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은 독
오리가미 교야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대생인 기세 요시키는 중학생 시절 과외교사였던 마카베 겐이치와 오랜만에 재회합니다. 의대생이었던 마카베가 인테리어 가게에서 일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기세는 그가 결혼을 앞두고 양심이 있으면 결혼하지 마라.”라는 협박 편지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마카베는 경찰에 알리기를 꺼려했고, 기세는 탐정을 통해서라도 협박범의 정체를 알아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기세가 만난 탐정은 중학교 1년 선배이자 그 무렵부터 탐정 견습생으로 전교에 소문이 자자했던 기타미 리카입니다. 기세의 의뢰를 받아들인 기타미는 마카베가 협박당할 만한 과거가 있었는지부터 조사하는데,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한 정보는 기타미와 기세를 큰 충격에 빠뜨립니다.

 

(앤솔로지를 제외하고) 한국에 일곱 편의 작품이 출간된 오리가미 교야지만 이 작품 전까지 읽은 건 특이한 영능력자 탐정이 주인공인 단지, 무음에 한하여한 편뿐입니다. 대표작인 기억술사시리즈는 취향과 거리가 먼 것 같아 읽지 않았는데, ‘꽃다발은 독을 읽고 나니 시리즈의 첫 편 정도는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다발은 독은 막판 반전이나 엔딩 외에도 크고 작은 스포일러가 많아서 서평 속에 인물과 줄거리를 언급하기가 무척 곤란한 작품입니다. 탐정인 기타미와 법대생인 기세가 마카베를 협박하는 범인을 찾는 것이 주된 줄거리인데, 마카베가 협박당하게 된 계기, 4년 전 마카베가 일으킨 사건이 100페이지 전후쯤 공개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 사건 자체가 꽤 충격적이어서 나름 스포일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그 뒤의 줄거리는 두루뭉술하게 언급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과 미덕을 서평에 담는 일은 줄거리 소개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고백하자면, 중반부를 조금 넘는 지점까지만 해도 느슨하고 평범한 협박범 찾기로 읽혀서 살짝 아쉬움이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0.5개를 뺀 유일한 이유입니다) 기타미와 기세의 조사는 마카베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일상적인 탐문에 그쳤고, 4년 전 마카베가 일으킨 사건이 충격적이긴 해도 독자의 시선을 계속 잡아둘 만큼 지속적인 긴장감을 일으키진 못합니다.

하지만 기타미와 기세가 조사 과정에서 수시로 위화감에 사로잡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자 역시 이렇게 무난하고 쉽게 풀릴 리가 없다라는 의구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카베는 왜 협박을 당하면서도 고발을 꺼리는가? 강경한 어조와 정중한 문체를 번갈아 사용하는 협박범의 의도는 무엇인가? 4년 전 사건은 실제로 마카베가 일으킨 것인가, 아니면 원죄(冤罪) 사건인가? 숱한 의문이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대략 100페이지쯤 남은 지점부터 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겹겹이 설치된 함정이라는 출판사 소개글대로 작가는 독자들을 깊이도 크기도 다른 함정들 속에 연이어 빠뜨립니다. 이것이 진상인가 싶으면 어느새 작가는 다른 곳을 가리키기 시작하고, 그쪽으로 따라가다 보면 또 금세 엉뚱한 곳을 가리키기 시작합니다. 평범한 반전을 통해 평범하게 마무리될 것 같던 이야기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경로를 통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후반부는 그야말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발견한 진실은 너무나도 뜻밖이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주인공인 기타미와 기세는 자신들이 찾아낸 진실에 크게 놀라면서도 그보다는 그 진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큰 곤란에 빠지고 맙니다. “진실이 밝혀져도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라는 본문 속 한 줄처럼 주인공과 독자 모두를 극단적인 딜레마에 밀어 넣은 작가는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라면 눈앞의 이 폭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숙부가 운영하는 탐정사무소의 조사원 신분이지만 명탐정의 자질을 갖춘 20대 초반의 기타미 리카는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시리즈 주인공으로서도 손색없어 보였는데 아쉽게도 2021년에 이 작품이 출간된 뒤로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그녀가 주인공인 미스터리가 출간된다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물론 그 전에 이 작품을 통해 새삼 그 진가를 알게 된 오리가미 교야의 다른 작품들부터 찬찬히 검색해보려고 합니다.

 

끝으로, ‘아주 약간번역에 관한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오역이나 비문은 없지만 가끔 자연스럽지 못한 문장들이 눈에 띄곤 했습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정도로 미미한 문제지만 옥의 티처럼 느껴져서 사족으로 달아봤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