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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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정작 남편은 불륜 중이고, 조산원의 간호조무사로 일하지만 성취감도 보람도 느끼지 못하며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는 이하라 사에. 그리고 어려서부터 엄마의 지독한 통제와 간섭에 큰 상처를 입은 탓에 혼전 임신으로 낳은 딸을 소중히 키워온 가시와기 나쓰코. 두 사람의 관계는 절친 이상의 특별함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인 것처럼 힘들 때나 기쁠 때나 늘 함께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사에의 남편 다이시가 실종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까지 한국에 출간된 7편 중 6편을 읽었을 정도로 아시자와 요는 저의 관심작가 중 한 명입니다. 출판사 소개글에는 이야미스(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교묘하게 파헤쳐 불편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의 대표 작가라고 돼있는데, 개인적으론 정통 이야미스와는 살짝 결이 다른, 애틋하면서도 씁쓸한 여운이 더 인상적인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또 작품마다 다양한 스타일과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특정 장르만 추구한다고 단정 짓기 어려운 작가이기도 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이 독특한 연작 괴담집이라면, ‘죄의 여백은 학교폭력과 복수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는 일상에 깃든 농도 짙은 공포를 소재로 한 단편집입니다. 그런 아시자와 요가 이번에는 가족, 여성, 모성, 부부 등 가장 가깝지만 한없이 먼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관계를 소재로 지독한 심리극이자 반전 미스터리를 선보였습니다.

 

이야기는 사에와 나쓰코 두 사람의 시점에서 번갈아 전개됩니다. 남편이 회사동료와 불륜 중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외면하며 오로지 아이를 갖는 일에만 몰두하는 사에에겐 오직 나쓰코만이 유일한 안식처이자 탈출구입니다. 다른 여자들의 임신과 출산을 돕는 조산원의 간호조무사라는 직업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에에게는 아이러니한 현실이자 고된 노동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에는 나쓰코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만이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반면 엄마의 강압적인 통제와 지배에 질린 채 성장한 나쓰코는 혼전 임신으로 낳은 딸을 위해 이 아이의 앞길에 행복만 있기를.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이라고 기원하는 간절한 엄마이자 늘 자신에게 기대어 오는 사에에게 기꺼이 따뜻한 위로와 휴식을 제공하는 넉넉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것 같던 두 사람의 관계는 사에의 남편 다이시의 실종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미스터리의 출발점인 이 사건은 대략 1/3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나머지 2/3는 사건을 대하는 사에와 나쓰코 두 사람의 불안과 공포와 의심, 그리고 막판 반전과 함께 밝혀지는 사건 이면의 진실과 진범의 정체 등으로 채워집니다.

 

사실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중반부쯤 이 작품의 반전 중 한 가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살짝 위화감이 드는 대목들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반전을 눈치 챈다 하더라도 나머지 내용들이 예상대로만 전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 작품은 미스터리 자체보다 인물들의 일그러지고 고통스러운 심리와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누가, , 어떻게등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미스까지는 아니지만) 불편하면서도 애틋하고 씁쓸한 여운을 남기곤 하는 아시자와 요 특유의 미덕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할까요?

 

다만, 이런 구조의 작품을 여러 편 읽은 탓에 신선함을 만끽할 수 없었다는 점, 매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여 온 아시자와 요가 이제는 다소 상투적이라 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내세운 점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같은 소재나 주제라도 다루는 방식에 따라 전혀 새롭게 보일 수도 있긴 하지만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은 왠지 익숙한 이야기의 재탕이라는 인상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작가의 작품이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다 보니 조금은 더 아쉽고 서운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시자와 요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나서 저와 비슷한 아쉬움을 느낀 독자라면 색다른 괴담과 공포를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단편집 아니 땐 굴뚝에 연기는용서는 바라지 않습니다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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