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올빼미
누쿠이 도쿠로 지음, 최현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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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이 도쿠로는 범죄를 저지른 자와 희생된 자 모두의 심리를 아우르며 독자를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작가” (‘미소 짓는 사람후반부에 실린 해설)

 

통곡’, ‘난반사’, ‘어리석은 자의 기록’ (구판 제목은 우행록’) 등에 이어 열 번째로 만난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입니다. 3개에서 5개에 이르기까지 다소 굴곡 있는 평점을 주긴 했지만 그 어떤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와도 차별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어서 늘 신작 소식을 기다리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독자를 결코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작가라는 평처럼 그의 작품들은 매번 마지막 장을 덮을 때마다 마음을 무겁게 만들곤 합니다. 사건은 해결되지만 통쾌하거나 속이 시원해지기는커녕 애초 끔찍한 비극의 출발점이 됐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새삼 자각하며 묵직한 여운과 함께 책장을 덮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종이올빼미는 네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중편으로 이뤄진 작품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한 명 죽이면 사형당하는 세계의 이야기이다.”라는 본문 첫 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수록작 모두 사형 대국이 된 일본이라는 공통된 가상의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범죄를 억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사형을 선택했고, 현재는 사형을 반대하면 이상한 종교에 빠졌거나 범죄자를 두둔하는 자로 취급받거나 정의를 반대하는 으로 비난받는 극단적인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형당하지 않기 위해 목숨만 빼고 피해자의 몸과 마음을 완벽하게 망가뜨린 범인(‘보지도 말고, 쓰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지어다’), 살의의 유무와 관계없이 무조건 사형이 선고되는 실태(‘새장 속의 새들’), 자살할 용기가 없는 자들이 국가에 의한 안락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되풀이되는 어이없는 비극(‘레밍의 무리’) 등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사형제도에 관한 묵직한 고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표제작이자 가장 긴 분량의 중편 종이올빼미는 사형제도에 관한 찬반론을 가장 정공법에 가까운 스타일로 다룬 작품으로 살해당한 연인의 감춰진 과거를 훑어가는 주인공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구한 사연이라든가 복수와 응징, 용서와 속죄 등 사형제도를 둘러싼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와 감정을 누쿠이 도쿠로 특유의 서사를 통해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동안 사형제도에 관한 논란을 그린 미스터리를 여러 편 읽었지만 사람을 한 명 죽이면 사형당하는 세계라는, 당연한 일 아닌가 싶으면서도 실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가상일뿐인 설정 때문에 종이올빼미는 무척 독특한 여운을 남긴 작품입니다. 한국에서도 사형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종이올빼미는 사형제도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찬반을 막론하고 사형제도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다섯 편의 중단편이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족으로, 누쿠이 도쿠로를 아직 접해보지 못한 독자라면 어리석은 자의 기록’ (구판 제목은 우행록’), ‘통곡’, ‘난반사를 권하고 싶습니다.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지만 재미를 겸비한 그만의 독특한 사회파 미스터리를 만나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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