년대에는 가와이의 관능적 욕망과 마조히즘이 탐미주의라는 이름 아래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겠지만, 요즘의 독자들에게 어필하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메이크가 가능한 영상물이나 재해석이 가능한 음악과 달리 문학은 작가 스스로 손대지 않는 이상 그 오리지널리티가 그대로 이어지는 장르인 만큼 1920년대의 작품을 접할 생각이라면 어느 정도의 올드함은 감수해야 되겠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은 그렇게 감수해야 할 올드함이 조금은 많아 보이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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