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938년 영국의 대저택을 배경으로 한 비극이라는 설정, 첫 장을 넘기는 순간 훅 하는 느낌을 전해준 고전미 넘치는 저자의 흑백사진,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묘사된 정밀한 풍경화를 떠올리게 만든 대저택 맨덜리의 이미지 때문에 본 내용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쉽고 편안하게 읽힐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초반부를 마쳤을 때쯤엔 널리 읽힌 고전만이 지니는 묵직한 중량감은 물론 두 여자와 한 남자가 머물던 대저택 맨덜리의 암울한 기운과 그들을 둘러싼 영국 해안가의 우울한 날씨까지 더해져 새삼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됐습니다.

 

대저택의 안주인이던 레베카가 불의의 사고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지 1. 레베카의 남편 맥스는 남프랑스 몬테카를로에서 하녀 같은 생활을 하던 를 만납니다. 이후 전광석화처럼 만남과 결혼, 신혼여행이 이어지고, 드 윈터 부인이 된 는 맥스의 손에 이끌려 대저택 맨덜리에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맨덜리 곳곳에는 전 안주인 레베카의 흔적들로 가득했고, ‘에게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신데렐라 생활이 이어질 뿐이었습니다. 남편 맥스는 왠지 매사에 자신을 레베카와 비교하는 것만 같고, 집안 살림을 도맡은 댄버스 부인은 공공연한 적대감을 절대 감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네 달 가까이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무렵, 주위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 축하를 빙자한 대규모 무도회를 열게 됐지만 그날 밤, 맥스와 ’, 그리고 대저택 맨덜리를 악몽에 빠뜨리는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집니다.

 

첫 출간 이후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다는 홍보문구는 허언은 아니었지만, 자극적인 서사와 잔혹한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밋밋하게 읽힐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대저택을 배경으로 한 잘 짜인 미스터리나 스릴러라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 행간에 잘 배어있는 고전의 향기가 훨씬 진합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장르도 다르지만, 읽는 내내 워더링 하이츠생각이 여러 번 났습니다. 더불어, 음침한 색채로 그려진 몇 세기 전의 초상화도 생각났고, 비장하거나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클래식 협주곡도 자주 떠올랐습니다.

 

한 번 읽고 책장에 방치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몇 년쯤 지나 처음 읽었던 느낌을 되새기면서 한 줄 한 줄 꼼꼼히 다시 읽어보면 명불허전의 고전을 읽을 때마다 그렇듯이 레베카와 맥스, 드 윈터 부인이 맞닥뜨려야 했던 아픔과 분노에 대해 새로운 해석과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첫 장을 넘기면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사진을 만나게 됩니다. 왠지 드 윈터 부인이 실존한다면 이 작가를 꼭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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