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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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변호사인 이모부가 공원에서 살해당한 뒤 수사가 미궁에 빠진 상태에서 이모를 만난 유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모는 양아들인 시후미를 범인으로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절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며 유키에게 시후미가 범인이 아니란 걸 입증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탐정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유키는 시후미의 주변을 조사하면서 예상 밖의 단서들을 손에 넣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또 다른 죽음 혹은 사건들이 시후미 주변에서 벌어진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죽음과 사건들은 하나같이 사고로 처리됐지만 유키는 탐문과 조사 끝에 이면의 진실을 조금씩 파악합니다. 그리고 20여년에 불과한 시후미의 삶이 놀랍도록 많은 비밀과 수수께끼로 들어찼음을 깨닫고 충격에 빠집니다.

 

서평에서 어느 정도까지 내용을 공개해도 좋을지 무척 애매해서 출판사 소개글과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모두 찾아 읽었는데, 일단 두 소년 주변에서 의심스러운 죽음이 잇달아 일어난다.”, “죄와 벌, 그리고 평생 끝나지 않을 첫사랑 이야기.”라는 홍보 카피를 기준으로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분량이지만 등장인물도 꽤 많고 사건도 여러 개인데다 묵직한 심리스릴러 서사까지 갖추고 있어서 농도와 밀도가 꽤 진하고 높게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추악하게 일그러진 가족사, 비정상적인 인간관계, 한 사람의 삶을 철저히 파괴시킬 정도로 잔혹했던 학대와 억압이 이야기 전반에 깔려 있어서 유키의 조사가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독자는 무거운 돌덩이가 마음속에 하나 둘씩 쌓여가는 기분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누가 범인인가?’보다는 ?’어떻게?’에 방점이 찍힌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를 알아내기 위한 유키의 조사는 짧게는 1년 전, 길게는 시후미가 중학생이던 10년 전까지 거슬러 오르는데, 그 과정에서 유키는 시후미가 유일하게 친구로 삼았던 한 인물을 알게 되고, 그들 사이의 우정 이상의 감정이 현재의 사건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어떻게?’라는 미스터리의 해법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라는 미스터리를 풀어낸 순간 유키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과연 누가 죄를 지었으며 누가 벌을 받아야 하는가, 팩트와 무관하게 진짜 가해자는 누구이고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감히 누가 진실을 논할 것인가 등 신조차 단정할 수 없는 난제에 휩싸이기 때문입니다.

 

잔혹한 미스터리답지 않게 어딘가 애틋하면서도 비극을 암시하는 시적 언어로 지어진 제목에서 떠올릴 수 있듯 이 작품은 독자에게 동정이나 연민 이상의 감정을 남겨놓습니다. 그래선지 미스터리 자체보다도 등장인물들의 상처와 내면이 훨씬 더 기억에 깊게 각인되는데, 아마 이 지점에서 살짝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미련해 보일 정도로 집요하게 탐문을 벌이는 유키의 행보는 아날로그 시대의 탐정을 떠올리게 하는 미덕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모든 걸 기억하는 말 많은 관련자들에 의지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품고 있습니다.

 

다 읽고 복기해보면 뼈대 자체는 그리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특유의 감성적인 문장과 이미지를 통해 잔혹하지만 서정적인 미스터리를 자아냈습니다. 아마도 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의 가장 큰 장점이자 개성은 바로 이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취향에 잘 맞는 서사는 아니지만,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독특한 미스터리를 담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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