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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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하라(ハラ) = 야미() + Harassment

정신과 심리가 어둠에 잡아먹힌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사정 등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해 불쾌하게 하는 언동과 행위.

 

야미하라(闇祓)

어둠을 뿌리는 사람들, 즉 야미하라(ハラ)를 물리치는 사람들

 

갑질, 가스라이팅, 마운팅(언어나 태도로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는 행위) 등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폭력 혹은 학대에 관한 신조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개념들이 아닙니다. 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상에 만연해있었지만 수면 아래 감춰지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거나 극소수의 일탈행위로 여겨왔을 뿐입니다. 또 요즘처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전에는 오롯이 피해자 혼자 그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털어놓는다 해도 네가 참아야지 별 수 있니?”라는 소극적인 답변만 돌아올 게 뻔한 그 공포와 두려움은 실은 한 개인의 삶을 완전히 박살낼 수도 있는 엄청난 것인데도 말입니다.

 

야미하라는 바로 그 공포와 두려움을 호러라는 장르 속에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입니다. 모두 다섯 편의 연작 단편으로 이뤄진 이야기엔 교묘하게 상대의 마음에 어둠을 심고 끝내 그 사람은 물론 주변까지 황폐화시키는 야미하라(ハラ)가 등장합니다. 같은 성()을 쓰는 일가족으로 보이는 그들은 갑질, 가스라이팅, 마운팅은 물론 때론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는 것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지배하고 탁하게 만들어버립니다. 피해자 가운데 죽음에 이르는 자도 무수하고, 본인만이 아니라 주변에까지 오염된 어둠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피해자를 잡아먹고나면 야미하라는 또 다른 목표물을 향해 거침없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런 야미하라를 상대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동명의 야미하라(闇祓)입니다. 어두울 과 부정을 없애는 이란 한자어로 이 작품의 원제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임무는 어둠을 퍼뜨리는 야미하라를 쫓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설정만 보면 100% 순도 높은 호러물로 보이지만, 같은 장르의 그 어느 작품보다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팽팽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딴 나라에서 벌어지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학교와 친구, 집과 이웃, 회사와 동료 등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누구나 몇 번쯤은 접하게 되는 일상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이런 인간 꼭 있지.” 혹은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거나 마주치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인간.” 혹은 끊임없이 뭔가를 강요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려는 인간.” 등 누구나 한두 명쯤은 기억해낼 그런 가해자들을 츠지무라 미즈키는 야미하라라는 개념으로 포장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경우 단순히 기분 나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파멸이나 죽음 혹은 끔찍한 전염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걸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사회파 호러라고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개념이지만 야미하라는 바로 이 미덕 때문에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엔딩과 옮긴이의 말을 보면 언젠가 이 작품의 후속작이 나올 듯도 한데, 비슷한 서사가 반복될 가능성이 많아서 너무 큰 기대를 해선 안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츠지무라 미즈키가 좀더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의외의 후속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옮긴이의 말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칠까 합니다.

 

이름만 없었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세상에 넘쳐나던 야미하라. 가장 위험하고 오싹한 공포는 바로 가까이에 도사릴지니, 역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고 가장 알 수 없는 것은 사람 마음이랍니다.” (p50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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