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사냥꾼
최이도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법의관 서세현은 소도시 용천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피해자를 부검하던 중 큰 충격을 받습니다. 범인은 죽은 피해자를 해부한 뒤 실로 꿰맨 흔적을 남겼는데, 이는 서세현에게는 너무도 낯익은 범행수법이기 때문입니다. 범인은 바로 오래 전 자신의 손으로 죽인 연쇄살인마이자 친아빠인 윤조균입니다. 그가 살아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지만 만일 그가 경찰의 손에 잡히고 자신의 친아빠임이 밝혀진다면 자신의 미래는 완전히 파멸될 것이라고 여긴 서세현은 경찰보다 먼저 윤조균을 찾아내 죽이기로 합니다. 일부러 용천경찰서 인근에 거처를 삼은 서세현은 담당 형사인 정정현에게 접근하여 수사 정보를 빼내려 합니다. 그러던 중 두 번째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서세현은 윤조균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머물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독특한 인물들을 앞세운 연쇄살인 스릴러입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의관 서세현, 소년이던 21년 전 연쇄살인마 윤조균의 뒷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적 있으며 경찰이 돼서도 미제살인사건에 집착하는 신참 강력팀장 정정현, 그리고 20여 년에 걸쳐 연쇄살인을 저질러 온 희대의 소시오패스 윤조균이 그들입니다.

 

법의관 서세현이 아버지이자 연쇄살인마인 윤조균을 쫓는 이유는 정의감도 사명감도 아닙니다. 그가 체포되어 과거 연쇄살인행각이 폭로될 경우 미성년자 시절 자신의 공범 행위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법의관 딸과 연쇄살인마 아버지의 대결이라는 구도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일으키는 설정인데, 거기에 가세한 형사 정정현은 베테랑도 아니고 마초 기질도 전혀 없는, 오히려 숙맥 같은 인물이라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어차피 광역수사대가 사건을 접수할 거라는 생각에 용천경찰서 내 누구도 사건에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긴 하지만 그는 경험도, 추리력도 딸리는 초짜 팀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에겐 미제사건에 대한 특별한 집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쇄살인사건이 과거의 미제사건들과 접점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며 수사 자료들을 재검토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정정현의 미제사건에 대한 집착은 그와 공조수사를 벌이던 서세현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큰 그림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연쇄살인마를 쫓는 법의관과 형사로 시작되지만 곧바로 형사가 쫓는 연쇄살인마와 그 공범이라는 구도가 동시에 전개되면서 인물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계속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핸디맨이나 깜빡이는 소녀들같은 영미권 스릴러에서도 종종 차용하는 연쇄살인마의 자식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흡입력이 있는데 메스를 든 사냥꾼의 경우 연쇄살인마 아버지를 죽이려는 딸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져서 그 구도가 더 풍성해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큰 그림에 비해 디테일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쉴 틈도 없이 바쁜 법의관이 1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의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형사보다 더 형사처럼 활약한다.’는 설정은 읽는 내내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또 특별할 것도 없는 법의관의 현장 진술을 마치 대단한 추리력의 산물인 양 감탄하며 추종하는 형사팀장 정정현의 캐릭터도 작위적이었고, 방송국 차량이 진을 칠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됐는데도 불구하고 (정정현 홀로 고군분투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수사를 기피하는 듯한 용천경찰서 수사진들의 태도도 억지스러워 보였습니다. 초반부터 이런 자연스럽지 못한 설정들이 뇌리에 박힌 탓에 이야기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고,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도 당초 기대했던 스릴감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디테일이 좀더 자연스러웠더라면 잘 짜인 큰 그림이 더 빛을 발했을 거란 아쉬움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한국의 스릴러 작가를 만난 일은 무척 반가웠지만 그만큼의 아쉬움도 남긴 작품입니다. 다음에는 그 아쉬움들을 모두 잊게 만들 수 있는 작품으로 만나기를 기대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