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케이지 : 짐승의 집
보니 키스틀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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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서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오다 결국 최악의 밑바닥에 이르고 만 30살의 셰이 램버트는 가까스로 패션 대기업 사내변호사로 취직합니다. 하지만 불과 한 달만에 셰이는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고 맙니다. 늦은 주말 밤, 인사부장 루시와 함께 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선 뒤 정전이 되더니 그녀가 느닷없이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와 경찰은 루시의 죽음을 자살이 아닌 살인사건으로 몰아가기 시작했고, 이제 셰이는 죄가 없음을 스스로 밝혀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든 정황은 그녀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뿐입니다.

 

멈춰선 채 정전된 엘리베이터, 두 사람이 탔지만 한 사람이 죽어버린 상황, 진상을 보여줄 객관적인 단서는 전무한 상태. 셰이 램버트가 처한 상황은 살인자로 오인받기 딱 좋은 암담함 그 자체입니다. 그녀 자신이 변호사이긴 하지만 정황만으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유일하게 기댈 것이라곤 인사부장 루시의 자살동기가 밝혀지는 것뿐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셰이에게 불리한 진술과 증거들이 튀어나오면서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맙니다.

 

이야기는 루시는 자살했다.”를 입증하려 분투하는 현재 시점의 셰이, 영광과 추락을 거듭했던 과거 시점의 셰이, 그리고 루시는 셰이에게 살해당했다.”며 셰이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려는 회사 고위층 배럿 등 세 명의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갑자기 멈춰선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죽음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우연 그 자체지만, 세 가지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 혹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됩니다. 인생 막장을 헤매던 셰이가 하필 이 회사에 들어온 일도, 하필 주말 늦은 밤에 루시와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탄 일도, 그리고 하필 배럿이란 인물과 대립하게 된 일도 어찌 보면 예정돼있던 일처럼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그 많은 변수 가운데 하나만 방향을 조금 바꿨어도 셰이에겐 이런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아이러니들 덕분에 이야기는 더욱 쫄깃하게 읽힙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이야기는 셰이의 무죄입증 분투기에 법정 스릴러까지 가미되면서 더욱 속도감을 높입니다. 그 자신이 변호사인 셰이는 무죄입증과 함께 복수를 계획하며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자신의 뜻대로 구워삶기도 하는데, 전직 변호사인 작가의 이력이 십분 발휘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지만 꽤 야박한 평점을 준 가장 큰 이유는 허술한 악당 설정때문입니다. 셰이를 살인범으로 만들려는 악당들의 동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들이 은폐하려는 악행 자체가 다소 현실감이 떨어졌고, 셰이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그들이 동원한 수단들 역시 어설프고 빈틈투성이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인 2014년에 어울리지 않는 조악한 수준의 누명 씌우기대목에선 웃음만 나올 뿐이었는데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바람에 주인공인 셰이에게 몰입하는 것마저 어려워지곤 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셰이의 매력이 뒤로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갑자기 비현실적인 슈퍼 히로인이 되는 것도, 그녀를 돕는 조연의 힘이 너무 막강해서 그 도움이 없었다면 셰이 혼자 뭘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모두 셰이의 매력을 반감시킨 요인들입니다.

 

초반 설정도 흥미로워 보였고, 법정 스릴러를 좋아해서 선택했지만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테니 이 작품이 궁금한 독자라면 다른 서평들도 꼭 참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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